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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예술이란 무엇인가

by 이우 posted Aug 19, 2013 Views 160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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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우

 

 

그리스와이집트예술의차이.jpg

 

  인간의 모든 활동은 그 내부에 미학적 계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생산은 물론 정신적인 생산의 그 어떠한 부문에 있어서도 미를 창출한다. 막심 고리키1)는 “인간은 그 본성에서부터 예술가이다. 그는 어디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의 생활에 미를 도입하려고 한다”고 말했다. 이를 미루어 생각하면 예술이란 현실의 미학적 체득의 최고 형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며, 예술가란 인간의 갖고 있거나 희망하는  미(美)를 작품으로 옮기고 표현하는 사람이라고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예술가가 미를 포착해 이를 옮기고 표현하려고 하지만 미란 것이 그렇게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미의 개념이 저마다 다르고 지역마다 다르기 때문이다. 그리스 예술이 균형과 절제, 정확한 묘사에 있다고 한다면, 이집트 예술은 눈에 보이는대로 그리는 것에는 관심이 없는 것처럼 특징적인 부분만을 포착한다. 이집트 벽화나 회화를 보면 대개  머리는 옆을 향하고 상체는 앞을 향하고 있으며, 발은 옆으로 향한다. 이집트 사람들은 사물의 형태를 온전하게 전달하기 위해 각 부분의 특징이 잘 드러나게 그림을 그렸다. 이런 특이한 묘사를 학자들은 이를 두고 '정면성'의 논리라고 말한다.2) 또 서양의 회화가 선보다는 색채를 중요하게 인식하고 화폭을 꽉 차게 그리는 반면, 동양의 회화는 색채가 아니라 선을 중심으로 화폭을 비우고 그린다. 서구의 음악이 음계를 나눠 음의 고저에 초점을 두는 반면 동양의 음악은 장단과 속도를 중시하고 음계로는 다 표현하지 못 할 정도로 다양한 소리로 음을 포착한다. 

 

  이를 알기라도 한 듯 발자크3)는 그의 소설 <알려지지 않는 걸작>에서 한 주인공의 입을 빌어 “미란 엄격히 말해 제멋대로이다. 그것은 그렇게 쉽게 포착되지 않는다. 적당한 시기를 기다려 미를 추적하고 포착하여 굴복시키기 위해, 확실히 붙잡아두지 않으면 안 된다. 예술미는 현실이 단순한 묘사에 의해서가 아니라 그 창조적 재현에 의해 얻어진다. 예술은 자연을 묘사하는 것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표현하는 것에 있다. 시험 삼아 예를 들어보자. 자기 연인의 손을 석고형으로 만들어 자신 앞에 두어 보라. 그러나 그건 전혀 예술적이지 않다. 그것은 생명이 없는 물건에 불과하다. 그리하여 그대는 정확한 모사를 하지 않고도 움직임과 생명을 부여해 주는 조각가에게 의뢰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우리는 사물이나 물체의 혼, 의미, 특징적 모습을 파악하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라고 말하고 있다.

 

  발자크의 이 말은 미(美)란 그 형식을 있는 그대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크게 보면 예술 작품이 가지는 미의 근저에는 형식과 내용이라는 두 개의 잣대가 가로 놓여 있다. 우리는 김영랑4)의 구절(句節)에서 나타난 것과 같은 뛰어난 운율, 르느와르5) 회화에서 보이는 더할 나위 없는 섬세한 색채, 브라질의 바투케6)에서 보이는 화려한 율동 그 자체로도 아름답다고 느낄 수 있다. 그러나 이 미학들이 문학이나 회화, 춤이란 형식으로 드러나게 한 것은 예술가의 미학적인 사유, 즉 내용이 있었기 때문이다. 김영랑이 한글을 폄하하고 일제국주의의 한글 사용 금지에 저항하지 않았다면 그의 윤율이 만들어지지 않았을 것이며, 인상파 시대에 살고 있었던 르느와르가 인상파적인 기교에만 얽매였다면 그의 색채가 드러나지 않았을 것이다. 바투케 또한 집단적인 생활과 축제를 즐기던 원주민들의 리듬과 율동이 없었더라면 애당초 탄생하지도 않았을 것이다.

 

 

 

르느와르작품.jpg

 

  이것은 예술가가 항상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미의 기준을 현상에 적용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예술작품은 형식적인 미의 이상과 내용적인 미의 이상뿐만 아니라 시대의 미의식도 반영할 수밖에 없다. 형식이 아니라 내용에 전착하는 풍자(諷刺)7)라고 해도 미의 법칙에 따라 생활 재료를 적절하게 다루고 그것에 따라 우리에게 미적 쾌감을 주며, 주정적 현상을 반영하면서도 높은 미학적 이상을 내포하고 있다. 그래서 벨린스키8)는 “일체의 부정이 생생한 것으로 되기 위해서는 이상(理想)의 이름으로 행해지지 않으면 안 된다”고 말했고, 유명한 미술사가 에른스트 곰브리치9)에 따르면, 우리가 사물을 지각할 때 오직 눈에만 의지하는 것이 아니라 개념적 사유를 하는 인간은 자신이 이미 알고 있는 ‘지(知)의 도식’을 적용한다고 했다. 쉽게 말하자면, 시지각 자체가 이미 개념적 사유라는 색안경을 통해 이루어진다는 것이다. 우리는 결코 눈에 보이는 대로 그리지 않는다. 우리는 자신이 이미 알고 있거나 중요하게 생각하는 부분은 크게 그리거나 자세하게 그리고,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부분은 작게 그리거나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다.

 

  이처럼 예술가 또한 스스로의 미적 기준을 작용시킬 수밖에 없는 것이다. 예술가는 현실을 반영함과 동시에 현실을 스스로 평가한다. 이에 관하여 체르니세프스키10)는 이와 같이 말한 바 있다. “예술의 의의는 현실에서 인간의 관심을 끄는 것의 재현이다. 그렇지만 인간은 생활 현상에 관심을 가지면서, 의식적 내지 무의식적으로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다. 시인 혹은 예술가 또한 특수한 인간이 아니기 때문에 묘사한 형상에 대해 적어도 자신이 판결을 내리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이 판결이 그의 작품에 드러난다. 여기에 예술 작품의 의의가 있으며 그래서 예술은 인간의 도덕적 활동에 참가하는 것이다.” 그래서 예술가는 예술가 만든 작품, 나아가 예술 그 자체가 가치중립적일 수 없다. 묘사된 생활에 대한 예술가의 ‘재판’은 처음부터 이것을 단순화하여 작품에 깃들어진 교훈처럼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 ‘재판’은 예술가가 대상에 대해 어떤 사상적, 정서적 태도를 함축할 수밖에 없으며, 생활 속의 무엇이 아름답다고 보는지 또 무엇을 추하다고 보는가를 함축하고 있는 것이다.

 

 

 

피카소 작품.jpg

   그래서, 예술가 자신의 미학적 평가 자각성의 정도?예술가의 수준뿐만 아니라 예술적 성숙도?는 예술성의 지표가 된다. 미학적 이상은 인간 혹은 사회가 의식하고 있는 미학적 요구이다. 미학적 이상은 일정 시대와 일정 사회의 미학적 취미와 긴밀하게 결합되어 있다. 미학적 이상은 예술의 영역뿐만 아니라 자신이 창출해내는 취미나 생활 환경?집의 장식, 의복, 예절 등에서도 종종 드러난다. 한 시대의 문화와 생활 양식에도 간접적이긴 하지만 미학적 이상은 반드시 반영될 수밖에 없는 것이다. 같은 이유로 한 예술가 생활 현상을 묘사해 예술작품이 되자마자 반드시 일정한 미학적 평가를 받을 수밖에 없다. 실재하는 현실의 사실은 예술작품 가운데서 미학적으로 의미를 부여 받고 이후는 미학적으로 긍정적 혹은 부정적인 현상으로 평가되는 것이다. 이런 이유로 미학자 자네트 월프는 미와 예술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해야 한다고 단언하기도 했다.

 


   “미란 무엇인가? 그리고 "예술이란 무엇인가? 미와 예술의 정의는 사회적으로 해야 한다. 우리가 어떤 개념을 문자로 표현하고자 한다면 그것은 사회적으로 정의될 수밖에 없다. 예술작품을 생산하고 수용할 때도 마찬가지로 인식과 의지에 기초한다. 즉 지식과 윤리, 정치 등이 예술작품의 판단에 영향을 미친다. 이것은 일정한 양식이 있는 것이 아니라 우연적이다. 그러나 우리는 예술작품에 대한 판단을 내릴 때 사실과 윤리나 정치 같은 인식과 의지의 문제와 관계없다고 생각하기가 더 쉽기 때문에 그것들을 무시함으로써 윤리나 정치 판단에 개입하게 된다. 아름답기 때문에 옳고 맞다고 하는 경우가 흔하다. 그래서 '아름다운 것은 죄의 흔적을 갖고 있다.”

- 자네트 월프 (<<미학과 예술사회학>>(1988/1997 이론과실천) 중에서


 

  예술가가 현실의 미를 자신의 미학적 이상이란 색안경을 통해 조망해 예술품을 만든다는 것은 예술의 미가 형식과 내용, 시대 의식 등의 영향을 받아 객관적으로 제약되어 있다는 부정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하나의 작품은 예술가 한 사람의 창조적 활동의 결과일 수밖에 없다는 긍정성을 의미하기도 한다. 19세기 유행했던 인상파 화가들과 피카소11)의 미학적 이상이 다르기 때문에 자신만의 미학을 펼칠 수 있었다. 한 예술가의 작품이 우리는 매료시키는 것은 예술가 정신의 풍부함과 소재 구사가 이미 있는 것과 이미 들어진 예술적인 미를 재현(再現, representation)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미학적인 이상을 표현(表現, presentation)하고 있기 때문이다.

 

 

 

에셔작품.jpg 

 

  칸트가 그의 저서 <판단력 비판>에서 미적 판단을 상상력과 오성의 일치와 조화 속에 ‘우아미’가 있고 상상력과 이성의 조화 사이에 ‘숭고미’가 발생한다며 미적 이상을 보편성과 필연성으로 정의12)했지만 이를 일으키게 하는 인간의 상상력 자체를 규정할 수는 없었다. 상상력이란 규정할 수 없을 만큼 무한하고 걷잡을 수 없을 만큼 무질서하기 때문이다. 심지어 미를 형식의 관계로 규정하는 형식주의 미학13)에서조차 마찬가지다. 예술 작품의 과제가 아름다운 현상의 묘사에 있다고 하더라도 예술 작품은 객관적인 본질 그 자체로부터 이미 질적으로 전혀 새로운 주관적인 모습으로 나타나기 때문에 규정될 수 없었다. 예술의 형식에서조차 객관적인 미가 이미 존재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변주하면서 새롭게 나타난다.

 

 

  “한 아이가 어둠 속에서 두려움을 떨쳐버리려고 하거나, 손뼉을 치거나, 걸음걸이를 고안해내고 그것을 보도 위의 선에 맞춰보거나, “Fort-Da"하고 단조롭게 읇기도 한다. (...) 한 여자가 흥얼거린다. (...) 새 한 마리가 자신의 리트로넬로를 내지른다. 새의 노래가 자느캥부터 메시앙에 이르기까지 온갖 음악을 천 가지 방식으로 가로지른다. 푸르르르, 푸르르르. (...) 모든 소수성들이 음악을 가로지른다. 하지만 그 음악은  막대한 역량을 조성한다. 아이들의리트로넬로, 여자들의 리트로넬로, 종족들의 리트로넬로, 영토의 리트로넬로, 여자들의 리트로넬로, 사랑의리트로넬로, 파괴의 리토르넬로, 즉, 리듬의 탄생인 것이다. (...) 우리는 리트로넬로가 음악의 기원이라고, 또는 음악은 리토르넬로와 함께 시작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언제 음악이 시작되는지는 아무도 모른다. 리트로넬로는 오히려 음악을 방해하고 몰아내거나 음악 없이도 지내게 하는 수단이라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음악이 존재하는 것은 리트로넬로가 존재하기 때문이며, 음악이 내용으로서 리트로넬로를 붙잡고 탈취하여 표현의 형식 안에 집어넣기 때문이며, 음악이 리트로넬로와 블록을 이루어 그것을 다른 곳으로 데려가기 때문이다.(...) 음악은 리트로넬로를 탈영토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조작이다. 리트로넬로는 본질적으로 영토적인 것이며 영토화나 재영토화를 행한다. 반면, 음악은 리로트넬로를 가지고 탈영토화하는 표현의 형식을 위한 탈영토화된 내용을 만든다.”

- 질 들뢰즈와 가타리의 <천 개의 고원>(p.566~568)

 

 

  이처럼 들뢰즈는 예술의 형식과 내용 모두 변주되는 것이라 말하고 있다. 리트로넬로는 음악이 연주될 때 어떤 악주가 반복되면서 연주되는 것을 말한다. 반복되기는 하지만 론도처럼 A-B-A-B-C처럼 같게 연주되는 것이 아니라 A-B-A'-C-A"-A처럼 변주된다. 만약, 같은 것을 반복한다면 감상은 지루해질 수밖에 없다. 변주되기 때문에 감상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들뢰즈는 그의 책 <차이와 반복>에서 예술에서 조차 “차이나는 것만 반복될 수 있다”라고 말한다. 음악이 아름다운 운율로 향유되는 것은 ‘탈영토화함으로써 이루어지는 능동적이고 창조적인 조작’이기 때문이다.



  “플라톤주의의 타파는 다음을 의미한다. 시뮬라크르들을 기어오르게 하라. 그리고 도상들이나 복사물들 사이에서의 그들의 권리를 긍정하라. 이제 문제는 더 이상 본질-외관 또는 원본-복사본의 구분이 아니다. 이러한 구분은 표상의 세계 내에서 작동한다, 문제는 이 세계 내에서 전복을 시도하는 것, ‘우상들의 황혼’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시뮬라크르는 퇴락한 복사물이 아니다. 그것은 원본과 복사본, 모델과 재생산을 동시에 부정하는 긍정적 잠재력을 숨기고 있다. 적어도 시뮬라크르 속에 내면화된 발산하는 두 계열들 중, 그 어느 것도 원본이 될 수 없으며 그 어느 것도 복사본이 될 수 없다. 타자의 모델을 제시하는 것은 소용없다. 왜냐하면 어떤 모델도 시뮬라크르가 야기하는 어지러움에 견지디 못하기 때문이다. 모든 관점에 공통적인 대상과 관련해서만 특권적인 관점이 존재할 수 있다. 플라톤주의의 타파에서 그것은 단지 모의하는 것, 즉 시뮬라크르의 작용을 표현하는 것일 수밖에 없다.” 

- 들뢰즈의 <<플라톤과 시뮬라크르>>에서

 

 

르네마그리트의 작품.jpg

   예술에 있어 미학적인 표현이란 저마다 다른 미학적인 이상을 갖고 있기 때문에 비직선적이며 비규정적이며, 고정점이 아니라 늘 움직이고 있다. 우리가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은 예술이 아름다움을 재현하고 있기 때문이 아니라 이전에 규정된 아름다움이라는 미학적 이상을 뛰어 넘어 ‘이것이 아름다움’이라고 선언하고 있기 때문이다. 미(美)라는 것은 이미 규정되고 질서화된 세계에 대한 탈주이며, 예술가란 이미 존재하고 있는 질서정렬하게 규정된 세계를 재현(再現, representation)하는 것이 아니라 여기에서 빠져 나와 자신의 미학적인 이상을 새롭게 규정하고 질서화하는 표현(表現, presentation)이다. 예술품 또한 이미 만들어진 아름다운 예술품에 대한 재현(Representation)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임을 선언하는 연표(言表)일 수밖에 없다.

 

 

 

 

 

 

 

 

 

주(註) ------------------------

 

   1)   막심 고리키(Maksim Gorkii, 1868년 ~ 1936년) : 러시아의 작가로, 본명은 알렉세이 막시모비치 페시코프이다. 볼가 강 연안에 있는 니즈니노브고로드에서 출생하였다. 가난하여 학교를 다니지 못하고 어려서부터 사환·접시닦이·제빵 기술자 등 온갖 일을 하였다. 1892년 자신의 첫 작품 《마카르 추드라》를 발표하였다. 1895년 《러시아의 부》 지에 《체르카시》를 발표하여 크게 절찬을 받았고 이어서 〈오를로프 부부〉 등의 단편을 발표하였다. 1905년 사회 민주당에 가입하였으나 제정 러시아 군대의 민중 학살 사건에 항의한 것 등으로 인해 회원에서 제명되었고 곧 투옥된다. 1906년 세계 지식인들의 석방 요청에 의해 석방된 후 이탈리아 카프리 섬에서 망명 생활을 하였다. 1913년 귀국하여 《유년 시대》 등을 집필하는 한편, 무산 계급 작가 양성 지도에 힘을 쏟았다. 1932년 소련 작가 동맹 제1회 대회 의장에 취임, 후진 작가의 육성과 노동자 지식인들을 위해 일하다가 사망하였다. 스탈린의 대숙청 당시 부하린 등이 고리키를 독살했다는 혐의로 기소되었으나 이 재판은 다른 대숙청의 재판과 마찬가지로 조작 재판의 혐의가 짙다. 그는 공산주의 리얼리즘 문학을 창조한 최초의 사람으로서, 소련 문학 발전에 큰 영향을 주었다.

 

  2)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 1권>(휴머니스트, 2003.) p.63~69 참조.

 

  3) 오노레 드 발자크(Honor? de Balzac, 1799년~1850년)는 프랑스의 소설가이다. 프랑스 사실주의 문학의 거장으로 꼽히는 오노레 드 발자크(Honor? de Balzac)는 쉰한 살이란 길지 않은 생애 동안 100여 편의 장편소설과 여러 편의 단편소설, 여섯 편의 희곡과 많은 콩트를 써낸 작가이다.


  4)  김영랑(金永郞, 1903년~1950년 9월 29일)의 본명은 김윤식(金允植)이다. 전라남도 강진에 있는 대지주의 5남매 중 맏이로 태어나 한학을 배우며 자랐다. 강진보통학교를 다니면서 13세의 나이에 결혼하였으나 1년 만에 사별하였다. 졸업 후 1917년 휘문의숙에 입학하였으나 1919년 3·1 운동 때 학교를 그만두고 강진에서 의거하다 체포되어 6개월간 옥고를 치렀다. 다음해 일본으로 건너가 아오야마학원 영문학과에서 공부하다가 간토 대지진 때 귀국하였다. 1926년에 두 번째로 결혼하였다. 1930년 정지용, 박용철 등과 함께 <시문학> 동인에 가입하여 동지에 여러 시를 발표하며 본격적인 문학활동을 시작하였다. 대표작 <모란이 피기까지는>는 이 무렵 쓴 시이다. 1935년 첫째 시집 <영랑시집>을 간행하였다. 이후 두어차례 붓을 꺾기도 하였으나 해방 후에는 시작 활동에 전념하다가 고향인 강진에서 제헌국회의원에 출마 했다가 낙선하였다. 한국전쟁 당시 서울 수복 전투 중 서울을 탈출하지 못하고 포탄 파편에 맞아 48세로 사망하였다. 그의 작품들은 목적의식이 담긴 시를 거부하고 이상적인 순수서정시에 집중하였다. 그러나 아름다운 시어 속을 흐르는 조용한 저항의식이 담긴 민족주의적 시를 쓰기도 하였다. 주로 한국어의 아름다움을 살린 섬세한 시적 표현을 사용하였다.


  5) 르느와르(Pierre A Renoir, 1841년~1919년)는 인상파 시대에 살고 있었지만 인상파적인 기교에만 얽매이지 않았다. 물론 그 역시 인상파 화가들과 마찬가지로 빛의 효과에 대해서 적잖은 관심을 기울이기는 했지만, 그는 다만 빛이 쏟아지는 자연 속에서 자연만을 포착하려 들지는 않았다. 빛이 얼마나 인간을 아름답게 만드는가, 또는 인물의 의상을 어떻게 하면 더욱 돋보이게 하는가 등을 골똘히 생각하면서, 햇볕이라는 것이 얼마나 값진 것인가를 알리는 데 주력했다. 따라서 그는 인물을 테마로 할 때, 무엇보다도 빛을 이용하여 색조를 한층 다양하게 보이도록 하기 위해 안간힘을 썼다. 이 점이 일반 인상파 화가와 구별되는 르느와르 예술의 특징이다


  6) 바투케(Batuque)는 브라질 전통의 4분의 2박자의 빠르고 경쾌한 리듬을 말한다. 그러나 이 리듬은 현재 ‘삼바(samba)’로 우리에게 알려져 있다. 삼바는 브라질에서 생겨나 1940년대초 미국에서 유행한 사교춤이다. 바투케(Batuque)는 브라질에서는 사교춤 형태의 삼바와는 별도로 더 오래되고 아프리카적인 색채가 강한 유형의 춤이다. 바투케는 집단무로서 2겹의 직선, 또는 1명의 독무자를 가진 원형 형태로 진행된다.


  7) 풍자(諷刺) : 문학 작품 따위에서, 사회의 부정적 현상이나 인간들의 결점, 모순 등을 빗대어 비웃으면서 비판함.

 

  8) 비사리온 그리고리예비치 벨린스키(Vissarion Grigoryevich Belinsky, 1811년 ~ 1848년)는 러시아의 문학 평론가이다. 러시아 문학과 유럽 문학의 조화에 노력하였다. 딱딱하고 이론에만 치우쳤던 당시의 러시아 문학이 현실에 바탕을 두고 출발하여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러시아 문학의 기초를 닦는 데 이바지하였다. 푸시킨·도스토옙스키 등 많은 문학가를 육성하여 그들의 문학적 위치를 굳혀 주었다. 저서에 《페테르스부르크 문집》,《러시아 문학관》,《푸시킨론》등이 있다.

 

  9) 른스트 곰브리치(Gombrich Ernst Hans,1909년~2001년) : 오스트리아 빈에서 음악과 학문에 조예가 깊은 유대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오스트리아 빈대학교에서 미술사학과 고전건축학을 공부했다. 제2차 세계대전이 발발하고 독일의 나치즘이 대두되자 영국 런던으로 이주해 1936~39년 미술사가 아비 바르부르크의 이름을 딴 바르부르크 연구소에서 일했다. 1936년 〈곰브리치 세계사〉를 펴냈는데, 오스트리아를 합병한 독일의 나치가 '반유대적 동기가 아니라 평화주의 관점을 가졌다'는 이유로 〈곰브리치 세계사〉를 금서로 지정했다. 그는 1985년 〈곰브리치 세계사〉 개정판을 출간하면서 직접 겪은 제2차 세계대전과 중국의 역사 등을 추가했다. 1959~76년에 바르부르크 연구소 소장 겸 런던대학교 교수로 재직했다. 런던의 로열컬리지 오브 아트, 옥스포드 대학교, 케임브리지 대학교에서 객원교수로 강의를 했으며, 미국의 하버드대학교(1959)와 코넬대학교(1959)에서도 강의를 했다. 미술작품의 사회적·이론적 배경 연구, 도상학적(圖像學的) 연구, 심리학적 연구와 함께 방법론적 문제에 대한 의식이 날카로웠다고 평가 받는다. 1950년에 출간한 〈서양미술사 The Story of Art〉는 32개 국어로 번역되어 600만 부나 팔린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되었다. 미술의 역사를 글과 그림으로 서술해서 독자들로 하여금 가능한 한 페이지를 뒤적이지 않고 논술된 도판을 펼쳐놓은 본문에서 쉽게 찾아볼 수 있도록 구성한 책으로, 지금도 미술관 순례가 많은 유럽 여행을 떠나기 전에 꼭 읽어야 하는 필독서로 꼽힌다. 그밖의 저서로 〈Symbolic Images〉(1972), 〈In Search of Cultural History〉(1972), 〈Art History and the Social Sciences〉(1975), 〈The Heritage of Apelles〉(1976), 〈The Sense of Order〉(1979) 등이 있다. 1972년 나이트 작위, 1988년 메릿 훈장, 1994년 괴테상과 비엔나 시가 수여하는 황금메달 훈장을 수여 받았다.


  10) 체르니세프스키(Chernyshevskil, Nikolal Gavrilovich, 1828년~ 1889년) 러시아의 혁명적 민주주의자이고, 공상적 사회주의자이며 유물론자이다. 농노제에 반대하여 사회주의를 부르짖었으며, 잡지『동시대인』의 주필로 활동하였다. 포이어바흐의 영향으로 유물론적 세계관을 전개하였는데, 여기에는 변증법적인 여러 요소도 보이고 있다. 주저『철학에 있어서 인간학적 원리』(1860)나 처음으로 유물론적 미학을 체계화한『현실에 대한 예술의 미학적 관계』(1855) 외에 경제학에 관한 저서와 문학 비평, 소설『무엇을 할 것인가』등이 있다. 1862~1889년 동안의 긴 유형생활 끝에 고향인 사라토프에서 사망하였다


  11)  파블로 루이스 피카소(Pablo Ruiz Picasso, 1881년~ 1973년)는 스페인에서 태어나 주로 프랑스에서 미술활동을 한 20세기의 대표적 서양 화가이자 조각가이다. 하지만 프랑스 정부에 의해, 사회주의자로 분류되어 시민권을 갖지는 못했다. 대표작으로 큐비즘의 시대를 연 작품인 <아비뇽의 처녀들>, 스페인 내전에서 게르니카 민간인들이 나치 독일 공군의 폭력으로 학살당한 게르니카 학살사건(1938년)을 고발한 <게르니카> 등이 있다. 피카소는 1만 3,500여 점의 그림과 700여 점의 조각품을 창작했으며 그의 작품 수를 전부 합치면 3만여 점이 된다. 19세기 인상파 화가들이 행했던 것이 자신들의 인상, 시각과 시선을 그림에 개입시키며 사진과는 다른 회화만의 별도의 세계를 구축했다면 피카소는 이로부터 더 나가 평면의 화면에 입체감과 깊이를 부여하는 방법을 찾아나서게 된다. 이 시기에 그는 조르주 브라크를 만나 구체적인 결실들을 맺어가는데, 1907년 일찌기 "자연은 원통, 원추, 원구로 처리될 수 있다"고 말했던 세잔의 대규모 회고전을 계기로 현실화시켜 가장 단순한 표현으로 함축된 기하하적 그림을 경쟁적으로 그려가기 시작한다. 이것이 바로 큐비즘(입체파) 운동의 시작이었다. 그에게 있어 미술이란 미술가의 창조적 사고, 변형능력, 그리고 미술이 아닌 것에서 미술을 창조해내는 것이었다


  12)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질 들뢰즈 | 이학사 | 2010년) p.177~p.217 <칸트 미학에서의 발생의 이념> 참조.


  13)  실제론적 형식주의 미학이라고도 한다. 독일관념론 미학의 흐름 속에서 실재론적인 입장에서 미학을 주장했던 사람은 헤르바르트(Johann Friedrich Herbart, 1776~1841)였다. 그는 미학체계를 완성하지는 못했지만, 그 학파에 속하는 짐머만(Robert von Zimmermann, 1824 ~98)이 그것을 체계화 했다. 이러한 경향의 미학은 감각적 요소 자체의 미적 의의를 부정하고 그것들의 결합관계, 즉 형식에서만 미의 원리를 인정하였기 때문에 형식주의(For malismus) 미학이라고 불린다.

 

 

 

 


  1. 03
    Jul 2017
    15:18

    [사회] 미니마 모랄리아 : 예술 · 심미주의 · 대중문화

    (...) 예술가들은 승화시키지 않는다. 예술가들이 자신의 욕망을 충족 또는 억압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활동, 즉 그들의 창작물로 변형시킨다는 것은 정신분석적 환상이다. 오늘날 정당한 예술작품은 예외 없이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못한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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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 24
    Apr 2017
    16:55

    [미학] 『현대미학 강의』: 보드리야르 '역사의 종언', '예술의 종언'

    (...) 비록 마르크스주의와 정치적으로 거리를 두지만, 보드리야르의 사유의 바탕에는 아직 정치경제학의 흔적이 남아 있다. 가령 그의 '시뮬라시옹' 개념은 은은하게 마르크스의 '상품 물신성' 개념을 배음으로 깔고 있다. 마르크스에 따르면 상품경제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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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3. 24
    Nov 2016
    22:49

    [예술] 밥 딜런의 '사랑'

    (...) 그의 사랑 노래는 사랑의 관계와 감정에 집중하면서 집단적이고 정치적 저항과는 또 다른 차원의 저항적 공간을 연다. 여기서 이 저항은 세상에 개입하는 방식이라기보다 사랑의 관계나 감정을 매개로 세상에서 자신을 고립시키거나 독립하여 자유를 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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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 04
    Nov 2016
    16:29

    [예술] 밥 딜런의 대중 예술미학 : 충돌과 뒤섞임, 불확정성과 탈규정성

    (...) 밥 딜런에 대해 이야기하면서 '예술'이니 '미학'이니 하며 떠드는 것은 뭔가 자연스럽지 않다. 과연 대중 가수인 딜런을 예술가처럼 받아들이고 그의 노래를 예술 세계로 보는 것이 적절한가? 이를 위해서는 전제가 필요해 보인다. 일관된 작품 세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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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5. 27
    Oct 2016
    16:44

    [예술] 철학과 예술

    뒤샹(Marcel Duchamp, 1887년~1968년) 作 <R. 머트, 1917(R. Mutt, 1917)> ... 아드르노가 지적했듯이 현대의 예술은 철학과 상보적인 관계를 이루고 있다. 오늘날의 전시회 카탈로그에서 작품의 빈약성과 철학의 풍성함을 보는 것은 이 때문이다. 오늘날 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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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6. 12
    Feb 2015
    03:33

    [미학]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7장~제16장

    ↓ <감각의 논리>(질 들뢰즈 | 민음사 | 2008년 | 원제 :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1981년)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1장~제2장 ( http://www.epicurus.kr/Humanitas/389075 )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3장~제4장 ( http://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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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7. 12
    Feb 2015
    03:25

    [미학]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5장~제6장

    ↓ <감각의 논리>(질 들뢰즈 | 민음사 | 2008년 | 원제 :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1981년)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1장~제2장 ( http://www.epicurus.kr/Humanitas/389075 )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3장~제4장 ( http://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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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 12
    Feb 2015
    03:21

    [미학]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3장~제4장

    ↓ <감각의 논리>(질 들뢰즈 | 민음사 | 2008년 | 원제 :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1981년)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1장~제2장 ( http://www.epicurus.kr/Humanitas/389075 )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3장~제4장 ( http://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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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 12
    Feb 2015
    03:10

    [미학]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1장~제2장

    ↓ <감각의 논리>(질 들뢰즈 | 민음사 | 2008년 | 원제 : Francis Bacon Logique de la sensation, 1981년)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1장~제2장 ( http://www.epicurus.kr/Humanitas/389075 ) · 『감각의 논리』 그림 자료 : 제3장~제4장 ( http://ww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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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0. 19
    Aug 2013
    02:01

    [예술] 예술이란 무엇인가

    이우 인간의 모든 활동은 그 내부에 미학적 계기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물질적인 생산은 물론 정신적인 생산의 그 어떠한 부문에 있어서도 미를 창출한다. 막심 고리키1)는 “인간은 그 본성에서부터 예술가이다. 그는 어디서든 어떤 모습으로든 자신의 생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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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14
    Jul 2013
    23:56

    [사진] 사진으로 보는 자본의 구조

    1900년대 초 미국은 자본주의 초기였다. 많은 사람이 일자리를 찾아 도시로 몰려들어 빈민으로 전락했고 그들은 열악한 노동환경에서 낮은 임금을 받고 일할 수밖에 없었다. 시카고 대학에서 사회학과 경제학을 전공하였으며 1901년 뉴욕으로 이주하여 학생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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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13
    Jul 2013
    19:24
    No Image

    [사진] 사진, 생을 닮은 사각의 프레임

    사진, 생을 닮은 사각의 프레임 진동선* 경멸과 찬사, 그 경계에 서다 사진이 발명되었을 때 사람들은 참 많이 놀랐다. 세상 저쪽에 있는 것이 순간에 이쪽으로 날아왔기 때문이다. 모두들 마법을 부린 것으로 생각했다. 그래서 사진기를 마법 상자로, 사진가...
    Category예술 By이우 Views102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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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27
    Dec 2012
    18:59

    [예술]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 Canon EOD5D / Tokina 80-200mm / 경복궁 일월오봉도 / Photo by 이우 )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하늘(天)과 땅(地)은 있는데 사람(人)이 없네. 2012년 MBC 드라마 <해를 품은 달>에 이 일월오봉도(日月五峰圖) 병풍이 나와 이목을 끌었다. 하나의 풍경 속...
    Category예술 By이우 Views105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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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8
    Nov 2011
    17:41

    전통 가치를 부정하다

    ▲ Canon EOS D60 / Tomron 17-35mm / 서울 디자인 올림픽 2008 / Photo by 이우 □ 아방가르드(Avant-garde) 아방가르드(프랑스어: Avant-garde)는 프랑스어로 군대 중에서도 맨 앞에 서서 가는 '선발대'(Vanguard)를 일컫는 말이다. 아방가르드라는 단어는 영...
    Category예술 By이우 Views1109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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