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붉은 수수밭_정진희

by 진희 posted Dec 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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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

 


붉은 수수밭
원작 : 모옌 / 감독: 장예모 / 출연: 공리, 강문, 등여준, 계춘화, 유가

 

 

 


정진희

 

 

포스터01.jpg

 

 

  영화를 보았다. 제목처럼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온통 붉다. 가난으로 문둥이 갑부 리씨에게 당나귀 한 마리 값으로 팔려 시집을 가는 여주인공 ‘쥬알’의 삶의 붉고, 가마꾼과 눈이 맞아 붉은 수수밭에서 사랑을 나누는 ‘쥬알’의 대담함도 붉다. 문둥이 리씨가 죽고 무서움에 차마 밥에 들어가지 못하고 마당에서 잠을 청하는 ‘쥬알’에게 문둥병 전염을 막아준다며 붉은 고량주을 뿌리는 ‘유이찬아오’의 애틋함도 붉다.

 

  중일전쟁이 나고 마을에 일본군이 들어온다. 중국인들을 동원해 붉은 수수밭에 군영도로를 만드는 일본군이 항일 게릴라로 활동하던 ‘라오한’을 잡아 산 채로 가죽을 벗긴다. 라오한의 고통과 그가 흘리는 핏빛이 붉다. 분노한 중국인들이 붉은 수수밭에 붉은 고량주를 이용해 폭약을 만들고 일본군의 트럭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린다. 수수밭도 고량주도 붉고, 수수밭 위에 내리는 태양도 붉다. 거사는 실패하고 ‘쥬알’은 일본군의 총에 맞아 죽는다. 일꾼은 폭약을 들고 일본트럭으로 돌진해 함께 죽음을 맞이한다. 피로 물든 붉은 수수밭에서 걸어나오는 ‘쥬알’의 어린 아들. 하늘도 온통 붉은색이다.

 

  붉은색은 중국인에게 행복과 길함을 의미하는 색채. 그러나 영화에서 장예모 감독은 길함보다는 흉함으로, 행복보다는 불행을 그리며 온통 붉은 색으로 영화를 채운다. 감독 장예모는 갈등과 모순, 그리고 죽음, 전쟁이라는 폐허 속에서 행복과 길함을 갈망하고 있는 것일까. 하늘의 붉은 태양과 바람결에 움직이는 붉은 수수밭 등 영화 속 영상들은 마치 잘 찍은 작품 사진처럼 아름답다.

 

  혹, 장예모 감독은 여주인공 ‘쥬알’을 통해 붉은 빛의 절실한 희망을 노래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돈에 팔려 시집을 가면서도 가마꾼 ‘유이찬아오’와 사랑을 나누는 대담함과 적극성을 가진 ‘쥬알’은 망설임 없이 기존 질서 체계를 무너트린다. 양조장 주인 문둥이 리씨가 죽은 뒤 일하던 일꾼들이 떠나려고 하자 ‘쥬알’은 ‘술을 팔아 생긴 돈, 이익금을 똑같이 나누겠다’고 선언하고, ‘마님’이 아닌 이름을 불러줄 것을 당당하게 말한다. 영화 초반 사랑을 나누고 신행을 가는 ‘쥬알’을 바라보며 ‘유이찬아오’가 부르는 노래는 영화가 끝날 때가까지 주제곡처럼 흘러나온다. ‘뒤돌아 보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라’.

 

  영화의 시대적 배경은 1920년대 후반에서 1039년대 초반이다. 청조가 무너지고 남쪽에서는 유럽 열강들이 중국을 차지하기 위해 전쟁을 일삼고, 북쪽에서는 중일전쟁이 터지는 시기. 중국은 국민당과 공산당으로 나눠 분열되어 있었다. 이 시기에 영화 속에 등장하는 ‘뒤돌아 보지 말고 당당하게 나아가라’라는 노랫말은 어쩌면 ‘쥬알’에게 하는 영화 속 장치가 아니라 모든 중국인들에게 전하고 싶었던, 또 지금의 중국인에게 하고 싶었던 감독의 메시지가 아닐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