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내 어머니의 모든 것_김명화

by 명화 posted Nov 24, 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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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감독: 페드로 알모도바르

· 출연: 세실리아 로스(마누엘라 역) 토니칸토(롤라 역) 

            엘로이 아조린(에스테반 역) 안토니아 산후암(아그라도 역)

 

 사랑하는 마누엘라에게

 

 당신의 그 아름다운 얼굴이 화면을 가득 채우며 내 눈으로 들어왔다가 다시 에스테반의 애잔한 눈동자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장면이 영화가 끝난 뒤에도 한참동안 지워지지 않아 내 가슴은 먹먹해지고 머릿속은 온통 낯선 아픔인지 고통인지 모를 혼란으로 가득했어. 무슨말을 어떻게 시작해야 하나. 먼저 열일곱살에 짧은 생을 마치고 사고로 세상을 떠난 에스테반에게 마음을 다하여 위로의 말을 전하고 싶어. 살아있는 동안 엄마로만 채워질 수 없었던 반쪽의 허전함으로 더욱 외로웠을 그의 영혼에 대하여. 그리고 그런 아들의 상처를 감싸주고 어루만져주지 못하고 그것을 회복할 기회마저 박탈당한 당신의 그 깊은 슬픔 또한 위로하고 싶어.

 

  사랑하는 마누엘라... 마치 거짓말처럼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를 타고 떠났다가 트랜스젠더가 되어 돌아온 롤라를 보게 되었을 땐 얼마나 충격이었을까? 짐작이 가. 그러나 그때 당신은 어쩌면 동일자 (즉, 이성의 내부이자 정상과 동일시되는)가 되어 타자 (소외된 자) 를 밀쳐 낸 것은 아닐까? 우리는 가능하다면 안정적이며 보장된 공간안에 오래 머물고 싶은지도 모르겠어. 그러나 살아가다 보면 여러개의 홈 (모든 방향으로 나아갈 수 있는 공간)을 파야 할 때가 오기 마련이지. 그것이 철학적 사고든, 남을 이해하기 위한 방편이든 아니면 내 자신의 삶에 위안을 얻기위한 수단이든 간에.

 

  우리는 누구나 권리를 내세우고 자유를 부르짖고 행복하기 위해 매 순간 선택을 하게 되지만 그렇다면 아그라도나 롤라가 자기 몸의 명령에 따라 선택한 일은 정말 잘한 일일까? 개인의 의지만으로 행복을 보장받는 것이 가능한 일인가? 외부로부터의 조건이 오히려 그들의 삶을 어렵게 하지는 않았을까? 과학의 원리(신경 전달 물질)를 이성적 사고로 파악해 정확히 구분짓는 일 또한 쉬운일이 아닐지도 모르겠어.

 

  사랑하는 마누엘라... 로사를 생각하면 너무 가슴이 아파. 한때 사랑한 이유로 모든 짐을 끌어안고 감내한 그녀. 부모님의 환경적 여건과 죄책감으로 인해 발길을 돌려야 했던 그녀의 심정은 어떠했을까? 그것도 사랑의 또 다른 방법이겠지. 로사를 대신하여 이 말을 꼭 해주고 싶어. '아이의 아버지가 롤라인 것을 알고도, 또 내가 AIDS에 감염된 것을 알고도 아이를 낳고 숨을 거둘때까지 정성껏 보살펴준 그리운 마누엘라 고마워. 정말 고마워.' 라고. 그래도 다행인 것은 로사의 아들 에스테반이 무사히 태어나 준 거야. 생명의 탄생은 아무리 생각해도 경이로운 일이 아닐 수 없지. 내일부터 몸은 더 힘들어지고 때론 고통도 따르겠지만 모성으로 품어안은 에스테반과 함께 희망의 빛을 찾아가길 바라고 응원할께.

 

추신: 타자가 되는 조건은 세상 곳곳에 널려있다. 그를 온전히 보듬어 안아 다시 설 수 있도록 하는 이는 어머니가 아닐까? 신에게만 허락된 말이 아니라면 나를 포함한 세상의 모든 타자들에게 난 이렇게 외치고 싶다. "너의 죄를 사하노라."라고. 우리 모두 동일자인 동시에 타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