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료·32] 소쉬르(Saussure)

by 이우 posted Mar 14,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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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쉬르.jpg    페르디낭 드 소쉬르(Ferdinand de Saussure, 1857년 11월 26일~1913년 2월 22일)는 스위스의 언어학자로 근대 구조주의 언어학의 시조로 불린다. 언어학에서 사용되는 중요 개념 중 공시 언어학(synchronic linguistics)과 통시 언어학(diachronic linguistics)을 처음 도입하기도 했다. 주요 저서로 소쉬르의 제자들의 강의 노트를 바탕으로 편집하여 그의 사후(1916년)에 출판된 <일반언어학 강의>(Cours de linguistique g?n?rale)가 있다. 이 책은 그가 세상을 떠난 뒤 1916년에 그의 제자들의 스승의 강의 노트를 편집, 재구성한 것이다. 소쉬르는 박사학위 논문을 제외하면 생전에 한 권의 저서도 남기지 않았다. 그는 심지어 강의가 끝나면 자신의 강의 노트를 잘게 찢어 흔적조차 남기지 않는 습관마저 지니고 있었다.

 

  소쉬르는 젊은이 문법 학파의 제자였으나 그들의 이론과 방법론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독창적인 접근 방법을 취하였다. 언어 현상을 전체로서 체계 속에서 고찰하였다. 드 소쉬르의 최초의 논문이자 가장 중요한 저작인 1878년의 <인도어 원시 모음체계에 관한 논문(M?moire sur le syst?me primitif des voyelles dans les langues indo-europ?ennes)>가 바로 그것이다. 이 논문에서 인도어의 음성체계에는 이미 알려진 음 이외에 소멸한, 음가를 알 수 없는 한 음이 있었다고 가정할 필요가 있다고 주장하였다. 그리고, 1941년 헨드릭센(Hendriksen)이 히타이트어를 연구하는 과정에서 드 소쉬르가 언급한 바로 그 위치에서 어떤 후두음을 발견함에 따라 드 소쉬르의 이론의 정당성은 확고해졌다. 이 이론은 후두음 이론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소쉬르가 활동한 19세기 언어학 연구의 흐름은 이른바 비교역사문법, 즉 언어의 기원, 성장, 변화에 대한 연구가 주를 이루었다. 입으로 말하는 말, 즉 구어보다는 문헌에 적혀 있는 말, 즉 문어가 주요 연구 대상이었으며, 언어의 본질에 대한 탐구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고 있었다. 소쉬르는 부모의 권유로 제네바 대학에 입학, 물리학, 화학을 전공으로 택했으나 적성에 맞지 않음을 발견하고 1년 만에, 비교역사언어학 연구로 이름이 높은 독일 라이프치히 대학으로 유학을 갔다. 그는 이 대학 재학 중이던 21세 때 '인도-유럽어의 원시 모음체계에 대한 연구'를 발표함으로써 학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이후 베를린 대학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1880년 이후 파리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24세 때인 1881년에 소쉬르는 소르본 대학에서 고트어, 고독일어 전임강사가 되었다. 1891년에 소쉬르는 여러 대학의 교수직 제의를 사양하고 고향으로 돌아와 1907년부터 제네바 대학에서 '일반언어학 강의'를 시작했다. 1907년 1월부터 6개월, 1908년 11월부터 7개월, 1910년 10월부터 8개월, 이렇게 세 차례에 걸쳐 진행된 일반언어학 강의는 수강생이 6∼12명에 불과했지만, 그는 이 강의를 통해 현대언어학, 기호학의 토대가 되는 중요한 생각들을 발표했다.

 


   ① 랑그(langue)와 빠롤(parole)

 

   소쉬르에 따르면, 기호는 랑그(langue)와 빠롤(parole)이라는 두 가지 기본적 차원을 지닌다. 언어 활동에서 사회적이고 체계적 측면이 ‘랑그’이고, 개인적이고 구체적인 발화의 실행과 관련된 측면을 ‘파롤’이다. 랑그와 파롤은 서로 상반되지만 서로 상호 보완적으로 작용한다. 언어는 다른 이와의 의사소통이기 때문에 서로 공통된 규칙이 존재한다. 여기서 우리가 '개별적' 으로 대화하는 것을 ‘파롤’, 공통된 문법이나 낱말들에 존재하는 서로간의 규칙으로 고정적인 것이 ‘랑그’다. 사람들은 ‘살다’라는 낱말을 인식할 수 있는데 이를 ‘랑그’라고 볼 수 있고, 실제 대화할 때 상황에 따라 ‘살다’는 조금씩 다른 느낌을 줄 수 있는데, 이를 ‘파롤’이라고 볼 수 있다. 같은 말이라도 상황이나 억양에 따라 받아들이는 뜻이 달라지는 것도 이 ‘파롤’ 때문이다.

 

  랑그와 파롤을 처음 사용한 소쉬르는 언어학의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은 ‘랑그’ 뿐이라고 보았는데, 이는 ‘파롤’은 상황에 따라 쓰이는 느낌, 또는 뉘앙스가 천차만별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고정적이고 본질적인 랑그만을 연구 대상이 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랑그’는 언어활동의 사회적인 부분으로, 모든 이가 의사소통을 위해 반드시 복종해야 할 체계이다. ‘파롤’은 랑그가 개인에 따라 자유롭게 실현되는 현상이다. 발화자는 오직 자신이 배운 랑그를 파롤을 통해 반복하며 재생산할 따름이다. 소쉬르는 랑그만을 분석 대상으로 삼음으로써 ‘현상에 대한 구조의 우위’라는 중요한 기틀을 닦았다.

 

  여기서 ‘랑그’란 일종의 언어규칙이고, “파롤”은 그 규칙이 사용된 실제의 언어행위다.  내가 하는 말은 구체적인 발화로서의 ‘파롤’이지만, 이 언어행위는 한국어라는 일종의 규칙체계인 ‘랑그’에 근거한 것이다.  그렇다면, 랑그는 사회의 영향 아래 결정되고, ‘파롤’은 그 영향 아래에서 발화될 뿐이다. 이런 점에서 의미나 판단, 혹은 사고가 ‘주체’에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언어구조에 내장되어 있고, 거꾸로 ‘주체’들이 사고하고 판단하기 위해선 이 언어구조에 따를 수밖에 없다. 우리는 언어를 통해 의미나 사실을 객관화한다. 그 결과 ‘주체’는 더 이상 자기가 말하고 받아들이는 행위의 중심이 아닌 것이 되며, 오히려 그 중심은 언어라는 구조에 있다는 것이다.

 


  ② 공시태와 통시태

 

  공시태(共時態)’는 언어학에서 ‘한 시기의 한 언어에 공존하면서 체계를 형성하는 사항들 사이의 관계’를 말하며, ‘통시태(通時態)’는 ‘언어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하는 모습’을 말한다. 소쉬르는 통시태보다 공시태를 우위에 두면서, 그 결과로서 파생되는 ‘역사성의 배제’를 체스 게임으로 비유한다. 시합은 이 순간 체스판 위에 놓여 있는 장기의 위치와 결합을 통해 이해될 뿐, 이 장기들이 어떤 길을 통하여 그곳에 도달하였는가는 고려대상이 아니다. 따라서 공시적인 면이야 말로 유일한 현실이다. 실제로 대중은 언어의 변화를 인식하지 못할뿐더러, 그 사실을 모르더라도 언어를 사용하는 데에 아무런 어려움을 느끼지 못한다. 그러므로 언어 상태를 연구해야 할 언어학자는 과거를 제거해야 한다.

 

  소쉬르는 언어연구의 방법론에서 공시적 연구와 통시적 연구를 구분했는데 전자는 일정 시점에서 언어의 상태와 구조를 연구하는 것이고, 후자는 세월의 흐름에 따른 언어의 발달을 연구하는 것이다. 그는 이러한 두 가지 방법이 상호 보완적이면서 동시에 독자적인 연구 영역이라고 보았다. 소쉬르 이전의 언어학자들은 랑그보다는 빠롤, 공시적 연구보다는 통시적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다.

 


  ③ 시니피앙(signifiant, 記標)과 시니피에(signifi?, 記意)

 

책_일반언어학강의.jpg  소쉬르는 또한 언어 기호가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과 필연적인 관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자의적인 관계를 맺고 있다고 보았다. 예컨대 같은 대상을 놓고 우리나라 사람들은 ‘개’라고 말하고 미국 사람들은 ‘dog’라고 말한다. 결국 ‘개’, ‘dog’ 등의 언어 기호와 그것이 가리키는 대상, 또는 말의 소리와 그 의미 사이의 관계는 사람들 사이의 약속에 불과하다. 이러한 언어의 특성을 '언어 기호의 자의성'이라고 한다. 언어란 결국 하나의 사회집단 구성원들이 서로 상호작용하여 이루는 자의적 음성기호의 체계이다.

 

  이러한 소쉬르의 생각에 따르면, 언어 기호는 하나의 이름에 하나의 대상을 연결 짓는 것이 아니라, 하나의 개념과 하나의 기호를 결합하는 것이다. 시니피앙(signifiant, 記標)은 ‘외계(外界)에 의해 인지된 의미 표상을 대체하는 형식. 즉 표현되어진 기호(문자)를 의미하며, 시니피에(signifi?, 記意)는 언어에 의해서 표시된 내용, 즉 그 기호가 의미하는 내용을 말한다.

 

  20세기초까지만 해도 기호는 구체적인 사물을 나타내는 표시로 간주되며 사물과의 필연적인 관계를 지니는 것으로 여겨져 왔다. 소쉬르는 기호란 분리 가능한 두 개의 요소인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로 구성되어 있다 주장했다. 이것은 기호와 사물의 관계는 우연적인 결합에 불과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기호란 시니피앙과 시니피에의 결합으로, 이 둘 사이의 결합은 자의적인 것이다. 기호는 외부세계의 대상과 무관하게 존재하며, 변별적 차이가 낳는 이항적 관계, 그리고 단위들이 관여하고 있는 ‘대립’에 의해서만 정의된다. 여기서 언어기호를 외부세계와 단절시키고, 언어현상을 오로지 그 자체로만 보는 “기호세계의 닫힘”이라는 중요한 개념이 생겨난다. 기호체계가 오직 내적 메커니즘에 따라서만 지배되고 있다는 이 개념은 후에 구조주의 패러다임의 특징이 된다.

 

  소쉬르의 이러한 이론은 언어학뿐만 아니라 구조주의에 영향을 주었다. 구조주의를 대표하는 프랑스의 정신과 의사이자 정신분석학자인 라캉(Jacques Lacan)은 시니피앙의 우위를 나타내며, 시니피앙과 시니피에 사이의 경계선 결여가 정신병을 초래한다며 이를 정신병리학에 원용하였다.

 

  예술에 있어서도 작품의 감각적 표현 양식과 그 이념적 내용의 관계가 이 같은 상호 불일치를 초래할 수 있다. 한편 바르트(Roland Barthes)는 시니피앙이란 우리가 눈으로 볼 수 있는 이미지 자체이고, 그 뒤에 숨어 있는 함축적인 의미와 내용이 시니피에라고 주장하였다. 그는 <신화>(Mithology, 1957)에서 어떤 사물에 점점 이야기를 붙여서 눈사람처럼 확대되어 가는 것을 신화라고 설명하였다. 시니피앙과 시니피에를 둘러싼 언어학적 방법론은 현대 미술에도 적용되었다. 신구상회화 화가들은 그림에 어떤 의미를 담을 것인가 하는 문제를 바르트의 언어이론인 시니피에와 시니피앙을 미술에 도입함으로써 해결하였다.

 

  예를 들어, 아이요(Gilles Aillaud)의 동물원 연작에서 동물원 그림 자체는 시니피앙이고, 동물원과 같은 인공적인 환경에 갇혀있는 현대인의 모습은 시니피에인 것이다. 신구상회화 작가들이 바르트의 <화>를 읽었고 그로부터 영향을 받았다는 사실은 1967년 <일상의 신화>라는 그들의 전시회 명칭에서도 알 수 있다.

  언어학에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언어의 체계 자체가 랑그이기 때문에 개인적으로 발화되는 파롤은 랑그의 체계에 적용이 될 때 소통이 일어나고 그렇지 않으면 의미전달에 어려움을 겪는다. 절대적인 체계, 정해진 것 그 랑그가 중요시 여겨지게 되는 것은 당연하다.

 

  반면 시니피에는 원래 처음부터 그 의미가 개인마다 모두 다르다. 랑그처럼 어떤 절대적인 체계 자체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물론 사회의 관용적인 의미로서의 시니피에는 분명 존재하지만 시니피에 자체에서 절대적인 의미만을 갖는 것이 아니다. 즉, 다원성을 갖게 된다. 이 다원성은 ‘포스트모더니즘’에 영양을 끼친다. 시니피앙에는 저마다 다른 다양함이 가능하다. 그러나 시니피앙에 '내'가 담은 시니피에를 상대방이 해석할 때  마음대로 해석해 버리면 엉뚱한 의미로 전달될 수밖에 없다. 그래서 시니피앙의 너머에 있는 시니피에를 찾아내는 일이 매우 중요하게 된다. 이를 찾아내지 못한다면 커뮤니케이션 자체가 불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래서 문화란, 옛날처럼 단순하게 어떤 절대성 아래서 그저 향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 각양각색의 다양함 너머에 있는 시니피에를 파악하기 위해서 '분석'해야 하는 것이다.

 


  ④ 의미작용(Signification)

 

  소쉬르에 따르면, 기호의 가장 큰 특성은 기표와 기의 간의 “자의성(arbitrainess)”이다.  나무를 ‘나무’라고 부르는 이유가 언어의 외형적인 것에 실재 나무의 형태를 표현하는 요소가 담겨 있어서가 아니다. 물론 중국의 문자언어는 상형문자로서 부분적으로는 언어의 외형적 요소를 통해서 그 의미를 유추할 수 있다. 그러나 소쉬르의 구조주의는 시각적인 부분과는 별도로 청각적 영상과 언어 개념의 관계로 한정해 정의한다. 청각적 영상과 언어 개념의 관계를 통해 본다면 언어는 실재하여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추상적 형식 체계에 불과하다. 본질을 실재로 표현할 수 없다는 한계를 갖고 있다. 각 나라의 언어가 다르다는 것에서도 우리는 구조주의가 말하는 언어적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은 ‘사과’, 미국은 ‘애플’이라고 한다. 청각적 영상인 능기는 각각 ‘사과’와 ‘애플’로, 차이를 갖고 있다. 그러나 그것이 지시하는 대상은 동일하다. 결과적으로 본질을 외부로 드러내는 ‘기호’는 문화적 자의성의 산물이며 사회적 관행의 소상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즉 “꽃”이라는 소리나 글자는 그것이 지시하는 관념과 아무런 유사성이나 연관성을 지니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기표와 기의가 결합될 자연적 동기나 필연성은 존재하지 않지만, 사회적 관습(convention)에 의해 종이의 양면처럼 결합되어 있다. 그리고 이 결합이 의미를 발생시킨다. 이렇게 기표와 기의의 상호작용을 “의미작용(Signification)”이라고 불린다.

 


 ⑤ 결합관계(Syntagme)와 계열관계(Paradigme)

 

결합과계열.jpg

    소쉬르는 언어는 문장을 엮어가는 방식, 즉 통사론적으로 결합관계(syntagme, 생타금)와 계열관계(paradigme, 파라디금)를 가지고 있다고 보았다. 문장이란 단어들이 일정한 법칙에 따라 나열된 것을 말하는데, 서로 연관되어 결합할 수 있는 관계를 결합관계(syntagme, 생타금)라고 하고, 어떤 단어가 다른 단어로 대체되어도 결합관계가 성립되는 관계를 계열관계(paradigme, 파라디금)라고 했다. 의미론에서도 같이 적용되어 ‘바지-티셔츠, 치마-블라우스(대등합성어, 혼성어, 관용어, 연어)’와 같이 어휘가 의미론적으로 횡적으로 대등하게 결합하는 관계를 결합관계(Syntagme), 반면에 ‘바지-치마, 티셔츠-스웨터-블라우스동의관계, 상하관계, 대립관계’와 같이 의미론적으로 종적으로 맺는 관계는 계열관계(Paradigme)다.

 

  언어는 그 구조와 배치에 따라 의미가 달라진다. 언어는 본질적인 가치보다 관계적 구조에 의하여 의미가 형성되며 그런 의미가 가치를 더 지닌다는 것이다. 관계적 구조, 이 속에는 다양한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먼저 선별과 조합이라는 개념을 통해서 관계적 구조를 해석할 수 있다. 선별의 예는 이러하다. ‘책’이라는 단어, 그 속에 내포된 의미를 표현하기 위해 우리는 ‘도서’. ‘서적’, ‘문고’ 등의 유의어 중 하나를 선별한다. 이런 선별의 과정을 거쳐야 의미 있는 메시지의 형성에 도달할 수 있다. 조합도 선별만큼이나 필요한 과정이다. 우리가 ‘포크’라는 단어를 들었을 때 형상하는 다른 단어는 어떤 것들이 있는가? 칼, 젓가락, 숟가락, 국자 등이 있을 것이다. 이러한 연관어의 연쇄적이 나열을 통해 우리는 조합의 과정을 거친다. 소쉬르 언어학에서는 계열화된 언어들의 선별과정과 연쇄적으로 나열되는 언어들의 조합 과정을 거침으로서 의미 있는 메시지가 된다.

 

 


  ⑥ 가치(의미, Value)

 

  소쉬르 언어학에서 하나의 기호는 다른 기호와의 관계 속에서 의미를 낳을 뿐, 결코 언어 밖의 물리적 현실을 지시하지 않는다. “꽃”이라는 기표는 ‘저 밖의’ 물리적 대상과 연관될 필요도, 연관될 수도 없으며, 단지 “잎,” “줄기,” “열매” 등의 다른 기표들과 맺고 있는 관계 속에서만 의미를 산출한다.  다시 말해 “꽃”은 ‘잎’이 아니고, ‘줄기’가 아니며, ‘열매’도 아니고‘라는 식으로 기호의 다발 속에서 차이를 통해 의미를 드러낼 뿐이다.   언어로 기표한 ‘개’(기표)와 실제 살아있는  ‘개’(기의)는 같지 않으며, 기표인 ‘개’가 기의인 ‘개’를 지칭해야 할 필연적 이유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재 이 둘은 갖게 생각하는 것은 순전히 관습, 즉 문화적 동의의 결과라고 할 수 있다. 횡단보도 신호등에서 빨강 신호와 초록색 신호, 혹은 노랑색 신호를 보았다고 하자. 빨강색은 ‘정지’ 의미로, 초록색은 ‘진행’의 의미로 노랑색은 준비 단계로 인식된다. 여기에서도 볼 수 있듯이, 초록이라는 ‘기표’와 진행이라는 ‘기의’ 사이의 관계는 인위적인 것이다. 다시 말해서 ‘초록’과 ‘진행’이라는 것 사이에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는 것이다. 이것은 기호가 원래 본질적인 의미를 가지는 것이 아니라 대립과 대조라는 차이에서 발생한다고 할 수 있다. 그렇다면 이러한 언어를 통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의미’란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차이’와의 관계 때문에 생겨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소쉬르는 언어의 가치는 차이(difference)에서 결정된다고 말하고 있다. 

 

 

  이처럼, 소쉬르의 언어학(기호학)은 음운론에서 출발하여, 언어(기호) 현상에서 찾아지는 규칙을 제시했다. 그 규칙은 보편적인 것으로 문화 현상 일반을 지배하는 것으로 간주된다. 가령 언어는 기표와 기의가 자의적으로 결합된 것이며, 이것은 기호가 사회적 약속이나 관습임을 의미한다. 우리가 어떤 기호를 사용하는 것은 관습에 기대어 우리의 의사를 전달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이다. 이때의 기호는 의사소통을 위한 도구이며, 그것은 사회 속에서 약속된 체계를 이룬다. 그 체계는 통시론적이기보다는 공시론적이며, 관계들의 집합으로 나타난다. 소쉬르 언어학의 개념은 언어가 언어자체에 내장된 내용에 의해 적극적으로 정의되지 않고 체계내의 다른 항목들과의 관계에 의해 정의된다는 것이다.  기호의 의미는 구조, 혹은 관계 안에서 고정된 것이고, 개인이 사용하는 의미나 받아들이는 의미는 구조를 벗어나 있거나, 관계가 아니라 차이에서 생성되는 것이다.  이것은 체계화된 기언어(기호) 속에서도 그 의미(가치)가 얼마든지 가변적임을 보여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