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영화 리뷰] 세라핀(Seraphine)! 아, 세라핀

by 이우 posted Mar 15, 2018 Views 165 Replies 0
포스터_종합.jpg


  ↑ 한국에서 2009년 개봉한 영화『세라핀(Seraphine)
(프랑스 외 · 드라마 · 2008년 제작 · 감독: 마르탱 프로보스트 · 출연: 욜랭드 모로, 울리히 터커, 앤 베넨트, 제네비에브 음니히 외)

  영화『세라핀(Seraphine)』(프랑스 외 · 드라마 · 2008년 제작 · 감독: 마르탱 프로보스트 · 출연: 욜랭드 모로, 울리히 터커, 앤 베넨트, 제네비에브 음니히 외)을 봤습니다.

  삶이란 무엇일까요? 예술이란 무엇일까요? 우리는, 우리의 신체는 온갖 방식으로 서로에게 결합(cohesion)하고 또 결합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스피노자(Benedict de Spinoza, 1632년~1677년)가 ‘자연(nature)’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능산적 자연, natura naturans). 외부와 만나지 못할 때, 관계가 단절될 때 우리는 음울하고 고독해집니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해체’ 혹은 ‘죽음’이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우리의 신체가 한 신체를 만나서 결합하면 기쁨을, 반대로 한 신체 혹은 한 관념이 우리의 결합성(coheremce)을 위협할 때 우리는 ‘슬픔’을 느낍니다. 이것은 스피노자가 코나투스(Conatus)라고 불렀던 것입니다. 1)

  세라핀2)은, 아, 우리의 세라핀은 관계의 단절 속에 있습니다. 수도원에서 생활하며 남의 집 허드렛일을 하며 삶을 살아가고 늘 사람들에게 조롱받습니다. 관계의 단절은 스피노자가 말한 것처럼 ‘해체’ 혹은 ‘죽음’입니다. 이것은 슬픔을 줍니다. 사람 관계에서 단절된 세라핀은 어쨌든 무엇인가와 결합해야 합니다. 그녀의 신체에도 코나투스가 있으니까요.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체에 결합하지 못한 고독한 우리의 세라핀은, 세라핀의 신체는 ‘자연(nature)'과 결합합니다. 혼자 들판을 걷고 풀과 바람, 벌레와 나무와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는요, 슬플 때 시골길을 걸어요. 그리고 나무를 만지죠. 새와 꽃, 그리고 벌레에게 말을 해요. 그러면 슬픔이 가셔요.>

  자연과 결합한 세라핀은 들꽃, 풀, 돼지의 피 등 자연에서 채취한 이러저런 질료들을 섞어 색을 만들고 그림을 그립니다. 이 그림들은 음울하지만 강렬합니다. 나뭇잎들이 벌레처럼 꿈틀거리고, 열매가 허기진 동물처럼 허리를 뒤틉니다. 세라핀의 신체와 자연의 신체가 결합한, 자연에서 채취한 신체와 세라핀의 신체가 결합한 이 그림은 강렬하고 생동감이 가득합니다. <꽃이 이상해 움직여, 마치 벌레 같아>, <상처 입은 눈 같아 갈갈이 찢긴 살점……>, <섬뜩해>, <알아요. 저도 제 그림을 보면 소름이 끼쳐요>, <예뻐요, 너무 예뻐요>, <세상에 어떻게 이럴 수가 있어? 정말 붓으로 그런 거야?>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회체에 결합하지 못한 우리의 세라핀은 ‘신(神, God)’이나 ‘천사’라는 환영(幻影, illusion)과도 결합합니다. 세라핀은, 자신의 그림 그리기를 ‘신(神)의 계시’라고 믿습니다. <신이 저에게 시킨 일이에요.> 세라핀은 내면의 환영(幻影, illusion)과도 결합합니다. <사랑해 본 적 있어?>, <그림을 그리는 사람은 다른 방법으로 사랑을 한답니다. 마음 속에서 가끔 그이를 만나요. 다른 사람의 얼굴에서도 만나죠.> 오우, 세라핀. 그녀는 자연(nature), 신(神, God)과 천사와 결합하지만 ‘사람’은 없습니다. 이것이 스피노자가 말하는 ‘삼중의 환상(illusion)’, 즉 의식이 자신을 구성하는 목적성의 환상(그림 그리기), 자유의 환상(관계 단절로부터의 벗어남), 신학적 환상(신과 천사)입니다.3)

스틸_종합.jpg


  ↑ 영화『세라핀(Seraphine)』의 주요 장면. 

  그런 세라핀이, 풀과 벌레와 나무에게 이야기하고 자신의 내면과 대화해야 했던, 고독한 우리의 세라핀이 ‘사람’을 만납니다. 독일의 화상(畵商) ‘빌헬름 우데’였습니다. 그녀의 그림을 알아봐준 사람이었죠. ‘빌헬름 우데’는 세라핀의 그림을 모두 사들이고 그림을 그릴 수 있도록 지원을 아끼지 않습니다. 그녀의 고독은, 그녀의 우울은 곧 끝이 날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사정은 복잡합니다. 가난했던 우리의 세라핀은, 사람과의 관계에 서툴렀던 우리의 세라핀은 자신도 모르게 허영(虛榮, vanity) 속으로 헤엄쳐 들어갑니다. 물 만난 물고기처럼…. <요셉 루이와 조세핀 마이야르의 딸, 세라핀 루이가 신부 옷을 입는 것을 상상해봐>, <주방은 커요? 식품 저장소는 달렸겠죠?>, <청구서는 제 후원자 우데 씨 앞으로 보내줘요>, <이 차는 얼마인가요? 유명해지면 저도 차를 사야 하잖아요>, <우리 가게를 털 셈이야? 다 뭐하게?>, <상관 마세요 배달되죠?>, <제 그림을 팔면 되잖아요.>

  아! 세라핀은 '성공'과' 명예'라는 근대적인 사회적 기표(記標, signifiant)와도 결합합니다. 화가로서의 성공과 명예를 보장하는 자신의 전시회에 전착(纏着)하고 전도(顚倒)됩니다. 그러나 ‘빌헬름 우데’가 이런저런 이유로 지원을 포기하면서 이 결합은 실패합니다. 다시 사람 관계에 단절된 우리의 세라핀은 스피노자가 말하는 ‘삼중의 환상(illusion)’ 속으로 걸어 들어가, 정신병원에 갇힙니다. <내 전시회 열거죠?>, <하늘에 말했다고요. 천사들이 올거에요>, <뭔지는 모르지만 중대한 일이 일어날 거예요>, <천사들이 기대가 크다고 제게 말했다고요>. <이것은 내 몸이고 이는 내 피니 받아먹어라.>

  세라핀의 그림은 이 사물들의 질서(원인)에서 태어났습니다(결과). 우리의 삶은, 즉 ‘각 신체, 사유 속의 각 관념과 각 정신’은, 신체의 부분들, 관념의 부분들을 포섭하는 독특한 관계들에 의해 구성됩니다. 한 신체가 다른 신체를 만날 때, 한 관념이 다른 관념을 만날 때, 이 두 관계는 결합되어 보다 큰 능력을 갖는 하나의 전체를 이룹니다.’4) 고독한 세라핀은 자연과 결합하고 그림을 그렸습니다. 스피노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신체와 정신 사이에서 일어나는 이러한 것이야말로 놀라운 것이다.”

세라핀루이의 그림_종합.jpg


  ↑실존 인물  프랑스의 여류 화가 '세라핀 루이(Séraphine Louis, 1864sus~1942년)의 그림.
자연에서 채취한 신체와 세라핀의 신체가 결합한 이 그림은 강렬하고 생동감 있다.

  세라핀이 태어날 때부터 재능을 갖춘 ‘천재’였기 때문이라고요? 그렇다고 생각한다면 여러분은 선험론(先驗論)5)을 믿는 데카르트주의자입니다. 세라핀의 그림 그리기가 신(神)이 내려준 ‘축복’이었다고요? 그렇다고 믿는다면 여러분은 초현세적인 ‘얼뜨기 신학자’입니다. 세라핀의 그림 그리기가, 그 ‘열정’이 부러웠다고요? 그렇다면 먼저 세라핀처럼 고독해져야 할 겁니다. 고독을 참아낼 줄 알아야 합니다. 삶이란, 예술이란 사람과 사람, 사람과 사물의 관계입니다. 이 관계는 끊임없이 전체를 변용시키는(affecte) 관계들의 결합과 해체의 질서입니다.’6)

  한 신체가 다른 신체를 만날 때, 한 관념이 다른 관념을 만날 때, 이 두 관계는 다른 하나를 해체하여 그 부분들의 결합을 파괴하게 되는 일도 일어납니다. ‘삼중의 환상(illusion)’, 즉 의식이 자신을 구성하는 목적성의 환상(전시회), 자유의 환상(관계 단절로부터의 벗어남), 신학적 환상(신과 천사)은 세라핀을 해체합니다. 이 영화가 아름답다고요? 아닙니다. 슬픕니다. 세라핀, 아, 세라핀…

   이 영화를 보다가 오래된 질문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예술은 사람 관계의 단절에서 태어나는 것일까요? 예술가는 고독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註)..................

  1) 스피노자 <에티카> 참조.
  2) 영화의 주인공. 이 영화는 프랑스의 여류 화가 '세라핀 루이(Séraphine Louis, 1864sus~1942년)의 일대기를 그리고 있다.
  3) <스피노자의 철학>(질 들뢰즈 · 민음사 · 2001년 · 원제 :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p.36
  4) <스피노자의 철학>(질 들뢰즈 · 민음사 · 2001년 · 원제 :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p.33
  5) 선험론(先驗論). 인식은 사실의 발생에서가 아니라 어떤 선천적인 원리나 능력에서 이루어진다고 하는 이론.
  6) <스피노자의 철학>(질 들뢰즈 · 민음사 · 2001년 · 원제 :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p.34



















?

  1. 23
    Apr 2018
    00:38

    [리뷰] 탈기표와 차이의 긍정, 뮤지컬 『빨래』 _서성광

    서성광 탈기표 뮤지컬 하기 참 힘든 세상이다. 뮤지컬 빅 4 중에 하나인 <오페라의 유령>이 2001년 국내에 들어오면서 라이선스 비용과 제작비 만으로 무려 120억 원이 투입된다. 뮤지컬 <캣츠>는 2017년 12월 16일 대구 공연을 통해서 한국 뮤지컬 최초...
    Category기타 By이우 Reply0 Views30 file
    Read More
  2. 29
    Mar 2018
    03:23

    [영화 리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 무엇인가 당신을 가로막고 있다

    『콜 미 바이 유어 네임(Call Me by Your Name)』(이탈리아 외 · 드라마 외 · 2018년 개봉) "지금은 아무 감정도 느끼고 싶지 않을 수도 있어. 평생 느끼지 않고 싶을지도 몰라. (...) 네가 분명히 느꼈던 것을 느껴라. 아무 것도 느끼지 않으려고, 아무...
    Category리뷰 By이우 Reply0 Views80 file
    Read More
  3. 15
    Mar 2018
    04:00

    [영화 리뷰] 세라핀(Seraphine)! 아, 세라핀

    ↑ 한국에서 2009년 개봉한 영화『세라핀(Seraphine) (프랑스 외 · 드라마 · 2008년 제작 · 감독: 마르탱 프로보스트 · 출연: 욜랭드 모로, 울리히 터커, 앤 베넨트, 제네비에브 음니히 외) 영화『세라핀(Seraphine)』(프랑스 외 · 드라마 · 2008년 제작 ...
    Category리뷰 By이우 Reply0 Views165 file
    Read More
  4. 02
    Sep 2017
    19:49

    [리뷰]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소리’와 ‘빛’의 질료를 엮다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 (2017년 8월 30일~11월 5일 · 광림아트센터 BBCH홀 · 150분 · 원작: 이청준 · 연출: 이지나 · 출연: 이자람, 차지연, 이소연 외) 함지영의 초대로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공연: 2017년 8월 30일~11월...
    Category기타 By이우 Reply0 Views2877 file
    Read More
  5. 26
    Aug 2017
    14:48

    [리뷰] 모두스 비벤디(modus vivendi), 생성하는 몸체는 멈춰서지 않는다

    『모두스 비벤디-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 (지그문트 바우만 · 후마니타스 · 2010년 · 원제 : Liquid Times: Living in an Age of Uncertainty, 2006년) 『모두스 비벤디-유동하는 세계의 지옥과 유토피아』*의 저자 사회학자 지그문트 바우만...
    Category리뷰 By이우 Reply0 Views1047 file
    Read More
  6. 17
    Aug 2017
    22:52

    [영화 리뷰] 권력에 의한 언론 장악사, 영화 『공범자들』

    ↑언론을 장악하는 권력의 작동 메카니즘을 있는 그대로 보여주는 다큐멘터리 영화가 개봉했다. <공범자들(Criminal Conspiracy)>(다큐멘터리 · 2017년 8월 17일 개봉 · 15세 이상 관람가 · 105분 · 감독 : 최승호). 우리는 라디오와 텔레비전, 신문, 영화 ...
    Category리뷰 By이우 Reply0 Views1150 file
    Read More
  7. 20
    Mar 2017
    01:27

    [영화 리뷰] 『문라이트(Moonlight)』 VS 『르 아브르(Le Havre)』

    이우 파스텔(Pastel) 영화 <문라이트(Moonlight)>(미국 · 2017년 개봉 · 감독 : 배리 젠킨스 · 출연 : 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레반트 로즈 외)의 포스터를 보라. 이 흑인의 얼굴은 분절(分節, segment, 한 대상을 몇 개의 마디로 잘라냄)되...
    Category기타 By이우 Reply0 Views2152 file
    Read More
  8. 12
    Feb 2017
    00:25

    [여행후기] 에곤 쉴레, 발리, 체스키 크룸로프

    이우 프라하에서 카프카를 만난 우리는 눈길을 걸어 체코의 소읍 체스키 크룸로프(Cesky Krumlov)로 향했다. 크룸로프는 1992년 유네스코에 의해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될 만큼이나 유럽에서 가장 아름다운 마을로 알려져 있다. 아름다운 전망을 자랑하는...
    Category기타 By이우 Reply0 Views2602 file
    Read More
  9. 09
    Feb 2017
    23:42

    [여행후기] 카프카, 프라하, 프라게, 프레이그

    이우 “언젠가 들뢰즈는 스피노자의 위대함에 대해 말하면서, 스피노자에게는 위대한 제자가 네 명 있다고 쓴 적이 있다. 누굴까? 그래, 먼저 니체가 들어간다. 그리고 그가 문학에서 절대적 깊이에 도달한 유일한 사람이라고 칭송했던 아르토가 들어간다. ...
    Category기타 By이우 Reply0 Views2014 file
    Read More
  10. 13
    Jan 2017
    13:40

    [리뷰] 천명관의 『고래』

    <고래>(제10회 문학동네소설상 수상작 · 천명관 · 문학동네 · 2004년) 1. 소설가 천명관은 요나의 ‘고래’1) 뱃속에 붉은 벽돌로 대극장을 짓고 이런저런 배우(俳優)들을 무대에 세운다. 춘희, 금복, 文, 국밥집 노파와 그의 딸 애꾸, 반편이, 쌍둥이 자매,...
    Category리뷰 By이우 Reply0 Views2849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Next ›
/ 8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