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붉은 수수밭_이주연

by 주엔 posted Dec 0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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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 붉은 수수밭]

 

 

 영화 속의 문화

 감독 : 장예모 | 출연 : 공리 , 강문 | 개봉 : 1988년 중국

 

 

 

이주연

 

 

  1988년 베를린국제영화제에서 대상을 수상한 이 영화는 모엔의 소설 "홍고량가족"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모엔(莫言: 말막자, 말씀언자)은 필명으로 "입으로 말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글로만 뜻을 표현한다"는 의지를 담았다고 한다. 그 의지의 결과가 소설 "홍고량가족". 장예모 감독은 이 소설을 원작으로 해 영화 <붉은 수수밭>을 만들었다. 장예모 감독의 데뷔작이면서 그 작품성을 인정받아 중국 영화를 세계에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영화 속 주인공인 '공리'는 중국을 대표하는 여배우로서의 입지를 굳히는 작품이 되었다. 또 원작자는 노벨문학상의 영예까지 안았으니 '글로만 표현한다'는 그의 글은 대단히 글발이 아닌가 싶다.

 

  영화 속의 시간은 1920년대 후반부터 중일전쟁까지로 한 여인의 일생을 그리고 있으며, 중국의 봉건사상과 매매혼, 구전문학과 역사를 항일 운동이라는 시대적 정신이 담겨 있다. 스크린의 영상은 사르락 사르락 바람에 부딪는 소리를 내는 수수밭과 광활한 황토 섞인 중국 대륙을 담고 전개된다. 가난한 집 딸인 18세의 추알(공리분)은 나귀 한 마리와 맞바뀌어 문둥병 환자이자 50대인 양조장 주인 리씨에게 시집을 간다.추알은 리씨집에서 보낸 가마꾼들의 가마를 타고 신랑집으로 향한다. 흔들거리는 가마 문틈으로 보이는 츄알의 가죽신에 가마를 맨 유이찬아오는 눈을 뗄줄 모른다. 가던 도중 강도를 만나지만 어설픈 강도는 오히려 가마꾼들에게 죽임을 당한다. 이 과정에서 추알은 두려워하는 모습이 없고 오히려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추알은 다시 가마에 오르고 가죽신을 신은 발을 가마 문틈 사이로 내민다. 이때 유이찬아오는 그녀의 발을 만지면서 가마 안으로 밀어 넣어준다. 발을 내밀어 유이찬아오에게 보인다는 것은 추알이 유이찬아오에게 몸을 허락한다는 것을 뜻한다. 예로부터 중국인들은 발과 성을 관련시켜 왔다. 그 대표적인 예가 전족(纏足)이다. 전족은 서너살 된 여자아이의 발을 천이나 가죽으로 감싸서 발육을 정지시키는 것을 말한다. 성인이 되어도 발의 크기가 불과 10센티밖에 되지 않으며, 발등은 굽어서 튀어 나오고 발가락은 발바닥 쪽으로구부러지게 된다. 이렇게 만들어진 기형적인 작은 발은 여성들의 육체 노동을 제한시켰고, 그 결과 남성의 보호 하에서만 생활할 수 있도록 하였다. 게다가 뒤뚱거리는 걸음걸이는 남성의 성적쾌감을 자극하는 수단이 되었다. 여성을 남성의 성적 노리개로 만들기 위한 잔인한 방법이 바로 전족이었던 것이다. 전족은 구애의 상투적인 방법으로 이용되기도 하였다. 그 예가 중국 대표소설 중 하나인 <금병매(金甁梅)>에 나타난다. 서문경이 반금련의 전족을 만지자 반금련이 웃음으로 그를 반겼던 것이다. 이 대목은 이 영화 속 유이찬아오가 추알의 발을 만지는 장면과 오버랩된다.

 

  이러한 둘만의 정신적 교감은 신행길에 올라 친정가던 날 붉은 수수밭에서 정사신으로 이어진다. 이때 장예모 감독은 푸른 수수밭과 추알이 입은 붉은 누비옷을 통하여 선명한 색채감으로 아름다운 영상을 만든다. 그 후 추알이 양조장으로 돌아왔을때 남편은 살해되어 있었다. 주인 없는 양조장을 떠나려는 일꾼들을 추알은 주인대 일꾼 관계가 아닌 협력자의 관계로 도와달라고 진지하게 설득하여 붙잡는다. 그리고 모든 일을 라호안에게 총괄토록한다. 친정 가는 날 추알과 관계를 맺은 유이찬아오는 그녀와 동침한 사실을 사람들에게 떠벌리고 새로 빚은 고량주에 오줌을 누는 등 말썽을 피운다.그런데 유이찬아오가 오줌을 눈 고량주는 어느 해보다 맛있는 술이 되어 18리 고량주라는 이름으로 인기를 얻게 된다. 이 즈음에 유이찬아오는 우여곡절끝에 추알과 합방을 하게되고 추알의 남편이 된뒤 라호안이 사라진다.

 

   그 후로아들을 낳고 9년이 흐른 뒤 일본군에 의해 마을의 평화가 깨진다.일본군은 군용도로를 만들기 위해 수수밭을 파헤치고 항일 게릴라운동을 했다는 명목으로 라호안의 가죽을 벗겨 참혹하게 죽인다. 수수밭은 민족정신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는데 이 밭을 파헤친다는 건 민족정신의 말살이라는 의미를 부여할 수 있다. 라호안의 죽음으로 추알은 분노하게 되고 양조장 식구들은 함께 고량주로 폭탄을 만들어 일본군과 싸우게 된다. 싸우는 과정에서 추알은 일본군이 쏜 기관포에 맞아 죽게되고 뒤늦게 터진 폭탄은 일본군을 섬멸하고 수수밭을 피로 물들인다, 영화는 붉은 태양 아래 두 부자만이 서있는 장면으로 끝난다.

 

   손자의 나레이션으로시작되는 이 작품은 "제5세대 영화"라고 불린다. 5세대라 함은 1982년 베이징 영화학교를 졸업하고 등장한 세대를 말하는데,이 시기의 영화들은 비슷한 스타일을 가지고 있다. 문화대혁명 이전의 중국영화가 이데올로기 선전을 위한 도구로서만 가능했지만 제5세대 영화는 영화의 매체적 활용에 대한 새로운 인식과 문화혁명기간 동안의 경험을 바탕으로 중국의 역사와 민중의 삶에 대한 성찰을 보여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