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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하루키의 『여자 없는 남자들』

by 이우 posted Mar 31, 2016 Views 1459 Replies 0
소유하고 싶은 주체(Subject)가
소유 당하지 않는 대상(Object)을 이해할 수 없어,
니힐(Nihil)에 빠지는 막장, <여자 없는 남자들>
<여자 없는 남자들>(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 2014년 · 원제 : 女のいない男た, 2014년)



이우


20160329_160716_s.jpg  무라카미 하루키는 2005년부터 10년간 우리나라에서 가장 많이 판매고를 올린 작가이면서 2015년 노벨문학상 후보자였기도 하다. 그러나 그에 대한 평가는 상이하다. 일각에서는 ‘B급 소설가’로 분류하면서 ‘대중소설가’, 혹은 ‘문화상품 생산자’라는 오명 아래 두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무거운 것을 숨기고 '좋다, 나쁘다'의 판단을 보류하면서 가볍게 대중에게 접근할 줄 아는 ‘정교한 작가’로 불리기도 한다. 그는,  ‘문화상품 생산자’인가, 아니면 ‘정교한 작가’인가? 그는 대체 누군가?

  설왕설래, 그의 단편소설집 <여자 없는 남자들>(무라카미 하루키 · 문학동네 · 2014년 · 원제 : 女のいない男た, 2014년)을 읽었다. 제목처럼 이 책에 실린 일곱 편의 단편은 모두 ‘여자 없는 남자들’의 이야기다. 파트너로서 항상 좋은 관계를 유지했었고 시간이 나면 다양한 문제에 대해 솔직한 의견을 열성적으로 나누었을 만큼 사이가 좋았던 아내가 이따금 다른 남자와 잠을 자는 이유를 모르겠다는 <드라이브 마이 카>, 다른 선배와 자는 여자 친구의 이야기 <예스터데이>, 자신을 사랑에 빠지게 한 유부녀인 그녀가 자신도 남편도 아닌 다른 어떤 남자와 도망을 치는 <독립기관>, 언제 떠날지 모르는 여자를 사랑하는 <세에라자드>, 아내의 불륜을 목격하고 카페에 숨어드는 <기노>, ‘그레고리 잠자’로 변한 ‘나’가 열쇠수리공인 곱추아가씨와 ‘썸’을 타지만 결코 성공하지 못하는 <사랑하는 잠자>. 

  모든 이야기에서 남자의 여자는 갑자기 어디론가 사라지거나 다른 곳으로 떠난다. 이를 두고 소설가 권영민은 "작가는 아무리 잘 안다고 생각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사랑하는 사람일지라도, 타인의 마음을 속속들이 들여다본다는 건 불가능하다는 것을 말하고 있다"고 점잖게 평하지만, 대놓고 말한다면 '소유하고 싶은데 소유할 수 없고, 소유하지 못하는 이유를 알고 싶지만 그 이유를 절대 알 수 없다'는 이야기, 조금 고급스럽게 말하면, 소유하고 싶은 주체(Subject)가 소유 당하지 않는 대상(Object)을 이해할 수 없어 니힐(Nihil)에 빠지는 이야기, 거칠게 말하면 두말할 것도 없는 '막장 드라마'다.

  독일의 철학자는 프리드리히 니체(Friedrich Nietzsche, 1844년~1900년)는 <선악의 저편>에서 “우리의 자아 감정은 우리 자신이 소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모든 것, 자신의 보호, 다시 말해 자신의 힘 아래에 둘 수 있는 모든 것과 외연을 같이 한다”고 말하며, 남성과 여성 간의 관계를 살핀다. 자아 감정 아래에서 남성은 늘 자신의 대상, 즉 여성과 ‘소유’ 내지 ‘소속'의 관계를 맺으려고 하고 여성은 남성이 그린 이미지에 따라 그것을 연기하는 존재다. 남자들이 여성 이미지를 만들고, 여자들은 그 이미지에 따라 자신을 만들기 때문이다. 이 연기하는 여성의 첫번째 위험은 그 이미지에 고착되는 것이다. “그가 쓴 것은 하나의 가면이었지만 그것이 얼굴이 되고 말 때, 더 이상 쓸 가면이 없을 때 여성은 ‘남성의 이미지’에서 죽음을 맞는다.” 또 “남자는 여자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을 알았을 때, 다시 말해 자신의 고유성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알았을 때 스스로 절망해 세계 또한 멸망으로 이끄는 파괴자"가 된다. '소유'를 터전으로 삼는 주체(Subject)나 자아(ego)는 니체가 <권력에의 의지>에서 말했듯이 결국 옵티미즘(optimism, 낙천주의), 페시미즘(Pessimism, 염세주의), 데카당스(Decadence, 퇴폐주의)라는 니힐(Nihil)에 빠질 수밖에 없으며, 나아가 "세계 또한 멸망으로 이끄는 파괴자"가 될 수밖에 없다.

  '타자를 이해(comprehension)하고 싶다는 것은 타자를 소유하고 싶다는 것과 같은 말이다. 니체는 지금 이것을 '자아감정'이라고 말하고 있다. 무라카미 하루키가 이 책을 통해 '남자와 여자가, 또 나아가 인간과 인간이 서로를 완전히 이해하기가 불가능하다'고 말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사실은, 여자를 소유할 수 없어 '허(虛, nihil)'하다는 이야기에 탐미적인 감상을 더한 것일 뿐이다. ‘소유’를 터전으로 삼는 근대적인 주체 코키토(Cogito, 생각하는 나)나 자아(ego)가 주인공이다. 결국 이 '여자 없는 남자'들도 옵티미즘(optimism, 낙천주의), 페시미즘(Pessimism, 염세주의), 데카당스(Decadence, 퇴폐주의)라는 니힐(Nihil)에 빠져들어 간다. 여자를 소유하고 싶은데 소유할 없어 죽거나(<독립기관>, 소유당하지 않는 이유를 알 수 없어 허무에 빠지거나(<드라이브 마이 카>. 그래서 마침내 삶이란 것은 해가 뜨면 녹아버리는 얼음달 같은 것(<예스터데이>). 신파(新波), 제국주의의 침전물....

   “어째서 그런 모티프에 내 창착 의식이 붙들려 버렸는지(붙들렸다는 표현이 딱 맞다) 그 이유는 나도 잘 모르겠다. 이와 비슷한 구체적인 사건이 최근에 나에게 일어난 것도 아니고(다행스럽게도), 주위에서 실례를 목격한 것도 아니다. 단지 그런 남자들의 모습과 심정을 몇 가지 다른 이야기의 형태로 패러프레이즈하고 부연해보고 싶었다. 그것은 ‘나’라는 인간의 ‘현재’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 혹은 완곡한 예언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아니면 내게 그런 구마의식이 개인적으로 필요한 건지도 모른다. 이에 대해선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들다. 그러나 어쨌든 이 책의 제목은 처음부터 ‘여자 없는 남자들’로 정해져 있었고, 중간에 생각이 흔들리지도 않았다. 바꿔 말하면 나는 아마도 이러한 일련의 이야기를 마음속 어딘가에서 자연스레 바라고 있었던 것이리라.”
- 무라카미 루키의 일본어판 <여자 없는 남자들> 서문 중에서


    그러나 하루키는, “나 스스로도 설명하기 힘들다”며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 것인지조차 모른다. 심지어 “나라는 인간의 현재에 대한 하나의 메타포일지도 모른다”며 자인하기까지 한다. 그는 '타자를 소유하고 싶은 주체(Subject)가 소유 당하지 않는 대상(Object)을 이해할 수 없어 허무로 빠진다'는 이 근대적인 명제를 이해하지 못하는 것일까? 무엇인지 모르겠다고 하면서 출·퇴근하듯 매일 정해 놓은 시간에 앉아서 탐미적이고 감수성 가득한 낱말들을 이어붙이고 있는 그는 누구인가?  무엇인지 모르면서 로맨틱한 <13 jours en France>가 들어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밀어넣고 있는 그는 뭔가? 그는 왜 옐로우 저널의 사건 기사를 탐미적인 감상으로 버무리고 있는가? 왜 그의 글에는 제국주의적인 ‘소유욕’이 가득한데 본인은 알아채지 못하는가? 그는 왜 ‘개별성’이 아니라 ‘보편성’, ‘특이성’이 아니라 ‘동일성’으로 향하면서 현대인인 척 '스페이스'를 누르고 '하고 싶은대로 하라'는 걸까? 그는 '사랑이란 차이로 존재하는 특이자들이 함께 세계를 경험하는 생성과 약동의 세계‘라는 것을 모르는 것일까? 그는 왜, 데카르트의 고독한 주체 코키토(Cogito, 생각하는 나)가 불가능성을 발견한 것처럼 절망적인 단말마를 내뱉고 있으면서도 모르는가? 


  “결국 우리가 해야 하는 일은 나 자신의 마음과 솔직하게 타협하는 것 아닐까요? 진정으로 타인을 들여다보고 싶다면 나 자신을 깊숙이 정면으로 응시하는 수밖에 없어요. 나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 말들은 다카스키라는 인간 안의 어떤 깊고 특별한 장소에서 떠오른 같았다. (...)
  “부인은 그 사람에게 애당초 마음을 빼앗기지 않았던 게 아닐까요? 미사키는 매우 간결하게 말했다. “그러니까 잤죠.”
  가후쿠는 먼 풍경을 보듯이 미사키의 옆 얼굴을 한참이나 바라 보았다. 그녀는 몇 번 와이퍼를 바르게 움직여 앞 유리에 묻은 물방울을 닦아 냈다. 새로 바꾼 한 쌍의 불레이드가 툴툴대는 쌍둥이처럼 뻑뻑하게 삐걱이는 소리를 냈다.
  “여자한테는 그런 게 있어요.” 미사키가 덧붙였다. (…)
  “그리고 우리는 모두 연기를 한다.” 가후쿠가 말했다.
  “그럴 거예요, 많든 적든.”
- 단편 <드라이브 마이 카> p.59

   “어차피 우린 지금 당장 말고는 한 치 앞도 모르잖아. 간사이 사투리를 쓰고 싶으면 마음껏 써. 죽도록 쓰라고. 입시공부 하기 싫으면 하지 마. 구리야 에리카의 팬티에 손을 넣고 싶지 않다면 안 넣으면 돼. 네 인생이야. 뭐든 너 하고 싶은 대로 해. 다른 누구한테도 신경 쓸 거 없어.”
  기타루는 감탄한 듯 입을 반쯤 벌리고 내 얼굴을 찬찬히 바라보았다. (…) 나는 말했다. “인격을 바꿀 수는 없으니까.”
  “지당하신 말씀. 인격을 바꿀 수야 없지. 내가 하고 싶은 말도 바로 그거야.”
- 단편 <예스터데이> p.102

 “나에게는 항상 걸 프렌드가 여럿 있었어요. 어이없게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많을 때는 네 다섯 명까지 있었습니다. 누구 하나를 만나기 힘들 때에는 다른 여자를 만났죠. 별 문제 없이 그렇게 지내 왔어요. 하지만 그녀에게 마음을 빼앗긴 뒤로는, 다른 여자들에게선 신기할 만큼 아무런 매력도 느끼지 못합니다. (…) 정말이지 중증입니다. (…) 그녀의 마음과 내 마음이 뭔가로 단단히 묶여버린 느낌이에요.”(...)
  “다니무라 씨, 내가 지금 가장 두려운 건, 그리고 나를 가장 혼란스럽게 하는 건, 내 안에 있는 일종의 분노예요.”
  “분노?” 나는 조금 놀라서 말했다. 그건 도카이라는 인물과 전혀 어울리지 않는 감정인 것 같았기 때문이다. “무엇에 대한 분노죠?”
  도카이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모르겠어요. 그녀에 대한 분노가 아니라는 것은 확실합니다. 하지만 그녀를 만나지 않을 때, 만날 수 없을 때, 내 안에서 분노가 고조되는 것을 느끼곤 합니다. 그게 무엇에 대한 분노인지 스스로도 잘 파악이 안 돼요.”
- 단편 <독립기관> p.145~147

 “셰에라자드는 그 안에서 남자 셔츠 한 장을 찾아냈다. BVD의 흰색 라운드 티셔츠. 냄새를 맡아보았다. 틀림없는 젊은 남자의 땀냄새였다. 퀴퀴한 채취. (…)그의 그것은 셰에라자드를 한없이 행복하게 만들어주었다. 겨드랑이 부분에 얼굴을 대고 냄새를 들이마시고 있으려니, 그가 자신을 품에 감싸고 양팔로 으스러지게 껴안아주는 것 같았다.(…) 그러는 사이 허리께에서 나른한 감각을 느꼈다. 유두가 딱딱해지는 감각도 들었다.”
- 단편 <셰에라자드> p.203~204

  “당신을 다시 만날 수 있을까요?.” 잠자는 용기를 내어 물었다. 아가씨는 천천히 고개를 꺽어 잠자의 얼굴을 미심쩍다는 듯 올려다 보았다. “당신, 나를 다시 만나고 싶은 거예요?”
  “네. 당신을 만나고 싶어요.”
  “그렇게 고추를 벌떡 세우고?”
  “잠자는 그 볼록한 것을 다시 한 번 바라보았다. “참 설명은 못하겠지만, 이건 내 마음과 관계 없는 일 같아요. 이건 아마도 심장의 문제일 거예요. (…) 이건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퍽과는 관계없다고요?”
  “퍽에 대한 생각은 없어요. 정말로.”
- 단편 <사랑하는 잠자> p.205

  “ 한밤중 한시가 넘어 걸려온 전화가 나를 깨운다. 한밤중의 전화벨은 언제나 거칠다. 누군가가 흉포한 쇠붙이로 세상을 깨부수려는 것과 같다. 일류의 일원으로서 나는 그것을 막아야 한다. 그래서 침대에서 내려와 거실로 가서 수화기를 든다. (...) 그의 말투에는 한 방울의 감정도 섞여 있지 않았다. 마치 전보를 치려고 쓴 문장 같았다. 말과 말 사이에 스페이스가 거의 없었다. 순수한 알림. 수식 없는 사실. 피리어드.(...) 어디에선가 우리집 전화번호를 알아냈다 하지만 그 이상 자세한 정보를 내게줄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다. 나를 지(知)와 무지(無知)의 중간지점에 데려다놓는 것. 아무래도 그가 의도하는 바로 그것인 모양이었다.(...) 그것은 미세한 떨림이 되어 전화선을 타고 와 말의 울림을 변형시키고 세계를 그 진동에 동기화한다. (...) 내가 여기서 대체 무슨 말을 하려는 건지, 나 자신도 잘 모르겠다. 아마도 사실이 아닌 본질을 쓰고 싶은 것이리라. (...) 그러나 엠 안에도 아직 열 네 살의 소녀가 살고 있었다. 그 소녀는 하나의 총체로서-결코 부분으로서가 아니라-그녀 안에 존재했다. (...)
  그도 그럴 것이 전 세계의 뱃사공들이 그녀를 노리고 있는 것이다. 나 혼자 지켜낼 수 있을 리가 없다. 누구라도 잠깐씩은 눈을 돌리게 마련이다. 잠도 자야 하고 화장실에도 가야 한다. 욕조도 청소해야 한다. 양파를 다지거나 강낭콩 꼭지를 따기도 한다. 자동차 타이어압을 점검할 필요도 있다. 그렇게 우리는 헤어지게 되었다. 아니, 그렇다기보다 그녁 내게서 떠나간 것이다. 물론 그곳에는 뱃사람들의 그림자가 명확하게 드리워져 있었다. 제 힘으로 S자 빌딩 벽을 슬슬 기어오를 것 같은 농밀하고 자율적인 그림자다. 욕조나 양파나 공기압은 그 그림자가 압판처럼 흩뿌려놓은 메타포 조각에 지나지 않는다.(...)
  나는 엘리베이터 음악을 잃어버렸다. 혼자서 차를 몰 때마다 그렇게 생각한다. 신호를 기다리는 사이에 처음 보는 여자가 갑자기 문을 열고 조수석에 올라타, 아무 말 없이. 내 얼굴을 쳐다보지도 않고 <13 jours en France>가 들어 있는 카세트테이프를 카오디오에 억지로 밀어 넣는 상상을 한다. 나는 그걸 꿈꾸기도 한다. 그러나 물론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는다. (…)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그런 것이다. 그리고 때로 한 여자를 잃는다는 것은 모든 여자를 잃는 것이기도 하다. 그렇게 우리는 여자 없는 남자들이 된다. (…) 엠이 지금 천국-혹은 그에 비견되는 장소-에서 <A Summer Place>를 듣고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여자 없는 남자들의 일원으로서 나는 진심으로 그렇게 기도한다. 그것 말고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 것도 없다. 현재로서는. 아마도. ”
- 단편 <여자 없는 남자들> p.321~337


  언젠가 하루키는 그 스스로 '사람들이 좋아하는 아름다운 낱말을 이어가는 것이 자신의 글쓰기'라고 말한 적이 있다. 자신이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매일 시간을 정해 놓고 부지런히 탐미적인 감수성으로 '아름다운' 낱말을 찾아내 문장을 만들고, 문장을 이어 문단을 생산하는 이 하루키를 두고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 우리는 이렇게 말할 수밖에 없다. 잘 팔리는 상품을 잘 만드는 '문화상품 생산자'. 혹은, 성실하고 부지런히 사람들이 좋아할만한 언어를 찾아내는 '글 쓰는 기술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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