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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28] 니체의 철학

by 이우 posted Mar 06,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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니체의 계보학

 

  계보학(系譜學, Genealogy)이란, 조상 때부터의 혈통이나 집안의 역사를 연구하거나 사람의 혈연관계나 학문, 사상 등의 계통 또는 순서 등을 과학적인 방법으로 규명하는 학문을 말한다. 철학에서의 계보학은 가치 생성의 연관관계를 역사적으로 관찰하고 그것의 역사적 조건성을 파악하는 것이다. 단지 역사적 관찰 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가치 생성의 원인을 파악한다.

 

  "계보학이란 어떤 대상이나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지고 어디서 연유하는지를 묻는 것입니다. '좋다' '나쁘다' '선하다' '악하다' 혹은 '참' '거짓'이라는 개념이 어떻게 만들어졌는가를 봄으로써, 그것이 어떤 의지의 산물인지를 보려고 합니다. 즉 '참' '거짓'같은 자명해 보이는 개념을 권력의지에 연루시켜서, 어떤 권력의지가 작동하고 있는지를 밝혀내는 것이 바로 계보학의 과제란 겁니다."(이진경, 철학과 굴뚝 청소부, p.241)


 

도덕의 계보학

 

책_도덕의계보.jpg   <도덕의 계보(독일어: Zur Genealogie der Moral>는 1887년 니체의 윤리학상의 주저로, 아포리즘(잠언) 형식으로 쓴 <선악의 피안>에서의 요지를 완전히 통일하여 하나의 이론 체계로 정리한 이론 전개서이다. 이 책에서 니체는 기독교의 가르침에 바탕을 둔 이웃사랑의 도덕은 약자들이 품는 비열한 원한감정(怨恨感情)에 의해 거짓 구성된 위선도덕(僞善道德)이며, 강자의 발을 억지로 끌어당겨 약자에게 종속시키려고 하는 ‘노예도덕’에 지나지 않는다고 탄핵한다. 그리고 본래의 고귀한 도덕은 자연 질서에 따라서 힘있는 자가 힘없는 자를 지배하는 ‘군주도덕(君主道德)’의 입장에서 구해야 한다고 보았다. 평등 이념에 의해 강약의 가치 질서를 문란하게 하고 인간을 평균화 시키는 ‘인인애(人人愛)’의 도덕에 대해서, 강자의 전형인 ‘초인’의 육성을 목표로 노력하는 ‘원인애(遠人愛)'의 도덕이야말로 참된 인도성(人道性)을 관철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우리는 자기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우리 인식자들조차 우리 자신을 잘 알지 못한다 : 여기에는 그럴 만한 충분한 이유가 있다. 우리는 한 번도 자신을 탐구해 본 적이 없다. ... 신적인 경지로 마음을 풀어놓고 자기 자신에 깊이 몰두해 있는 사람의 귀에 마침 온 힘을 다해 정오를 알리는 열두 번의 종소리가 울려 퍼졌을 때, 그 사람이 갑자기 깨어나 "지금 친 것이 도대체 몇 시인가?"라고 묻는 것처럼, 우리도 때때로 훨씬 후에야 귀를 비비면서 아주 놀라고 당황해서 "도대체 우리는 지금 무엇을 체험한 것인가?"라고 물으면서, 더 나아가 "우리는 도대체 누구인가?"라고 물으면서, 앞에서 말한 것처럼 나중에 이르러서야 우리의 체험, 우리의 생활, 우리 존재의 열두 번의 종소리의 진동을 모두 세어보게 된다 - 아! 우리는 그것을 잘못 세는 것이다. 우리는 필연적으로 우리 자신에게 이방인이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이해하지 못한다. 우리는 우리 자신을 혼동하지 않을 수 없다. "모든 사람은 자기 자신에 대해 가장 먼 존재이다"라는 명제는 우리에게 영원히 의미를 지닌다. - 우리 자신에게 우리는 '인식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 <도덕의 계보(Zur Genealogie der Moral. 1887)> 서문 중에서

 

 

  <도덕의 계보>에 따르면, 니체는 13세부터 악의 기원에 대해서 묻기 시작했다. ‘왜 사람들은 선악으로 사람들을 바라보고 있을까?’, ‘선과 악으로 사물을 보는 방식은 얼마나 가치 있는 일인가?’, ‘이 방식은 인간의 성장에 보탬이 되었을까 후퇴를 주었을까?’ 니체는 진리 자체에는 관심이 없다. 진리에 접근하는 방식, 바라보는 시각, 시대와 바라보는 자, 탐구해가는 과정에 대해서 더 관심 많았다. 계보학자에게 필요한 세 가지 조건이 있다.


  첫째, 자신이 가지고 있는 편견과 속한 시대와 사회의 편견으로부터 떠날 수 있는 용기이다.
  둘째, 박식해야 한다. 다양한 시대와 문화를 알아야 한다.
  셋째, 섬세해야 한다. 차이를 읽는 섬세한 감각이 있어야 한다.

 

  니체는 공리주의 태도란 당시 사회상을 반영하여 도덕에 이입시켜 그것이 좋고 나쁘다고 말하는 것이라고 말하며 청색에 비유하곤 했다. 반면, 계보학은 오래된 문서를 뒤지는 행위이며, 고문서에 빗대 회색이라고 표현했다. 도덕의 과거사를 밝힐 수는 있으나, 쉽게 말할 수는 없다. 도덕의 변화에 따른 낯섦, 그것이 위치한 척도에 따라 악과 선이 뒤바뀌기 때문이다.

 

  들뢰즈가 <니체와 철학>에서 말하는 니체의 위대함은 철학의 가치를 도입한 데 있다고 보았다. 철학의 가치를 묻는다는 것은 가치의 가치를 묻는 것이다. 기호가 해석되는 방식을 생각해보면, 기호는 이미 해석된 것이라는 것이다. 니체는 모든 사실들은 해석된 것이라고 주장한다. 도덕적 사실은 없으며, 사실에 대한 해석이 있을 뿐이다. 즉, 해석을 해석하는 일만 있을 뿐인 것이다. 이미 사실이라고 말하는 역사학자의 주장 안에는 노골적인 가치 평가가 있다. 즉, 이미 배열한 것을 주장한 것이다.

 

  데리다는 니체의 <유고>에서 '나는 우산을 잃어버렸다'라는 메모의 뜻을 풀기 위해 애쓴다. 이것에는 여러 가지 해석이 가능할 수 있다. 니체에게 있어 장면이란 이미 해석된 장면, 색깔이 칠해진 장면인 것이다. 즉, 우리는 순수한 무엇을 보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니체는 가치판단을 하는 것을 비판한다. 또한, 가치중립은 불임과 같다고 보았다. 니체는 도덕을 보편 처방전이라고 말한다. '네가 원하지 않는 것을 남에게 시키지 말라' 이런 것이 도덕이었다. 니체에게 도덕이란, 사실은 일반화 할 수 없는 것까지 일반화해서 기괴해진 것이다.

 

  보편적 평가란 사실상 가치평가를 안하는 것이어야 한다. 니체는 칸트의 비판(kritik)에 불만이 있었다. kritik은 'krinein'에서 유래된 것으로 '판단하다, 법정에 세우다'란 뜻인데, 칸트는 법정 자체에 대해서 비판하고 있지 못 하다는 것이다. 칸트의 비판은 '준법' 정도를 체크하고 있는 것뿐이다. 칸트는 입법, 자율적 능력을 강조했지만, 그것은 현실에서는 복종이 강조되는 꼴이다.

 

  가치판단과 지성의 영역은 다르지만, 공리주의자들은 그것을 같다고 본다. 실질적 세계에서 보는 이득을 그대로 옮겨놓은 것이다. 이러한 공리주의자들의 태도는 몰 역사적이고, 도덕적일 수 없다. 일반적으로 화폐의 기원에 대한 말 중에 원시인들은 자신의 욕구와 충족되는 사람을 찾아야만 교환이 가능했었고 따라서 이 욕구가 우연적으로 일치하지 않을 경우에는 교환을 할 수 없어서, 이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하여 화폐가 생겨났다고 보는 말이 있다.

 

  하지만 원시인들은 전혀 그렇지 않았다. 원시인들에게 생계는 집단의 문제였기에, 모두가 굶거나 하나도 굶지 않는 것이었다. 즉 삶이 하나의 집합이었기에, 그들에게는 교환이나 비유가 필요하지 않았다. 위 해석이 말하는 인식은 자본주의 이후의 일인 것이다. 즉, 화폐는 훨씬 이후의 사고에서 나오는 것이기에, 공리주의자들은 자기 자신을 투영하여 결국 자기자신이 자본주의라는 말을 하는 것이다. 다시 말해, 청색, 자기를 그대로 투영하고 과거 역시 그럴 것이라고 믿어버리는 것이라는 몰역사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실제로 대부분의 경제학자들은 서유럽, 자본주의 구조에서만 머물러 해석할 뿐이다. 니체는 여기서 흥분했다. 도덕은 우리시대의 상식, 통념으로 보아선 안 된다는 것이다.

 

  니체는 가치의 가치, 즉 가치의 토양을 묻는다. 그리고 지금 이 토양이 서로를 착취하는 곳이라면 철학을 그만둬야 한다고 말한다. 철학은 풍요로운 토양에서 생겨나야 한다. 과연 어떤 가치평가가 얼마나 가치 있는가를 니체를 묻는다. 어떤 권력의지인가를 읽어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철학은 무엇인가보다, 철학은 언제, 어떻게 해야 하는 가에 더 관심이 많았다.

 

  가치판단의 조건에는 세 가지가 있다. 첫째, 용기, 자유정신이 있어야 한다. 니체는 델포의 신전은 대단한 곳이라고 말한다. 델포이 신전에 들어선 자들은 자신을 카오스 상태로 만든다. 가치판단은 이러한 카오스 상태에서의 자신의 광기를, 이성으로 취하는 용기가 필요하다. 둘째, 부지런해야 한다. 계보학자들은 금지된 곳에서 먹을 것을 찾아야 한다. 그래서 니체는 게으른 학자들을 크게 비판한다. 셋째, 섬세함이다. 아주 작은 파편을 보고도 놀라운 변화를 깨달아야 한다. 그래서 니체는 아무 것이나 먹는 돼지 같은 애들을 싫어했다.

 

  <즐거운 지식>을 보면 니체가 계보학자에게 강조하는 바가 있다. 넓은 영역을 개척해야 한다. 사물의 온갖 가치 판단을 해명할 수 있어야 한다. 사람들은 역사를 못보고 있다. 사랑의 역사는 왜 쓰여 있지 않는가. 역사는 왜 늘 피의 역사, 즉 잔혹한 것만 다루어지고 있냐는 것이다. 니체는 형벌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고 말한다. 시간의 역사도 알아야 한다. 수도원이나 군대에 대한 연구를 누군가가 해주기를 바랐다. 근대 공장의 근본을 밝히기 위해 근대성의 원천인 노동의 역사, 축제의 역사, 안식의 역사 등을 연구해야 한다. 음식이 도덕에 어떻게 영향을 미쳤는지 연구해야 한다. 우리의 조상들이 어떤 섭생을 했는지, 웃을 때 이상한 근육을 움직이는 것은 무엇인지도 알 수 있어야 한다. 신체는 모든 사건을 담고 있다. 신체를 봐야 한다는 것이다. 니체는 영양철학이 없음을 한탄했다. 니체는 학자가 하는 말이 중요한 게 아니라, 풍습 방식이 중요하다고 본 것이다. 이것이 계보학자가 부지런해야 하는 이유다.

 


도덕가치 비평

 

  니체는 주인과 노예의 도덕성을 구분하였는데, 전자는 강자로서 인생의 축복에서 기원되었으며 후자는 약자로서 주인에 대한 원한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이러한 구별은 주인의 도덕성은 '선함'(good)과 '악함'(bad) 의 차이로 요약되며 노예의 도덕성은 '선함'(good) 과 '악함'(evil) 으로 나아간다. 강자의 선은 강한 의지가 기준이 되며 '선함'은 강하고 힘이 넘치며 고상한 것이고 '악함'은 그것들의 반대인 나약하고 소심하며 미약한 것이다. 그가 말하기로는 강자는 '선함'의 기준을 만들었고, 그것을 만들면서 그의 반대들은 "악함"이라고 됐을 뿐이다.

 

  반면 약자의 선은 약한 자의 처지가 기준이 되며 '선함'은 약한 처지를 견딜 수 있거나 개량할 수 있는 것들을 말하며 '악함'은 약한 처지의 집단을 불안하게 만드는 강한 의지, 도전, 힘 등이다. 즉, 주인의 도덕성에서의 '선함'과 노예의 도덕성에서의 '악함'은 도덕적 동등성을 지닌다. 강자는 '선함'의 기준을 만들었고, 그것을 만들면서 그의 반대들은 "악함"이라고 됐을 뿐이다. 하지만, 약자들은 강자들을 질투하면서, 그들의 힘을 '악함'이라고 부르고 그 후에 강자들의 반대인 자신들이 '선'이라고 불릴 뿐이다.

 

  그는 기독교 사상이 인간의 자유의지를 억압한다고 보았다. 근대를 형성해 온 기독교는 개성을 억압하고 인간의 자유를 억압, 파괴하며 이는 삶을 파괴하는 타락의 원인이라 보고, 내세관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시각을 피력하였다. 따라서 자연스러움과 생긍정을 통한 새로운 가치를 창설해야 한다고 했다.

 


<권력에의 의지>와 <초인 사상>(Wille zur Macht und ?bermensch)

 

  니체는 존재가 자신의 존립과 완성을 위해 힘을 내기를 의지하는 것을 힘, <권력에의 의지>라고 하였다. 여기서 니체는 권력에의 의지는 일종의 '무의식'으로도 보았는데, 상황에 따라 일관적이지 않고 자신의 감정이나 생각을 숨기는 것은 인간이 살아남기 위한 권력에의 의지로 보았다. 또한, 진리를 추구하고자 하는 것도 권력에의 의지로 보았는데, 이는 인간은 진리를 통해 변화무쌍한 자연을 예측가능하게 만들어 변화무쌍한 자연에 대응하고자 하기 때문으로 해석된다.

 

  니체는 도덕을 지배자들이 민중, 피지배자를 통제하기 위한 하나의 수단으로 봤다. 니체는 강요된 도덕, 노예의 도덕에 머물지 말고 인간 본연의 모습을 찾고, 인간의 능력을 최대한 발현할 것을 주장했다. 또한 그는 이런 이상적인 사람을 '초인' 또는 '초인간'(?bermensch)이라고 불렀는데, 이 초인이 인류를 이끌어 나가야 한다고 보았다. 하지만 이러한 생각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그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다르게 해석되어 정치적으로 악용되기도 하였다.

 

  니체는 인간이 초인간이 되기 위해서는 3가지 과정을 거치게 된다고 비유적으로 설명한다. 첫 번째는 낙타의 모습이다. 낙타는 순종적이다. 타자의 짐을 잔뜩 싣고 뜨거운 사막을 건너면서 불평한마디 하지 않는다. 언제나 친절하다. 그러나 낙타는 수동적이다. 그리하여 낙타는 사자가 되어야 한다. 사자는 공격할 줄 안다. 자율적인 행동을 한다. 이빨을 드러내고 으르렁거릴 줄 안다.그러나 사자는 용감하나 지혜가 없고 자유롭지만 온전하지 못하다. 이윽고 사자는 어린아이가 된다. 아이는 언제나 해맑고 기발하며 한없이 자유롭다. 가치 창조가 가능한 존재다. 이 창조적 어린아이야말로 니체가 말한 초인간의 한 전형이다.

 


허무주의(Nihilism)

 

  니체는 전근대적 문명의 유지에 대한 비판을 제기하였으며, 답은 그것을 극복하는 것이었다. 사회는 나날이 안정적으로 변하고 문명은 더 발전할수록 사람들은 더욱 권태로워진다. 점점 더 말초적인 쾌락을 원하고 문화는 타락해간다. 니체는 이러한 현상이 허무주의(니힐리즘)을 불러온다고 말했다. 또한 니힐리즘과 동시에 냉소주의, 반도덕주의적인 현상도 나타날 것을 예고하였다. 니체는 당시의 유럽 사회가 이미 수명이 다한 낡은 봉건주의잔재와 기독교적 가치관, 도덕주의, 위선적 엄숙주의적 가치관에 매달려 있기 때문에 목표를 잃고 방황한다고 보았고, 이러한 현상으로 인해 사회는 필연적으로 허무주의와 냉소주의로 흐르고 있다고 했다. 따라서 그는 새로운 사회를 요구하였는데, 그것은 바로 초인 중심의 사회였다. 그는 2000년 동안 세계를 지배해온 기독교사상과 도덕주의에 의해 지배되어온 유럽 문명의 몰락과 니힐리즘, 냉소주의의 출현, 확산을 예고하였다.

 

 

신은 죽었다

 

책_즐거운지식_원본.jpg   니체가 말한 ‘신은 죽었다’의 깊은 의미는 그의 철학사상 전반과 관련지어 이해할 때 드러난다. 니체는 소위 '망치의 철학자'로 일컬어지듯 합리적 근대성마저 해체하고 완전히 새로운 철학을 제시했다. 데카르트 이후 근대성은 이성에 다름 아니다.이성은 중세의 막강한 절대 신성을 부정하면서 탄생했다. 또한 종교와 도덕의 이름으로 과학 문명을 부정하는 것 역시 극복의 대상으로 지적했다.

 

  사람들은 최고의 가치와 이상 목표를 잃고, 몰개성화·획일화되어가며 개성을 상실하지만 이미 세계의 통일을 기할 수 없게 되었다고 보았다. 그래서 사람들은 왜소화(矮小化) 되고 소극적이며 노예화하여 대중을 이루고 있다. 그리고 개인의 자유의지 보다는 대중의 목소리, 집단의 힘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근대의 극복을 위해 그는 '신은 죽었다'고 선언하고, 맹목적 도덕주의는 위선이라 생각했다. 피안적, 추상적인 것, 정신적인 것을 대신하여 차안적(此岸的)·지상적인 것을, 현실적인 것을 지향하는 것을 대안으로 제시했다. 즉 힘에의 의지를 본질로 하는 생을 주장하는 니힐리즘과 합리주의, 개인주의의 실현을 통해 부조리를 해소하고, 모든 것의 가치전환을 시도하려 하였다.

 

  "그러니까, 신의 죽음은 17,18세기에 이미 끝난 문제였다. 아니, 어쩜 2500년 전 철학의 시작과 함께 끝난 것인지도 모른다. 탈레스 등의 자연철학은 유물론이 아니던가."

 

  이것이 중세 암흑기에 잠복해 있다 르네상스기에 부활해서 신은 다시 부정되고 과학혁명과 더불어 '신의 죽음'은 기정사실화 되고만다. 따라서 근대,근대성은 신의 죽음으로 신본주의가 가고 인본주의 즉 인간이성의 시대를 연 것이다. 그런데 니체는 느닷없이 이미 죽은 신을 또 죽었다고 외치지 않을 수 없었다. 철학자인 니체로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여기에는 3가지 정도의 이유가 있다고 봐야 한다.

 

  ① 프랑스혁명의 성공으로 성직자는 대부분 축출되고 신은 정교분리와 함께 사라져갔지만 사회적으로 민중속에는 여전히 종교적 습속과 문화,양식이 잔존해 있었기에 니체는 이의 철폐를 강조하고 싶었던 것이다.물론 정치적으로도 종교는 가장 용이한 통치수단으로 계속 기능했다. 이는 니체가 보기에 기독교가 계속해서 힘센 강자(주인)의 도덕을 부정하고 순종, 겸손 등 소극적인 것을 미덕으로 하는 약한 자(노예)의 도덕을 강조한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몸이 병들고 약한 자를 사랑해야 한다는 기독교는 그의 철학에 있어 적대적이었다. 게다가 그가 보기에 기독교는 약하고 저열한 것들의 기준에 맞추어 인류를 타락시키고 있는 것으로 보였다. 따라서 니체는 '신은 죽었다'라는 말로 기독교를 비판했으며, 강한 자의 도덕을 갖춘 초인이 사회를 이끌어 가야 한다고 보았다.철학적으로는 논쟁거리도 안 되는 신의 위상이 정치,사회를 옭아매고 세상을 기만하기까지 하는 현실에 니체는 분노했던 것이다.

 

  ② 근대사회는 신의 사망선고를 내리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갑자기 신이 없는 인간의 삶은 공허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고 동시에 인간의 오만은 하늘을 찌르고도 남았다. 그래서 인간 이성은 신격화되고 신의 자리를 차지하고 만다. 이성이 신으로 둔갑하는 순간이다. 신성은 완전성이고 그를 대신한 이성도 역시 완전성을 고집하고 강변한다. 이성의 산물도 다 완전무결해서 일반 민중은 다시 이성의 노예로 전락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바로 법과 제도라는 것에. 그런데 과연 이것이 완벽할 수있을까. 어림도 없는 일이다. 이성이 완벽할 수 없는 것이니 악법이 생길 수밖에 없고 그럼에도 대중은 법에 대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받게 되니, 니체의 신의 사망 선언은 근대성, 즉 신이 되어버린 부조리한 이성신의 죽음을 말한 것으로 이해되는 것이다. 인간이성이 결코 신이 될 수 없는데 신 노릇을 해 왔기에 니체는 과감히 이성의 사망을 선고했다. 이성에는 과학성도 있는 데, 과학의 폐해는 오늘날 그 정도의 심각성이 입증됐고 니체는 이마저도 비판함으로써 선견지명을 드러냈다. 이후, 푸코는 지식, 이성과 권력의 관계를 더 세밀히 규명해 니체를 높이 추앙했는데, 이미 이성은 정치권력의 가장 충실한 종이 되었다. 이런 이성을 해체하지 않고는 새로운 철학과 도덕은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③ 근대성은 하루아침에 이루어지지 않는다. 지금도 미신과 맹신이 지배하지만 니체시대에도 미신이 판을 쳤다. 마르크스가 이미 물신이라는 용어를 만들어서 물질과 돈이 신을 대신해서 세상을 지배한다고 비판했지만, 니체도 여러가지 잡신, 미신, 물신이 좌지우지하는 사회를 봐줄 수가 없었다. 이의 부정도 당연히 포함된다.

 

  니체가 말한 신의 죽음은 다양한 뜻을 지니고 있다고 여겨지며, 오늘날 철학에서 니체가 인정을 받는 것은 아직도 이성의 시대임을 자칭하면서도 참된 이성은 사라지고 여전히 비과학성과 악법 및 미신, 맹신, 인격신이 지배하는 것에 지탄하고 세상을 바로잡고자 하는 의지의 발로가 아닐까 하지만, 반대로 니체를 곡해해서 허무주의와 극단적 상대주의로 흐르는 면이 없지 않다. 니체는 잘못 된 근대적 이성을 파괴만 한 것이 아니라 새로운 이성의 복원을 갈구한 낙천적인 미래의 창조자였다는 것을 놓쳐서는 안 되는 이유다.

 


예술 이론

 

 

책_비극의 탄생.jpg   ① <비극의 탄생>

 

  <비극의 탄생(독Die Geburt der Trag?die aus dem Geiste der Musik)>은 니체가 1872년에 출판한 책으로 바그너에게 헌정한 저서이다. 니체는 고대 문헌학자로서의 연구를 통하여 그리스 비극의 정신이야말로 진실한 문화창조의 원천임을 알았다. 이 책은 그리스 해석을 전개하면서 그리스 비극의 정신을 현대에서 부흥시킨 것이 바그너의 음악임을 논하여 친구 바그너의 신예술운동을 지원하려고 한 것이다. 니체에 의하면 개체적 생은 죽음과 파괴를 면할 수 없는 것이므로, 이에 집착하려는 자에게는 생은 고뇌와 비극성으로 가득 차 있는 것이 된다. 이러한 사실을 예감한 그리스인들은 광명과 예술의 신인 아폴론에 의해 상징되는 몽환적(夢幻的)인 미(美)의 세계를 구상하고, 이에 의해 생의 암흑을 잊어버리려고 하였다. 그러나 이것은 순간적인 위안을 주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모든 것을 파괴함으로써 모든 것을 새로이 창조하는 자연의 근원적인 생산력을 상징하는 풍요와 술의 신인 디오니소스가 주재하는 운명적 필연의 흐름에 개아(個我)의 생을 몰락시켜 가는 비극적인 도취의 체험이야말로 보다 근원적인 생의 체험이라고 할 것이다. 그리스 비극은 아폴론적 몽환의 이데아계와 디오니소스적 도취의 충동계(衝動界)의 긴장된 일체관계(一體關係)에 있어서 생을 표현하려고 한 것으로써, 지적 합리성에 의거하여 형태를 갖추어 보려고 하는 천박한 인생 파악보다 훨씬 심원한 예지의 결정인 것이다. 독창적인 그리스 해석을 전개한 이 책은 실증적 과학성을 중시하는 당시의 문헌학계로부터는 완전히 무시당하는 비운을 맞았다. 그러나 니체는 이러한 ‘비극’을 인내하여 독창적인 사상가로 탄생한다. 이듬해 출판한 《반시대적 고찰》은 이러한 예외자의 입장에서 프로이센-프랑스 전쟁에서의 군사적 승리를 독일문화의 승리로 착각한 19세기 말 독일 사상계의 속물성을 날카롭게 비판했다.

 

  음악 정신에서 태어난 비극의 탄생의 결정적 새로움은 한 편으로는 그리스 인들에게서 발견되는 "디오니소스적 현상"에 대한 이해이고, 다른 한 편으로는 "소크라테스주의"에 대한 새로운 접근이었다. 이 책에서 무엇보다도 "디오니소스적인 것"을 통한 "비극의 탄생"과 "소크라테스적인 것"을 통한 "비극의 죽음"에 니체의 마음이 쏠렸다.

 

  니체에게 소크라테스는 기독교 종교의 예비자를 구현하고 있었으며, 그에 반해서 디오니소스는 "반(反)그리스도"이고 "예술가 신"이다. 니체는 비극의 탄생에서 "선악을 넘어선" 염세주의와 비도덕적인 디오니소스 신의 "예술-종교"를 통해서, 간단하게 말해서 현존재가 예술적 현상으로서만 정당화되어서 나타나는 "예술가-형이상학"을 통해서 소크라테스에 의해서 구현된 현존재에 대한 도덕적 해석에 반대했다. 소크라테스는 아폴로적 명징성과 유쾌함, "지식의 빛"과 자아 인식의 인간적 구현이다. 그에 반해서 디오니소스는 "바쿠스적 소동과 춤"의 "어두운 심연", "사랑의 도취에서 생긴 자아망각"을 대표한다. 아폴로적인 것과 디오니소스적인 것은 니체 미학의 두 가지 근본적 범주이다. 헤라클레이토스적 의미에서 조화롭게 대립된 두 예술 충동의 "접합"의 결과물이 니체에게는 단지 아테네 비극의 탄생만이 아니라, 예술 전체의 탄생이다.

 

  첫 작품에서도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상태인 "미학적 상태"의 특징과 아폴로적인 것이 지닌 소크라테스주의와의 친근성은 이미 후기 니체의 저서에서 점점 강하게 드러나는 아폴로적인 것에 대한 디오니소스적인 것의 우세를 인식하도록 만든다. 그 점과 연관된 디오니소스적 특성이 니체 미학이 지닌 독특한 새로움이다. 그것은 대립된 개념이고, 그것을 통해서 초기 니체는 반 고전주의적 미학의 전령이 되고 후기 니체는 영원 회귀의 반(反)기독교적 예술-종교의 선생님이 된다. 니체에게는 예술 신의 전형이 된 "아폴로적 디오니소스"는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이다. 그의 정신으로부터 비극이 탄생했다.

 

  그는 비극의 탄생 속에서만이 아니라 비극적 후기 철학의 핵심 인물이다. 거인족에 의해서 갈가리 찢긴 디오니소스가 아폴로에 의해서 다시 맞추어지는 이야기가 들어있는 오르페우스교의 자그레우스 신화는 니체에게는 비극의 신비적 가르침이다. 그는 비극적 신화 그 자체이다. 이런 토양 속에서만 니체의 미래 미학이 성장하고, 젊은 니체의 예술가-형이상학이 자라난 것은 아니다. 신들의 황혼을 쓰는 후기 니체, 디오니소스의 최후의 제자도 결국 이 토대 위에 다시 서게 된다. 니체는 클레멘스 알렉산드리아누스, 크로이처와 라살을 통해서 오르페우스교 자그레우스 신화를 알게 된다. 그리고 이것은 "아폴로적-디오니소스적"이라는 유명한 대립 쌍이 결코 니체가 만들어낸 말이 아니라는 것을 입증한다.

 

  니체는 크로이처, 라살, 미슐레 그리고 포이어바흐 등등의 생각을 자기 것으로 소화하고 발전시킴으로써 자신의 독자적 미학 이론을 만들어냈다. 음악의 디오니소스적 정신에서 태어난 "비극의 탄생"이라는 환영 속에서 결정적인 것은 예술가, 예술 수용자 그리고 예술 작품의 분리를 해체하는 것이다. 자연과 "인간이 화해한 축제를 기리는" 그리스 디오니소스 축제의 모습 속에는 생산자와 소비자 혹은 생산자와 생산품의 분리가 들어설 자리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리스 음악극의 탄생 시기에 대한 중요한 근본 경험으로부터 예술의 현재와 미래를 바라보면서 니체는 하나의 발전을 미리 보게 된다. 그러한 발전은 전래의 "예술 작품의 예술", 즉 개인적 예술가들의 예술 작품으로부터 바그너가 생각한 의미에서의 "종합예술"인 "축제극"으로 사람들을 이끌고, 바그너에 대해서 점점 거리감을 갖게 되는 것과 동시에 최종적 단계에서 세상을 보편적 예술 작품으로 보는 미학적 관찰로 이끈다. 바이로이트의 "축제극"에서 진정한 종합 예술작품인 "세계극"이 생겨난다. 더 이상 예술 작품은 하나의 세계가 아니다, 오히려 세계가 하나의 예술 작품으로 관찰된다. "모든 것이 유희다", "모든 것이 예술이다". "정오", 아폴로적 디오니소스가 현현하는 순간에는 모든 것이 아름답고 선한 것으로 드러난다. 완벽하게 되고 미학적으로 정당화된 세계는 스스로를 잉태하는 예술작품으로 나타난다.

 

 

② 차라투스트라, 미학적 현현으로서의 영원 회귀

 

책_짜라투스트라.jpg   "영원 회귀"라는 생각은 차라투스트라의 기본 생각이고 니체의 "가장 깊숙한 곳에 있는 생각"이다. 영원한 회귀는 오직 순간으로부터만 이해될 수 있다. "목표 없는 시간"이라는 무시무시한 순간 속에서 인간은 자신의 삶의 본래의 임무를 경험한다. 영원한 회귀의 신적인 순간은 미학적, 즉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상태의 순간이다. 이 상태는 현존재에 대한 긍정(아모르 파티)이 이루어지는 최상의 상태이고, 그 상태 속에서 허무주의, 인간과 모든 현존재의 과잉이 극복된다.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상태는 가장 작고 보잘것없는 것의 회귀일지라도 영원 회귀에 대한 생각이 받아들여지는 상태이다. 최상의 세계 완성의 순간, 니체가 에머슨의 말을 빌어서 말하는 것처럼, 세상이 완벽하게 되는 "갑작스런 영원"의 신적 순간, 웃는 신 디오니소스가 춤을 추면서 우리 몸을 관통해 지나가는 디오니소스적 순간은 세상을 미학적 현상으로 영원히 정당화하는 순간이다.

 

  이런 경험, "완벽한 정오"의 가장 고요한 시간에 일어나는 밝은 대낮의 "신비스러운 직관"으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의 기본 생각이기도 한 자신의 철학하기의 원래 목적과 기본 경험을 분명하게 말한다. 미(美) 속에서 모순들은 억제된다. 그것은 서로 모순 되는 것을 지배하는 힘의 최고 표식이다. 갑작스런 영원 회귀의 순간인 미의 디오니소스적 순간 속에서 지나간 것과 미래의 것의 충동과 공존의 경험이 현재의 순간에서 이루어진다. 영원이 시간이 되고, 시간이 영원이 된다. 이 순간에 시간은 갑작스런 영원의 정오-순간으로 지양된다.

 

  차라투스트라는 초인의 지위에서부터 회귀를 가르친다. 초인은 "위대한 회귀의 년도"에 세상의 심연을 보고 견디어 낸 순간에 자신을 넘어서고, 비극적-디오니소스적 상태에서 자아를 잊어버리는 초개인적이고 창조적인 인간이다. 초인은 "영원의 샘물" 속으로 순간의 번갯불을 던지는 사람이다. 초인은 그림자가 가장 짧아지는 순간에 영원 회귀의 "정오의 심연" 속으로 떨어지는 번갯불이다. 영원 회귀의 순간은 아폴로적 디오니소스, 즉 비도덕적인 예술가 신 디오니소스 자그레우스가 미학적으로 현현하는 순간이다. 니체의 예술가 복음을 따르자면 종교가 아니라, 예술이 삶의 "형이상학적 활동"이다. 예술, 가장 "커다란 삶의 자극"이 영원 회귀 철학의 기관이다. 니체의 영원 회귀의 기본 이론은 예술의 형이상학이고, 반(反)그리스도적 예술-종교이고, "예술가-형이상학"이다.

 


예술로써의 권력 의지

 

  사람들이 "권력 의지"라는 마술적 공식을 해석하고 평가하기 위해서 애를 쓴지도 이미 100년이 훨씬 더 지났다. 1901년 부분적으로는 오늘날에도 규범적인, 세기적인 니체 유고의 편집 본이 권력 의지라는 제목으로 출간되었다. 사람들은 이 책을 오랫동안 니체의 주요 저작으로 잘못 간주했다. 오래 전에 표어가 되어버린 그리고 정치적으로 잘못 해석된 권력(쟁취) 의지 이론은 실제로는 결코 실행되지 못했던 니체의 계획을 표시한다. 그 계획은 니체의 미학 이론에도 결정적으로 중요하다. 쇼펜하우어와는 대조적으로 니체는 자유 의지를 "파국적인 철학자들의 고안물"로 비판하고 여러 번 "어떤 의지도 존재하지 않는다"고 되풀이해서 말한다.

 

  다른 한 편으로 그는 권력 의지를 "세상의 정수", "존재의 가장 내밀한 본질"로 고찰한다. 그것은 권력 의지가 욕구가 없는 의지, 즉 원하는 자아가 없는 의지일 경우에만 서로 일치한다. 니체는 권력 의지라는 생각으로 분명 "나는 원한다."라는 문장에서 스스로를 표현하는 것처럼 (힘이 넘치는 초인)의 개인적 의지라는 생각을 뛰어넘는다. 이것은 특별히 차라투스트라의 첫 연설("세 가지 변신에 대해서")에서 분명해진다. 정신이 낙타가 되고 난 다음에, "너는 해야만 한다"는 명령이 낙타에게 내려진다. 정신이 사자가 되었을 때, 사자의 정신은 말한다. "나는 원한다"고. 하지만 궁극적으로 정신은 아이가 되어야만 한다. 이것이 정신의 세 번째이고 가장 심오한 변화이다. 그 변화 속에서 기독교적 도덕 "너는 해야만 한다"는 말 뿐만 아니라, 영웅적인 "나는 원한다"는 말도 아이의 순진함, 창조의 유희 속에서 "성스러운 긍정"을 얻기 위해서 극복되어져야만 한다. 초인은 "금발의 야수"가 아니라, 사자의 정신과 "나는 원한다"는 것을 극복하는 인간이다. 그의 정신은 아이가 된다.

 

  세번째 정신의 변화 후에 생기는 욕구 없는 의지를 지니고, 자아를 잊어버린 주체의 고대적 모범은 헤라클레이토스 단편 B52에 나오는 유희하는 아이다. 이 단편에서 삶의 유희 혹은 세계-시간, 즉 아이온Aion은 유희하는 아이로 묘사된다. 그리고 헤라클레이토스의 유희하는 아이는 정신의 세 번째 변화 후에 생기는 니체의 유희하는 아이의 선행 인물이다. 즉 그 아이는 초인의 선행 인물인 것이다. 이 단편과 니체가 자신의 생각 속에 재해석한 것은 접합점으로 드러나고, 그 속에서 비극의 탄생을 쓴 초기 니체로부터 차라투스트라를 쓴 후기 니체로 이끌고 영원 회귀와 권력 의지라는 두 개의 어려운 생각을 결합시키는 것을 허용하는 여러 개의 결합선이 모여 있다. 니체가 헤라클레이토스를 해석한 것 속에 나타나는 세계-시간의 “위대한 년도”인 아이온은 영원 회귀가 신적 형상으로 나타난 것이다. 세계-아이인 아이온이 벌이는 세계-놀이가 지닌 이름이 권력 의지이다. 아이온의 목적 없는 유희 속에서는 욕구 없는 의지가 지배하며, 아이온은 권력 의지의 신적 의인화이다. 권력 의지와 영원 회귀는 동일한 아이온의 서로 다른 두 얼굴이다. 한 편으로는 아폴로적 디오니소스 그리고 다른 한 편으로는 제우스의 특징들을 지니고 있는 아이온이 니체의 비극적 후기 철학에서 예술로서의 영원 회귀와 권력 의지의 예술가-형이상학을 주관하는 신으로 합쳐진다.

 


미학사적 문맥

 

  미학 이론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 거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사실, 니체가 고전 문헌 학자였다는 사실은 고대의 밑바닥에서부터 그가 신랄하게 비판한 현대의 꼭대기로 곧장 도약을 하게 된 한 가지 원인일 수도 있다. 이 같은 도약은 특히 니체의 미학적 성찰을 두드러지게 만들었다. 니체의 말을 따르면 우리는 그리스인들로부터 먼저 우리가 직접 경험할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배울 수 있다. 비극의 탄생에서 그는 모든 예술이 내적으로 그리스인들에게 의존되어 있는 상태를 강조한다. 그는 예술과 관련된 분야에서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리스인들을 "우리 문하의 최고의 스승"으로 칭찬한다. 기독교 신은 죽었고 그와 함께 형이상학도 죽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형이상학 이전의 시대에서, 즉 비극적 그리스인들의 시대에 있던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으로 되돌아가야만 한다.

 

  니체의 철학적 고생물학은 고대 토양의 점진적 재획득, 무엇보다도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산재된 사유들을 발굴하는 것을 목표로 삼았다. 니체는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에서 그보다 앞서 살았던 헤겔처럼 단순하게 임시적인 것을 본 것이 아니라, 니체보다 나중에 살았던 하이데거처럼 모범적인 것을 보았다. 니체의 퇴행은 다름 아니라 진보이다. 니체는 플라톤 이전-형이상학 이전의 철학으로 자신이 되돌아간 것을 미래 미학으로 도약을 하기 위한 도움닫기로 이해를 한다("미래의 시간은 나의 것이 될 것이다").

 

  그는 비극 책이 쓰이던 시기에 미래의 미학이 바그너의 작품 속에서 미리 구현된 것으로 보았다. 그와 반대로 그는 나중에 자신이 꿈꾸었던 비극의 탄생을 바그너 음악 정신에서 태어난 사산(死産)으로 인식을 해야만 했다. 소크라테스 이전 철학자들의 신전을 발굴한 것과 헤라클레이토스의 비극적 철학의 재생을 위한 니체의 의지는 포스트모더니즘 미학 이론의 서곡으로 간주될 수 있다. 특별히 초기 형이상학 시기의 헤라클레이토스의 통찰력에 기반을 두고 있는 미학적 "세계-유희"로서의 "삶의 유희", 대립되는 것의 조화와 추한 것 속에도 존재하는 미의 편재성에 대해서 느낀 경험을 통해서 니체는 후기형이상학적 포스트모더니즘의 위대한 선조가 되었다. 그것으로써 니체가 동시적으로 보여주는 소크라테스 이전과 이후의 특징은 동시에 존재하는 모더니즘 이전과 이후의 특징이기도 하다.

 


평가

 

  생전에는 학계로부터 철저히 무시당했으며 종교계와 도덕주의자들로부터 혹독한 비판을 받았으며 사회를 타락시킨다는 악의성 비방과 음해에 시달렸으나, 사망 이후 유럽의 철학과 문학에 지대한 영향을 미친, 20세기의 가장 중요한 철학자의 한 사람으로 인정되고 있다. 니체의 사상은 매우 파격적이고 충격적이기 때문에 엄청난 비판을 피할 수 없었다. 실제 그를 평하는 데 있어서도 평가가 극과 극을 달리는 때도 많은데, 일부 기독교 신자들은 맹렬한 비판을 하며, 어떤 철학자들은 니체를 천재적인 철학자로 보기도 한다. 하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현대 철학사(특히 포스트모더니즘)에 끼친 영향이 절대적이었다는 것이다. 니체는 프로이트나 마르크스 등과 함께 현대 철학을 뒤흔든 철학자로 인정받는다.

 

  흔히 니체를 나치즘과 반유대주의, 인종차별주의의 시초라고 하는데 이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이런 말이 나온 것은 인종차별주의자였던 여동생 엘리자베스가 니체의 저서들을 왜곡했기 때문이다. 엘리자베스는 흩어졌던 그의 저서들을 모아 일종의 보관서까지 열었으며, 미쳐 있던 니체에게 흰 사제복을 입혀 전시하기도 했다. 게다가 엘리자베스는 히틀러에게 '니체의 초인이란 당신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말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실존주의 철학자 하이데거가 1961년<니체>를 출간한 이후 달리 평가되어 오늘날 니체에 대한 오해는 거의 해결되었다. 그리고 실제 니체는 오히려 자국인 독일을 매우 싫어했고 민족주의 또한 매우 혐오했다고 한다.

 

  니체 자신은 자신의 저서에 대한 반응을 갈망했지만 허사였다. 정신착란에 걸리기 직전에 현재까지도 그치지 않고 지속되는 니체 수용이 시작되었다. "시인 철학자", 그에게는 철학이 학문 이론보다는 삶의 지혜와 더 많은 관련을 지닌 것이었다, 저서의 철학적인 내용을 통해서뿐만 아니고, 부분적으로는 시적 예언자적 양식을 통해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삶의 양식을 통해서도 니체는 하이데거와 야스퍼스, 샤르트르 그리고 카뮈 같은 철학자들, 프로이트와 융과 같은 심리학자, 슈펭글러와 슈타이너와 같은 비밀스런 종교의 스승, 벤, 게오르게, 지드, 헤세, 호프만슈탈, 말로, 하인리히 만과 토마스 만, 모르겐슈타인, 무질, 오닐, 릴케, 쇼, 예이츠 등의 시인들에게 영향을 끼쳤다.

 

  20세기--예를 들면 조형 예술에서 "발견한 대상"(뒤샹)의 경우에 드러나는 "작품의 부재"와 같은 현상으로 특징지어지는--가 시작되기 직전에 니체는 현재의 대부분의 미학 이론 보다 20세기 예술 정신을 생각으로 포착하고 드러내는 것에 더 많은 기여를 했다. 쉽게 오해할 수 있는 “초인”과 “권력의지”라는 핵심 개념과 도발적인 문장 때문에 보이믈러의 해석에 나타나는 것처럼 최초의 나치로 쉽게 오해받았던 니체가 특별히 동구권에서는 오랫동안 파시즘의 예비자와 "파시즘 미학의 선구자"로 배척을 받고 난 이후에, 그는 현재 그 곳에서, 특히 구동독 지역에서 점점 인기를 얻고 있다.

 

  니체의 전 저작을 비판적으로 검토하고 편집한 콜리와 몬티나리의 대단한 작업은 오래 전부터 이탈리아에서 시작되어 우리 시대에까지도 지속되는 (특히 바티모의 경우에 관찰할 수 있는) 지적 반향의 표시이다. "세계의 유희에 대한 미학적 기본 지각"을 지닌 니체의 포스트모더니즘 이전의 "예술가-형이상학"의 수용은 프랑스에서는 오늘날까지 중단되지 않은 채 유지되고 있다(데리다, 들뢰즈, 푸고 참조). 카우프만의 니체 연구 이후로 미국에서도 니체에 대한 연구는 강화되었다(단토와 로티 참조). 동아시아에서 니체는 하이데거와 더불어 현재 가장 많이 수용된 독일 철학자이다. 기존 종교에 적대적이고 공격적이었던 니체가 현재까지도 인정을 받는 것은 개인주의의 영향이 크다고 볼 수 있다. 니체의 사상의 주류를 이루었던 '초인'의 개념이 개인이 갖추어야 할 하나의 이상이 되면서 니체 철학에 대한 관심이 증가했다고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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