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행 사 명 : 제1회 왈책 세미나_ 카오스의 글쓰기
· 일 시 : 2013년 7월 28일(일) 오전 10시 ~오후 7시
· 주 제 : 존재와 존재자
· 대상도서 : <카오스의 글쓰기> (모리스 블랑쇼 저 | 그린비 | 2012년)
· 장 소 : 장흥면(송추) 소재 다솜 갤러리 카페
↑ 성하(盛夏)의 초입 단비가 내리던 날, 제1회 왈책 세미나 <카오스의 글쓰기>를 가졌습니다. 대상 도서는 모리스 블랑쇼가 쓴 <카오스의 글쓰기>(그린비 | 2012년). 주제는 <니체-하이데거-사르트르-블랑쇼-들뢰즈의 존재와 존재자>. 에피큐리언(epicurean) 이주연 님의 사회로 진행된 이날 걱정과는 다르게 20여명이 모였습니다. 두 차례에 걸친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를 지켜봤던 모리스 블랑쇼(Maurice Blanchot, 1907년~2003년)는 1980년 홀로코스트에 대한 반성에서 나온 극적인 철학적 성찰이 담긴 단상 형식의 세 번째 작품 <카오스의 글쓰기>를 출간합니다. 일행들을 한 달여 동안 카오스(chaos)의 세계로 안내했던 이 책에는 대체 무엇이 담겨 있는 것일까요?
↑ 오전 10시에 시작된 에피큐리언 이우의 기조 강의 <니체-하이데거-사르트르-레바니나스-블랑쇼-들뢰즈의 존재와 존재자>. 모리스 블랑쇼가 쓴 <카오스의 글쓰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대를 함께 살아왔던 니체와 사르트르, 하이데거와 레비나스, 그리고 이들의 사유를 논리적으로 정립한 들뢰즈 철학을 이해해야 합니다. <카오스의 글쓰기>를 기준으로 놓고 본다면, 이들의 철학은 <존재와 존재자>로 요약됩니다. <존재자(存在者, das Seiende)>란 인간과 사물 등이 ‘있음’에만 주목할 때 사용하는 철학적 용어이며, <존재(存在, Sein)>는 <존재자>를 존재자로 규정하는 것, 곧 <존재자>의 근거가 되는 것을 말합니다. <존재>는 <존재자>를 <존재자>이게 하는 그 궁극적 무엇입니다. <존재자>가 우리에게 하나의 대상으로 주어진다는 것은 그 <존재자>의 의미가 우리의 정신적 활동과 마주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들의 철학자들 사유를 따라가 보면, 세계대전과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재앙(desastre)은, '존재자에서 존재로 향한 사유(환원적 사유)'하려는 무의식적 시대정신인 에피스테메(episteme)의 결과물이었습니다. 그래서 레비나스와 블랑쇼, 들뢰즈는 '존재자에서 존재로 향한 사유'가 아니라 역으로 '존재에서 존재자로 향한 사유'를 시작합니다. 그러나, 존재자는 존재자 그대로 인식할 수 없습니다. 볼랑쇼의 글쓰기는 이 지점에 있습니다.
↑ 점심 식사. 스태프로 참가했던 에피큐리언 묵와(墨蝸) 이용태 님의 표현에 따르면 토론그룹 <왈책>과 인문학그룹 <에피스테메>, 칸트에서 들뢰즈까지, 강아지 똥이와 풀이가 숯불 연기에 버무려진 한 편의 교향곡 같았습니다. 때를 맞춰 멈춘 비와 비온 뒤 너무나 맑았던 북한산 기슭에서의 식사는 일품이었습니다. '아무리 그렇다 하더라도' 우리는 '존재자를 인식할 수 없다'는 카오스적인 단언에도 불구하고 비 온 뒤 풍경은 너무나 선명했으며 존재자들이 배가 불렀다는 것은 틀림없이 확언할 수 있었습니다^^.
↑ 에피큐리언 정현 님의 통기타 라이브. 정현의 노래를 듣지 않으면 허전함을 너머 이상하지요. 배 부른 존재들에게 즉석에서 정현 님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20인분에 달하는 밥을 하고 고기를 굽던 손으로 기타를 퉁기는 이 기막힌 반전은 이제 일상이 되어버렸습니다. 다시 비가 내리는 북한산 기슭에서 정현의 노래는 뭐 라고 할까, 음... 맑은데 조금은 끈적거리고 선명하긴 한데 뭔가 안개 같이 반투과하는 카오스적인 선율이었습니다.
↑ 오후 7시까지 이어졌던 블랑쇼의 <카오스의 글쓰기> 토론. 에피큐리언 정현(진행)과 에피큐리언 리강(패널)의 진행으로 모리스 블랑쇼의 텍스트를 따라가며 '존재에서 존재자로 향한 사유'를 시작했습니다. 우리는 '존재 너머의 존재자'를 말하는 블랑쇼에게 '카오스의 현현(epiphany of chaos)'이라는 닉네임을 달아주었습니다. 언어란 카오스가 아니라 질서 있는 코스모스(cosmos)의 세계. 논리적인 질서 정연한 언어로 세계(cosmos) 밖(chaos)을 이야기하는 그의 글쓰기를 들여다 보았습니다. 글쓰기란, 나아가 문학이란, 더 나아가 예술이란 결국 동질성에서 빠져 나오는 힘. 즉, 동일자가 아니라 늘 타자로 남아 있어야 하는 일. 우리 사회의 작가인 시인 김수영과 소설가 김애란, 시인 김용택과 소설가 공지영의 글쓰기를 비교하며 존재와 존재자, 통일자와 타자들 사이를 서성거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모리스 블랑쇼의 텍스트와 고민을 이해합니다. 존재가 아니라 존재자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은 확실한데, 레비나스가 <얼굴의 현현 (epiphany of face)>을 이야기한다 해도 존재자 그대로를 인식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을 알기에 일행들의 고민은 깊어갔습니다.
"존재자로서 봐야 한다고 하더니 존재자는 인식할 수 없다고 하니 날 카오스상태로 잘도 만들어 놓았네…. 돌아오는 지하철에서 명화님과의 대화로 실마리를 찾고 이렇게 정리해보니 그럴듯 하다. 데카르트의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는 이 말은 네가 생각하고있는 것인지 아닌 것인지 모르기 때문에 네가 존재하고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없다. 그리고 나 또한 생각하는 그 순간에 또 생각하고 내가 생각하는 나를 알 수 없으므로 나도 존재하는지 알 수 없다. 그러므로 존재자를 인식할수 없고, 다만 존재로서 알 뿐이다.
존재에서 존재자로 갈때 보편성보다는 개별성을 우위에 두어야 할 것이다. 왜? 보편성(존재)을 우위에 두면 사람은 소외되고 억압될 수 밖에 없다. 존재로서 본다면 전쟁에서 적군을 죽이고 웃을 수 있는 것이다. 개별성(존재자)을 우위에 두고 개별적인 존재자로서 본다면 환원시키려 하지 않고 차이를 인정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사유를 확신해도 될지... 확신한다면, 고통만 남아 있나?"
- 에피큐리언 오진화
모리스 블랑쇼가 말하는 '한 어린아이의 살해'. 나는 '조인성'이란 낱말을 뽑아들었다. 순간 뇌의 활동이 멈춘다. 모든 감각기관이 마비된 듯 나는 단 한마디도 할 수가 없다. 그래서, 평소 생각을 많이 하던 '아버지'에 대해서 말하겠다고 했다. 반칙이었다. 인문학 강의 첫 날, 1분 스피치 시간에 있었던 일이다. 그 사건이 있은 후, 집안일을 할 때마다 나는 하나의 단어를 지정해서 연상해 보는 버릇이 생겼다. 그러나 그것은 언제나 역부족이었다. 나는 말을 잘하지 못한다.
어릴 때 할머니는 엄마한테 '무슨 애를 벙어리를 낳았냐'고 했단다. 집에서의 별명이, 말은 하지 않고 고집만 부린다고 '큰 곰'이라 했다. 사춘기때 동네 아주머니들은 나를 '영감님'이라 불렀다. 존중의 뜻이었지만 난 그 소리가 듣기 싫었다. 한 어린아이의 살해가 시작된 것이다. 며칠전, 오래된 물건들 속에서 35년전 내 글이 실려있는 '사보'를 찾아냈다. 말 수가 적었던 나는 그런식으로라도 세상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었나보다. '나 여기 있어요!'하고. 앞이 캄캄하던 20대 초반, 지독한 외로움의 시절. 정서적 내재성이라고는 찾아보기 힘든 직장에 대한 갈등과, 가난으로 인해 어쩔 수 없이 자본주의 구조속으로 들어갈 수 밖에 없는 현실과, 미래에 대한 불안감으로 나는 고뇌하고 있었다. '어쩌면 나도 나일 수 없고, 우리도 우리일 수 없다'며 자아를 찾겠다고 달려간 어느 무덥던 여름날의 강촌. 태양의 열로 달아오른 자전거길을 맨발로 걸으며, 내 안의 어린아이는 죽어가고 있었다.
그리고 다 죽었다고 생각한 그 어린아이가 다시 살아날 즈음, 나는 사랑을 하고 결혼을 하였다. 그러나, 정말 우연의 연속이라고 밖에 말할 수 없는 오랜 세월을, 반쪽의 부재로 아이들을 키우며 살았다. '일부일처제'의 결혼제도권 안에서, 외부로부터인지 내부로부터의 도덕명령인지 모르겠으나, 나는 '여성성'이란 이데올로기에 갇혀 그야말로 옴짝달싹할 수가 없었다. 그렇게 내 안의 어린아이는 끝없이 죽어가면서 살아있었다. 이제 중년의 어린아이가 거울 앞에 앉아 있다. 어느 날 젊음이 손가락 사이로 다 빠져나갔다고 생각했을때, 나는 조금 숨을 쉴 수 있을 것 같다. 하지만 난. 아직 사는 게 서툴다.
- 에피큐리언 김명화
제1회 왈책 세미나 <카오스의 글쓰기> 상세 내용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