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보] 왈책 8월 독서토론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by 이우 posted Aug 31, 2019 Views 4321 Replies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ESC닫기

크게 작게 위로 아래로 댓글로 가기 인쇄
  ○ 토론명 : 왈책 8월 독서토론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
  ○ 대상 도서 :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아녜스 푸아리에 · 마티 · 2019년 · 원제 : Left Bank: Art, Passion, and the Rebirth of Paris 1940-50)
  ○ 일시 : 2019년 8월 30일(금) 오후 7시 30분~10시
  ○ 장소 : 인문학공동체 에피쿠로스 사직동 사무실

   이 독서토론은 누구나 참여하실 수 있는 Open Group입니다. 

edit01.jpg


  1945년 가을, 프랑스 파리는 전쟁 이전보다 지저분했지만 그래도 다시 불을 밝혔다. 시몬드 보부아르의의 표현대로 나치를 물리친 레지스탕스 “동지에의 대잔치”가 이어졌고 친(親)나치에 대한 처벌이 이루어 졌다. 식량배급도 이어졌다. 한 달 배급량이 1인당 1리터로 줄어들면서 들뜬 자유와 불같은 정치토론이 와인을 대신해 밤의 유흥을 북돋웠다. 저렴한 육류와 가금류가 다시 정육장에 등장했지만 전쟁 전보다 가격이 세 배여서 신흥 부유층만 사 먹을 수 있었다. 사르트르, 보부아르, 카뮈, 베케트, 메를로 퐁티, 헤밍웨이, 아서 케스틀러, 솔 벨로, 마르그리트 뒤라스, 보리스 비앙, 마일스 데이비스, 쥘리에트 그레코, 자코메티, 피카소, 앙리 카르티에 브레송, 브리지트 바르도, 프랑수아즈 사강 등 파리 좌안(Left Bank)에 거주했던 구성원(이하 파리 좌안)들은 제3의 길, 새로운 사랑, 예술, 사상, 정치 형식을 모색하고 실천했다. 파리 좌안들은 논조의 장의적이고 스타일은 단호했으며 분석은 호전적이었다. 

  1945년 가을, 우리일본제국주의의 침탈에서 벗어났지만 폐허였다. 수탈된 땅에서 사람들은 보릿고개를 넘어가야 했고 친일 재판정이 열렸지만 해결하지 못했다. 문인들은 참여와 순수로 갈라졌으며 여성들은 몸을 팔아야 했다. 신탁이 이어졌고 임시정부는 돌아오지 못했으며 은 친일파나 혹은 그 후손들에게 다시 돌아갔다. 분노한 사람들은 북쪽으로 옮겨 갔다. 5년후 전쟁에서 겨우 살아남았지만 전쟁은 모든 사람을 알몸으로 만들어 놓았다. 전염병이 창궐해 DDT를 온몸에 쏟아 부어야 했다. 자유보다는 이념의 억압이 어깨를 짓눌렀으며 야간 통행은 금지되었다. 사유는 끊어지고 식량은 턱없이 부족했다. 사유나 사상, 역사 이런 것들은 뒤돌아볼 겨를이 없었다. 혹은, 그렇게 생각했다. 빈곤은 사람들을 앞으로만 내몰았다. 혹은, 그렇게 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너무 바빴다. 

  2019년 가을, 광복후 74년이나 지났지만 아직도 갈등하고 있다. 우리는 어디에 있는지 어디로 가야 하는지 알 수 없게 되었다. 서로 다른 층위의 이념이, 서로 다른 위상의 노년과 장년과 청년이, 서로 다른 계층인 빈부가, 고용주와 노동자가, 정규직과 비정규직이, 서로 다른 신체를 가진 남성과 여성이, 사물과 개념이 뒤얽혔다. 이제 비판이 없는 역사는 해석되지 않는다. 『사랑, 예술, 정치의 실험 : 파리 좌안 1940-50』(아녜스 푸아리에·마티·2019년)를 읽었다.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사랑, 예술, 사상, 정치 형식을 모색하고 실천했던 파리 좌안의 지성계 풍경과 우리의 풍경을 비교하면서, 우리의 새로운 사랑, 예술, 사상, 정치, 경제 형식을 고민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