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붉은 수수밭_김명화

by 명화 posted Dec 07,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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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작: 모옌<소설: 홍까오량 가족> (2012년 노벨문학상 수상자)

감독: 장예모 - 1988년 베를린 국제 영화제 대상인 황금곰수상

출연: 공리(추알 역), 강문(유이찬아오 역), 등여준(라호안 역)

 

 

 

 

 

김명화

 

 

 

  1. 줄거리

 

   이 영화는 한 여인의 기구한 삶과 일본군의 침략으로 벌어지는 한 마을의 비극을 그린 전쟁영화다. 화자인 ‘나’ 가 조부모대로 거슬러 올라가 이야기는 시작된다. 가마에 탄 채 가난한 신부 18살의 추알은 50이 넘은 나병환자 양조장 주인인 리씨에게 나귀 한 마리에 팔려 시집을 간다.(가마꾼들의 경쾌한 풍악소리와 짓궂은 노랫소리가 유쾌하다) 추알은 흔들리는 가마 커튼 틈 사이로 보이는 유이찬아오의 젊고 건강한 몸에서 눈을 떼지 못한다. 청사 다리 아래 야생수수밭에서 비적에게 위협을 당하자 그녀는 그에게 구원의 시선을 보낸다.

 

  혼례 3일 뒤 신행 길에 올라 친정으로 가던 중 복면을 한 사내가 겁탈하려하자 도망을 가다가 유이찬아오인 것을 알아보고는 붉은 수수밭에서 둘은 하나가 된다. 리씨가 살해당하고 추알은 양조장의 새 주인이 된다. 며칠 밤낮을 마당에 웅크리고 있던 추알에게 양조장의 가장 오랜 일꾼 라호안이 정성을 다한다. 기운을 차린 추알이 그 시대엔 파격적인 제안으로 떠나려는 일꾼들을 붙잡는다. 일과 사랑이 시작된 여주인의 활기찬 목소리가 반갑다. 대청소를 하고 집안을 꾸미는데, 유이찬아오가 찾아와 둘의 부정한 관계를 떠벌리며 소란을 피우자 추알은 그를 내쫓는다. 마을의 힘인 산포에게 끌려가 모진 고초를 당하고 집으로 돌아온 그녀를 라호안은 다시 용기를 북돋운다. 9월 9일에 술을 빚고 완성된 첫 술을 들고 함께 기쁨의 노래를 부른다. 그런데 다시 유이찬아오가 찾아와 술독에 오줌을 누며 행패를 부리는데 그 술이 최고의 고량주인 ‘십팔리 홍’ 이 된다. 두 사람이 재회하게 되자, 그 날 밤 라호안이 떠나고 9년의 세월이 흐른다.

 

  그러던 어느 날 일본군이 쳐들어와 군용도로를 낸다고 붉은 수수밭을 모두 밟아 엎게 한다. 일본군에 반항하는 산포와 그의 일꾼이 죽어나가고, 항일 활동을 하던 라호안이 그들에게 잡혀와 살가죽이 벗겨져 죽는 참상을 보게 되자, 이에 격분한 추알과 마을 사람들은 십팔리 홍을 떠서 제를 올리고 결의를 다진다. 자신들의 생명과도 같은 그 술로 폭탄을 만들어 일본군에 맞서 싸우려 하는데 음식을 나르던 그녀가 일본군의 기관총에 맞아 죽게 된다. 기관포에 고량주 폭탄이 뒤늦게 터지고 수수밭은 순식간에 붉은 피로 뒤덮인다. 그 때 일식이 일어나고 다시 나타난 태양은 붉게 타오른다. 시력을 잃고 분노로 가득 찬 유이찬아오의 모습이 클로즈 업 되며, 붉은 태양과 붉은 하늘과 흔들리는 붉은 수수밭을 배경으로 어린 아들은 엄마를 위한 진혼곡을 부른다. “엄마! 엄마! 남서쪽으로 가세요. 그 곳은 길이 넓고 갈 길은 멀어요...” 하면서. 코끝이 찡해온다.

 

 

2.  장예모 들여다보기

 

 

  질긴 생명력의 상징인 붉은수수밭을 하나의 축소된 중국으로 놓고 사랑과 탄생과 삶과 애환과 죽음까지, 그리고 다시 이어지는 세대를 한 곳에 녹여 내려 한 것 같다면 나의 지나친 비약일까? 복선이란 영화적 장치가 여러 곳에 나오는데, 울퉁불퉁한 길에 뿌연 흙먼지를 일으키는 장면이라든지, 청살리 고개 위에서 부는 크고 긴 나팔소리와 드넓은 수수밭이 요란한 소리를 내며 흔들리는 장면은 앞으로 닥칠 삶이 만만치 않음을 예고한다. 그리고 중국의 풍습과 인습을 자연스럽게 접목시키는 부분인데 새 신부를 골탕 먹이는 일이나 붉은 고량주로 액을 쫓아내는 일이나 붉은 색과 9라는 숫자를 유난히 좋아하는 것이라든가 내세를 믿는 그 시대 사람들이 죽은 자의 혼을 달래고 복을 비는 일 등이다. 잠깐 공리의 종이공예 하는 모습에서는 팍팍한 삶 속에서도 인간의 본성이라 할 수 있는 아름다움이나 예술에 대한 동경을 조용히 그려낸다. 중간 중간 울려 퍼지는 힘찬 민속 악기 소리와 노래는 중국인의 근성을 보여 주려 한 것 같다. 또한 추알과 라호안의 이루어 질 수 없는 사랑의 안타까움과 남자의 질투를 살짝 묘사함으로써 보는 이의 숨겨 둔 감성을 자극한다.

 

  그는 마지막으로 일제의 만행에 대한 적개심을 강렬한 메시지로 담아내는데, 가축의 가죽을 먼저 벗긴 다음 라호안의 몸 가죽을 벗김으로써 인간과 가축을 동일선상에 놓으면서 인간의 존엄성이 그들에 의해 능멸 당함을 보여주려는 것이다. 그리고 최신식 무기와 토속적 무기를 대비시킴으로써 민족 불굴의 정신과 투지를 부각시키며 자존감이 박탈되고 영토를 침범당한 것에 대해 온통 붉은색으로 극도의 분노감을 연출했다. 대지 위에 우뚝 선 부자의 당당한 모습은 결코 잊어서는 안 될 다짐이며, 어린 아들의 노래는 앞으로의 삶이 평탄하고 풍요롭기를 기원하는 것으로 보였다.

 

 가장 인상에 남는 장면으로는 유이찬아오가 수수를 꺾어 쌓아올리는 장면인데 그의 수고와 등에서 흐르는 땀이 오히려 순수하게까지 보이게 만드는 것, 그리하여 마침내 비도덕적 비윤리적 행위를 마치 어떤 자연 의식으로 착각하게 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는 것이다. 이 영화는 중국 대륙 영화이며, 장예모 영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