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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지젝의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 : 자본주의의 딜레마④, 부채

by 이우 posted Jan 19, 2020 Views 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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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jpg


 (...) 오늘날 자본주의는 유령에 쫓기고 있다. 유령은 부채라는 이름의 악령이다. 자본주의 강대국은 하나같이 이 유령을 쫓기 위한 숭고한 동맹을 결성했다. 하지만 정말 부채를 정리하고 싶을까? 마리치오 라자라토*국가에서 개인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관행과 분야의 모든 범위에서 부채가 존재한다고 세밀하게 분석했다. 헤게모니적인 신자유적인 이념은 시장 경쟁의 논리를 사회 전반에 확대시켰다. 예를 들어서 보건과 교육, 심지어 정치적인 결정(투표)까지 개인이 각자의 자본을 활용해서 투자로 여겨진다. 이런 점에서 근로자는 노동력이 아니라 일자리 사이를 이동하거나 각자의 자본적인 가치를 증가 혹은 감소시키면서 훌륭하거나 형편없는 투자 결정을 내리는 개별 자본으로 인식된다.

  개인이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업가'라는 새로운 인식은 상대적인 소극성과 규율 조직(학교, 공장, 교도소 등)의 울타리, 인구를 생물과 정치적인 대상으로 보는 시각(복지국가에 의한 시각)에서 벗어난 것이다. 개인이 자유시장에서 선택을 내리는 자율적인 존재, 예를 들어서 '각각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업가'로 고려했을 때, 이들을 어떻게 통치해야 할까? 현재의 통치는 시민들이 자율적인 의사 결정을 내리는 환경에서 실행된다. 그 결과 위험은 기업과 국가에서 개인으로 이전된다.

  사회정책이 개인화되고, 사회가 제공하는 보호망이 시장의 기준에 따라서 구성되면서 역시 개인화되면, 개인이 당연히 받아야 하는 보호는 조건이 된다. 또한 보호는 개인에게 할당되고, 개인들은 각자의 행동을 평가받게 된다. 대다수의 사람들에게 '각자의 운명을 결정하는 기업가'가 된다는 것은 적절한 자원과 권력 없이 위험에 대응하는 능력을 뜻한다. (중략)

  개인들이 전보다 더 적은 급여를 받고 사회적인 서비스도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면서 더욱 빈곤해지면, 신자유주의는 부채와 지분을 통해서 보상을 제시한다. 그래서 급여와 지연된 급여(연금)는 더 늘지 않지만, 사람들은 개인 신용을 이용할 수 있게 되고, 지분으로 구성된 포트 폴리오를 통해서 은퇴를 준비하도록 유도된다. 이들은 이제 주거의 권리를 보장받지 못하고, 더 나은 교육의 권리는 얻지 못하지만 학자금 대출을 이용할 수 있게 되었고, 위험에 대한 상호적이고 집단적인 보호는 받지 못하지만 개인 보험에 가입하도록 권유를 받는다. 채무자와 부채의 연결 고리는 이런 식으로 존재하는 모든 사회적인 관계를 대체하지 않고 그 위에 덧씌워진다. 근로자는 부채가 있는 근로자가 되고(고용의 대가로 기업의 주주에게 돈을 갚아야 한다), 소비자도 부채를 지며, 시민도 부채를 짊어지게 되면서, 국가 부채에서 일정 몫을 담당한다.

  라자라토는 니체가 <도덕의 계보(Genealogy Morals)>에서 설명한 아이디어에 의존하고 있다. 니체의 아이디어는 사회가 원시적인 근원에서 멀어짐에 따라, 그룹에 대한 부채 상환을 약속 및 분별할 수 있는 사람을 생산하는 능력에 따라 사회를 구분했다. 이런 약속은 미래를 향한 특정 종류의 기억에 근거를 두고 있으며('당신에게 빚을 지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한다. 따라서 당신에게 빚을 갚을 수 있는 방식으로 행동할 것이다'의 의미) 그에 따라 미래의 행동을 통제한다. 좀 더 원시적인 사회 그룹에서는 부채에 제한이 있었고, 따라서 부채에서 벗어나는 것이 가능했다. 하지만 제국과 단일신교의 시대가 되면서, 사람들의 사회적인 부채나 신에게 빚진 부채는 실제적으로 상환 불가능해졌다. 이런 메커니즘을 완성시킨 것은 다름 아닌 기독교였다. 기독교에서 말하는 전지전능한 신은 무한한 부채를 의미하게 되었고, 덕분에 부채를 상환하지 못하는 사람들의 죄의식내면화되었다. 이들이 부채를 갚을 수 있는 유일한 방식은 신과 교회에 복종하는 것 뿐이다. (중략)

  부채를 짊어진 개인은 급여를 받고 노동을 하거나 일을 하면서 부채 상환을 약속할 수 있는 대상을 생산하지만, 한편으로는 부채를 가지고 있다는 죄의식을 수용한다. 그런데 부채에는 시간적인 제약이 있다. 부채를 상환하기 위해서 행동을 예측하고, 규칙적으로 만들고, 계산 가능하게 만들어야 한다. 그 결과 미래에 혁명을 일으킬 가능성은 줄어든다. (중략) 부채를 짊어진 개인은 끊임없이 누군가의 확인을 통해서 평가를 받는다. 일터와 신용 평가, 개인적인 인터뷰에서 성과를 칭찬받거나 지목의 대상이 되고, 그 결과에 따라 사회로부터 혜택을 받거나 신용을 얻게 된다. (중략)

  현재의 글로벌 자유주의는 채무자와 채권자의 관계를 극단적으로 내모는 동시에 약화시킨다. 부채는 어이가 없을 만큼 과도하다. 그래서 지금은 충격적인 단계가 되었고, 신용이 합의되면 채무를 갚지 않는 것도 예측 가능하게 되었다. 이제는 부채가 통제와 권위의 수단으로 인정되고 있다. 그래서 채무의 제공자와 관리자는 채무 국가가 마치 전혀 죄책감을 느끼지 못한 듯이 비난하고, 결백하다고 의심한다. 그리스에 긴축재정을 요구하면서 지속적인 압박을 가하고 있는 유럽연합을 상기시켜 보자. (...)

- 『자본주의에 희망은 있는가』(슬라보예 지젝·문학사상사·2017년·원제 : Trouble in Paradise, 2014년) p.72~77


  .................................
  *마리치오 라자라토 : (Maurizio Lazzarato. 이탈리아 출신의 사회학자이자 철학자. 1980년대 초에 프랑스로 망명, 파리 제8대학에서 커뮤니케이션 패러다임, 정보기술, 비물질노동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자율주의 잡지 『뮐띠뛰드』(Multitudes)지의 창간 발기인이자 편집위원이다. 비물질노동, 임금노동의 종말, ‘포스트사회주의’ 운동, 인지자본주의와 그 한계, 생명정치·생명경제 개념 등이 연구 주제이다. 저서 『부채인간』(메디치미디어, 2012)은 한국어를 포함하여 11개 언어로 번역되었고, 2013년 서울 일민미술관의 <애니미즘> 전시회에 시각예술가 안젤라 멜리토풀로스와 함께 작업한 영상 작품 <배치>와 <입자들의 삶>이 전시되었고 작품 소개를 위해 방한하기도 하였다. 저서로 『비물질노동과 다중』(공저, 갈무리, 2005), 『기호와 기계』(갈무리, 2017), 『사건의 정치』(갈무리, 2017), 『부채통치』(Gouverner par la dette, 갈무리, 근간), 『정치의 실험들』(Experimentations politiques, 갈무리, 근간), 『발명의 힘』(Puissances de l’invention, 2002), 『불평등의 정부』(Le gouvernement des inegalites, 2008), 『전쟁과 자본』(공저, Guerres et capital, 2016) 등이 있다. 국내에서는 『부채인간 - 인간 억압 조건에 관한 철학 에세이』(마우리치오 랏자라또 ·메디치미디어 ·2012년)이 번역되어 출판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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