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윤정
'416호……. 여기네.'
체크인을 하고 방으로 들어왔다. 바로 짐을 안풀고 침대로 점프! 역시 호텔 침대는 이 맛이지 ^^. 맥주를 마실 건 아니지만 괜히 냉장고에 있는 음료수와 맥주 브랜드를 살펴 본다. 집에선 절대 입을 일 없는 샤워 가운도 옷장에서 꺼내 침대로 던져버렸다. 방 안의 불이란 불은 모두 켠 것 같다. 집에서 그랬다면 등짝 스매싱을 피할 수 없었을텐데……. 흐음. 이제서야 캐리어가 눈에 들어온다. '짐 정리부터 좀 할까나?' 침대에 걸터 앉아 캐리어를 무릎사이에 놓는다. "○……○……○." 딸깍.
"어?!(일시정지) 아니, 이이게 뭐야?;;;"
캐리어엔 내가 즐겨쓰는 모자도 안보이고 편한 후드집업이나 구겨진 청바지도 안보였다. 심지어 검정색 남색으로 이루어진 속옷들마저 안보였다. 나의 모든 것들이 사라지고만 것이다. ‘분홍색 원피스’, ‘섹시한 부츠’, ‘이건 뭐지? 목걸인가? 이쁘네.’ 캐리어 안의 모든 물건들은 인스타그램에서 볼 법한 훈녀들의 아이템으로 가득했다. 이게 어디서 바뀐 걸까? 무슨 요정이 나타나서 ‘짠!’하고 변신했을 리는 없고. 곰곰이 생각해보니 바뀐 곳은 공항밖에 없었다. 수화물검색대! 일단 공항으로 전화를 했다. 서툰 영어로 이러이러한 사정을 말했지만 불행하게도 접수된 상황이 하나도 없다는 것. 이 여자는 나보다 더 캐리어에 신경을 안쓰고 있는 듯 했다. 전화를 끊고 다시 캐리어 안을 살펴 봤다. 속옷들은 새 것인지 전부 태그가 안떼져 있었다. 달콤한 향의 향수병에 귀여운 귀걸이까지! 이 여자는 정말 미모가 출중할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이 여자가 내 캐리어를 본다면 아마 체구가 작은 남자라고 생각할 것만 같았다.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니 뭔가 좀 부끄러워졌다.
당장 내일부터 본격적인 여행이 시작인데 옷도 없고 새로 옷을 구입할만한 여윳돈도 없다. 아침에 공항에 한 번 더 전화해 봐야겠다는 생각으로 장시간 비행에 지친 나는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 그리고 나는 일어나자마자 공항에 전화를 걸어봤지만 접수된 건이 하나도 없다고 현재로서는 방법이 없다는 같은 대답을 들을 수 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난 그녀의 이쁜 분홍색 원피스에 갈색 끈이 매력적인 부츠를 신었다. 처음 거울로 날 봤을 땐 너무 민망해서 바로 옷을 벗었다. 이런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자 다시 옷을 주섬 주섬 입기 시작했다. 영롱한 빛이 나는 목걸이까지 착용하니 정말 다른 사람이 된 것만 같았다. 생각지도 못한 여성스러운 모습으로 여행이라니!
호텔 방문을 열고 나가면 또 다른 무언가가 뒤바뀔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