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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나희덕 「심장을 켜는 사람」 _홍미영

by 홍미영 posted Apr 02, 2015 Views 2822 Replies 0


심장을 켜는 사람

나희덕


심장의 노래를 들어보실래요?

이 가방에는 두근거리는 심장들이 들어 있어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오늘도 강가에 앉아

심장을 퍼즐처럼 맞추고 있답니다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면

피가 돌 듯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하지요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다해 부른다는 게 어떤 것인지 알 수 없지만

통증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지만


심장이 펄떡일 때마다 달아나는 음들,

웅크린 조약돌들의 깨어남,

몸을 휘돌아 나가는 피와 강물,

걸음을 멈추는 구두들,

짤랑거리며 떨어지는 동전들,

사람들 사이로 천천히 지나가는 자전거 바퀴,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와 기적 소리,


다리 위에서 노래를 부르는 동안

얼굴은 점점 희미해지고


허공에는 어스름이 검은 소금처럼 녹아내리고


이제 심장들을 담아 돌아가야겠어요

오늘의 심장이 다 마르기 전에



책_나희덕_심장을 켜는사람.jpg

   우리는 흔히 ‘소설은 머리로 읽고, 시는 마음으로 읽는다.’고 말한다. 정말 마음이라는 것은 있을까?   ‘마음이 안 좋다. 마음이 아프다. 마음이 무겁다.’라고 할 때, 마음은 어디에 있는 걸까? 아마도 심장이 있는 가슴 언저리를 짚는 사람들이 많을 것이다. 하지만 과학자들은 이렇게 말할 것이다. “우리가 마음이라고 생각하는 것, 감정이라고 느끼는 것, 모두 사실은 뇌가 하는 일 중에 하나입니다. 마음이라는 것은 물리적으로 존재하지는 않습니다.”   사소한 상식이지만 이 시를 읽을 때는 이런 상식쯤은 저 멀리 던져버리는 것이 좋겠다.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심장을 악기처럼 연주할 수 있다고? 바이올린처럼, 첼로처럼, 콘트라베이스처럼? 그것도 심장에서 흘러나오는 노래는 라디오처럼 스위치 하나로 끄고 켤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동맥과 동맥을 연결하고, 음 하나하나에 집중하며 섬세하게 조율해야 비로소 아름다운 선율이 흘러나온다니! 시인의 상상력과 그 표현의 구체성에 감탄이 절로 나온다.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되지요.

   건기의 심장과 우기의 심장이 다르듯 , 아침의 심장과 저녁의 심장이 달라서 아마 그때마다 다른 노래들이 만들어 질 것 같지만 두근거리는 것들은 다 노래가 된다고 한다. 시인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에는 무엇이 있을까? 시인들만 두근거리는 것은 아닐 것이다. 우리 같이 평범한 사람들도 심장을 두근거리는 게 하는 것들은 많다. 촉촉하게 내린 봄비 뒤에 봉긋하게 올라온 목련 봉오리를 보았을 때, 엄마가 뱃속 아가의 태동을 처음 느꼈을 때, 퇴근 시간 쏟아지듯 몰려나오는 만원 지하철 속에서도 딱 한 사람만 크게 보일 때, 아버지의 낡은 구두 뒤축을 보았을 때, 시린 겨울, 신문지 한 장에 의지한 노숙인을 보았을 때, 우리의 심장은 두근거린다. 하지만, 우린 이런 두근거림을 너무 쉽게 놓쳐버리고 너무 쉽게 잊어버리는 건 아닌지...

   시인은 이런 두근거림을 노래로 만드는 사람일 것이다. 심장에서 피가 돌듯 시인에게서 시가 돌게 하는 것이다. 이 시, 이 노래는 멀리 멀리 퍼져나가 웅크린 조약돌을 깨어나게 하고, 행인들의 발걸음을 멈추게도 하고, 자전거 지나가는 소리, 멀리서 들려오는 북소리 기적소리와 섞여 자연스럽게 하나의 아름다운 풍경이 된다.  저녁 어스름이 내리면, 거리의 악사는, 심장을 다해 노래했던 시인은, 심장들을 다시 담아 돌아가려고 한다.


  이제 심장들은 담아 돌아가야겠어요

  심장이 다 마르기 전에.

  이 마지막 구절에 가슴이 뜨끔했다. 나는 어떤 심장을 가지고 있는가? 시인이 염려하는 것처럼, 팍팍하고 메마른 심장을 가지고 있는 것은 아닐까? 그래서 심장을 두근거리게 하는 것들을 만나고도 너무나 쉽게 놓쳐버리고 때론, 두근거리기조차 못하는 게 아닌지 말이다. 가만히 가슴에 손을 대어 본다. 살며시 가슴을 어루만져 보았다.


  ‘나는 심장을 켜는 사람’

  나의 심장을 켜면, 어떤 선율이 흘러나올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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