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일시 : 2015년 1월 30일(금) 오후 7시 30분 ~ 10시(독서토론) · 저녁 10시~12시(탁구)
○ 장소 : 모임공간 에피( http://www.space-epy.kr )
○ 대상 도서 : <만엔원년의 풋볼>(오에 겐자부로 | 웅진지식하우스 | 2007년 | 원제 : 萬延元年のフットボ-ル, 1967년)
○ 진행 : 리강
↓ 독서토론
↓ 탁구
1994년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오에 겐자부로'의 <만엔원년의 풋볼>(오에 겐자부로. 웅진지식하우스. 2007년. 원제 : 萬延元年のフットボ-ル, 1967년)을 읽고 이야기를 나누었습니다. 시코쿠의 마을에서 일어난 폭동과 100년 후의 안보투쟁을 결합시켜 폐쇄적 정황에 대한 혁신적인 반항을 그려 엄청난 반향을 불러 일으켰던 이 소설은 오에 특유의 문체로 난해하다는 평이 있기도 했지만, 문학적 완성도가 높고 1960년대 한 세대를 풍미한 실존주의 사상, 특히 '사르트르'(Sartre, 1905년 ~ 1980년) 철학을 잘 구현해 내고 있습니다. 무엇보다 부조리한 시대 옵티미즘(optimism)과 페시미즘(pessimism), 데카당스(d?cadence) 등 니힐리즘(Nihilism)을 문학적 상상력과 구성력으로 구현해내고 이 부조리에서 빠져나오는 주인공 '미쓰사부로'의 행보가 놀라웠습니다. 만약, 상처가 있다면, 외부 세계가 구성하는 니힐(Nihil)에 포획되지 마시고 과거 존재를 무화(無化)시키며 한 발 한 발 앞으로 나아가시기 바랍니다.
"인간의 자유는 인간의 본질에 선행하는 것으로, 본질을 가능하게 한다. 인간존재의 본질은 인간의 자유 속에서 공중에 매달려 있다. 그러므로 우리가 자유라고 부르는 것을 ‘인간존재’의 ‘존재’와 구별할 수 없는 것이다. 인간은 ‘먼저’ 존재하고 ‘그런 다음에’ 자유를 얻는 것이 아니다. 인간의 존재와 인간이 ‘자유라는 것’ 사이에는 차이가 없다. (……) 차라리 우리는 무의 문제와의 관련에서 자유를 논하고, 자유가 무의 나타남을 조건짓는 한, 자유를 논하지 않으면 안 된다. (……) 그리하여 인간존재가 세계의 전부 또는 일부를 부인할 수 있는 조건은 인간 존재가 그 현재를 그 과거 전체로부터 분리시키는 이 ‘아무것도 아닌 것(rien)’으로서 자기 속에 무를 지니는 것이다. (……) 즉 이름이 주어지지 않은 채 머무르는, 또 스스로 그것을 의식하지도 않는, 하나의 존재중지가 의식 밖에서 찾아와서, 그 결과, 의식을 둘로 나누어 이 절대적 투명성의 핵심에 다시 불투명성을 끌어들일지도 모른다. (……) 자유는 자기 자신의 무를 분비함으로써 자기의 과거를 장외로 내모는 인간적인 존재이다. 말할 것도 없이 자기 자신의 무라고 하는 이 최초의 필연성은, 중단에 의해, 또 개개의 부정에 있어서 의식에 나타나는 것은 아니다. 심적 생활에서는 부정적이거나 질문적인 행위가 적어도 부차적인 구조로 나타나지 않을 때는 한 순간도 없다. 의식은 잠시도 쉬지 않고, 스스로 자기의 과거 존재의 무화로서 자기를 살아간다."
- 사르트르의 <존재와 무> 중에서
□ 모임 후기
읽는 내내 오해했던 부분들이 토론을 통해 조금은 해소되었다. 까뮈의 작품들과 철학적으로 동류의 사유를 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구조적으로 불합리하게 구성되어진 세상에서 미약한 인간이 스스로를 구원해 내기란 여간해서는 힘들다. 그 힘듦이 허무주의를 만날 때 자신이나 타인에 대한 폭력성으로 나타난다. 작품에 나타나는 자기처벌 욕구라든지 타자에 대한 폭력은 허무주의를 극복해 내지 못한 결과일 것이다. 문제는 결국 극복의 문제로 귀결된다. 주인공은 타자와의 관계에 대한 이해로서 극복을 말하지만 완전한 극복에 이르지는 못한 듯하다. 극복의 문제는 현실에 대한 관점적 해석(인식)의 문제로 귀결되는 것이 아닐까.
- 정현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