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인타임> 리뷰
이용태
영화의 겉모습만을 본다면,「인타임」에서의 엉성한 장면구성과 액션들은 유치하다. 느릿느릿한 자동차 추격 신과, 몰입을 방해하는 CG들은 중간 중간 무료함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하지만 영화의 안 쪽 곳곳에서 문득 나의 일상을 채찍질하는 대사들은 기억에 남는다. 실비아가 윌에게 ‘고작 하루 분의 시간으로 어떻게 불안하게 사느냐’ 는 질문에 윌은 ‘그래서 늦잠 자는 일은 없다’ 며 무심하게 말하고 요즘 부쩍 늦잠이 늘고 있는 나는 뜨끔하다. 8시간은 넘게 자지 말아야지.
오늘 날 월급 통장에 찍힌 숫자들은 이제 종이 지폐가 되어 내 손을 거치지 않고도 쉴 새 없이 빠져 나갔다가 다시 들어오는 것이 일상적인 모습이 되어 버린 지 오래다. 오늘 하루를 돌이켜 보자. 버스카드 리더기로 빠져 나간 이천 원, 점심 값으로 치른 오천 원, 모 인터넷 서점에서 전자결제 오만 원. 모두 지폐 지불 없이 카드로 터치, 긁기, 타자기로 번호쓰기 등으로 통장 속 숫자만 또 줄어들고 있겠지.
‘피 같은 돈’ 이라는 표현이 있다. 저 문구를 이보다 더 분명히 해석해 주는 영화가 있을까 싶다. 이 영화에서 돈, 그러니까 시간은 말 그대로 ‘피’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25세가 되면 노화가 멈추고, 그에 따라 주어지는 1년이라는 생존시간이 주어지는 사람들. 사람의 몸에서 피가 다 빠져나가게 되면 죽게 되듯이 그 시간이 0초가 되면 바로 죽어버리는 이 잔혹한 운명. 이 영화의 주민들은 1년이라는 시간을 화폐 대신에 거래수단으로 이용하고, 노동을 통해 그 대가로 시간을 벌어 수명을 늘리는 구조에서 살고 있다. 해밀턴에게 110년을 기부 받은 윌은, 그리니치의 호텔에 가서 스위트룸에서의 하룻밤을 보낸다. 다음 날, 호화로운 아침식사를 하며 105년이나 남은 삶을 확인한다. 이 호텔에서 100년을 호화호식하며 남이 수발해 주는 대로 살 수 있지만, 그는 거기서 안주하지 않았다. 혁명을 시도하고, 멈추지 않는다. 육신은 영생할 수 있지만 정신은 죽을 수 있다는 말을 남기고 죽은 해밀턴, 그를 대신해 얻은 시간이라는 도구로 윌은 정신을 놓지 않고 따뜻한 인간애와 더불어 어려움을 해쳐 나간다.
근데, 어, 이상하지가 않다. 이 모습은 지금의 현실 그대로다. ‘산 입에 거미줄 치랴’ 라는 말이 있다고 해도, 많은 사람들이 돈 때문에 죽어가고 있지 않은가? 용산 참사, 노인의 자살, 실직가장이 저지른 일가족 살해 등 너무나도 비슷한 현실에 이상함을 느끼지 못하는 이 상황을 자각하니 더 끔찍한 기분이다. 멀리 가지 않아도 된다. 현재의 최저임금제의 실상을 보자. 1시간을 일해서 받는 시급이 2012년 현재 4,850원으로 밥 한 그릇 값인 5천원을 넘지 못한다. 이 상징적인 의미는 우리 목을 옥죄어 오는 듯한 이 나라의 구조적 한계를 실감케 한다.
혁명을 해야 한다는 맘 속 외침은 현실에서나 영화속에서나 같다. 실비아 아버지의 금고 안 일백만 년이라는 시간이 사람들에게 뿌려지자, 타임키퍼의 직원 중 한 명이 총을 내려놓으며 모두 집으로 가라고 한다. 이 장면에서 묘한 쾌감을 느낀 것은 사실이었지만, 내심 ‘그 이후는 어떻게 하지?’ 라는 걱정이 슬그머니 얼굴을 내밀었다. 하지만 그 덕에 수많은 죽음을 되살릴 수 있었기에, 그 자체로 가치가 있는 행동이었다.
2012년 12월 21일에 지구 종말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여전히 다시 찾아 올 2013년을 맞이해야 한다. 우리에게 다시 주어진 1년. 대통령이 누구든지 간에, 이 1년이라는 시간은 우리 손에 모두 다시 주어질 것이다.
살아서, 1년 후에 또 만나길.
( 2012.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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