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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문라이트(Moonlight)』 VS 『르 아브르(Le Havre)』

by 이우 posted Mar 20, 2017 Views 580 Replies 0
이우

01_포스터_문라이트_르아브르.jpg


파스텔(Pastel)

  영화 <문라이트(Moonlight)>(미국 · 2017년 개봉 · 감독 : 배리 젠킨스 · 출연 : 알렉스 R. 히버트, 애쉬튼 샌더스, 트레반트 로즈 외)의 포스터를 보라. 이 흑인의 얼굴은 분절(分節, segment, 한 대상을 몇 개의 마디로 잘라냄)되어 있다. 왼쪽의 얼굴은 이 영화의 제1막에 해당하는 ‘리틀(little, 작은 자)’이며, 색은 ‘블루(Blue)’다. 가운데 얼굴은 제2막 ‘샤이론(Shylon, 기가 꺽인 자)’이며, 색은 블랙과 블루가 섞인 ‘바이올렛(Violet)’이다. 오른쪽 얼굴은 제3막 ‘블랙(black, 어둠)’이며, 색도 ‘블랙(Black)’이다. 이 얼굴의 색은 이 영화의 분절이며, 영화 속 한 소년이 살아왔던 시간의 분절이다. 제1막 ‘리틀(little, 작은 자)’은 이 흑인의 어린 시절이고, 제2막 ‘샤이론(Shylon, 기가 꺽인 자)’은 이 흑인의 학생 시절이며, 제3막 ‘블랙(black, 어둠)’은 성인이 된 이 흑인의 시간이다. 이 얼굴성의 전체 색조는 ‘파스텔(Pastel)’이다. 이 영화를 만든 ‘베리 제킨스’라는 흑인 감독은 영화의 서막(프롤로그, prologue)를 열자마자 ‘파스텔(Pastel)’이란 텍스트를 화면에 띄운다. 16세기 독일의 화가인 ‘한스 홀바인’과 프랑스의 화가인 ‘장 클루에’, ‘프랑수아 클루에’는 파스텔로 초상화를 그렸고, 흑인만 나오는 이 영화의 흑인 감독 ‘베리 제킨스’는 카메라 · 음악 · 장면(scene) · 등장 인물 · 대본으로 이 흑인의 초상화를 그렸다. 이 얼굴은 갈라지고 나눠져 있다.

블루(Blue)

  파스텔(Pastel)은 원색이 아니다. 순수 안료에 결합제를 섞어 넣어 이것도 저것도 아닌 색을 내는 채색 재료가 파스텔이다. 애매모호한 이 파스텔 색의 얼굴을 가진 흑인은 ‘검은 사람’이라는 인종(人種)으로서의 ‘흑인’이 아니라 미국이라는 사회체가 만든 사회 계층으로서의 ‘분열된 흑인’이다. 강렬한 원색의 열대에서 잡혀와 인종의 혼합 지대인 미국이라는 사회체에서 노예로 살면서, 혹은 슬램(Slam)에 살면서, 이런 저런 차별과 억압을 받으며, 이런 색, 저런 색이 입혀졌기 때문에 ‘파스텔’이다. 색이 입혀지는 과정을 감독 ‘베리 제킨스’는 제1막 ‘‘리틀(little, 작은 사자)’에서 이렇게 말한다. “달빛(문라이트, Moonlight)이 비치면 흑인 아이들도 파랗게 보인다”. 그래서 제1막의 색은 ‘블루(Blue)’다. 여기에 중요한 말도 잊지 않는다. “넌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야.” 

바이올렛(Violet)

  그러나,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흑인 감독 ‘배리 젠킨스’는 강렬한 원색을 가진 흑인을 ‘파스텔’로 만드는 ‘달빛(문라이트, Moonlight)’, 즉 자신을 차별하고 있는 미국 사회체 ‘세상 한 가운데’에 대해서는 이야기하지 않는다. 대신, 슬쩍슬쩍 비켜서며 제2막 ‘샤이론(Shylon, 기가 꺽인 사람)’에서 '블루‘라는 어린 시절 색조를 약하고 변하기 쉬운 ‘바이올렛(Violet)’으로 채색하면서 한 소년의 성장기처럼 보이게 하는 제스쳐를 취한다. 집에서 보호받지 못했고 친구들에게서조차 따돌림을 당했던 블루톤 주인공 ‘샤이론’은 고등학생이 되자 ‘기가 꺽인 자(Shylon)’가 되면서 바이올렛톤이 된다. ‘강해지라’는 조언을 아끼지 않던 ‘샤이론’의 친구 ‘케빈’마저 ‘샤이론’을 배반하고 ‘기가 꺽인 자(Shylon)’가 된다.

블랙(Black)

  어린 ‘샤이론’은 매춘을 하면서 먹고 사는 엄마 ‘폴라’의 손님이 올 때마다 집에서 쫓겨난다. 쫓겨날 때마다 아버지처럼 ‘샤이론’을 돌봐주던 ‘후안’은 마약을 판매하는 마약거래상이다. 어둡다. 제3막 “블랙(Black, 어둠)”. 이제 그는 더 이상 학생시절의 ‘샤이론(Shylon, 기가 꺽인 자)’이 아니라, 금니를 박고 금목걸이를 걸고 랩을 읊조리는 ‘기 센’ 성인이 된다. 그러나 ‘샤이론’ 또한 어릴 적 ‘후안’이 했던 것처럼 마약을 팔면서 먹고 산다. 다시 어둡다. 블랙(Black)이다. 이들에게 이 순환의 고리는 빠져나올 수 없는 블랙홀이다. 소용돌이 치면서 분출되고 튀어나오는 ‘화이트홀(White)’은 대체 어디에 있을까? 이 영화에는 출구(出口)가 없다.

02_영화_문라이트.jpg


분절(分節, segment)

  흑인 감독 ‘베리 제킨스’는 출구(出口)를 열지 않는다. 아니, 출구를 열 수 없다. 기억해 보라. 흑인의 얼굴은 분절(分節, segment)되어 있었다. 왼쪽의 얼굴은 이 영화의 ‘리틀(little, 작은 자)’이었으며 ‘블루(Blue)’였다. 가운데 얼굴은 ‘샤이론(Shylon, 기가 꺽인 자)’였으며 ‘바이올렛(Violet)’이었다. 오른쪽 얼굴은 ‘블랙(black, 어둠)’이며 블랙(Black)’이었다. 영화 스크립트(Script, 대본)도 분절되어 있었고 영화 속 시간도 분절되어 있었다. 어린 시절, 학생 시절, 어른…. 생각해보라. 이 영화의 흑인 감독 ‘베리 제킨스’는 등장 인물도 분절시켰다. 백인이 하나 없이 흑인만으로 극을 이끌었다. 이 영화에 등장하는 ‘흑인’들은 검은 색 피부를 가진 종(種)으로서의 ‘흑인’이 아니라 미국의 역사에서 늘 소외받고 억압받았던 사회적 계층으로서의 ‘흑인’들이었다. 인종으로서의 흑인들은 마약 판매상이 아니었으며, 매춘을 하며 먹고 살지 않았으며, 마약에 중독되거나 친구들에게 린치를 가하고 교도소에 가지 않았다. 미국이라는 사회체에서 그들은 마약 판매상이 되거나, 매춘을 하며 먹고 살거나, 마약에 중독되거나, 친구들에게 린치를 가하고 교도소에 갔다. 잘리거나 잘려지거나, 찣기거나 찢겨지면서…. 그러나 이 흑인 감독 ‘베리 제킨스’는 미국이라는 사회체와 흑인을 분리시키고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사회체에 관하여 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 

사회체(Social)

  우리는 이리저리 연결되어 있고 이런저런 사회체에 둘러싸여 있다. 부모 · 가족 ·  이웃 · 동료 · 직장 · 지역사회 · 국가 · 세계…. 연결되어 있고 감싸진 사회체를 떠나 ‘나’는 존재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설명될 수도 없다. 한국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한국이라는 사회체를 떠나 해명될 수 없으며, 태평양의 이름 모를 어느 섬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섬의 사회체를 떠나 설명될 수 없다. 미국에 사는 ‘흑인’들의 삶은 ‘미국’이라는 사회체를 떠나 해명될 수 없다. 영화 <문라이트(Moonlight)>처럼, 연결되고 접속되어 있는 사회체를 분리시키고 끊어낼 때 어떤 일이 벌어질까?

짐 크로 법(Jim Crow laws)

  미국에서는 1876년부터 1965년까지 이른바 흑인과 백인을 분리하는 ‘짐 크로 법(Jim Crow laws)’으로 사회체와 흑인들을 분리시켰다. 미국의 흑인들은 ‘분리되어 있지만 평등하다(separate but equal)’는 이 법에 의해 흑인은 학교, 군대, 공공장소뿐만 아니라 대중교통, 화장실, 식당, 식수대에서조차 백인과 함께 있을 수 없었다. 1896년, 미국의 루이지애나 주에 사는 백인 ‘호머 플래시’가 흑인 승객이 열차의 백인차량에 탑승하자 이동하기를 거부하면서 ‘플래시 대 퍼거슨 사건’이 터졌다. 이 사건은 연방 대법원까지 가는 공방을 벌였지만 1896년 5월 18일 연방 대법원은 ‘분리하되 평등하면(separate but equal)’ 합헌이라는 판결을 내린다. 이 분리 정책으로 흑인들은 백인들보다 경제적 후원, 주거지 등에서 열등한 대우를 받았으며 이것은 경제, 교육, 사회 등에서 불평등을 낳았다. 연결되고 접속되어 있는 것을 끊어내는 ‘분리’는 곧 차별이며, 억압이며, 불평등이다. 장애인을 일상 공간, 즉 학교, 공공장소, 대중교통, 화장실, 식당 등의 출입을 금지한다고 상상해보라. 분리되면 억압과 차별이 생긴다.

아장스망(agencement)

   그런데도,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의 흑인 감독은 흑인을 사회체와 분리시키며 개인의 문제로 영화 장치물을 배열(아장스망, agencement)한다. 그는 “넌 세상의 한 가운데에 있는 거야”라고 외쳐 놓고도 ‘세상 이야기’를 하지 않는다. 그러면서, 감상적인 장치들을 이곳저곳에 흘뿌려 놓는다. ‘동성애’라는 자신의 성(性) 정체성을 찾아간다는 메시지를 쓸쩍 끼워 넣고, 보호감찰 중이면서 식당의 요리사로 삶을 이어가는 ‘케빈’의 입을 빌어 “힘들지만 밥 말리처럼 자유로워”라는 자수성가의 이미지를 슬쩍 끼워 넣는다. 이 때문에, 논리에 서툰 관객들에게는 ‘한 아이의 성장담을 매혹적으로 때깔나게 만들었다’며 감탄하게 만들고, 감각에 서툰 관객들에게는 동정과 연민의 눈물을 흘리게 만든다. 미국 사회에서 흑인 차별 문제를 덮어두고 개인 성장의 문제나 개인의 정체성 문제로 되돌리게 하는 이 영화 <문라이트(Moonlight)>…. 이 아장스망의 연원은 뭘까?

03_영화_문라이트.jpg


개인주의 신화

    … 17세기 영국의 종교적 속박에서 벗어나 미국으로 이주한 청교도의 유명한 이야기, 19세기 에머슨(<자립>), 소로(<시민불족종>), 휘트먼(<나의 노래)> 등이 내세운 개인주의 찬가, 20세기에 오면 순응주의에 맞서는 일반 시민의 투쟁을 찬양한 셔유드 앤더슨의 소설 <와인스버그, 오하이오>, 최근에는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영화까지 개인의 독립과 자유는 미국 문화의 기본 주제다. 미국 공동체주의자의 수호성인이라 할 수 있는 알렉시스 토크빌조차 <미국의 민주주의>에서 개인주의가 갖는 독특한 민주적 가치를 이렇게 인정했다. "개인주의는 성숙하고 평온한 감정으로서 시민 각자를 동료 무리로부터 분리시켜 가족과 친구들의 동아리 속으로 물러나게 해준다. 시민들은 이렇게 자기의 취향에 맞게 형성된 작은 사회로 물러나고 대규모 사회는 스스로 알아서 돌보도록 맡겨 버린다."
  미국의 국가적인 신화는 개인적 영웅의 역할을 과대평가하는 반면 집합적 노력의 중요성은 과소평가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미국 독립전쟁이 시작된 그날 밤의 이야기를 흥미진진하게 설명한 역사가 데이비드 피셔의 책은 미들섹스 마을에는 주민 네트워크가 있었기 때문에 영국군이 몰려온다고 알려준 폴 리비어의 경고가 성공을 거두었음을 우리에게 알려준다. 잘 조직된 민병대가 없는 지역은 아무리 그 주민들이 애국심에 불탔어도 미국 독립을 위한 최초의 전쟁이 렉싱턴과 콩코드의 전투에 참여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개인의 영웅적 행동과 자수성가를 강조하는 강건한 개인주의 신화는 여전히 미국인의 심금을 강하게 울리고 있다. … 

  - <나 홀로 볼링-사회적 커뮤니티의 붕괴와 소생>(로버트 D. 퍼트넘 · 페이퍼로드 · 2016년 · 원제 : Bowling Alone: The Collapse and Revival of American Community, 2000년) p.29~30

미국적 휴머니즘

  이처럼 ‘인간적인 얼굴’을 하고 있는 이 아장스망의 연원은 미국적 개인주의다. 연원이 깊은 이 괴이한 사회적 배치는 치밀하다. 미국이라는 사회체는 개인주의 신화를 만들며 사람들을 동료와 사회체로부터 분리시키고, 가족과 친구들의 한정된 영역 속으로 물러나게 했으며,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자유, 이익, 개인적 자수성가 등 순전히 개인의 문제로 되돌리며 미국적 휴머니즘을 낳았다. ‘로버트 D. 퍼트넘’의 말처럼, 휴머니티로 위장하고 또 하나의 개인주의 신화를 쌓아올리는 이 영화 <문라이트(Moonlight)>도 “미국인의 심금을 강하게 울렸”던 모양이다. 이 영화는 제74회 골든글로버 최우수 작품상을 받고 제89회 아카데미시상식에서 작품상 · 감독상 · 촬영상 등 8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으며, 타임지, 뉴욕타임지, 워싱턴포스트 등 미국의 유력 일간지에서 올해의 영화로 선정된다. 이 영화에 바치는 헌사(獻辭)들도 '휴먼틱'하다. "모든 이들의 인생에 바치는 영화", "한 흑인 아이의 치명적인 사랑과 정체성에 관한 이야기"…. 우리는 알고 있다. 바로 이때 사회 구조의 문제가 개인의 문제로 옮겨진다는 것을….

영화 <르 아브르(Le Havre)>

  미국 영화 <문라이트(Moonlight)>와 전혀 다르게 말하는 프랑스 영화가 있다. 2011년 개봉한 영화 <르 아브르(Le Havre)>(프랑스 · 감독 : 아키 카우리스마키 · 출연 : 앙드레 윌름, 에볼린 디디, 블렌디 미구엘  외)다. 2011년 칸영화제 국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영화 <르 아브르(Le Havre)>는 영화 <문라이트(Moonlighr)>처럼 ‘흑인 소년’에 관한 이야기이지만 다르다. 아주 다르다. 영화 <르 아브르(Le Havre)>는 <문라이트(Moonlight)>처럼 섣부른 온정주의나 개인주의, 서툰 휴머니즘에 빠지지 않으면서도 출구(出口)를 연다.

04_영화_르아브르.jpg


약동(Elanvital)

  젊은 시절 자유로운 보헤미안이었던 ‘마르셀 막스’는 프랑스 서북부의 항구도시 ‘르 아브르‘에 정착하여 구두닦이 일을 하고 있다. 사랑하는 아내 ‘아를레티’와 친절한 이웃들에 둘러싸여 소박하지만 행복한 삶을 살고 있는 ‘마르셀’은 어느 날 아프리카에서 온 불법 난민 소년 ‘이드리사’를 숨겨주게 된다. ‘이드리사’는 영국에 있는 엄마가 보고 싶어 이프리카에서 밀항을 한 흑인 소년이다. 불법 난민 소년 ‘이드리사’를 쫓는 마을 경감 ‘모네’의 추적이 되고 ‘마르셀’은 마을 주민들과 함께 소년을 영국으로 밀항시켜 주기로 마음먹는다. 경감 ‘모네’의 추적을 따돌리는 마을 주민들, 이 소년의 밀항 자금을 만들기 위해 벌이는 축제가 즐겁다. 꽃수레에 이 흑인 소년을 숨기고 이리저리 법망을 달아나는 주민들의 모습이 경쾌하고, 밀항선에 탄 소년을 보고도 못 본 척하는 경감 ‘모네’의 표정이 따뜻하다.

연결 · 접속

  영화 <르 아브르(Le Havre)>는 사회체와 개인을 분리하지 않는다. 전체와 개인이 연결되고 접속되어 있는 이 영화를 보면 즐겁고 신이 난다. 흑인 소년은 밀항선을 타고 멀리 달아나며 사람들은 힘을 합쳐 축제처럼 출구(出口)을 열어준다. 약동(elanvital)한다. 사회체와 개인을 분리하고 사회의 문제를 개인의 것으로 되돌리는 영화 <문라이트(Moomlight)>를 보면 슬퍼지고 연민과 동정심이 생긴다. 출구는 닫힌다. 블랙(Black)이고 어둠이다. 고(故) 신영복(1941년~ 2016년)은 그의 책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에서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는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것이라고 말한 적이 있다. 영화 <문라이트(Moomlight)>는 섣부른 휴머니즘으로 “우산을 씌워주지만”, 영화 <르 아브르(Le Havre)>는 “함께 비를 맞는다.”

함께 맞는 비

  … 상처가 아물고 난 다음에 받은 약은 상처를 치료하는 데 사용하기에는 너무 늦고, 도리어 그 아프던 기억을 상기시키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것은 단지 시기가 엇갈려 일어난 실패의 사소한 예에 불과하지만, 남을 돕고 도움을 받는 일이 경우에 따라서는 도움이 되기는커녕 더 큰 것을 해치는 일이 됩니다. (...) 우리는 공정한 논의를 위하여 카메라를 반대편, 즉 베푸는 자의 얼굴에도 초점을 맞추어 조명해볼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칫솔 한 개를 베푸는 마음도 그 내심을 들추어보면 실상 여러 가지의 동기가 그 속에 도사리고 있음을 우리는 겪어서 압니다. 이를테면 그 대가를 다른 것으로 거두어들이기 위한 상략적(商略的)인 동기가 있는가 하면, 비록 물질적인 형태의 보상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으나 수혜자 측의 호의나 협조를 얻거나, 그의 비판이나 저항을 둔화시키거나, 극단적인 경우 그의 추종이나 굴종을 확보함으로써 자기의 신장(伸張)을 도모하는 정략적인 동기도 있으며, 또 시혜자라는 정신적 우월감을 즐기는 향락적인 동기도 없지 않습니다. 
  이러한 동기에서 나오는 도움은 자선이라는 극히 선량한 명칭에도 불구하고 그 본질은 조금도 선량한 것이 못됩니다. 도움을 받는 쪽이 감수해야 하는 주체성의 침해와 정신적 저상(沮喪)이 그를 얼마나 병들가 하는가에 대하여 조금도 고려하지 않고 서둘러 자기의 볼일만 챙겨가는 처사는 상대방을 한 사람의 인간적 주체로 보지 않고 자기의 환경이나 방편으로 삼는 비정한 위선입니다. (...) 그래서 저는 (...) 돕는다는 것은 우산을 들어주는 것이 아니라 함께 맞는 비를 맞으며 함께 걸어가는 공감과 연대의 확인이라 생각됩니다. 
  -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신영복 · 돌베개 · 2016년) p.243~244

출구(出口)

  영화 <문라이트(Moonlight)>의 전반부, 마약에 취한 흑인 ‘폴라’를 보고 흑인 ‘후안’이 “엄마가 그러면 되느냐”고 힐책하자 폴라는 이렇게 말한다. “이 마약은 당신이 판 것이다.” 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 나올 수 있을까? 사회 구조의 문제를 개인의 문제로 되돌리는 순간, 즉 사회체와 개인을 분리하는 순간, 다시 말해 주체(主體, Subject)와 대상(客體, Object)을 분리하는 순간, 이 악순환에서 빠져나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그러나 프랑스의 철학자 질 들뢰즈(Gilles Deleuze, 1925년~1995년)와 펠릭스 가타리(Felix Guattari, 1930년~ 1992년)의 말처럼 "언제, 어디에나 출구는 있다." 닫혀 있는 것 같지만 블록들은 복도 · 문으로 연결 · 접속되어 있으며 “정문과 옆문은 물론 문이 없는 입구와 출구까지 포함하여 무수한 많은 문을 가지고 있다.” 분절시키지 말고 접속하고 연결하라. 연민과 동정, 친절과 배려 같은 섣부른 휴머니즘, 괴이한 미국적 개인주의에 감염되지 말라. ‘우산을 씌우려 하지 말고, 함께 비를 맞으며 걸어 가라’. 바로 이때 우리는 마침내 악순환의 고리에서 빠져나올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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