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 오는 날의 스케치-이별 유예 _김명화

posted Dec 05, 2015 Views 5339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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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미지_눈.jpg

  눈 오는 날의 스케치
  -이별 유예

  김명화

  산발적으로 눈이 내린다. 창밖을 오래 응시했다. 고요와 침잠의 시간이다. 마지막 수업이 있기 전, 이사를 앞둔 미영 님의 얼굴이 계속 아른거렸다. 이별은 안개의 형상으로 저만큼 앞에 서 있다가, 점점 가까이 내게로 걸어왔다. 예상은 예상일 뿐, 이별은 언제나 느닷없는 것이 되고 만다. 이사라는 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그것이 어떠한 수순을 가져오는지, 우리는 경험을 통하여 잘 알고 있다. 떨어짐의 거리는, 시간보다 공간적 문제에 가까운 듯하다. 그것이 다시 시간의 문제로 돌아오겠지만.

  세상엔, 수많은 색깔의 이별이 있지만, 난 또 다른 이별 앞에서 허둥대고…. 박인환의 '목마와 숙녀'가, '얼굴'이, 한용운의 '님의 침묵'이, 박인희의 목소리와 뒤엉켜 내 귓전을 맴돈다. 뜨거워 붉어진 눈동자 안쪽에서 생긴 슬픔이, 목을 타고 내려와 심장에 내를 이룬다. 울지 못했다. 울면, 정말 이별이 될까봐, 울 수 없었다. 현대는 완벽한(?) 이별을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움조차 어색하게 만든다. 그러한 어정쩡한 이별은, 우리를 더욱 난감하게 하고, 허허롭게 하고, 고립시키는지도 모른다. 그것이 나를 두렵게 한다.

  그녀가 이사하던 날에도 눈이 내렸고, 오늘처럼 추웠다. 내 옆엔 흔들 탱자나무가 없었다. 작은 몸으로 하루 종일 동동거렸을 그녀를 생각했다. 그녀의 말은 꼼꼼하다. 맛있는 음식을 사랑하고, 감정에 솔직하다. 메고가는 그녀의 가방 속에서 방울소리가 날 것 같다. "아휴~ 이우 샘, 왜 하필이면 그 많은 꽃 중에 '오이꽃'이예요! 저 볼 날 얼마 남지 않았으니까, 저한테 좀 잘해주세요." 그녀의 투정은 사람의 마음을 맑게 만드는 특징이 있다. 헤어질 수 없는 사람들은 헤어질 수 없다.

  "우리 아직 이별 아닌 거 맞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