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료] 10월 왈책 독서토론 『체 게바라 평전』

by 정현 posted Oct 06, 2021 Views 1888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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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토론 요강

   ○ 토론명 : 왈책 10월 독서토론체 게바라 평전
   ○ 대상 도서 : 『체 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실천문학사·2005년·원제 : Che Guevara, 2002년)
   ○ 일시 : 2021년 10월 21일(목) 오후 7시 30분~10시 30분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www.epicurus.kr) 사직동 사무실 대면 토론, 혹은 줌 화상회의를 이용한 비대면 토론
   ○ 참가비 : 회원 무료 · 비회원 2만원(현장 납부)
   ○ 진행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정현

    이 독서토론은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는 Open Group입니다.
    COVID-19 상황에 따라 비대면 토론으로 진행될 수 있습니다.

책 소개 :  『체 게바라 평전』(장 코르미에·실천문학사·2005년·원제 : Che Guevara, 200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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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적인 전기작가인 이 책의 저자 장 코르미에는 특히 체 게바라에 대한 많은 저술을 써왔고,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할 만한 전문가로 인정을 받아왔다.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집대성한 이 책은 프랑스에서 출간되자마자 오랫동안 베스트셀러의 자리를 지켰고, 세계 각국에서 번역 출간되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 책에서 그는 체 게바라에 대해 남겨진 모든 자료들을 일갈해서 엮어놓고 있다. 체의 아버지를 비롯해 체가 살아 생전 관계했던 모든 사람들과의 인터뷰를 통해 생생한 그의 모습을 전하고 있으며, 그가 남겨놓은 편지글이나 잡문들 거의 대부분이 이 책에 실려 있다. 그 동안 체 게바라에 대한 책은 수십 종이 출간되었으나, 670페이지가 넘는 분량에 더 이상의 체에 관한 기록은 찾을 수 없을 만큼 체의 생애와 사상을 집대성해 놓은 이 책이야말로 '체 게바라' 전기의 최종본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저자 소개 : 장 코르미에 (Jean Cormier)

  일간 '파리지앵'의 전문기자로서 체 게바라에 관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한 전문가이다. 1981년부터 게바라에 관한 자료들을 수집하기 시작했다. 남아메리카를 여행하며 체의 아버지, 에르네스토 린치를 만난 것을 계기로 체의 일생을 더듬는 긴 여행을 시작하게 됐다. 1987년에 피에르 리샤르와 함께 <체에 대해 말해다오>라는 다큐멘터리를 제작했으며 이후 수년동안 체에 관한 연구에 힘을 쏟았다. 저서에 <체 게바라> 등이 있다.

추천 글

  자유와 평화를 위해 목숨을 바친 위대한 삶(김옥림·시인) 
  혁명가이기 전에 ‘기품의 인간’이었던 체 게바라(최성각·작가, 풀꽃평화연구소장) 
  인생혁명 인생역전(이재익·소설가, SBS FM ‘두 시 탈출 컬투쇼’ 담당 PD) 

(출처 : 알라딘. https://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564758)


□참고 : 체 게바라(Che Guevara, 1928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1967년 볼리비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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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쿠바 혁명(1956~59)에서 이름을 날린 공산주의자로 후에 남아메리카의 게릴라 지도자가 되었다. 좌익 성향이 있는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 가정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좌익 성향이 있는 스페인-아일랜드 혈통의 중류 가정에서 5남매 중 맏아들로 태어났다. 천식을 앓았으나 운동선수와 학자로서의 재능이 뛰어났으며 1953년 의과대학을 졸업했다. 그는 여가가 생기면 라틴아메리카의 여러 곳을 여행하면서 서민들의 가난한 생활을 몸소 체험했으며, 빈곤에 대한 해결책은 폭력혁명밖에 없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라틴아메리카를 각각 독립된 여러 국가의 집합체로 보지 않고 하나의 문화적·경제적 실체로 보았다. 또한 라틴아메리카 해방을 위해 전대륙적 전략이 필요하다고 생각했다.

  1953년 그는 과테말라로 갔다. 그곳에는 하코보 아르벤스가 진보적인 정권을 이끌고 사회주의 혁명을 시도하고 있었다(이때 게바라에게 '체'라는 별칭이 붙었는데 그것은 아르헨티나인들이 말할 때 흔히 붙이는 감탄사의 하나임). 1954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이 후원한 쿠데타로 아르벤스 정권이 무너지자 그는 미국이 진보적인 좌익정부에 반대한다는 확신을 갖게 되었다. 이러한 확신이 전세계적인 혁명을 통해 사회주의를 건설하려는 그의 계획의 밑바탕이 되었다.

  그는 과테말라를 떠나 멕시코로 갔고, 그곳에서 쿠바인인 카스트로 형제(피델·라울)를 만났다. 카스트로 형제는 그때 정치적 망명생활을 하며 쿠바의 풀겐시오 바티스타 독재정권을 전복시킬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카스트로의 군대에 합류해 1956년 11월말에 쿠바의 오리엔테 주(州)에 상륙했다. 그 군대는 상륙 즉시 바티스타 정부군에게 발각되어 거의 전멸했다. 그러나 부상당한 그를 포함한 몇몇 생존자들은 마에스트라 산맥에 이르렀는데, 그후 그곳이 게릴라군의 중심지가 되었다.

  반란군은 바티스타 정부군으로부터 무기를 빼앗고, 주민들의 지지 속에 신병을 모집해 차츰 세력을 키워나갔다. 그는 카스트로가 가장 신임하는 보좌관이 되었고 바티스타 정권을 전복하는 싸움에 2년이나 참여했는데, 〈쿠바 혁명전쟁 회고록 Pasajes de la guerra revolucionaria〉(1963)에 그 이야기가 기록되어 있다. 그는 과테말라를 떠나 멕시코로 갔고, 그곳에서 쿠바인인 카스트로 형제(피델·라울)를 만났다.

  1959년 1월 2일, 승리한 카스트로 군대가 수도 아바나에 들어가 마르크스주의 정부를 세운 후, 쿠바 시민이 되었다. 그는 혁명군에 가담했을 때와 마찬가지로 새로운 정부에서도 유능한 인사였으며 쿠바를 대표하는 산업대표단을 이끌고 해외에도 나갔다. 또한 모든 종류의 제국주의, 식민지주의, 미국의 외교정책에 반대하는 인물로 서방세계에 알려지게 되었다. 국가 농업개혁연구소의 산업부장, 쿠바 국립은행 총재, 공업장관을 역임했다.

  1960년대 초반, 쿠바의 정책과 자신의 의견을 밝히는 많은 연설과 저술을 했는데, 그때의 저술 가운데 특히 유명한 것이 쿠바식의 공산주의를 논한 〈쿠바에서의 인간과 사회주의 El socialismo y el hombre en Cuba〉(1965)와 게릴라전의 교본으로 큰 영향을 끼친 〈게릴라전 La guerra de guerrillas〉(1960)이다.

  1965년 4월 이후 공적인 생활에서 자취를 감추었고, 그후 2년간 그의 활동과 거처는 비밀에 붙여졌다. 나중에 밝혀진 바로는 다른 쿠바의 전사들과 함께 콩고로 가서 내전에 참전하고 있는 파트리스 루뭄바 부대의 조직을 도왔다고 한다. 1959년 1월 2일, 승리한 카스트로 군대가 수도 아바나에 들어가 마르크스주의 정부를 세운 후, 쿠바 시민이 되었다.

  1966년 가을, 볼리비아로 잠입해 산타크루스 지역에서 게릴라 부대를 조직·통솔했다. 1967년 10월 8일 이 부대는 볼리비아 육군 특별파견대에 의하여 전멸되었고, 그는 부상을 입고 사로잡힌 후에 총살당했다.

(다음백과 : https://100.daum.net/encyclopedia/view/b01g2449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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