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기] 독서토론 _카스테라

by 묵와 posted May 29,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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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임 개요

 

    ○ 일       시 : 2013년 5월 14일 (화) 오전 10시
    ○ 장       소 : 가산구립정보도서관
    ○ 대상도서 : 카스테라 (박민규 지음/ 문학동네/ 2005)
    ○ 참 석 자  : 김명화, 김미아, 김은진, 이용태, 정현, 오진화 (인문학그룹_에피스테메)
    ○ 진       행 : 이용태 (패널: 정현)

 

후기 작성 : 이용태

 

 

카스테라.jpg

 

 

 

   "관건은 그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 뛰지 않는 것, 속지 않는 것, 찬찬히 들여다보고, 행동하는 것, 피곤하게 살기는, 놈들도 마찬가지다. 속지 않고 즐겁게 사는 일만이, 우리의 관건이다. 어짜피, 지구도 멸망한다."

<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 작가의 말 중

 

  약 일 년 전, 장편소설<삼미슈퍼스타즈의 마지막 팬클럽>으로 만난 박민규 작가를 소설집<카스테라>에서 다시 만나게 되었습니다. 변함없이 자리를 제일 먼저 채워주시는 진화님을 만나서, 그리고 잠시 후 웃는 얼굴로 들어오시는 은진님을 만나서 토론 전 담소를 나누었습니다. “재밌던데요?” 진화님이 운을 떼었습니다. “잘 쓰더라고요. 이런 머리를 타고나기가 힘들 것 같아요.” 라며 은진님은 박민규 작가의 칭찬을 마다하지 않았습니다. 곧 이어 오랜만에 방문하신 김미아님을 합쳐 여섯 명이 모였습니다. 에피큐리언의 오랜 친구이기에 일거수일투족을 알고 있는 인문학그룹_에피스테메와의 만남. 한 주 동안의 이야기를 나누고, 모두 함께 카스테라를 만들기 위해 한 시간 가까이 냉장고에 여러 가지 고민들을 넣고 있었습니다. 가까스로 냉장고에 마지막 정현님의 고민을 넣은 후 드디어 토론이 시작되었습니다.

 

 
박민규를 읽다

 

    대한민국 문학사를 통틀어 가장 신선하고 충격적인 사건 하나를 지목하라고 한다면, 나는 서슴지 않고 박민규라는 작가의 출현을 지목하겠다. (이외수, 소설가)
   박민규에게서 뭔가를 빼앗아올 수 있다면 나는 주저하지 않고, 그가 창안하여 우리에게 덥석 안겨준, 그 놀랍도록 새로운 문장을 가져올 것이다.(김영하, 소설가)

 

  '신선하고 충격적이다’ 라는 말이 왜 제 머리에 떠오르지 않았을까요? 참가자들에게 소감이 어떠셨는지 여쭈면서, 제 소감을 ‘난해했는데… ’ 라고 먼저 말해버린 제 언어의 비탁월함을 느끼며, 어느 분이 먼저 입을 뗄 지 바라볼 수밖에 없었습니다.

 

 ○ 오진화 : 판타지처럼 읽혔고요, 자본주의를 떠올리게 한 구절이 있었어요. "이제 잠깐 후면 나는 저 허공 너머 - 점 한 칸 크기의 착지점 위에 무사히 착지해 있을 것이다.(<고마워, 과연 너구리야>, p.63)", "신체의 안전선은 이곳이지만, 삶의 안전선은 전철 속이다. 당신이라면, 어떤 곳을 택하겠는가.(<그렇습니까? 기린입니다>, p.74)" 전에는 (자본주의라는) 전철에 타고 있었지만, 지금은 치열하게 의문하면서도 ‘내 자신이 가식적이지 않나’라는 생각을 해요. 

 

 ○ 김명화 : 계속 페달을 밟지 않으면 가라앉는 오리배가 있는 <아, 하세요 펠리컨>, 좁은 공간에 화자가 살지만 의외로 담담한 모습이 그려진 <갑을고시원 체류기>가 인상 깊었습니다.  

 

 ○ 김은진 :  <아, 하세요 펠리컨>은 32킬로미터 떨어져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입니다. 작가가 모든 것을 자유자재로 가지고 노는 느낌이에요. 각설탕을 지구로 비교해서 본다면, 작가가 손가락으로 그 각설탕-지구를 돌리며 장난치는 모습이 그려져요. 정말 천재 같아요. 신춘문예에서 떨어질 수밖에 없지요. 평가하는 분들이 따라가질 못했을 테니까요.

 

 ○ 정현 :  박민규 작가가 어렸을 때 어떤 과목은 12등급 받았대요. (웃음) 제가 보기엔 작가가 현대철학까지 공부 한 것 같아요. 저는 박민규 작가가 쓴 거의 모든 작품을 읽었죠. 밑바닥 삶을 사는 사람들이 동일성에 진입하는 게 아니라, ‘정 그러면 새로운 것을 만들지!’ 하고 튀어나와요. 하지만 열악하죠. 남들은 제트기 타고 나는데, 그들은 오리 배를 타고 오리배 시민연합을 만들고 말이죠. 밀려난 사람들끼리-마이너리티끼리-새로운 세계를 구축해요. 밀려나기 전까지는 힘겹게 바닥을 굴렀다면, 그 이후엔 즐기는 거죠. 많은 사람들이 박민규 작가의 글을 읽다가 중간에 포기하는 경우가 많아요. 텍스트 밖에 의미가 있는 건데. 토론도서 고를 때 박민규 작가 책을 많이 포함시켰었어요. 그 때 토론준비를 하셨던 분이 논제발제를 해야 하는데, 어떻게 접근해야 할지를 모르겠다고 한 모습이 생각납니다.

 

 ○ 김미아 :  김애란 소설과 느낌이 많이 비슷합니다. 김애란 작품에서 신문지, 포스트잇에 둘러싸인 방이 그 중 한 장면이에요.


 ○ 정현 : 원룸, 편의점 등이 나오는 장면이 비슷합니다. 이 사조는 포스트모더니즘에 가깝습니다. 해체를 하고 있어요. 그 측면에서 동일성에 많이 들어가 있는 사람일수록 책을 제대로 읽어내질 못해요. 예전의 소설(텍스트만 보면 이해가 가며, 주제를 명확하게 담고 있는 소설)과 달리 김애란, 박민규 작가의 글을 보고나서는 많은 사람들이 황당해 합니다. 호기심을 밀지 못하거나, 오만?방자?편견?우매성을 가진 분은 ‘비문이 많다’는 등의 형식적인 문제를 많이 삼습니다. 이 작가들이 문법마저 해체해버리니까요. 그러나 제대로 읽어내지 못한 상태에서 비난만 하고 책을 던져버리면, 거기서 더 벗어나질 못합니다.

 

 ○ 김명화 :  <대왕오징어의 기습>이 조금 이해는 가는데, 완벽하게는 이해를 못하겠어요.


 ○ 오진화 : 그냥 느껴지는 대로 읽어서 읽기 더 쉬웠던 것도 같습니다.

 

  아. 난해하다고 한 만큼 전 아직 말랑말랑하지 못 했던 것이었습니다. 문법마저 해체하는 모습에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바로 차이를 만들어 냈던 것이죠. 저는 그 차이를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았던 겁니다.

 

 

우리가 지키고 싶고, 버리고 싶은 것들

 
 ○ 김명화 : 한 일본작가가 말한 이야기가 생각나요. 가장 버리고 싶은 것이 가족이라고 합니다. 막중한 책임감을 그렇게 말한 게 아닌가 싶습니다.


 ○ 정현: 한편, 가족이 제일 소중하다고도 하죠. 구청직원들과 함께 한 독서토론에서 강상중의 <살아야 하는 이유>의 논제였는데요, 우리를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과 불행하게 하는 것에 대해 물었어요. 40대의 가장이 이렇게 말했지요. “가족이요. 사교육비가 부족해 업무가 끝나고 아르바이트를 하는데, 가족을 위해 하는 일이니 행복해요. 그런데, 아들이 말을 듣지 않을 때나, 아버지를 무시할 때 내 것을 다 뺏어가는 도둑같아요.”라고. 가족을 위해 살아 행복하고, 부양의 책임이 무거워 불행하고, 객체로 살아가는 삶의 고단함이지요.

 

 

 왜 그는 냉장고 안에 학교에서 대통령까지 집어넣었단 말인가?

 

  "예열된 오븐이 있다면, 또 계란과 설탕과 밀가루가 있다면 당신은 손쉽게 한 조각의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기본이다. 들리는 얘기로는 아주 많은 사람들이 아주 많은 형태의 카스테라를 만들고, 먹어왔다고 한다(당연한 얘기겠지만). 즉 말하자면, 나는 당신이 아주 많은 그들 중의 한 명이기를 바라는 것이다."

- <카스테라>, 작가의 말 중에서

 

   냉장고에 책을 넣는 것까지는 이해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학교라니. 여기서부터 머릿속이 복잡해집니다.

 

 ○ 김은진 : <카스테라>에서 주인공이 많은 것들을 냉장고에 넣는 모습은, 부패에 저항하는 모습 같습니다.


 ○ 정현 : <카스테라>만 잘 읽어도 소설집 전체를 다 읽은 것입니다. 이 소설에는 주체에 대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냉장고에서 카스테라가 나온 개연성이 있죠. 왜 하필 <걸리버 여행기>를 냉장고에 넣었을까요? 작품 안에, 소인-대인, 지배-피지배 등의 내용이 들어있습니다. 세기의 마지막 날, 비로소 주체가 되는 것이죠. 곧, 새로운 세계를 여는 것. 그 세계가 카스테라 같은 세계인 거죠. 냉장고가 좁아서 못 집어넣지는 않습니다. 냉장고는 상징인 거죠. 모든 것들을 집어넣고, 드디어 사람, 개인, 소수 등에 방점을 찍습니다.

 

 ○ 김명화 : 냉장고의 문을 여는 것이 중요합니다.


 ○ 정현 : 주체로 서서 세계를 바꾸려는 노력을 행동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소설의 주인공 ‘나’는 세기의 마지막 날에 잠에 들며 생각하기를, ‘다음 세기에는 이 세계를 찾아온 모든 인간들을 따뜻하게 대해줘야지.’라고 생각합니다. 바로 이 순간 주인공은 객체에서 주체가 된 것입니다. 다음 날, 냉장고를 열 듯이 새로운 세계를 스스로 열어 나가는 것입니다. 비로소 생성으로서의 주체가 탄생하는 순간입니다.

 


미친 나라에 대처해야 할 우리의 자세

 

 ○ 정현 : 저번 박민규 작가 북콘서트 때, 작가가 말했습니다, ‘우리 영토의 크기를 봐라, 그럼에도 불구하고 끊임없이 경제개발 이야기를 하는데 더 올라갈 것 같나요? 다른 제국주의 나라는 과거에 식민지가 있어서 그렇다 치죠. 우리는 경제개발 패러다임으로 아직도 학교에서 끊임없이 올라가라고만 해요. 허상이죠. 끝까지 온 겁니다. 세계에서 우리나라처럼 아침 일찍부터 밤까지 움직이는 나라가 없어요. 여기서 더 이상 부지런하게 살 수 없습니다. 흡사 미친 나라에요’ 라고.


 ○ 김미아 : 맞는 이야기입니다.


 ○ 정현 : 지금까지 이렇게 해 온 걸 아까워하는 거죠. 교육에 대해서 아큐 같은 엄마들이 일찍부터 아이들을 학원으로 내몰고 한다는 것.


 ○ 김미아 : 한글을 통문장으로 배우게 하는 게 요즘 교육시스템이죠. 심지어 글자를 3, 4살에 떼는 애들도 많습니다.


 ○ 정현 : 고리를 끊으려면 먼저 인식을 해야 합니다. 양육태도를 먼저 바꾸거나 말이죠.

 

 

  드디어 카스테라를 가지고 우리들의 가정으로 들어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화가 나고 아픈 부분이었습니다. 첫 직장 첫 주부터 야근을 하면서, 상사에게 온갖 질책을 받으며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고 지냈던 예전의 제 모습이 떠올랐습니다. 동시에 제가 잠시 일했던 곳에서, 초등학교 6학년 아이들이 주말에 아침부터 저녁까지 공부하던 모습이 떠올라 답답한 마음에 한숨이 나왔습니다.

 


소수자-되기

 

  심화 논제로 질 들뢰즈의 <천개의 고원>을 제시문으로 인용하여 현대철학까지 다다랐습니다.

 

  …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가 아니라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성’을 혼동해서는 안 된다. 가령, 유대인, 집시 등 특정한 조건(소수성)에서도 소수자를 형성할 수 있다. … 상태로서의 소수성 위에서 우리는 재영토화되거나 재영토화되게 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생성 속에서는 탈영토화된다. 블랙 팬더 활동가들이 말했듯이 흑인들조차 흑인이 되어야 한다. 여성들조차 여성이 되어야 한다. 상태로는 충분하지 않다. 여성-되기는 필연적으로 여성뿐만 아니라 남성도 변형시킨다. 어떤 의미에서 생성의 주체는 언제나‘남성’이다. 하지만 그를 다수자의 동일성에서 떼어내는 소수자-되기 속으로 들어가는 경우에만 그는 생성의 주체이다. …

- 질 들뢰즈, <천개의 고원> p.550~552

 

  … 와와 하지 마시고 예예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제 서로의 빛을, 서로를 위해 쓰시기 바랍니다. 지금 곁에 있는 당신의 누군가를 위해, 당신의 손길이 닿을 수 있고... 그 손길을 기다리고 있을 누군가를 위해, 말입니다. 그리고 서로의 빛을 밝혀가시기 바랍니다. 결국 이 세계는 당신과 나의 <상상력>에 불과한 것이고, 우리의 상상에 따라 우리를 불편하게 해온 모든 진리는 언젠가 곧 시시한 것으로 전락할 거라 저는 믿습니다. …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예담/2009 서문 중에서

 

  … 공기의 밀도가 어디서나 고르다면 바람이 불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사회 구성원들이 다수에 속하는 표준형 인간들뿐이라면 변화를 기대하기란 어렵다. 프랑스의 현대 철학자 질 들뢰즈는 무의식적 욕망의 흐름을 자연스럽게 표출하는 사회의 아웃사이더나 일탈자들에게서 새로운 사회혁명의 동력을 찾았다. …

- 남경태,<개념어 사전> p.224

 

 

 ○ 이용태 :  여러분은 다수자 인가요, 소수자 인가요?


 ○ 김은진 : 전 다수자 인 것 같습니다. 권력을 알고 있기 때문이죠.

 
 ○ 정현 : 은진님이 일하시는 것을 보면 소수자의 성향을 많이 가지고 계신 것 같아요. 소수자-되기는 변화의 요소이며 과정일 뿐이지 완료상태가 아닙니다. 

 

 ○ 오진화 : 작품 속에 나온 ‘너구리, 기린’ 같은 경우는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자로 나온 것 같습니다.


 ○ 김명화 : 그 동물들 역시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자로 변하고 있는 모습 같아요.

 

 ○ 정현 : 인식이 곧 과정이지요.


 ○ 김명화 : 냉장고 문을 열기 시작한 것부터 과정이 시작됩니다.

 

 

  질 들뢰즈는 '집합이나 상태로서의 ‘소수자’와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자'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상태로서의 소수자는 재영토화될 수밖에 없지만, 하지만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자는 탈영토화합니다. 우리는  박민규의 <카스테라>를 토론하면서 <카스테라>의 ‘나’와 <갑을고시원 체류기>의 화자 등, 작품의 주인공들을 만났습니다. 그들은 자본주의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로 밀려난 상고, 전문대 출신의 가난한 청년들입니다. 그들은 ‘예예 와와하지’ 않고, ‘상태로서의 소수자’에 머무르지 않으며, ‘생성이나 과정으로서의 소수자’로 스스로 냉장고 문을 열어 낡은 세계를 집어 넣고, ‘모든 것을 용서할 수 있는’ 따뜻한 카스테라를 만듭니다. 작가 박민규가 만들고 싶은 세계, 만들고 있는 세계입니다. 우리는 어떤 카스테라를 만들 수 있을까요?

 

 
당신 그리고 카스테라

 

    오후 1시가 넘어 2시를 향해 가자, 슬슬 배가 고파집니다.  따뜻한 카스테라 한 스푼을 저도 먹고, 당신도 주고, 모두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단, 아래 순서를 따라야 합니다.  ① 우선 멈추어 선다. ② 입을 크게 벌린다. ③ 스푼을 입에 넣는다.


  자, 따뜻한 카스테라 한 스푼, 드실 준비 되셨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