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어른의 삶이란 오해를 견디며 사는 일이라는데..."* 참으로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다.
ㅡ 건물 안으로 사라지는 아내(유진)의 뒷모습. 아이를 안고 있지 않다. 집. 아이가 자고 있다. 다시 거리로 나선다. 아내는 누구를 만나러 간 것일까? 아이의 죽음. 이직. 유진의 침묵. 단절. 정전. 약속이 돌연 취소되었다는 아내. 그녀도 나(태오)처럼 단전을 이용해, 터놓고 얘기를 나누고 싶었던 걸까? 아내가 사라졌던(?) 건물 지하 1층으로 두꺼운 나무문을 찾아들어가는 그. 한 남자가 그에게 다가왔다. 관장이었다. ㅡ
아이의 죽음은 사실 누구의 탓도 아닌 사고였다. 그것을 알고 있는 그는, 자신의 죄를 아내가 알게 될까봐 두려운 나머지, 그 책임을 유진에게 돌리고 싶어 한다. 태오는 관장과의 대화에서, 아내와 관장과의 관계를 의심하고 풀어가는 과정에 있다. 아내와 관장에게 직접적 질문을 유보한 채 계속해서 답을 유보시킴으로써, 또한 그를 둘러싸고 있는 외부 세계(사회의 구조, 의사, 이웃 주민)와의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갈등은, 현대인의 고독과 존재론적 불안감을 증폭시킨다.
오해와 이해 사이의 거리는 매우 모호하다. 이해란 안다고 믿는 상상력에 있지만, 오해의 그림자는 '고통'이다. 그의 서술적 방식은, 마치 잘려나간 필름처럼 무심한 듯 툭툭 내던지며, 오해라는 커다란 판 위에 퍼즐을 맞추듯 붙여나간다. 가면을 쓴 독자의 눈은 전적으로 태오를 따라가지만, 그것은 도덕의 시선이며, 끝없는 개별적 자기검열이라 할 수 있다.
"증명할 수 없는 건 무용합니다. 그렇지만 세상에는 그런 일 천지예요. 확실한 걸로 증명되는 건 없어요. 형상화된 것도 자세히 보면 상상과 추측인 경우가 많습니다. 그저 최선을 다해 짐작할 뿐이지요."º
< 덧글 >
비교적 짧은 단편인 편혜영의 '몬순'은, 최대한 정보 공개를 늦추면서 불필요한 묘사를 극단적으로 절제하는, 밀도 있는 구성과 치밀한 장치가 인상적이다. 이러한 탁월한 소설적 기법과 문체가 그녀의 타고난 재능이라 할지라도, 훌륭하다. 그것은 오직, 예술을 향한 그녀의 집중력에서 나오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정전이 되었던 아파트에 다시 불이 들어왔다 나갔다를 반복하는 것으로 끝을 맺는 부분에선, 왠지 모를 답답함과 쓸쓸함을 느꼈다. 그래서 내게 질문을 던진다. 그렇다면 어떻게 살 것인가? 여기에 다음 문장으로 답을 대신한다. "불빛은 크기에 상관없이 왜 언제나 짐작보다 따뜻한 걸까?"? "그렇다. 짐작보다 따뜻하다."*
*(김애란의 작가론에서) º(본문 중에서, 유진의 말) ?('선의 법칙' 편혜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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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금천구립시흥도서관 주민참여예산 제안사업으로 진행하는 <금하문학클럽, 문학으로 철학하다>에서 김명화가 쓴 리뷰(Review)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