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즐겁도다., 광대한 바다에서 바람이 물들을 흔들 때,
육지에서 다른 이의 큰 노역을 바라보는 것은,
누군가 괴로움을 당하는 것이 달콤한 쾌락이어서가 아니라,
그대 자신이 어떠한 불행을 벗어나 있는지 깨닫는 것이 즐겁기 때문이다.
보기에 즐겁도다, 온 들판에서 전쟁의 큰 싸움도(...)
오, 가련한 인간의 정신이여, 오, 맹목의 가슴이여! (...)
온 집안에서 젊은이들의 황금 상(像)이 밤의 잔치에 빛을 비춰주느라
오른손에 타오르는 햇불을 들고 서 있지 않는다 해도,
집이 은으로 빛나고 금으로 반짝이지 않는다 해도,
금박 입힌 들보들이 키타라 소리를 울리지 않는다해도,
그렇더라도 흐르는 물 가까이 부드러운 잔디밭,
높직한 나뭇가지 아래 친구끼리 드러누워
큰 비용 없이도 즐거이 몸을 돌볼 터이니,
특히나 날씨가 미소 짓고 한 해의 계절들이
푸른 풀밭을 꽃들로 흩뿌릴 때라면. (...)
자, 이제 어떤 운동에 의해 생성을 일으키는 질료의 몸체들이 여러 가지 사물을 낳으며,
생겨난 것들을 다시 분해하는지,
또 이들에게 광대한 허공을 움직여 가도록 어떤 빠르기가 주어져 있는지 설명하리라.
그대는 말해진 것에 주의하기를 기억하라.
왜냐하면 분명히 질료들은 자기들끼리 빈틈없이 붙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우리는 각각의 사물들이 줄어드는 것을 보며,
긴 시간 동안 모든 것이 흘러가는 것을 보며,
노령이 우리 눈 앞에서 그것들을 이끌어 가버리는 것을 알아보는데,
그럼에도 총체는 손상되지 않고 유지되는 것이 보이니 말이다.
이는, 각각의 것에서 떠나가는 몸체들은 그 사물들을 줄어들게 만들고,
그것들이 그리고 옮겨간 그 사물에게는 성장을 선물하기 때문이다.
이들은 전자를 늙어버리게 만들고, 후자는 반대로 피어나게 한다.
하지만 거기에도 계속 머물지 않는다.
그렇게 해서 사물들의 총체는 항상 새로워지고,
필멸의 존재들은 서로 차례로 바꿔 산다.
한 종족은 늘어나고, 다른 종족은 감소한다.
짧은 간격 속에 동물들의 새대는 교대하며,
마치 주자들처럼 생명의 햇불을 전해주고 있다.
만일 그대가,
사물들의 기원이 멈춰설 수 있으며,
멈춰섬으로써 사물의 새로운 운동을 낳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면,
그대는 길을 잃고 참된 이치로부터 멀리 방황하리라.
왜냐하면 그것들은 허공을 통하여 떠돌아다니므로,
사물들의 모든 기원은 그것이 무게를 지님으로 해서,
아니면 때때로 다른 것의 충격에 의해 이동해야만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움직여진 것들은 흔히 서로 마주쳐 부딪혔을 때
이리저리 서로에게서 튕겨나가게 되기 때문이다.
이것이 그리 놀랄 일이 아닌 것이,
이들은 무게 지닌 견고한 것으로 되어 있어서 매우 단단하고,
아무 것도 뒤쪽에서 막아서지 않기 때문이다. (...)
모든 것의 총체에는 가장 깊은 곳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을,
기본적인 몸체들이 정지해 머물 곳이 없다는 점을 기억하라.
공간에는 경계도 한도도 없기 때문이다. (...)
기본적인 몸체들에게는 어떤 휴식도 주어져 있지 않으며,
오히려 쉼 없는 여러 방향의 운동으로 요동되어
일부는 충돌하여 큰 거리를 되튕겨 나가고,
일부는 또 부딪힌 데서 짧은 간격 만큼 이동한다.
더 뻑뻑한 모임으로 된 사물들은 부딪히면 아주 짧은 거리만 되튕긴다.(...)
광대한 허공을 지나쳐 방황하는 다른 것들 중에서
극히 소수는 멀리 건너뛰고, 큰 거리에서 멀리 튕겨 돌아간다. (...)
수많은 작은 입자들이 수많은 방식으로 허공을 가로질러
빛살의 밝음 속에서 뒤섞이는 것을 그대는 볼 것이다.
마치 영원한 싸움 속에서 기병 부대별로 전투와 전쟁을 치르는 듯,
휴식도 없이 끝없는 모임과 흩어짐으로 격동한다는 것을. (...)
거기서 당신은 많은 입자들의 보이지 않는 타격에 흔들려 궤도를 바꾸고
뒤로 튕겨나 때로는 이쪽, 때로는 저쪽,
사방 온 부분으로 돌아서는 것을 볼 터이니 말이다. (...)
한데 어떤 이들은 질료에 대해 모르므로 이것에 반대하여
자연은 신들의 능력 없이는 한 해의 계절을 바꿀 수 없고
결실들과 다른 것들을 생기게 할 수 없다고 믿는다.
신적인 괘락 자신이 인간들을 설득하고 삶의 인도자로서 이끌어 가며
또 자손을 생산하도록 베누스의 입을 통해 달랜다는 것이다. (...)
이들은 신들이 모든 것을 이 인간들을 위하여 세워두었다고 상상하고 있어서
모든 이치로부터 크게 멀리 미끄러져 있는 것으로 보인다. (...)
이 주제에 관련해서 이것도 그대가 알기를 원하노라.
즉 물체들이 자체의 무게로 인하여 허공을 통하여 곧장 아래로 움직이고 있을 때,
아주 불특정한 시간, 불특정한 장소에서 자기 자리로부터
조금, 단지 움직임이 조금 바뀌었다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비껴닜다는 것을
만일 그들이 기울어지지 않았다면,
모든 것은 아래로, 마치 빗방울처럼 아래로 깊은 허공을 통하여 떨어질 것이고
충돌도 생기지 않았을 것이고,
타격도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아무 것도 창조하지 못했을 것이다. (...)
끝으로 묻노니,
만일 항상 모든 운동이 연걸되어 있고, 새 운동은 옛 운동의 정해진 순서를 쫓아 생겨난다면,
기원들이, 원인이 원인을 무한한 시간으로부터 쫓게 되지 않도록
비껴남으로써 운명의 법을 깨뜨릴 운동의 어떤 시작을 이루지 않았다면,
대체 어디에서 이 자유의지가 온 땅에 걸쳐 동물들에게 생겨나는 것이며,
대체 어디에서 운명으로부터 빼앗아낸 이 의지가 생겨나서,
그로 말미암아 우리는 쾌락이 각자를 이끄는 방향으로 나아가고
마찬가지로 정해진 시간에 시간적으로 정해진 자리에서가 아니라
정신 자체가 이끌어간 그때, 그곳에서 운동의 방향을 비껴 바꾸는 것일까?
왜냐하면 의심할 나위 없이 일들에게 있어서 각자에게 자신의 의지가 시작을 제공하고
거기서부터 운동이 사지를 통하여 흘러가기 때문이다.
그대는 가로대가 열려도 바로 그 순간에는 말들의 열망하는 힘이 그 마음 자체가 원하는 만큼
그렇게 갑작스럽게 뛰쳐나가지 못하는 것을 보지 않는가?
이것은 질료의 모둠 전체가 온몸에 걸쳐 가동되어야 하고,
그렇게 움직여진 전체가 온 지체에 걸쳐 마음의 열망을 힘써 쫓게 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당신은 운동의 시작이 가슴으로부터 생겨나고,
이것이 우선 정신의 의지로부터 출발하여
그 다음에 온몸과 지체로 전해지는 것을 볼 수 있는 것이다.
이것은 또한 우리가 다른 이의 타격이나 커다란 강제에 의해 밀쳐져서 나아가는 것과도 비슷하지 않다.
왜냐하면그럴 경우, 온 몸의 모든 질료가 우리가 원치 않았는데도
전진하고 쓸려갈 것이 분명하기 때문이다.
의지가 온 지체들에 걸쳐 그것을 다시 고삐 잡아 제어할 때까지.
그러니 이제 그대는 보지 않는가.
외적인 힘이 많은 사람을 밀치고, 자주 원치 않는 이들을 나아가게 강제하며 곤두박질쳐 쓸려가게 하지만
그렇다 해도 우리 가슴 속에는 무엇인가 대항하여 싸우고 맞설 수 있다는 것을!
또한 그것의 결정에 따라 수많은 질료들이 때때로 지체와 관절들을 통하여 방향을 바꾸도록 강제되며,
앞으로 밀쳐진 것이 다시 제어되고 되돌아 다시 자리 잡는다.
그러므로 씨앗들에있어서도 같은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운동들에게 타격과 무게 이외의 다른 원인이 있다는 것이 인정되어야 한다.
거기서 이 능력이 우리 속에 생겨나는 것이다.
무로부터 아무 것도 만들어질 수 없음을 우리가 아니 말이다.
왜냐하면 무게는 모든 일이 타격에 의해서, 외적인 힘에 의해서 이루어지는 것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신 자체는 모든 일들이 일어나는 데 있어 내적인 강요를 가지지 않으며,
마치 패배한 존재인 듯 견디고 참도록 강제되지 않는다는 사실,
이 사실은 시초들의 아주 작은 비껴감이 만든다.
장소에 있어 정해지지 않은 곳에서, 정해지지 않은 순간에. (...)
이 일들에 있어서 다음과 같은 사태는 놀랄 게 아니다.
즉, 사물들의 모든 기원들이 움직임 속에 있는데
전체는 왜 무엇인가가 자기 몸으로 움직임을 시작할 때가 아니면
극도의 고요 속에 있는 듯이 보이게 하는지....
왜냐하면 시초들의 모든 본성은 우리 감각의 한참 밑에 놓여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당신이 시초들 자체를 분별할 수 없으니
그것들은 운동도 우리 모르게 채어가는 것이 당연하다.
특히 우리가 분간할 수 있는 사물들이라 하더라도 공간적 거리가 떨어져 있는 경우에는
자주 그 운동을 숨기니 말이다.
양털지닌 가축들은 자주 언덕에서 행복한 양식을 뜯으며,
새 이슬 보석으로 반짝이는 풀들이 불러 초대하는 대로 움직여 가고,
새끼 양들은 만족하고 뛰놀며 애교 있게 까부는데
이들 모두는 멀리서 우리에게 뒤섞여 보이며,
마치 푸룬 언덕에 흰 빛이 놓인 듯 하니까.
더욱이 이런 경우도 있다.
큰 부대들이 내달려 들판의 장소들을 채우고 전쟁과 흡사한 모습일 때
광채가 하늘까지 닿고 온 땅은 청동의 빛으로두루 빛나며
밑에서는 인간들의 힘에 의해 발소리 울리고 산들은 함성을 받아 반향하는데
높은 언덕들 어떤 장소에서는 이들이 정지해 있고
광채가 들판에 머물러 있는 듯 보인다.
(...)
-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루크레티우스 · 아카넷 · 2012년 · 원제 : De Rerum Natura) p.111~13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