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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평] 황석영의 중의법_ <강남몽>

by 이우 posted Oct 02, 2011 Views 6056 Replies 0

 

책_강남몽.jpg

 

  황석영 장편소설 <강남몽>(창비, 2010)은 중의(重意)의 페스티발이다. 중의이란 하나의 말을 가지고 두 가지 이상의 의미를 나타내는 것. 중의를 함축하고 있는 문장이나 단어는 파생적인 의미나 유사성이 아니라, 전혀 다른 개념과 뜻을 함께 가지고 있다. 중의법의 대표적인 사례가 성삼문의 시조다. 성삼문이 ‘수양산 바라보며 이제를 한하노라 / 주려 죽을진들 채미도 하난 것가 / 비록애 푸새엣것인들 긔 뉘 따해 났다니’라며 시를 읊었지만 이 때 ‘수양산’은 중국의 '수양산'과 함께 '수양 대군'을 뜻하고, '채미'와 '푸새엣 것'은 직접적으로 고사리와 채소를 의미하지만 이와 함께 '수양대군이 주는 녹'을 뜻한다. 이 시조 때문에, 수양대군이 불편했으리라는 것은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소설 <강남몽>의 중의법은 ‘나’, ‘너’, ‘우리’ 모두를 불편하게 한다.


‘강남’

  이 소설의 지역적 배경은 ‘강남’이다. 황석영이 대하소설 <장길산>을 탈고한 80년대 후반부터 이른바 ‘강남형성사’를 쓰겠다고 여러 차례 말해왔으니 이 소설은 그 결과물. 황석영은 근/현대사 이면의 숨겨진 진실과 에피소드들을 모아 서사의 힘과 묘사의 힘으로 생생하게 ‘강남형성사’를 그려냈다. 그러나 말이 형성사이지 사(史)가 아니라 ‘삶’이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끊임없이 부를 축적한다. ‘알면서’, 혹은 ‘알면서도 모른 척’ 어둠 속을 질주한다. 일제의 정탐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김진은 영악한 처세와 기회주의자의 면모를 유감없이 보여주고, 강남 개발 시기에 부동산 투기로 큰돈을 벌기 위해 심남수는 권력과 야합하며, 조직폭력배 홍양태과 강은촌도 그들 세계에서 생명과 맞먹는다는 ‘의리’를 버린다. 시골의 여상을 졸업한 뒤 고급요정과 쌀롱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는 박선녀 또한 오직 ‘돈’을 향해 달려간다. 그들에게 모럴(moral, 도덕, 윤리)은 의미가 없다. 오직 부를 위해 달리는 군상들이 서로 얽히고 설키며 ‘강남’을 ‘형성’한다.

 

   ‘강남’은 한강의 남쪽이라는 지역명칭일뿐 아니라 부와 명예, 권력을 욕망하는 이 땅 대부분의 사람들이 꿈꾸는 이상향을 중의한다. 또 소설가 김훈의 말처럼 강남은 우리나라 경제성장이 만들어낸 지층을 중의하며, 부(富) 축적을 향해 앞뒤 돌아보지 않고 달려왔던 우리의 깨진 삶도 함께 중의한다.


‘몽(夢)’


  황석영은 이 지층의 단면에 ‘몽(夢)’이라는 제목을 붙이고 스스로 ‘몽자류(夢字類) 소설’이라고 말했다. 몽자류 소설은 조선시대에 유행했던 소설 형식의 하나. 고전문학사를 돌아보면, 고려시대 소설은 가전체 소설이, 조선시대 들어와서 마음(心)을 의인화한 천군계(天君系) 소설과 동식물을 의인화한 소설, 그리고 몽자류(夢字類) 소설 등으로 다양화되는 모양새를 보인다. 우리가 잘 아는 김만중(金萬重)의 <구운몽(九雲夢)>, 임제의 <원생몽유록(元生夢遊錄)>, 남영로(南永魯)의〈옥루몽(玉樓夢)〉등이 몽자류 소설이다. 몽자류 소설은 대부분 꿈에 드는 입몽(入夢)과 깨달음을 얻고 꿈에서 깨어나는 각몽(覺夢) 구조로 이루어진다. 꿈에서 깨어날 때 ‘각(覺)’을 얻는다. 꿈에서 깨어보니 생명줄처럼 붙잡고 있던 모든 것들이 일장춘몽(一場春夢), ‘한바탕의 봄 꿈’이라는 것이다.

 

   소설 강남몽을 읽으면 치욕스러운 일제강점기에서 찬탄과 반탁으로 분열된 정부수립, 한국전쟁과 군사정변, 반공이라는 매카시즘 시대를 거쳐 1995년 삼풍백화점이 무너지던 지금에 이르기까지 역사 속의 굵직굵직한 사건을 만난다. 그리고 우리는 불편해진다. 곧고 바른 길이 아니라 흐트러지고 삐뚤어진 길을 걸었다는 자괴감, 그리고 그 역사를 돌이킬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인다. 잘 살아온 줄 알았는데 기껏해야 삶이란 것이 집어등을 따라 움직이는 오징어떼처럼 ‘돈’을 따라 이합집산하는 것이 다였다니! 작가는 제목에 ‘몽(夢)’을 붙임으로써 돈과 권력에 따라 명멸(明滅)하는 삶이 얼마나 헛된 일인가를 보여주고 ‘우리 안팍에 도사린 강남의 꿈을 해체’(최원식 문학평론가)한다. 황석영 스스로 작가의 말을 통해 ‘지금 여기서 벌어지고 있는 사람살이가 어쩌면 꿈과 같이 덧없는’(378p, 작가의 말) 것이라 일갈하고 있다. 세상 사람들이여, 부자가 되고 싶은가? 권력을 갖고 싶은가? 그러나 무엇이 남는가? 덧없음이라.’ 몽(夢)! 몽(夢)! 몽(夢)! 몽(夢)은 ‘강남의 꿈’, 혹은 지금도 진행형인 ‘강남으로의 꿈’이 얼마나 덧없는 것인지를 중의하며, 또 그 욕망 구조에서 탈주하라는 것을 중의한다.


배역(配役)

  일제의 밀정에서 미정보국 요원을 거쳐 대기업가로 성공가도를 달리는 김진, 국밥집 딸로 태어나 고급 요정과 살롱을 거쳐 김진의 후처가 되었다가 무너진 백화점에 묻히는 박선녀, 70년대 강남 개발 시기에 부동산 사기로 돈을 버는 심남수, 그리고 60년대 말 상경해 북창동과 무교동 일대에 터를 잡고 전통적인 주먹에서 사업과 이권을 쫓는 현대적 폭력조직으로 변신해 주먹계를 주름잡는 홍양태와 강은촌…. 이 주인공들의 삶을 드러다보는 일 또한 불편하다. 권력을 따라 다니며 부와 권력을 축적하는 주인공들이 불편하고 이 주인공들이 다시 만들어내는 권력구조도 편하지 않다. 이것이 불편한 이유는 이미 지나간 역사를 되돌릴 수 없다는 불편함이며 돈과 권력을 따라 다니는 이들이 지금의 ‘나’와 무관하지 않으며, ‘지금의 나는 이들이 다르지 않다’는 원론적인 문제에 닿을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 어이, 너 말이야, 인생을 어드렇게 생각하나? / 김창수의 느닷없는 말에 김진은 피식 웃었다. / 이거 원, 별을 보구 점을 치는 페르시아 왕자도 아니구. / 야야, 사는 게 다 욕이야. 거럼 욕이디 않구……. /김창수가 중얼거렸고 김진은 신중하게 술잔을 내려다 보기만 했다. / 너나 나나 머 하구 싶어 정탐 노릇했나? 배운 것도 없구 개진 것도 없이 살자구 하다보니까 기랬다.  … ” (151p~152p)


  그렇다면, 지금의 ‘나’는 ‘욕’된 삶을 살았던 이들의 욕망구조와 다른가. ‘나’ 또한 그렇게 살고 있지 않은가. 이 땅의 대부분의 아버지와 어머니들이 가난하고 힘든 시절을 ‘배운 것도 없구 개진 것도 없이 살자구 하다보니까 그리’(152p) 되었고 그래서 ‘사는 게 다 욕’(151p)이라고 생각하면서도 돈과 권력을 따라다닌 것처럼 지금의 ‘나’ 또한 그렇게 부와 권력을 쫓아다니고 있지 않은가. ‘강남으로의 꿈’을 꾸면서….

 

  황석영은 소설을 구성하면서 소설 속 주인공들이 실제 누구인지 알 수 있도록 이름 몇 자만 뒤틀어 배역을 맡겼다. 박정희 전대통령은 아예 대놓고 실명 그대로 등장시킨다. 소설 속 주인공들은 ‘가공의 인물이 아니라 실제 인물’이며, 이건 가공의 사실이 아니라 실제라고 대놓고 외치고 있는 셈이다. 이 배역들은 이 소설이 허구의 아니라, 실제라는 것을, 과거형이 아니라 현재진행형이라는 중의한다. 뿐만 아니라 이들은 지금 ‘나’, 그리고 ‘우리’라는 것을 중의한다.


‘여기 사람 있어요’


  너무 불편해서 독자들이 절망하는 순간, 황석영은 무차별적인 개발의 상흔이라 할 수 있는 광주대단지의 참혹한 현장을 겪어온 임판수 부부와, 그의 딸로 백화점 점원으로 일하다 붕괴 때 묻혔다가 사투를 벌이는 임정아를 배치해 자신의 메시지를 전한다.

 

     “… 우리 둘이 꼭 살아 나가서 재밌게 지내자구. / 그래요. 사모님. / 앞으로 꼭하구 싶은 게 뭐야? / 돈 벌어서 내 동생 전동휠체어 사줄 거예요. / 그게 비싼가? / 집두 이사가야 해요. 평지에다 공원 근처에 이사 가면 순아를 데리고 나갈 수도 있고… / 그래, 그거 내가 다 해줄 수 있어. (중략) 나 재력 있는 사람야. (중략) / 박선녀가 혼잣말로 중얼거리자 임정아가 천천히 말했다. / 네 동생 휠체어를 왜 사모님이 사주죠? 그러구 집두요. 저는 임시직인데요. 우리 부모님은 시골서 올라와서 여태껏 일만 죽도록 하구두 산동네를 못 벗어났지요. / 그러니까 앞으로 잘살아야지. / 그렇지만……. / 정아는 이어서 단호하게 말했다. / 사모님이 다 해줄 수 있단 말씀 다신 하진 마세요. …”(337p~338p)

 

     산동네에서 어렵게 살면서 걷지 못하는 동생을 위해 휠체어를 사주고 싶은 꿈을 가진 임정아이지만 함께 매몰된 박선녀의 ‘휠체어 뿐만 아니라 집까지도 사주겠다’는 제안을 단호하게 거절한다. 이렇게 소설의 말미에 작가는 부와 권력에 휘둘리지 않는 임정아를 등장시켜 희망을 이야기하고 자신의 메시지를 중의해 전한다. 임정아는 외친다. ‘여기 사람 있어요.

 

     ‘여기 사람 있어요.’ 이 말은 임정아가 구출대원에게 하는 말이지만 황석영 작가는 여기에 다른 뜻도 함께 묻었다. 부와 권력이라는 욕망을 추구하지 말고 ‘사람을 보라’는 황석영이 제안하는 앞으로 우리 삶의 모습이다. ‘봐라. 사람을 보지 않고 돈과 권력만을 욕망하는 삶이란 무너지고 만다. 일장춘몽. 꿈이다. 이제부터라도 사람을 봐라. 여기 사람이 있다’. 이것이 ‘여기 사람 있어요’의 중의며 황석영이 ‘강남몽’이라는 소설을 통해 독자에게 보내보내고 싶은 메시지다.



.......................

 * 이 외에도 소설 <강남몽>에는 작가 황석영이 숨겨 놓은 중의가 많다.  ‘1장 백화점이 무너지다 / 2장 생존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 3장 길 가는 데 땅이 있다 / 4장 개와 늑대의 시간 / 5장 여기 사람 있어요’(소설의 목차).  생존이 충분하지 않다면 또 무엇이 있어야 하는 것인지, 어떻게든 길을 가면 어느 곳이든 땅이 있는 것인지, 혹은 개와 늑대는 무엇을 중의하는지를 살펴보는 것이 이 소설의 또 다른 재미다.  과거 누군가 길을 걸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 우리가 그 길을 가고 있으며 앞으로도 또 누군가 다시 길을 갈 것이다. 길 가는 데 땅이 있겠지만, 이제 돈과 권력이 점철되는 욕망의 땅이 아니라 ‘사람’이 사는 ‘좋은’ 땅에 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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