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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리뷰]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Egon Schiele: Death and the Maiden, 2016년)

by 이우 posted Dec 28, 2016 Views 16272 Replies 0
이우

포스터_종합.jpg

영화 <에곤 쉴레 : 욕망이 그린 그림(Egon Schiele: Death and the Maiden, 2016년)>



  (...) 욕망기계들은 기계들인데, 이 말은 은유가 아니다. (...) 욕망기계들은 그 어떤 은유와도 무관하게 참으로 기계들인 걸까? 기계는 절단들의 체계라고 정의된다. 현실과의 격리라 여겨지는 절단은 여기서 전혀 성관이 없다. 전단들은 고려되는 성격에 따라 다양한 차원에서 작동한다. 첫째로 모든 기계는 이 기계가 자르는 연속된 물질적 흐름(hyle)과 관련을 맺고 있다. 모든 기계는 햄을 자르는 기계처럼 기능한다. 가령 항문과 이것이 절단하는 똥의 흐름, 또 정액의 흐름. 연합적 흐름 각각은 관념적인 것으로, 돼지의 큰 넓적다리의 무한한 흐름 같은 것으로 고려되어야 한다. 실제로 힐레는 관념 안에 있는 물질의 순수한 연속성을 가리킨다. 졸랭은 통과의례에서 사용되는 경단과 가루를 묘사하면서, 그것들은 <이론적으로 오직 하나의 시작점만을 갖고 있는 무한한 계열>에서 채취된 것의 집합, 우주 끝까지 펼쳐져 있는 유일무이한 가루에서 채취된 것의 집합으로서 매년 생산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 도처에 욕망이 샘솟는 흐름-절단들이 있는데, 이것들이 바로 욕망의 생산성이요, 생산물에 생산하기를 접붙이는 일을 한다.(...)

  - 『안티 오이디푸스』(질 들뢰즈 · 펠릭스 가타리 · 민음사 · 2014년  · 원제 : L’Anti-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enie, 1972년) <1장 욕망 기계들> p.74~75

그림_꽈리열매가있는자화상.jpg
  욕망 기계의 첫번째 양태는 ‘절단-채취하기’다. 에곤 쉴레는 그의 동생이자 든든한 지원군인 ‘게르티’의 체크무늬 옷을 절단해 채취한다. 에곤 쉴레는 금기된 욕망을 풀어주는 ‘모아’의 ‘자유로운 영혼’을 채취하고, 당대 최고의 화가 ‘클림트’가 소개해 준 운명의 여인 ‘발리’의 ‘검정 스타킹’을 절단하고 채취한다. 에곤 쉴레는 그에게 안정적인 삶을 주었던 마지막 여인 ‘에디트’의 ‘줄무늬 옷’을 끊어낸다. 절단과 채취.

  욕망 기계의 두번째 양태는 ‘이탈하기’다. 모든 기계는 자기 안에 가설하고 비축해 놓은 일종의 코드를 지니고 있다. 이 코드는 몸의 상이한 지역들에 자신이 등록되고 전달된다. 에곤 쉴레가 비축해 놓은 코드는 붓과 나이프, 빗으로 이러저러한 선을 긋고 빗질하고 색을 뒤섞는 것. 20세기를 뒤흔든 천재 화가 에곤 쉴레는 스스로 언젠가 “내게 예술이 없었다면 지금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고 전언한다. 오스크리아 출신의 에곤 쉴레는 한번도 정식 미술교육을 받지 않았다. 그는 명문인 ‘빈 예술 아카데미’에 최연소로 입학 허가를 받으면서 천재성을 인정받지만 아카데미의 보수적인 학풍에 반대해 학교를 그만두고 ‘신 예술가 그룹’을 결성해 자신만의 독특한 화풍을 만든다. 그는 말한다. “새로운 예술은 없다. 새로운 예술가만 있다." 이탈. 

  욕망 기계의 세번째 양태는 ‘생산하기’다. 그는 절단하고 채취한 것들을 새롭게 조합한다. 절단하고 채취된 욕망들은 당대의 화풍을 이탈하며 작품 <체크무늬 옷을 입은 여인(Gerti Schiele in a Plaid Garment, 1909년)>, <모아(Moa, 1911년), <검정 스타킹을 신은 발리 노이질(Wally Neuzil in Black Stockings, 1912년)>, <줄 무늬 옷을 입은 에디트 쉴레(Edith Schiele in a Striped Dress, 1915년)> 등으로 생산된다. 부분 대상과 연속된 흐름의 절단이 하나로 합쳐진다. 절단과 채취는 흐름을 잘라내지만 연속성에 대립하기는커녕 연속성의 조건을 이루면서 절단한 것을 관념적 연속성으로서 내포되고, 내포된 것은 에곤 쉴레가 가진 회화 규칙인 코드에 따라 그려지고, 찍혀지고, 빗질된다. 생산.

리플렛s.jpg


  이런 것이 생산의 법칙이다. 그림그리기, 소리내기, 글쓰기…….  예술만 그런 것이 아니다. 살아내기. 그것은 모든 방향에서 그렇다.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혹은, 욕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삶이란 사방으로 일어나는 끊임없는 절단과 채취이며, 이탈이며, 생산하기다. 우리는 모든 것을 떼어내고 이탈시키고 재생산한다. 욕망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우리는 이러저런 욕망을 채취하고, 채취한 것을 이탈시키고, 다시 생산한다. 우리는 식물의 몸, 동물의 몸을 절단해 먹어치우면서 이탈시키고, 자신의 몸체가 가진 코드로 아미노산과 단백질을 생산해 자신의 몸에 등록시킨다. 우리는 사회체의 코드를 절단해 기억하고 이탈시키고 변주한다. 우리는 흐름에서 채취한 것의 반환인 동시에 이탈한 것의 재생산이요 회귀하는 잔여물이다. 욕망기계는 은유가 아니다.

  사회체에 관해서 말해도 마찬가지다. 모든 사회적 생산은 특정 조건들에서의 욕망적 생산이다. 그것은 사회 기계. 사회체는 토지의 몸, 전제군주의 몸, 돈의 몸이다. 종교와 자본주의와 권력이 하는 일은 욕망을 부정하면서 억압하고, 흐름들을 재코드화하고 재등록해 홈을 패이게 하고 막히게 하는 것이다. 이 안에서 국가들, 고향들, 가족들, 이 모든 것이 다시 지나가고 다시 돌아온다. 이 기계는 인간의 몸 위에 코드를 새기고 재등록하며 이탈을 막는다. 종교적 인간, 자본주의적 인간, 권력형 인간이 추상적 공리계를 만들고 만들고 강제한다. 그러나 이 추상적 기계 자체는 코드를 갖지 못한다. 우리 각자는 사회적 코드를 끊임없이 절단·채취하고 이탈시키며 다시 생산하며 욕망을 해방시킨다. 욕망은 사회체를 해체하여 기관 없는 몸을 출현시키고, 또 이 몸 위에서 탈영토화된다.

  에곤 쉴레, 그는 당대의 사회체·예술체 위에서 헤매고 비틀거리며 이동한다. 사회체가 외설의 협의로 그를 법정에 세우고, 예술체가 그가 살아가는데 필요한 최소한의 돈-흐름마저 막아선다. 그러나 우리 각자가 그러하듯 에곤 쉴레는 사회적·예술적 코드를 끊임없이 절단·채취하고 이탈시키며 다시 생산하며 욕망을 해방시킨다. 그가 사용하는 것은 평면상에 색채와 선을 써서 여러 가지 형상과 느낀 바를 표현하는 회화(繪畵)라는 감각-줄이다. 그의 도발적이고 과감한 감각-줄은 당대의 화풍을 뒤엎고 예술체를 해체시킨다.  이 감각-줄은 예술과 외설의 중간 지대에서 사회체를 해체해 기관 없는 몸을 출현시키고, 또 스스로 이 몸 위에서 탈영토화된다. 볼룹타스(Voluptas), 볼룹타스.... 

  그대는 삶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예술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당신은 이미 감각-줄을, 개념-줄을, 지시계-줄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으며, 당길 수 있으며, 튕겨내고 있다. 코네티컷(Connecticut)하라. 잘라내고(Cut) 연결(Connect)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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