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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알튀세르 『철학과 맑스주의』 : 이데올로기(idelogie)

by 이우 posted Feb 17, 2020 Views 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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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_철학과맑스주의01_900.jpg 
  (...) 정치의 중심과 정치의 전략을 파악하고 식별하고 지정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정치는 어디에나 있다. 공장 안에도 있고, 가족 안에도, 안에도 있으며, 멍청이 타조와 같은 우리의 자유주의자들의 투덜거림에도 불구하고 그처럼 쇠퇴하고 국가 안에도 있고, 심지어 혼란으로 가득 찬 교회 안에도 있다. 교회는 혼란으로 가득 차 있는데, 특히 각종의 교조주의적 형태의 종교정신을 포함하여 종교정신의 믿기지 않는 부흥에도 불구하고, 그리고 교황 전용 방탄차를 타고서 존재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는 민족 교회들을 찾아 순회한 폴란드인 교황의 절망적인 여행에도 불구하고 말이다(민족 교회들이 존재 이유를 상실해 가고 있는 것은, 이 교회들은 위계제에 반대하는 투쟁, 굶주리고 착취당하고 고문당하는 빈민들 속에서 '신의 백성'을 발견하기 등과 같이 민족 교회로서의 존재 이유와는 다른 존재 이유들을 드러내기 때문이다).

  따라서 더 이상 정치적 심급은 없고, 지정가능한 정치도 없다. 바로 그러한 이유로 우리의 현 세기는 동에서와 같이 서에서도 대중의 총체적 탈정치화의 세기이다. 그것을 알아야 한다. 정치는 지구적 활동 무대의 자율적이고 종별적인 '심급'으로서 추적된다. 그렇다면 정치는 어디로 도망치는가? 물론 경제적 생산 속으로, 교환, 마케팅, 연구와 조사, 현재와 미래의 전자공학 등의 속으로 피난한다. 미국의 위성은 이제부터는 몇 미터 오차로 사진을 찍어 매순간 소련과 다른 나라들의 곡물 수확 전개상항을 관찰하여 6개월 전에 정확히 총수확량을 예상한 다음 소련이나 서방 국가들에게 10개월 후에 소련이 미국과 프랑스에 주문할 곡물량의 합계를 제시할 수 있다는 것을 아는가? 이제는 모든 것이 이 단계에 와 있다. 우리는 놀라움의 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아직도 멀었다.) 따라서, 정치는 어디로 도망치는가? 이제 사람들은 이렇게 말한다. 커뮤니케이션 속으로, 그 이용, 그 조종 속으로 도망친다고. 정보와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비물질적인' 것들 속으로, 정보 전쟁과 커뮤니케이션 전쟁 속으로, 그리고 그것들을 지휘하는 예비부품의 전쟁 속으로 피한단다고, 이는 틀린 말이 아니다. 그러나 그곳이 전반적인 운동을 이해하고 역사적인 전략을 창립할 곳인가?*

  정치가 사라졌다면, 그 대신 이데올로기라 부르는 것이 전례 없는 발전을 겪는다. 이데올로기가 정치를 대체한다고 말할 수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특징(맑스가 이를 잘 말했고, 프랑수아 퓌레는 그의 훌륭한 책 『프랑스 혁명을 생각한다』에서 이 점을 제대로 보았다)를 놓고서 정치란 환상, 이데올로기일 뿐이라고 말할 수 있다. 자연히, 모든 이데올로기가 그렇듯이, 정치의 이데올로기는 주어진 확실한 것들을 암시(a-llusion)를 통해 승인한다면, 그것들을 어떤 필연적인 환상(illusion)을 통해 오인한다. 나는 예전에 이것을 얼마간 자세히 증명하려 한 바 있다. 아마 이것은 1968년과 이후의 좌익운동과 이 좌익운동을 체험하고 실천한 모든 이들의 비극적 환상을 이해하게 해줄 것이며(모든 이데올로기는 특정한 실천적 효과들을 지니기 때문이다), 또한 이것은 다음과 같은 환상, 맑스주의는(그 20세기의 형태 속에서, 그리고 그 레닌주의적 형태 속에서) 우리의 현대적 문제들에 적용된 유일한(la) 정치적 해결이리고 그토록 깊이, 그토록 수없이 체험한 저 환상을 이해하게 해 줄 것이다.

  정치의 환상 또는 환상의 정치인 이데올로기에 주목해야 한다. 우리는 확실히 '전략적 중심'으로서의 정치가 완전히 사라진 시대에 살고 있지만, 정치의식(나는 공공의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내가 알 바 아니다)이 정치를 어떤 형태들로서 정의하는지 살펴보아야 한다. 정치의식은 정치를 정직하고 '비정치가적인' 현실적 정치, 정상배들의 뒷거래가 없는 정치로서 정의한다. 그런데 이 정의는 순수하고 단순한 하나의 부정(否定)이다. 좌·우파를 막론한 모든 정당들의 모든 실천들이 이를 명백히 보여 준다. 만약 이 점이 잘 드러나지 않는다면, 직접적인 보조금을 통해 또는 특히 시·군들의 수많은 위장된 발주들을 통해 얻어 낸 특전 따위를 이용해 재원을 뒷거래하는 현실을 발견하는 데는, 거죽을 약간 긁어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정상배 정치를 반대한다고 선언하는 바로 그 정치인들이 잔뜩 연기를 해서 이 비열한 현실을 겉치레 이데올로기로 치장하고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데는, 거죽을 약간 긁어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이는 진실이며, 이 점에서 보드리야르는 옳다.

  그러나 그는 이것이 마키아벨리 이래로 있어 온, 실은 그보다 더 전부터 있어 온 오래된 전통이요 정치적 필연이라는 보지 못한다. 따라서 또한 여세를 몰아서 코미디언들(레이건)과 심지어 가수들(몽탕)까지 등장하는데, 이들은 기껏 최신의 진부한 짓거리를 되풀이함으로써 출현할 뿐이다. 왜 전문직업을 지닌 이러한 사람들인가? 왜냐하면 그들은 코미디노래를 통해 명성을 얻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명성을 이용하지 않는 정치가라면 이는 천치일 뿐이다. 왜냐하면 정치가들은 한낱 곡마단의 인물들, 또는 텔레비전의 인물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이 이데올로기에서 놀라운 것은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주제가 거기서 지배한다는 것이다. 『작은 국가』가, 그리고 경제구조들의 모든 현실에 의해 반박된, '자유주의'로의 반동적 복귀가 그것이다. 실상 이 자유주의기업을 할 자유의 증대라는 단 하나의 의미만 지닐 뿐이다. 누구를 위해서? 트로스트들과 그들의 하청인들을 위해서, 즉 가장 파렴치한 현대적, 착취형태들을 위해서, 결코 고용의 유연성 앞에서 수세기에 걸친 아주 길고 힘겨운 투쟁으로 쟁취한 사회보장을 공식적으로 박탈당하고 있는 노동자들을 위해서가 아니다. 적어도 이 이데올로기는 정치적 중심과 정치적 전략을 대체할 수 있을 하나의 중심과 전략을 지니고 있지 않을까? '예'이며 '아니오'이다. 그 진정한 중심에 그 외부에, 즉 경제 속에 있기 때문에 '예'라고 할 수 있지만, 경제의 무정부 상태 경제에 지정가능한 중심이 부재한다는 사실로 인하여 이 이데올로기의 주장은 전적으로 반박된다. 이 이데올로기는 자신에게 전적으로 낯선 이 현실에 대해서 허위적으로 정치적인 담론의 환상만 유지할 뿐이다.

  권력? 그 또한 사라졌다. 우리에게 문제가 되는 것은 다만 푸코적 의미의 미시권력일 뿐인데, 여기서 역설은 푸코가 미시권력이 절대군주제 및 계몽 독재의 정치권력의 끔찍하게 현실적이고 위압적인 구조 속에 기입되어 있던 한 시기를 놓고 미시권력의 이론을 만들어냈다는 것이다. 지금 그의 역사적 오해가 전적으로 상이한 맥락에서 부활하고 있다.

  자연히 이렇듯 몹시 함축적이고 배제적인 모든 현실은 정치와 권력에 대한 냉정한 작업들과 아카데믹한 이론들을 야기한다. 즉 대학국립과학연구소전문 직위들의 존재가 정당화되어야 한다. 정치학자들과 법학자들이 성찰하고 글을 써봐야 소용이 없다. 그들의 영향이 얼마나 되겠는가? 누구도 그들의 권력에 대해 환상에 빠지지 않는다. 과학적인 또 도덕적인 권력조차 더 이상 없다. 오늘날 그것의 가장 놀라운 지표는 과학자들이 별 규제 없이 연구, 발견, 응용을 할 수 있는 가운데 스스로 방향을 능력을 잃고서 철학자들에게 기대하고 있는 윤리적 위임들이다.

  요약해 보자. 내가 "경제적, 정치적, 이데올로기적 중심이 더 이상 없다"라고 말할 때, 이 말은 또 다시 다음과 같은 것을 뜻한다. 행동의 역사적 전망들을 그려낼 수 있는 '전략적 중심'은, 즉 정의할 수 없으면서도 누구나 그에 대해 말하는 '사회의 기획'은, 정치적 전술과 정치적 행위로 정의되기에 합당한 전략은, 더 이상 없다는 말이다. 우리는 어디로 가는가? 아무도 모른다. 그 실제 구조들이 전혀 알려지지 않은 세계에 직면하여 그 누구도 최소한의 전략이라도 정의할 상태에 있지 않다. 교조적인 종교적 갈등들 사이에서 찣긴 인류 자체를 통일하기 위해 '신공국'의 기초를 쌓도록 해주는 이는 전혀 없다.

  이 점에서 불행히도, 그리고 그람시의 어린애 같은 공식적 희망에도 불구하고, 마키아벨리가 우리에게 더 이상 절대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은 너무나 뚜렷하다. 그의 진짜 유물론적인 영감, 그것 없이는―"역사에 대해 자기 이야기를 하지 않고", "낯선 부가물 없이", 즉 현실을 은폐하는 전적으로 낡아 빠진 거대한 이데올로기의 층을 "닦아 내면서"(푸코)―현실 자체에 대해 생각하는 것이 전혀 불가능할 그러한 영감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예전에 어느 이름없는 데카르즈주의자가 말했다. "우리는 거대한 공기층 아래에서 살고 있지만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한다"고. 오늘날 우리는 수미일관하지 못하고 모순적인 엄청난 이데올로기 층 아래에 살고 있으며, 자연히 그 무게를 느끼지도 못한다. 이데올로기들의 연기자들과 인민대중들에게 대대적인  환상을 품게 할 뿐 아니라 도한, 그리고 특히, 그 무게를 느끼지 못하게 하는 것은 모든 이데올로기의 속성 그 자체이다. (...)

  ...........................................

  * 이것은 특히 보드리야르와 같은 포스트모더니스트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알튀세르는 자서전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최초의 '머리카락 철학자', '손톱 철학자'―헤겔철학의 해체에 대해 맑스가 썼듯이―가 맑스주의는 죽었고 영원히 매장되었다고 생각하는 시기에, 소위 포스트모더니즘, 즉 거기서는 다시금 '물질이 사라졌고' 그 자리에 커뮤니케이션이라는 '비물적인 것들'이 들어 섰다는 저 포스트모더니즘의 미명 하에, 믿을 수 없을 정도의 절충주의이론적 빈곤의 토대 위에서, 가장 '볼 일 없는' 사고들(자연히 늘어난 지표들, 새로운 테크놀로지의 지표들을 등에 업고 나오는 이 새로운 시덥잖은 이론들)이 판치는 시기에, 나는 여전히 맑스에 깊은 애착을 가지고 있다. 물론 내가 집착한 적이 없는 그의 자구(字句)가 아니라 그의 유물론적 영감에 말이다."( 『미래는 지속된다』, 252쪽)

 - 『철학과 맑스주의ㅡ우발성의 유물론을 위하여』(지은이: 루이 알튀세르 · 옮긴이: 백승욱, 서관모 · 중원문화 · 2017년 · 원제 : Filosofia y Marxismo) p.198~2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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