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명화
제목이 너무 거창한가? 그렇다면 이것은 전적으로 나의 '미'적 허세이다. 아직, 철학 용어를 쓴다는 것이 솔직히 면구한 일이다. '침묵의 미래'를 읽었다. 기존의 김애란 작품과는 사뭇 다른 분위기. 안개 낀 낯선 도시를 헤맨 느낌이었다. 다시 읽었다. 무언가 꿈틀거리는 것이 숨어 있는 것 같았지만, 확실하게 눈에 잡히진 않았다. 며칠째 자신을 안개 속에서 서성이도록 그냥 내버려두었다. 그리곤 어려운 수학 문제를 미뤄놓고(이런 경우, 뒤에 제대로 푼 적은 거의 없음) 쉬운 문제부터 풀 듯, 공연히 엉뚱한 일에 매달렸다.
침묵의 미래. 그녀는 왜 제목을 이렇게 지었을까? 책 제목을 가지고 일주일 넘게 씨름하기는 처음이다. 그러다가 슬몃, '김훈'을 흉내내보기로 한다. 침묵의 미래. 글자를 써놓고 오래 들여다본다. 다시 소리내어 읽어본다. 침묵. 글자를 쓰고 들여다본다. 입을 다물어야만 할 것 같다. 침묵,하고 말해본다. 이것은 여름날, 깊고 어두운 우물 속으로 들어가는 두레박 같다. 언어가 안에 갇히자, 바깥에서 부유하는 언어들. 침묵은 낱말과 낱말사이에, 문장과 문장사이에도 흐른다.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하고 끝없이 미끄러진다.'는 라캉의 말에서 미끄러짐은, 생성이다. 표현된 언어는 오직 타자의 몫이다. 언어는 자신의 모습을 완전히 드러내지 않은 채 존재하며, 부재한다.
우리는 어쩌면 모두, '소수언어박물관'에 갇혀 있는지 모르겠다. 각각의 움직이는 '섬'과 같다. 공간 안에서의 섬. 공간 밖 어느 지점에서의 섬, 섬, 섬들. '물'이라는 언어로 멀어졌다 가까워졌다 할 뿐, 끝내 하나로 포개어질 수 없는 섬. "말을 안 해도 외롭고 말을 하면 더 외로운" 소통의 그리움. 인간의 근원적 고독. "이따금 오염되고, 타인과의 교제에서 자주 실패해야 건강해지는" 언어의 역설. 단절과 생성의 언어, 침묵.
미래. 글자를 쓰고 들여다본다. 닿을 수 없는 미지의 시공간. 다시 소리내어 말해본다. ~ㅐ의 마지막 모음이 길게 이어지며, 마치 팔을 뻗으면 뻗을수록 멀리 달아나는 실타래 같다. 언어는 언제부터 인간의 의식을 지배한 것일까? 태어나서부터 소멸할 때까지? 그러나 섬도, 바닷속 심연에선 서로 맞닿아 있을 것이고, 미래란, 자유의 가능성에 대한 영원한 현재가 아닐 것인가. 언어는 표현될 때 생명력을 가지며, 그 힘은 미래를 향한다. 이제 안개가 조금 걷히는 것일까?
이 소설은 언어를 화자로 하여, 전반부에는 언어의 정의(?)를 카드에 적어 하나씩 툭툭 던져 놓는 듯하다가, 이야기를 풀어나간다. 소설의 형식을 빌린 철학서 같다. 드라마적 줄거리보다는 그 내용이 전하는 무게에 의미가 있다하겠다. 그렇다면 작가 김애란은 무엇을 말하고 싶은 것일까? 언제든 나누거나 통폐합할 준비를 하고 있는 거대 권력에 대한 경계일까? 아니면, 아무것도 묻지 않는 개별자에 대한 경고인가? 이것도 아니면, 말할 수 없는(윤리적인 문제) 것에 침묵하게 될까 두려운 자신에 대한 다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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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 조금이라도 더, 글의 완성도를 높이기 위하여 매번, 이우 선생님의 심층 강의를 듣고 후기를 써왔지만, 이번엔, 어줍잖은 시도를 한 번 해보았습니다. 저는 따라쟁이.
* 김훈 흉내내기 ㅡ 단편, '가까운 숲이 신성하다' 초반부.
" " 부분은 본문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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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금천구립시흥도서관 주민참여예산 제안사업으로 진행하는 <금하문학클럽, 문학으로 철학하다>에서 김명화가 쓴 리뷰(Review)입니다.
<금하문학클럽, 「문학으로 철학하다」·2> 상세 내용 보기
( http://www.epicurus.kr/Notice/38956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