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 어머니의 모든 것_오진화

by 노마 posted Nov 26,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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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리뷰 ]

 

 

내 어머니의 모든 것

 

 

 

· 제목 : 내 어머니의 모든 것(원제 : Todo Sobre Mi Madre/ All about My Mother)
· 개봉 : 스페인, 프랑스 | 101 분 | 2000년 1월 29일
· 감독 : 페드로 알모도바르
· 출연 : 세실리아 로스 (마누엘라 역), 마리사 파레데스 (위마 로조 역), 칸델라 페냐 (니나 역), 안토니아 산 후앙 (아그라도 역), 페넬로페 크루즈 (로자 수녀 역)
· 수상 : 72회 아카데미시상식(2000) 외국어영화상 , 57회 골든글로브시상식(2000) 외국어 영화상, 52회 칸영화제(1999) 감독상(페드로 알모도바르)

 

 

 

오진화

 


  사람이 태어날 때는 그저 한 개인에 지나지 않는다. 마찬가지로 여성이 세상에 때어날 때 잉태라는 생물학적인 기능으로 결정된 한 존재일 뿐이다. 그러나 사회라는 구조가 개입되고 한 시대의 정신이나 질서 체계가 지배하게 되면 오롯하게 한 개인으로 존재하기가 어렵다. 사회, 혹은 시대 정신이이라는 전체성이 개별성을 가진 한 개인을  호명하기 때문이다. 이 호명을 받으면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김이라는 성을 쓰는 가정의 한 성원, 여자, 한국인이라는 사회구성원으로 존재하게 된다. 결국 개별적인 존재는 호명이란 행위를 통해서 사회 구조의 어떤 한 가지 배역을 떠맡게 되는 것이다. 현대철학자 알튀세르에 따르면, 이렇게 주체로 호명된 개인은 현실적으로 수행하는 생각이나 행동들에 대하여 이데올로기가 표상 체계로 작동하게 된다고 한다.

 


   “나는 모든 이데올로기는 구체적인 개인들을 주체로 호명(呼名, interpellation)한다고 말하고자 한다. (중략) 우리는 경찰의 일상적인 호명과 같은 유형 속에서 그것을 표상할 수 있다. “헤이, 거기 당신!” 이렇게 호명된다면 호명된 개체는 뒤돌아볼 것이다. 이 단순한 180도 물리적 선회에 의하여 그는 주체가 된다. 왜냐하면 호명이 바로 ‘그’에게 행해졌으며, ‘호명된 자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바로 ’그‘라는 사실을 알게 되기 때문이다.“(알 튀세르의 <이데올로기와 이데올로기적 국가 장치> 중에서)

 


  이처럼 알튀세르는 주체가 설정되기 위해서는 그것이 어떤 형식이든 특정한 이데올로기가 먼저 전제되지 않을 수 없다고 생각했다. 이 논의에 따르면 애당초 인간에게 온전한 ‘나의 선택’이란 있을 수가 없다. 그래서 알 튀세르의 이 생각을 이어 받은 현대철학자 지젝도 ‘우리 모두는 이데올로그’라고 선언했던 것이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데올로기에 호명된 어떤 주체 형식이 구체적인 개인에게 삶의 행복을 가능하게 해주는가의 문제다. 이데올로기에 호명된다고 하더라도 개인에게 행복과 기쁨을 준다면 아무 문제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아픔과 슬픔을 준다면 이데올로기에 호명당하지 않는 것이 좋을 것이다.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은 등장하는 인물들은 이데올로기에 호출당하고 이데올로기에 호명된 주체가 행복을 주기는커녕 도리어 아픈 모습으로 그려진다. 이 영화 속 인물들 모두는 일그러지고 굽은 이데올로그들이며, 이 이데올로그들은 영화 속의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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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내 어머니의 모든 것(원제 : Todo Sobre Mi Madre/ All about My Mother)>의 주인공 마누엘라.

그녀는 오롯하게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길을 나선다

 

 

 

  주인공 ‘마누엘라’도 처음에는 그저 시대에서 호명당한 이데올로그였다. 트랜스젠더인지도 모르고 ‘롤라’를 사랑했던 주인공 ‘마누엘라’는 아들 ‘에스테반’을 낳지만 ‘에스테반’이 교통 사고로 죽는다. ‘마뉴엘라’는 아들의 죽음 앞에서 좌절하지만 견뎌내고 전 남편을 찾아 나선다. 이 여정에서 전 남편의 아이를 임신한 수녀 ‘로사’(페넬로페 크루즈 역)를 만난다. ‘로사’는 주인공 ‘마누엘라’의 남편이면서 그녀의 죽은 아들 ‘에스테반’의 아버인 ‘롤라’를 사랑해 아이를 임신한다. ‘롤라’ 또한 에이즈로 죽어가고 있다. ‘로사’는 아이를 낳고 죽지만 ‘마누엘라’는 ‘로사’의 에이즈 보균자를 가진 ‘로사’의 아이를 돌보기로 한다. 이렇게 해서 한 시대가 만든 이데올로그였던 주인공 ‘마뉴엘라’는 그저 모든 것을 끌어안으며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길을 나선다. 그녀는 이제 시대가 만들어내는 이데올로그가 아니라 자신의 삶을 선택하고 시대의 명을 거부하는 ‘탈이데올로그’가 되는 것이다.

 

   여기서 나타나는 탈이데올로기는 ‘모성(母性)’이다. 감독은 주인공 ‘마누엘라’를 통해 ‘모성’이라는 여성성을 그려내면서 아무리 어두운 세상이지만 결국 이 모성만이 세계의 유일한 희망이라는 메시지를 우리에게 전하고 싶어 한다. 모성(母性)이란 사전적으로 여성이 어머니로서 가지는 정신적, 육체적 성질. 또는 그런 본성이라고 정의된다. 그렇다면, 여성의 안에는 ‘모성’이 자연스럽게 내재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 우리 시대는 여성이 모성을 갖고 있다는 자체가 힘겨운 상황이다. 우리 시대의 이데올로기가 효율과 기호 가치, 돈과 명예라는 것으로 개인을 호출하면서 ‘모성’이라는 것은 그저 짐덩어리일 뿐이다. ‘잉태’하는 생물학적인 존재로 결정되어 있지만 잉태가 즐겁고 기쁜 일만은 아니다. 그 안에서 나와 우리 시대의 여성들 모두가 신음하고 있다.

 

  영화에서 ‘로사’는 엄마가 가까운 곳에 있으나 ‘마뉴엘라’와 지내고 싶어 한다. 처녀가 임신하다니, 게다가 트랜스젠더의 아이를 갖고, 더욱이 에이즈 보균자를 안고 있는 아이라니! 엄마는 ‘로사’를 한 개인으로 보지 못 하고 사회가 명령하는 동일성의 눈으로 바라본다. 그 안에서 ‘로사’가 엄마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것은 당연한 것일지도 모른다. 돈의 문제로 잉태를 포기해야 하고, 윤리와 도덕이라는 문제로 출산을 거부해야 하는 사회. 그리고 이 구조 안에서 살아갈 수밖에 없는 나, 그리고 우리의 여성들….

 

  원래 여성이면서 어머니로 살아간다는 것이 힘겨운 이 세계에서 나는 자유로워질 수 있을까. 전업주부라고 하면 왠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처럼 생각되고, ‘커리어 우먼’이라 하면 멋있게 세상을 살고 있다는 생각이 드는 것 또한 우리 사회가 만들어 놓은 그물망. 나는 사회적으로 부여된 가치―돈, 명예, 계층 상승, 기호가치―에서 자유로와져 영화의 주인공 ‘마누엘라’처럼 병든 한 아이를 껴안을 수 있을까. 그러면서 감독이 말한 것처럼 한 세계를 껴안을 수 있을까. 내 어머니의 모든 것(All About my Mother). 이 영화를 생각하면 할수록 여성으로서의 고민이 자꾸 깊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