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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소리’와 ‘빛’의 질료를 엮다

by 이우 posted Sep 02, 2017 Views 54 Replies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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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

(2017년 8월 30일~11월 5일 · 광림아트센터 BBCH홀 · 150분 · 원작: 이청준 · 연출: 이지나 · 출연: 이자람, 차지연, 이소연 외)


  함지영의 초대로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공연: 2017년 8월 30일~11월 5일 · 장소: 광림아트센터 BBCH홀 · 150분 · 출연: 이자람, 차지연, 이소연 외)를 보기로 했다. 나는, 불안했다. 사람들이 쓴 이 뮤지컬의 후기, 혹은 리뷰에는 이렇게 요약되어 있다. “한(恨), 정한(情恨), 회귀(回歸)1). 공연을 알리는 깃발(배너, banner)에는 이렇게 적혀 있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 왜 이들은 앞으로 내달리지 않고 뒤를 돌아보며 주춤거릴까? 왜 동편(東便)2)이 아니고 서편(西便)3)일까? 왜 거칠지 않고 섬세해야 하며, 왜 강건하지 않고 유약해야 하며, 왜 굳세지 않고 애잔해야 하는 것일까? 설상가상 왜 공연장은 ‘원죄’라는 부채를 안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사는 ‘광림아트센터’인가? 이 기묘한 조합은 뭘까? ‘이것이 무슨 소용이 있을까’라는 물음은 사라지고 왜 염세와 허무의 안개 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웃지 않고 울어야 할까? 시장에서 거래되는 또 하나의 문화상품을 보게 되는 것일까? 나는, 또 하나의 클리세(cliche, 진부하고 케케묵은 상투어나 인쇄물, 혹은 아류)를 보고 마는 것일까? 왜 우리는 이렇게 식민주의적인 착상들을 끊임없이 재생산해 내는 것일까?4) 그리고, 나는 함지영과 함께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를 봤다. 이 물음은 어떻게 되었을까?

  내용 : '소리'의 질료를 엮다

    유봉은 ‘소리’라는 질료를 다듬는 소리꾼이다. ‘소리’는 질료이니 동편제니 서편제, 중고제5)의 구분이 없다. 강이 흐르거나, 새와 꽃이 노니거나, 대숲에 바람이 휘몰아치다가 잦아든다. 이러저런 사물의 이런저런 부딪힘과 충돌과 만남이 ‘소리’다. 소리꾼의 목은 공기를 만나 벌어지거나 닫히고, 강하거나 약하게 잦아들거나 휘몰아치며 이런저런 ‘소리’를 만들어낸다. 애잔한 소리, 강건한 소리, 굳센 소리, 유약한 소리, 무엇이라고 말할 수 없는 이러저런 소리…. 그중에서 소리꾼 유봉은 ‘계면조’의 슬픈 가락을 만들어낸다. 그는 소리를 찾아 길 위에 떠돈다. “길 위에 산다, 길 위에 산다.” 이것은 한(恨)도 정한(情恨)도 아니다. 소리꾼이 이런저런 ‘소리’ 중 하나를 잘라내고 배합해 자신의 '소리'로 취하고 있을 뿐이다. “이산 저산 꽃이 피니, 분명코 봄이로구나. 봄은 찾어 왔건마는 세상사 쓸쓸허드라. 나도 어제 청춘일러니 오날 백발 한심허구나. 내 청춘도 날 버리고 속절없이 가버렸으니….”6)

  송화의 동생 동호도 ‘소리’를 찾는다. 그러나 동화는 아버지 유봉의 ‘그 소리’가 마땅치 않다. 세계는 매혹적인 서양의 ‘소리(락과 재즈 등)’들이 가득 차 있고, 사람들은 이제 더 이상 아버지 유봉이 찾는 ‘그 소리’를 찾지 않는다. ‘그 소리’를 누나 송화에게 전수하려는 유봉의 태도도 마음에 들지 않는다. 동호는 사람들이 좋아하는 서양의 ‘소리’를 찾아 도시로 떠난다. 소리꾼, 예술가의 오래된 고민이 여기에 있다. ‘소리’라는 질료, ‘색과 선’이라는 질료로 자신이 가진 주관성을 매개 삼아 세계를 구현하고 복원하지만, 독자나 관객을 떠날 수는 없다. 주관과 객관의 배합, 내연과 외연의 부딪힘…. 소리꾼에게는 관객이 필요하다. 이것이 대중예술이 가지는 딜레마다. 사회 기계는 예술 기계들(유봉, 동호)의 욕망을 뜯어낸다.

  송화는 아버지 유봉과 동생 동호 사이에 서 있다. 아버지 유봉의 욕망을 이해하고 동화의 욕망도 이해한다. 이 탁월한 소리꾼은 동생 동화를 떠나보내고 아버지 유봉 곁에 남는다. 딸 송화에게 소리를 찾게해주고 싶은 아버지 유봉은 송화의 눈(眼)을 멀게 하고 삶을 마감한다. 혼자 남은 송화, ‘우~우~’ 그리움이듯 아닌듯, 슬픔이듯 아닌듯, 짐승의 소리도 인간의 소리도 아닌 ‘그 소리’를 찾아낸다. 이것 또한 한(恨)이나 정한(情恨)이 아니다.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 것이 아니다.’ 그녀는 유봉이나 동화보다 더 치열하게 삶을 살았다. 그녀는, 아버지 유봉이나 동생 동화처럼 욕망을 조직하는 사회체를 따르는 것이 아니라 ‘유봉’, ‘동호’라는 ‘사람’을 바라본다. 그녀는 욕망을 떼어내는 사회체에서 멀리 달아나 스스로 ‘소리'가 된다. “길 위에 산다.”

  사회체가 욕망을 떼어낸다는 것은 무슨 말인가? 혼신을 다한 공연자가 무대에서 내려와 느끼는 헛헛함 같은 것….. 소리꾼이 자신의 소리가 아니라 관객이 원하는소리를 낼 때 ‘소리’를 잃게 된다. 예술가가 사회체에 편입되어 대중을 따라갈 때 작가성을 상실한다. 사회체가 예술인이 가진 이러저런 욕망을 떼어 가기 때문이다. 1백년전 로자 룩셈부르크(Rosa Luxemburg, 1871년~1919년)가 했던 "자본주의적 체계는 발전을 발판으로 비자본주의적 잔해를 먹고 산다"는 말은 일리가 있다. 이것은 사회체나 경제체 뿐만 아니라 예술체에도 해당되는 말이다. 자본주의적 체계는 문화라는 이름으로 예술인들의 이러저런 욕망을 탈취해 고갈시키며, 욕망이 고갈된 예술가는 자신의 욕망을 증폭시키지 않으면 잔해로 버려진다. 소리꾼 송화는 이런 사회체에서 멀리 달아나 고갈이 없다. 고갈이 없으니 증폭시킬 일도 없다. 동생 동호는 그것이 무엇인지 안다. 동호는 송화의 ‘소리’에 북 장단을 때린다. “심봉사 별궁으로 모셔가니~.” “딱, 쿵, 따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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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뮤지컬 서편제는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恨), 정한(情恨), 회귀(回歸)”가 아니며 공연을 알리는 깃발(배너, banner)에는 적힌 것처럼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도 아니다. 나는 이런저런 ‘소리’를 재료로 삼는 소리꾼, 혹은 예술인의 세계를 봤다. 예술이 어떤 것인지, 예술가가 어떻게 존재하는 것인가에 관한 질문, 그것이 뮤지컬 <서편제>였다. 사람들은 알아야 한다. 소리와 색의 질료들을 재료로 하나의 작품을 생산하기 위해 예술가들은 이런저런 사회체의 욕망을 떠나야 하지만 생산된 작품들은 이런저런 사회체의 욕망 속으로 들어간다는 것을..... 예술인들이 편집증적이며 동시에 분열증적이며, 동시에 히스테릭할 수밖에 없는 것은 욕망을 뜯어내는 사회체의 모서리에 서 있기 때문이다. 그것은 죽음(타나토스, Thanatos)이면서 탄생(에로스, Eros)이며, 욕망의 욕망이며, 포획인 동시에 이탈이다. 예술인, 혹은 예술은 스스로 그 어두움의 담당자이면서도 스스로 그 어둠에서 이탈해야 한다. 그래서, 예술, 혹은 예술인은 질료를 배합하는 내재성(virtuality, 소리꾼에게 있어서는 질료로서의 이런저런 소리를 찾아내는 것)과 실제로 현실에서 구현하는 현실성(actuality, 관객을 앞에 두고 자신의 소리를 들려주는 것) 사이에서 서성거리게 된다.7) 아버지 유봉과 동생 동호처럼….

 표현 : '빛'의 질료를 엮다

  그러나, 특히 대중예술은 사회체에서 이탈하기가 쉽지 않다. 영화나 드라마, 뮤지컬 등과 같은 대중예술이 사회체로부터 이탈하는 순간 고사될 위험에 처하기 때문이다. 사회체의 욕망을 따라가는 ‘대중(mass)’과 사회체로부터 끊임없이 이탈하는 ‘예술작품’ 그 사이의 함수를 풀어내는 것이 대중예술의 가치를 판가름하는 관건이 될 수밖에 없다. 무작정 대중(mass)의 입맛을 따라가면 ‘문화상품’이라는 꾸지람을 들을 수밖에 없고, 예술성에 치우치게 되면 난해하다는 평을 들을 수밖에 없다. 그래서 대중예술의 부침(浮沈, 성함과 쇠함)을 보면 사회체의 속성을 짐작할 수 있다.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의 무대 장치와 캐스팅은 대중(mass)을 사로잡기에 충분했다. 크지도 작지도 않은 무대 위에서 여러 개의 천들이 세로로 펼쳐지고 산과 들, 비와 구름, 눈 등의 영상들이 비춰지면 우리의 전통적인 풍경들을 수묵화처럼 펼쳐보인다. 시시각각 산들의 색채가 바뀌면서 새벽과 어스름녂, 낮과 밤의 시간들이 섞이고, 비가 쏟아지고 눈이 내리고 구름이 흐르며 공간이 뒤섞인다. 굵직한 배우들(송화 역: 이자람, 차지연, 이소연 ․ 동호 역: 강필석, 김재범, 박영수 ․ 유봉 역: 이정열, 유봉역 외)이 수묵화 위를 걷거나 뛰고 멈춰서며, 판소리와 락(Rock)이 뒤섞인다. 소리와 색채와 빛이 엉키고, 집중되거나 분산되면서 배우들의 표정을 따라갔다. 배우들은 빙빙도는 무대 위를 가로지르거나 따라돌면서, 혹은 역주행하면서 동작선 하나 엉키지 않았다. 1976년 소설 <서편제>를 쓴 이청준(李淸俊, 1939년~2008년)을 두고“현실을 있는 그대로 그리기보다는 관념적으로 형상화하는 데 적절한 기법과 역량을 보여 주었다”고 평한다면, 뮤지컬 <서편제((西便制, 2017)>의 무대는 극의 내용인 관념을 유물적(소리와 색채와 빛)으로 보여주는데 적절한 기법과 역량을 보여 주었다고 말할 수밖에 없다. 동호와 송화가 마주 앉았던 마지막 신(scene)에서 무대와 객석으로 쏟아지던 빛다발들은 얼마나 유물적인가!

   동호와 송화가 마주 앉고 극(劇)이 끝났다. 우려했던 것처럼 관객들은 울지 않았다. 우려했던 것처럼 관객들은 애잔해지거나 유약해지지 않았다. 우려했던 것처럼 관객들은 절망과 허무, 비애 속으로 들어가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웃고, 박수 치고, 당당하게 객석을 빠져나갔다. 이 극의 정교한 표현들이, 이 극의 아자스망(agencement,배치, 配置)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恨), 정한(情恨), 회귀(回歸)”라는 내용에 바쳐졌다면 ‘내용’과 ‘표현’을 대립시키며 ‘대중을 현혹한다’고 폄하할 작정이었다. 이 무대 장치와 배우들, 그들의 땀과 노력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처럼 “한(恨), 정한(情恨), 회귀(回歸)”라는 내용에 헌정(獻呈)되었다면 시장에서 거래되는 ‘문화상품’의 하나라고 치부하면 될 일이었다. 그런데 이게 뭔가? 송화가 자신의 '소리'를 찾고 내지르고 있지 않은가, 애잔하기는커녕 역동적이지 않은가!

  현상이 문제가 아니라 해석이 문제다. 뒤를 돌아보며 주춤거리지 않고 앞으로 내달리려면, 유약하지 않고 강건하려면, 미래를 미리 당겨와(pretension) 내 앞에 가져다 놓고 해결하려면, 이미 표현된 극(劇)을, 이미 쓰여진 과거를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려 있다. 오, 사람들아. 이제 ‘한(恨), 정한(情恨), 회귀(回歸)’, ‘그저 살다보면 살아진다’라고 말하며 식민지인으로 돌아가지 말라. 이 극(劇) <서편제(西便制, 2017)는 그런 것이 아니다. 앞으로 내달려라. 색과 소리, 빛을 질료로 감각-줄을, 개념-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절단하고, 채취하고, 이탈시키고, 생산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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함지영이 뮤지컬 <서편제>를 보고 그린 그림, <소리산을 넘어 소리꽃이 피다>


  

  註) ....................................................................

  1) 한(恨)을 두고 지금도 더러 한국의 미학(美學)이라 일컫는 사람들이 있으나 식민지 미학이다. 일제강점기 '모토오리 노리나가‘라는 일본인 미학자가 일본 고유의 미의식으로 ‘모노노아와레(일본어: もののあはれ,もののあわれ,物の哀れ, 사물의 비애)'을 이야기하자 여기에 발맞춰 친일문학인 최남선이 ‘조선에는 한의 정서’가 있다고 말하고 끊임없이 재생산되었다. 한국의 미학이 있다면 ‘한’이 아니라 ‘신명’이다.

  2) 동편제(東便制). 섬진강 동쪽 지역인 남원·순창·곡성·구례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서, 가왕으로 일컬어지는 운봉 출신의 송흥록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우조(씩씩한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고, 감정을 가능한 절제하며, 장단은 '대마디 대장단'을 사용하여 기교를 부리지 않는다. 발성은 통성을 사용하여 엄하게 하며, 구절 끝마침을 되게 끊어낸다.

  3) 서편제((西便制). 섬진강 서쪽 지역인 광주·나주·담양·화순·보성 등지에 전승된 소리로, 순창 출신이며 보성에서 말년을 보낸 박유전의 소리 양식을 표준으로 삼는다. ‘계면조(슬픈 가락)’의 표현에 중점을 두며, 발성의 기교를 중시하여 다양한 기교를 부린다. 소리가 늘어지는 특징을 지니며, 장단의 운용 면에서는 ‘엇부침’이라하여, 매우 기교적인 리듬을 구사한다. 또한 ‘발림(육체적 표현. 동작)’이 매우 세련되어 있다. 

  4) 동편제, 서편제라는 구분이 착상된 시기가 일제강점기였으며, 한국의 미(美) 의식이 ‘한(限)'이라고 착상된 것도 일제강점기였다. 일제강점기에 착상된 이 기표(記標, 시니피앙, signifiant)는 문화 영역, 예술 영역에서 재생산되고 확산되면서 지금도 우리의 의식을 장악하고 있다.

  5) 중고제(中高制). 경기도와 충청도 지방에서 유행하던 판소리. 음악적 특징으로는 평조로 평탄하게 부르는 대목이 많고 정가풍의 창법이 많이 쓰인다. 장단을 달아놓고 창조 도섭으로 부르는데, 노래라기보다 마치 글을 빨리 읽어 가는 듯 급히 몰아가는 것이 특징이다. 동편제와 서편제의 중간적인 창법을 구사하는데, 발성에서도 일반적으로는 대체로 무겁게 하지만 가벼운 발성을 사용할 때도 있다. ‘부침새(노래말을 선율에 붙이는 것)’도 비교적 단순하게 구사하며, 소리 구절의 끝 음은 짧게 끊는 경우도 있기도 하도, 길게 빼는 경우도 있다.

  6) 사철가. 조선후기 판소리 단가의 하나로 사계절 풍경의 변화에 따라 느끼는 인생의 무상함을 노래한다. 「사절가(四節歌)」 또는 「사철가」,  「사시풍경(四時風景)」이라고도 한다. 단가는 본래 평조나 우조로 짜는 데 비해 요즈음 부르는 「사철가은 계면조의 슬픈 가락으로 짜여 있다. 이는 판소리가 전반적으로 계면화되어 가는 현상을 잘 보여주는 사례다.

  7)  여러 해석이 있지만, 예술은 내재성과 현실성 사이에 존재한다. 작가는 색이나 선(회화), 혹은 소리(음악), 기호(문학) 등의 질료를 재료로 자신의 작가성으로 배합하고, 가시적인 현실 세계에 작품으로 드러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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