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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빨래』 리뷰 (3/4) - 부조리

by 서성광 posted Apr 22, 2018 Views 97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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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향인 강원도를 떠나 서울로 올라온 지 5년 된 강원도 아가씨 '나영'. 그리고 어떻게 흘려보냈는지도 모를 5년 간의 서울살이. 그녀에게도 꿈은 있었다. 작가는 못 돼도 책은 좀 볼 것 같아 제일서점에서 직장생활을 하고 있지만 기대와 다르게 책 진열만 하고 있을 뿐이다. 어느 날 '나영'은 동료 언니를 부당하게 해고하려는 서점 사장 '빵'의 횡포에 맞서다 자신도 쫓겨날 위기에 처한다.

  "월급은 쥐꼬리
  자판기 커피만 뽑았죠.
  야간 대학 다니다 그만둔 지 오래
  정신없이 흘러간 이십 대
  뭘 하고 살았는지
  뭘 위해 살았는지 난 모르겠어요."

  - <슬플 땐 빨래를 해>(서나영)

  이러한 '나영'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사회, 구조, 세계는 부조리*를 드러낼 뿐이다. 그리고 빠르게 기득권을 획득한 채 다음 사람들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사다리를 차 버린 이들은 실존주의**를 이야기하며 모든 책임을 구조가 아닌 개인에게로 환원시켜 버린다.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에서 내던져진 개인들은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니체의 말처럼 초인***이 되어야 할까? 그렇지 않다면 하이데거의 말처럼 '지위'를 획득해야 하는 걸까?

  "삶이란 시공간 속에 던져진 피투성으로서의 자신이 존재에 대한 이해를 통해 가능적 실존으로 전화해 감으로써 존재 매개의 지위를 획득해 가는 현존재의 실존성의 구조적 운동이다."
-『존재와 시간』(마르틴 하이데거·동서문화사·1927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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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이렇게 부조리한 상황에서 뮤지컬 빨래에 등장하는 주인공들은 각자가 '초인'이 되는 것이 아닌 그렇다고 '지위'를 획득하는 것도 아닌 전혀 다른 방식을 보여준다. 이들에게 '빨래'는 접속구가 된다. 처음에는 빨래 자체가 접속구였다가 이내 등장인물들은 함께 빨래를 하며 서로에게 접속구가 되어주고, 서로에게 손을 내민다. 그리고 오늘을 살아갈 힘을 발휘한다. 부조리한 구조에 맞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주는 것이다.

  "뭘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슬플 땐
  난 빨래를 해.
  둘이 기저귀 빨 때
  구씨 양말 빨 때
  내 인생이 요것밖에 안 되나 싶지만
  사랑이 남아 있는 나를 돌아보지.
  살아갈 힘이 남아 있는 우릴 돌아보지.
  빨래가 바람에 제 몸을 맡기는 것처럼
  인생도 바람에 맡기는 거야.
  깨끗해지고 잘 말라서 기분 좋은 나를 걸치고
  하고 싶은 일 하는 거야
  자, 힘을 내."

  -<슬플 땐 빨래를 해>(주인 할매, 희정 엄마)

  빨래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부조리한 세계(외부)를 개인의 주관성(내면)으로 극복하려는 사유인 실존주의 철학의 한계성을 감각적으로 아는 것이다. 우리 모두가 '초인'이 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우리 모두가 '지위'를 획득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그렇게 그들은 자신의 내면이 아닌 외부로 눈을 돌리는 것이다.



 ..............

  *부조리(不條理, absurdity): 무의미하고 불합리한 세계 속에 처하여 있는 인간의 절망적 한계 상황이나 조건.
  **실존주의(實存主義, Existentialisme):   개인의 자유, 책임, 주관성을 중요하게 여기는 철학적, 문학적 흐름. 실존주의에 따르면 각자는 유일하며, 자신의 행동과 운명의 주인이다.
  ***초인(超人, Ubermensch): 힘에의 의지(Will zur Macht)를 발휘하며, 위험을 피하지 않으며, 어떤 일에도 등 돌리지 않으며, 상황을 원망하지 않고 운명을 사랑하며(운명애, amor fati) 영원회귀를 포용하는 강한 인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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