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경주
책장에서 공책을 꺼내든다. “우리는 묻게 된다. ‘그가 정말로 그렇게 멋진 사람이라면, 어떻게 나같은 사람을 사랑할 수 있을까?” 알랭 드 보통의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 내용 일부이다. 클로이를 사랑한 나는 이러한 의문을 갖고 클로이가 나를 사랑하는 순간, 더 이상 완벽한 사랑이 아니게 된다.
스물 두 살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에 빠져 공책에 빼곡하게 문장을 적었다. 「나는 너를 사랑하는가」사랑에 빠지는 순간부터 그 사랑이 식고 다른 사랑을 시작하는 순간들. 꺼내든 공책 속 ‘나’에게 동일시했던 문장은 지금은 와 닿지 않는다. 스물 두 살에 느꼈던, 적지 않으면 안 될 것 같아 공책에 적었던 그 감정이 아니다.
첫눈에 반해 사랑에 빠지고 ‘두 사람은 영원토록 행복하게 살았습니다’라고 끝나던 동화처럼 운명적이고 영원한 사랑을 믿었다. 운명적 사랑을 담고 있는 영화나 책을 보면 설레었고 언제가 그런 사랑을 하리라 믿었다. 영화처럼 우연한 만남 속에 사랑을 기대했고 첫눈에 반한 것처럼 사랑의 감정이 증폭 될 거라 믿었다. 스물 네 살, 그러한 사랑은 찾아오지 않았다.
사랑을 모르겠다. 친구에게 ‘좋아하는 감정이 뭐야?’라고 묻자 그 자리에 있던 토마토 주스를 가리키며 ‘토마토 주스가 좋아. 그 때의 좋다는 감정이야’라고 답했다. 그렇게 가볍단 말인가. 지금까지 기다려왔던 사랑이 겨우 토마토 주스라니.
연애, 사랑에 대해 이야기 나누면 자연스레 결혼을 이야기한다. 인생에 있어 결혼은 필수 코스이며 의례 당연한 일이라고 생각한다. 드라마 속 운명적 만남에서 결혼까지 골인하면 열광하게 된다. 결혼이란 닫힌 결말을 통해 편안함을 느낀다. 결혼을 통해 영원한 사랑을 꿈꾼다.
사랑도 모르는데 결혼이라니. 연애, 사랑에서 결혼까지 이야기하면 어느 순간부터 맞지 않는 옷을 입은 듯 불편함을 느낀다. 그 자리에서 벗어나고 싶어진다. 결혼에 대한 콩깍지가 벗겨지면서 사랑의 끝은 결혼이 아니었다. 베이비부머의 급증하는 이혼 추세에 따라 황혼이혼이란 신조어가 등장하고 황혼이혼의 비율이 급증하는 사회적 현상만 봐도 알 수 있다. 아이 때문에 참고 결혼생활을 유지하는 세상은 끝이 났다.
앞으로 결혼을 하고 결혼생활을 유지할 자신이 없다고 느끼는 순간, 비혼이라고 선포했다. 다들 이유를 묻는다. 그때마다 확신에 차서 설명하기보다 그냥이라고 대답하기 일 수였다. 헤겔의 사랑 개념을 알게 되면서 확신했다. 헤겔이 말한 자녀를 통해 서로 사랑을 직감한다고 정의한 사랑은 진정으로 원하는 사랑이 아니다. 이러한 이유로 결혼생활을 유지하고 싶지도 않다.
스물 두 살의 그 감정이 스물 네 살의 감정이 아니듯 사랑은 변한다. 100℃에 끓는 물이 되기 위해 불을 지피고 100℃가 됐을 때 뜨거운 사랑을 느낀다. 점차 식어버려 차가워진다 해도 다시 뜨거워 질 준비를 갖춘 것 뿐. 결혼에 대해 비관적이라도 사랑은 포기하지 않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