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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38] 클로드 레비스트로스

by 이우 posted Mar 27,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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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비스트로스01.jpg

 

 

  클로드 레비스트로스(Claude L?vi-Strauss, klod levi st?os, 1908년 11월 28일 ~ 2009년 10월 31일)는 프랑스의 인류학자로, 인간의 사회와 문화를 이해하는 방법으로서 구조주의를 개척했다. 그는 1927년 파리대학교에서 철학과 법률을 공부한 뒤 중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았으며, 장 폴 사르트르 등과 지적 교제 관계를 맺었다. 브라질 상파울루대학교에서 사회학교수로 재직 중(1934년~1937년) 브라질 원주민을 현지조사했다. 뉴욕 시의 사회연구학교 객원교수로 있는 동안(1941년~1945년) 언어학자 로만 야콥슨의 저작을 접하고 많은 영향을 받았다. 1950년~1974년 파리대학교 에콜 프라티크 데 조트제튀드(?cole Pratique des Hautes ?tudes) 연구지도교수를 지냈으며, 1959년 콜레주 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 학과장이 되었다. 2009년 100세의 나이로 파리에서 사망했다.

 

  1949년 최초의 주요 저서인 <친족의 기본구조(Les Structures ?l?mentaires de la parent?)>를 출간했으며, 1955년 문학적인 자서전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1955)를 통해 유명해졌다. 그 밖의 저서로는  <구조인류학 Anthropologie structurale>(개정판 1961), <야만적 사고(La Pens?e Sauvage)>(1962),〈토테미즘(Le Tot?misme aujourd'hui)>(1962) 등이 있다. 방대한 규모의 저서 <신화(Mythologiques)>는 <날것과 요리된 것(Le Cru et le cuit)>(1964),〈꿀에서 재까지(Du miel aux cendres)>(1962), <식사예절의 기원 (L'Origine des mani?res de table)>(1968),〈벌거벗은 인간(L'Homme nu)>(1971)의 4권으로 출간되었으며, 1973년 <구조인류학> 제2권이 나왔다. <가면을 쓰는 법(La voie des masques)>(2권, 1975)은 미국 북서해안 인디언의 예술·종교·신화를 분석한 책이다.

 

  심층 구조를 탐구하는 레비스트로스의 작업은 문화인류학에서 3가지 영역의 업적을 이뤘다.

 

  ① 친족구조 : 혼인규제와 친족체계를 일종의 언어, 즉 개인간·집단간의 커뮤니케이션을 가능케 하는 일련의 과정으로 간주한다. 그리고 커뮤니케이션의 매체가 되는 것은 <여성>이며, 친족 집단간에 <언어>와 동일하게 순환(循環)된다고 논한다. 그는 혼인규제의 다양성의 배후에서 몇 가지 원리를 추출해 냈으며, 친족 체계에서는 출신(出身)보다도 혼인규제가 한층 중요함을 제시하였고, 혼인규제와 친족 명칭과의 사이에 밀접한 관계가 있음을 명백히 하였다. 나아가 그는 친족체계를 경제적 조건에 의해서가 아니라 정신구조에 의해 설명하려고 하였다. 다만 <여성의 순환>이 이루어지는 친족구조를 친족의 일반이론으로서 확대시키는 점에 대해서는 후에 J.T. 니덤 등으로부터 비판을 받았다.

 

  ② 분류의 논리 / 야생(野生)의 사고(思考) : 아직 인간이 과학기술문명의 사고에 영향받기 이전의 인간의 사고를, 미개인의 동식물 분류 등을 통하여 파악하려고 했다. 특정 동식물을 집단의 시조(始祖)로 여기고, 이를 먹는 것을 금하는 토테미즘이라는 제도에 관한 종래의 기능주의적인 해석이 타당치 못함을 지적하고, 특정 동식물이 자연계로부더 선택되는 것은, 그것이 경제적으로 가치가 있어서가 아니라 사회의 구분이나 관계를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논하고, 토테미즘의 원리는 대립하는 것의 통합에 있다고 생각하였다. 여기에 대해서는 M. 포테스 등의 비판이 없지 않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토템연구는 종래 설명되지 못했던 현상의 해명에 시사하는 바가 컸다.

 

  ③ 신화의 구조 :  아메리카대륙원주민의 800개가 넘는 많은 신화를 연구하여 4권의 저작으로 정리하였다. 남아메리카 원주민의 신화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추이(推移)는 <날것>으로부터 <불에 익힌 것>,  <요리된 것>으로의 추이에 의해 상징되고 있는 것과는 달리, 북아메리카의 신화에서는 자연으로부터 문화로의 추이는 의류·장식품의 발명과, 그것에서 유래되는 물품의 교환에 의해 나타나 있다고 설명했다.

 

 


레비스트로로스와 구조주의

 

 

책_쉽게읽기.jpg     레비스트로스에 있어서 구조란 개념은, 수학적 단일적 보편성의 구조를 부정하고, 다양한 영역이 있음을 알리는 개념이다. 레비스트로스의 인류학적 여행기이자 자서전이기도 한 <슬픈 열대>(1955)에서 그는 젊은 시절 자신을 자극한 학문으로 지질학, 프로이트의 정신분석학, 마르크스주의를 들고 있다. 이 세 가지의 공통점은 의식할 수 있는 표면이 아닌, 의식이 접근하지 못하는 심층에서 진실을 찾으려 한다는 것이다. 가령 레비스트로스는 마르크스로부터 몇몇 교훈들을 간직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의식은 자신을 속인다"라는 것이다. 이 짧은 문장이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의 핵심을 잘 이야기해준다.

 

  레비스트로스는 <신화학>에서 구조주의의 야심을 이렇게 명시하고 있다. “구조적 분석은 인간사회의 분명한 다양성 너머에 근본적이고 공통적인 특성에 도달하기를 주장한다. 또한 구조적 분석은 각 사실들의 생성을 지배하고 있는 불변적 법칙들을 명시하려고 한다.” 구조주의는 의식되지는 않지만 여러 집합들에 공통적으로 작동하는 원리를 발견하려는 학문인 것이다. 이 점은 체계와 구조를 구별하는 레비스트로스의 다음과 같은 말에서 잘 드러난다

 

  “구조(structure)는 체계(syst?me)로 환원되지 않습니다. 체계는 요소들과 그 요소들을 결합시키는 관계들로 구성된 총체를 말하지요. 구조라는 말을 할 수 있으려면 요소들과 여러 집합들의 관계들 사이에 불변하는 유사점이 드러나야 합니다. 한 집합이 변형을 통해 다른 집합으로 이행해 갈 수 있도록 말이에요.”

 

  대담 형식으로 일생 동안의 학문 전개과정을 설명한 책 <가까이 그리고 멀리서>에 나오는 구절이다. 체계는 그것을 구성하는 요소들의 관계 전체인데, 이와 달리 구조는 여러 집합에 공통적인 원리라는 것이다. 레비스트로스는 다음과 같은 재미있는 일화를 소개하고 있다.

 

  “나는 태생적인 구조주의자입니다. 내 어머니는 내게 이런 이야기를 해주었어요. 내가 제대로 걷지도 못할 때, 글을 읽기 한참 전인 시절, 하루는 내가 유모차에서 ‘부세(boucher, 정육점)’와 ‘블랑제(boulanger, 제빵점)’ 간판의 첫 세 알파벳이 ‘bou’인 것 같다고 소리쳤다는 거예요. 그 두 단어의 앞 철자들이 동일했으니까요. 그 나이에 이미 난 불변자(不變者)들을 찾고 있었던 것이지요!”

 

  여기서 불변자라고 불리는, 구조에 해당하는 것은 위의 두 단어 모두가 지니고 있는 ‘bou’라는 요소이다. 이것은 ‘그 자체로는 어떤 의미도 지니지 않으며’, 우리 의식의 대상도 아니다. 그것은 고작 ‘부-’라는 무의미한 음절이며, b,o.u 세 철자의 무의미한 배열이다. 우리의 의식이 관여하는 것은 정육점이라는 의미와 제과점이라는 의미일 뿐이고, 양자에 공통적인 bou는 저 ‘두 의미를 구성하는 세부적인 의미’가 전혀 되지 못한다. 따라서 당연하게도 저 두 단어를 의미 있는 것으로 우리 의식이 고려할 때 bou는 의식에 포착되지 않는다. bou는 의식의 표면 위에서 의미(정육점, 제과점)가 구성되도록, 의식되지 않는 차원에서 기능하는 요소인 것이다. 이런 까닭에 의식에 대한 분석을 통해 세계의 비밀을 밝혀보려는 학문(현상학)에 대해 구조주의는 철학사적으로 대립적인 위치에 서게 된다. 레비스트로스가 ‘구조’라는 이름 아래 탐구하는 것은 바로, 여러 문화에 공통적이며, 그 자체로는 아무런 의미를 지니지 않지만 문화 안에서 의식되는 각종 의미들을 가능케 해주는 요소이다.

 

  레비스트로스의 구조주의는 서구의 이성이 철학이라는 거울에 자기 자신을 비추어 보면서 빠져 있던 나르시시즘을 해체했다. 이성이 역사를 통해 스스로 발전해 나가는 법칙(이것을 설명하는 학문이 ‘역사철학’이다)은 허구적일 수 있으며, 따라서 그 법칙을 발견하고 따르는 사회가 다른 사회에 비해 우월한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오히려 모든 사회는 나름의 긍정적인 법칙을 가지고 있다고 그는 믿는다.

 

  레비스트로스에겐 역사도 규칙적 발전이 아니라 한낱 우연이다. “역사는 당연히 되돌릴 수 없는 우연에 속한다.” ‘수많은 우연 때문에 여러 문화들은 ‘우열 없이’ 서로 쪼개져 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이런 무질서한 인간 삶의 파편들 속에서 ‘최소한의’ 동질적 구조를 계산해내는 것이 레비스트로스식 구조주의였다.
 
  “구조분석이 모든 사회 활동을 설명해 줄 수 있다는 생각은 나로서는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이와는 반대로, 사회생활과 그것을 둘러싼 경험적 현실은 인간 세계에서 무작위로 펼쳐지는 영역인 것으로 내게는 생각됩니다.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나는 전적으로 우연적인 역사에 복종합니다. 나는 그저, 무질서가 지배하는 이 거대한 경험의 수프(이런 표현을 써서 미안합니다만) 속에는 여기저기에 구성(organisation)의 섬들이 형성된다고 생각할 뿐입니다.”

- 레비스트로스


 

<신화(Mythologiques)>(1964년~1971년)

 

책_신화01.jpg   레비스트로스는 인류가 조화로운 자연에서 분리되면서 건강함을 잃고 불균형에 빠졌다고 진단했다. 외디푸스 신화의 변형군(變形群)을 분석해보면 상실한 인간관계(근친상간, 부친살해, 형제간 반목, 배반의 줄거리)의 극한 대립은 결국 모든 모순을 떠안고 공동체에서 배제되는 희생양을 통해 봉합될 수밖에 없음을 보여준다. 반면 야생의 사유는 양 극단 간의 투쟁이 아니라 매개 기능을 가진 ‘관계맺기’다.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축구 경기다. 문명인들은 우열을 가르기 위해 축구를 하지만 야생인들은 균형을 이루기 위해 축구를 한다. 이것은 하나의 의례다. 히다차(Hidatsa) 족이 매 사냥에서 피 흘리는 미끼로 유인해 맨손으로 피를 보지 않고 매를 잡는 것은 먼 공간 사이를 매개한다는 의미 외에도 이미 미끼 사냥을 위해 피를 보았으므로 더 이상의 피를 보고 싶지 않은 철학이 담겨 있다.

 

  야생인은 매개 기능을 중요시하는데 그 이유는 세상이 결코 양 극단의 상태로만 이루어지지 않았음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반면 서양의 형이상학은 순수함만을 추구하다보니 모호한 존재에 대한 두려움을 드러내고는 했다. <날 것과 익힌 것>에 나오는 보로로족의 기원 신화들도 외디푸스 신화와 마찬가지로 근친상간과 존속 살해에 대한 이야기다. 그러나 여기서는 단순한 비극으로 끝나지 않고 질병이 삶과 죽음을, 장신구가 각기 자연과 문화를 매개하는 연결고리로 작용한다. 불의 기원 신화는 부족함이 없이 모든 것을 소유한 표범에게서 인간에게 필요한 모든 것(불과 실타래, 고기)을 빼앗아 오는 이야기인데 맹수와 인간은 서로 접근하기 어려운 대립 관계여서 표범의 아내로서 인디언 여성이 매개 역할을 수행한다. 신화에서 아내가 죽어야 하는 이유는 애초에 상정된 비대칭성(표범은 모든 것을 소유했고 인간도 잡아먹는 반면, 인간은 소유한 것이 없고 표범을 잡아먹지도 못한다)을 유지하기 위해 필요한 것을 얻고 나면 전도된 형태(인간이 모든 것을 소유하고 표범은 모든 것을 상실한 상태)로 비대칭성이 복원되어야 하기 때문이다. 이것은 야생인들의 신화 속에 내재하는 치밀한 논리구조를 보여준다.

 

  각 신화에서 설명할 수 없이 물음표로 남겨둔 <신화소(mytheme: 신화를 이루는 구성단위)>들은 추후 다른 신화 속에서 그 의미를 파악할 수 있도록 맞물리면서 여러 신화들의 치환과 변형을 증명해준다. 고장 난 라디오에서 부품을 떼어내서 컴퓨터 수리에 사용하는 전파상 아저씨(브리콜뢰르)처럼 신화란 이런 저런 이야기들에서 재료를 취해서 자기 부족의 문맥에 맞추어 변형시키며 또 다른 이야기들과 접목된다. 따라서 신화들을 표면적으로만 이해하면 이치에 맞지 않고 엉뚱한 얘기처럼 보이지만 심층의 논리 구조를 보아야 한다. 담배 연기가 야생 돼지와 연관되고, 야생 돼지를 굽기 위해서 표범에게서 불을 얻어야 하고, 표범의 시체를 태워 담배를 얻을 수 있다는 신화에서 의미 부여가 지연된 신화소들 덕분에 완성된 원환을 이룰 수 있었다. 자체가 완결된 고리였다면 이러한 신화들의 연쇄 고리는 가능하지 않다.

 

  요리는 자연이 문화로 변형되는 보편적 수단이다. 그리고 음식의 종류는 사회적 분별의 상징으로 이용되기에 적절한 예이다. 날 것은 매개 요소다. 음식 재료로서의 날 것은 그 자체가 자연적 요소이지만 대개 길들여진 동물이거나 경작된 식물임을 감안하면 그것은 문화적 요소를 함께 갖는다. 익힌 것은 문화적 변형이며 썩은 것은 자연적 변형이다. 따라서 요리도 인간 문화 속에서 내면화한 변형/정상, 문화/자연의 대립을 상징한다. 레비스트로스는 구운 음식이 삶은 음식보다 높은 가치를 부여받는다고 주장한다. 샤브샤브처럼 삶은 음식은 내용물을 보존하는 측면이 강하고, 굽는 것은 파괴와 상실이 뒤따른다는 것이다. 따라서 전자는 경제성(서민적)을 나타내고 후자는 낭비성(귀족적)을 나타낸다고 한다.

 

  <신화론> 1권에 24번째 신화로 나오는, 담배의 기원에 관한 남아메리카 테레노족의 신화는 이렇다. 마녀를 아내로 둔 남자가 있었다. 이 남자는 꿀을 찾으러 숲으로 갔는데, ‘더 쉽게 꿀을 찾기 위해’ 신발 바닥을 서로 탁탁 쳤다. 그 후 나무 밑동이의 벌집과 함께 그는 뱀을 발견했다. 그는 뱀을 죽인 후 뱃속에서 꺼낸 뱀 새끼의 살과 꿀을 섞어서 아내에게 먹였다. 그 혼합 꿀을 먹고 몸이 가렵기 시작한 아내가 남편을 잡아먹겠다고 소리치며 따라왔는데, 우여곡절 끝에 남편은 사냥감을 잡기 위해 자신이 파놓은 함정에 아내를 빠뜨려 죽였다. 남편은 그 구덩이를 메우고 감시했는데, 그 구덩이에서 돋아난 식물이 담배이다.

 

 이 담배의 탄생에 대한 신화에서 아주 주변적인 이야기며 무의미하게 보이는 요소가 ‘탁탁 발을 부딪친 후 벌집뿐 아니라 뱀이 나타났다는 사실’이다. 이 신화 속에서 탁탁 소리에 대해 뱀이 나타난 사실은 전혀 합리적이지 않은, 무의미한 사건인 것 같다. <신화론> 2권에 와서 레비스트로스는 이 신화를 다시 상기시키며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는 꿀에게 ‘두드리는 부름(호출)’을 보내는데, 그 결과 그는 꿀뿐 아니라 뱀도 찾을 수 있었다. 그러면 이러한 관행의 상징적 의미는 무엇인가? 관찰한 내용이 이러한 관습을 직접적으로 확증한다고 할 수는 없지만, 이러한 관습은 다른 신화에 반사되어 나타난다는 것을 알게 될 것이다.”

 

   한 신화 안에서 무의미하고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요소는 ‘다른 신화에 반사되어 있고’, 아마도 그 다른 신화 속에서 처음 요소의 기능을 발견할 수 있다. 타카나 신화 안에서 ‘두드림과 뱀의 등장’은 ‘두드려서 뱀을 호출하는 일과 휘파람 소리 같은 뱀의 대답의 대립’으로 나타난다. 그리고 보다 폭넓게 남아메리카의 신화들을 조사해보면, 두드림의 호출과 뱀의 응답이란 궁극적으로 여성의 자궁과 남성 성기의 대립 관계임이 드러난다. 소란스런 호출과 성기의 응답이라는 이런 대립은 시라 향가인 <구지가> 역시 ‘공유하는’ 구조이기도 하다. 이런 점에서 “양쪽 반구가 서로 만나듯이 신화들이 한 바퀴 돌아 제자리에 오게 된다”는 레비스트로스의 말은 매우 의미심장하다.

 

  신화들의 줄거리(의미)는 서로 제각기 다르지만, 그 배후에는 바로 하나의 대립 관계가 불변하는 동일한 구조로서 자리 잡고 있다. 이러한 심층적 구조, 그 자체는 어떤 의미도 이야기도 아닌 이 구조는, 한 이야기가 담고 있는 의미의 논리적 연쇄 과정을 추적해서는 결코 드러나지 않는다. ‘신화는 사라져 버린 관습에 대한 기억을 간직하고 있거나 다른 지역 부족들의 관습 가운데 일부를 활용할 수도 있다’. 한 이야기 안에 남아 있는 사라진 관습의 흔적, 다른 부족의 관습의 흔적은 줄거리의 내적 구조만을 바라볼 때는 그저 불가사의한 수수께끼로 남을 뿐이다. 그것은 우리 의식이 파악하는 줄거리와 의미 바깥에서, 무의식적인 심층에서 작동하기 때문이다.

 

 
□ <슬픈 열대(Tristes tropiques)>(1955)


책_슬픈열대.jpg   <슬픈 열대>에서 문화는 나라마다 다르긴해도 더 우월하거나 열등하고 야만적인 문화는 없다고 단언함으로써, 서구중심주의와 인종주의 그리고 서구의 오만과 편견을 깨는데 크게 기여했다. 원주민의 과거 식인풍습조차도 종교적 차원의 문화 현상으로 함부로 나쁘다고 매도할 수 없다고 했고 오히려 서구 근대 문명의 대규모 학살과 전쟁으로 빚어진 야만성과 잔인성을 신랄히 비난했다. <슬픈 열대(프랑스어: Tristes Tropiques)>는 구조주의를 제창한 프랑스의 사회인류학자 클로드 레비스트로스가 1955년에 쓴 일종의 기행문으로 자신의 청년기나 사상, 인류학을 자신의 학문영역으로 설정하게 된 동기 등을 자서전의 형식으로 기술하고 있는 책이다. 저자는 1937년부터 1938년까지 브라질 내륙지방에 살고 있던 카듀베오족과 보로로족, 낭비크왈라족, 투피카와이브족 등 원주민 사회의 문화를 관찰하고 그 결과에 대해 서술했으나, 단순히 민족지의 차원을 넘어서 서구를 지배해온 '문명'과 '야만'의 개념을 통렬히 비판하고 있다. 9부로 되어 있으며, 학문적 자기형성을 서술한 부분, 1930년대 브라질의 열대 및 오지의 실태에 대한 기록, 민족지적 기술, 아시아 여행의 인상 등이 자세하게 서술되어 있다. 무엇보다 이 책은 저자의 독자적인 문명론과 구조주의방법의 원형을 발견할 수 있다.

 

  책은 가장 원시적인 따라서 가장 자연적인 상태의 삶을 살고 있는 네 개의 미개인 부족과 함께 지내면서 그들의 심성과 사고방식, 사회조직과 생활양식, 종교와 의례, 예술과 상징 등을 섬세하게 재현하고, 이를 통해 그들이 본질적으로는 문명인과 다를 바 없으며 오히려 서구의 합리성을 넘어선 더 넓은 ‘의미의 범주’를 가지고 있음을 보여준다. 여기서 그는 서구의 ‘문명’과 비서구의 ‘미개’를 별개의 것으로 논하던 종래의 습관을 벗어나서 이 둘이 하나의 체계 속에서 관계를 맺고 있음을 발견하는 탁월한 시각을 갖게 되고, 문명과 미개가 모두 서구인의 욕망이 발명한 상상의 실체에 불과하다는 것을 발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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