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사 : 왈책 11월 독서토론 『물과 꿈』
○ 대상 도서 : <물과 꿈- 물질적 상상력에 관한 시론>(가스통 바슐라르 | 문예출판사 | 1980년 | 원제 : L'eau et Les Reves: essai sur l'imagination de la matie`re)
○ 일시 : 2015년 11월 27일(금) 오후 7시 30분 ~ 10시
○ 장소 : 모임공간 에피( http://www.space-epy.kr/Map )
○ 참가비 : 1만원(현장 납부, 모임공간 이용료 5,000원 + 간식비 5,000원)
○ 주관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www.epicurus.kr )
이 독서토론은 누구나 참여할 수 있는 Open Group입니다
가스통 바슐라르(Gaston Bachelard, 1884년~1962년)는 <몽상(la reverie)이란 개념을 정초하고 현상학(phenomenology)적 방법을 통해 자신의 시론(詩論)을 전개합니다. 시적 이미지에 대한 현상학적 정답을 찾으려는 그의 시론은 정신분석(psychoanalysis)과 데카르트적인 코키토(Cogito)를 기반으로 전개되어 '환원주의'라는 심각한 오류에 빠져듭니다. 정신분석의 '꿈(la reve, 남성 명사)'이 현실과 상관 없이 이루어지는 것인데 반하여, 바슐라르의 <몽상(la reverie, 여성 명사)은 몽상하는 자가 내면과 외부의 경계에 위치하면서 언제든지 현실태(actuallity)로 전환될 수 있다는 그의 시론은 정당한 것처럼 보이고, 데카르트적인 코키토가 물질적인 외부와 상관 없는 실체라는 것을 밝히면서 몽상가의 코키토를 정초하는 것도 정당해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반-정신분석적인, 반-데카르트적인 입장에 서 있으면서도 자신의 개념을 정신분석적이고 데카르트적인 패러다임 위에서 전개하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자신이 주장하는 '인식론적 단절'에 실패하고 맙니다.
특히 문학의 텍스트를 작가의 메시지나 사회적인 현실이라는 외부성을 무시한 채, '물·불·바람·흙'이라는 고대 철학 속의 '물질'을 집단 무의식의 원형(archetype)으로 삼아 텍스트의 의미를 파악하겠다는 그의 시도는 유아(幼兒)적입니다. 문학적 텍스트를 작가와 상관 없이, 사회적 현실이라는 외부성을 무시한 채 '물질적 상상력'만을 가지고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을까요? 그는 왜 텍스트의 의미를 텍스트 속에 가두려고 하며, '물질적 상상력'을 몽상가의 코키토로 내면화시키려고 하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의 존재론·인식론이 '외부 세계가 부조리(不條理, absurdity)하며, 부조리한 외부 세계를 바꿀 수 없다'는 실존주의(existentialism) 인식에 기반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의 '물질적 상상력'에는 주체는 있지만 타자가 없으며, 내면은 있지만 외부가 없으며, 몽상하는 자는 있지만 민중이 없습니다.
텍스트의 의미는 텍스트 밖에 있습니다. 비트겐슈타인에 따르면 언어의 의미는 환경·문맥·상황·사용과 실천에 따라 달라지며, 라캉에 따르면 ‘기표는 기의에 닿지 못한 채 그 위로 미끄러’져 기표 자체로는 의미에 닿지 못합니다. 들뢰즈와 가타리에 따르면, ‘책을 통해 읽게 되는 모든 텍스트는 책이 외부와 만나서 이루어지는 주름’입니다. ‘책은 갖가지 형식을 부여받은 질료들과 매우 다양한 날짜와 속도들로 이루어져 있으며, 책이 어떤 주체의 것이라고 말하는 순간, 우리는 외부성을 무시’하게 됩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이성적인 코키토를 몽상가의 코키토로 전환시키고, 물질적인 상상력을 통해 외부성을 확득하고 싶어 했지만 내면성에 머물면서 오히려 외부성을 잃어버렸습니다. 세계대전이라는 비극 속에서 '물질적 상상력'을 통해 '몽상'하기만 하는 이 시론을 두고 에밀 시오랑(Emile Michel Cioran, 1911년~1995년)의 말을 빌려와 이렇게 말하겠습니다. 가스통 바슐라르는 '삶의 비극을 무시했기 때문에 유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