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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 : 고독한 흄

by 이우 posted Dec 26, 2018 Views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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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앞에 놓인 철학의 저 끝없는 바다에 뛰어들기에 앞서, 나는 현재 자리에 잠시 머무르며 내가 떠맡은 항해를 숙고하고 싶어하는 나 자신을 발견한다. 그 항해에서 다행스러운 결론에 이르는 데에는 고도의 기술과 근면성이 필요하다. 그러자 내가 이런 사람처럼 느껴졌다. 즉 이제까지 많은 모래톱에 좌초되고 작은 포구를 지나며 배의 난파를 가까스로 피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풍파에 시달려 물이 스며드는 배를 타고 바다로 떠나는 무모한 용기를 지닌 사람, 또 이런 불리한 여건 아래서도 지구를 일주하려고 생각할 만큼 야망을 지닌 사람. 과거의 오류와 혼란들에 대한 나의 기억은 내 미래를 자신할 수 없도록 한다. 내가 탐구하면서 반드시 써야 할 직능들의 열악한 조건과 결점 그리고 장애 등은 나의 불안을 증가시킨다. 이 직능들을 보완하거나 개선할 수 없다는 것 때문에 나는 거의 절망에 빠진다. 광활하게 펼쳐진 끝없는 대양에서 굳이 배를 저어가기보다 오히려 현재 내가 있는 불모의 바위에서 죽고 싶은 마음이 들게 된다. 나의 위험을 보고 나는 갑자기 슬픔에 휩싸인다. 다른 무엇보다도 이러한 정념에 온통 사로잡히게 되는 것은 흔히 있는 일이다. 현재의 주제가 나에게 풍부하게 제공하는 비관적인 모든 반성과 함께 나는 절망을 삼킬 수밖에 없다.

  나는 처음에, 나의 철학에서 내가 처한 암담한 고독 때문에 두렵고 난처했다. 그래서 나 자신을 사회동화되고 화합될 수 없어서 모든 인간적 교류에서 추방되어 완전히 버림받고 소외된 채로 남겨진 괴물이라고 생각해 보았다. 나는 가능하다면, 은신안락을 위해 군중 속으로 뛰어들 것이다. 그렇지만 그 불썽사나운 모습으로 사람들과 어울리도록 나 자신을 설득할 수는 없다. 나는 따로 모임을 만들기 위해 다른 사람에게 나와 손잡자고 부탁하지만 나에게 귀기울이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사람들마다 거리를 두고, 사방에서 나에게 몰아치는 저 모진 비바람을 두려워한다. 나는 모든 형이상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그리고 심지어 신학자 등과 같은 이들의 증오에 나 스스로를 드러냈다. 그렇다면 내가 모욕을 견뎌야 하는 것은 당연하지 않을까? 나는 그들의 체계를 부정한다고 단언해 왔다. 그렇다면 그들이 나의 체계와 나의 인격에 증오를 나타내는 것도 당연하지 않겠는가? 바깥을 둘러보면, 나는 어느 곳에서나 논쟁, 모순, 분노, 중상, 비방 등을 예견한다. 눈길을 안으로 돌리면, 의심무지만 발견할 뿐이다. 온 세상이 나를 반박하고 부인하는 데 힘을 모으고 있다. 더구나 나의 약함 때문에, 다른 사람들의 찬사들로 내 의견들이 지지받지 못한다면, 나는 그것들이 모두 흐트러져서 저절로 와해되리란 것을 느낀다. 나는 걸음을 옮길 때마다 망설이며, 새로운 반성을 할 때마다 내 추론의 오류와 불합리성을 두려워하게 된다.

  나 자신 고유의 숱한 결함과 아울러 인간 본성의 공통적 결함을 그토록 발견하고도, 나는 무엇을 믿고 그처럼 대담한 모험을 감행할 수 있을까? 비록 행운의 신이 마침내 나를 진리의 발자취를 따라 안내한다 하더라도, 나는 어떤 기준으로 진리를 구별할 수 있을까? 가장 치밀하고 엄격하게 추론한 다음에도 나는 내가 그것에 동의해야 할 이유를 제시할 수 없다. (중략) 그 때문에 나는 모든 신념과 추론을 기꺼이 거부할 준비가 되어 있으며, 어떤 의견도 다른 의견보다 더 개연적(蓋然的)이거나 그럴 듯하게 볼 수 없다. 는 어디 있으며 무엇인가? 나는 나의 존재를 어떤 원인에서 이끌어 내는가, 그리고 장차 어떤 상태로 돌아가는가? 나는 누구의 호의를 구하며, 누구의 분노를 두려워 하는가? 나를 둘러싼 것들은 무엇들인가? 나는 누구에게 영향을 미치며, 나에게 영향을 미치는 사람은 누구인가? 나는 이 모든 질문들로 말미암아 혼란스럽다. (중략)

  그러므로 나는 놀이와 친구들에게 싫증을 느끼고 방에 틀어박히거나 강변을 홀로 거닐며 몽상에 잠길 때, 내 정신이 집중됨을 느낀다. 그리고 독서와 대화의 과정에서 부딪혔던 그 많은 논쟁의 주제에 눈을 돌리려는 마음이 자연스럽게 생긴다. 나는 도덕적 선악의 원리, 정부의 본질과 기초, 나를 움직이고 지배하는 여러 정념과 성향의 원인 등에 정통하고 싶은 호기심을 억누를 수 없다. 내가 거북하게 생각하는 것은, 어떤 원리에 기초하는지도 모르면서 어떤 대상에는 찬동하고 다른 대상에는 반대하는 것, 어떤 것은 아름답다고 하면서 다른 것은 흉하다고 하는 것, 참과 거짓 그리고 사려 깊음과 우둔함을 결정하는 것 등이다. (중략) 다른 일이나 오락에 집착함으로써 그런 생각을 떨쳐 버리려고 애쓴다면, 나는 내가 즐거움을 잃어버린 사람이라고 느끼게 될 것이다. 그리고 이것이 내 철학의 원인이다. (중략)

  개인적으로, 몇몇 측면에서 철학자들의 사변에 다른 전환점을 제공함으로써, 오직 철학자들만이 확증과 확신을 기대할 수 있는 모든 주제들을 그들에게 뚜렷이 지적해 줌으로써, 지식의 진보에 조금이나마 기여할 수 있었으면 하는 것이 나의 유일한 희망이다. 확실히 인간의 본성은 인간에 관한 유일한 학문이다. 더구나 인간의 본성은 여태까지 가장 무시되어 왔다. 이것을 내가 조금만 더 유행시킬 수 있다면, 나는 그것으로 만족할 것이다. 때때로 나를 억누르던 나태 속에서 나의 기질을 활기있게 하는 데, 또 그 같은 울분에서 나의 기질을 가다듬는 데에는 이런 소망이 도움이 되었다. 독자가 자신을 이처럼 느긋한 성질의 소유자라고 생각한다면, 앞으로 나의 사변(思辨)을 따라와 주길 바란다. 그렇지 않은 독자는 내가 마음의 성향에 따라 철학에 진심할 수 있는 명랑한 기분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 주길 바란다. 이처럼 태평스럽게 철학을 연구하는 사람의 행동은, 스스로 철학을 좋아한다고 느끼면서도 완전히 철학을 거부할 정도로 회의와 망설임에 압도된 사람의 행동보다도 훨씬 더 회의적이다. 참된 회의론자는 자신의 철학적 확신 뿐만 아니라 철학적 회의에 대해서도 머뭇거린다. 따라서 회의확신 때문에 스스로 나타나는 소박한 만족을 결코 뿌리치지 않을 것이다.

  회의적 원리에도 불구하고 우리의 성향이 대체로 가장 정교한 철학적 탐색에 탐닉하는 것만으로 만족해서는 안 된다. 우리가 개별적 순간에 개별적 문제들을 조망하는 시각에 따라 바로 그 개별적 문제들에서 우리에게 명확하고 확실한 기분이 들도록 하는 그 성향에 굴복해야 할 것이다. 한 대상을 엄격하고 완전하게 조망하는 데서 발생한는 확증을 경계하고 그토록 자연스러운 성향에서 우리 자신을 점검하기보다는, 오히려 모든 검토와 탐구를 억제하는 편이 쉽다. 그러한 때 우리는 회의주의를 잊기 쉬울 뿐만 아니라, 신중하기까지도 망각하기 십상이다. 그리고 우리는 그것은 명증적(明證的)이다, 그것은 확실하다, 그것은 부정할 수 없다와 같은 술어를 쓰는데, 대중을 당연히 존경한다면 그런 표현에 조심해야 한다. 아마 나도 다른 사람들처럼 이런 잘못을 저지렀을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 나는 그 항목에서 제기될 수 있는 어떤 반박도 중단해 주길 요청한다. 그러한 표현들은 당면한 대상에 대한 시각들이 나에게 강요했던 것으로, 독단적 정신도 내포하지 않으며, 나 자신의 판단을 과시하는 관념도 포함하지 않았다고 단언한다. 이 표현들은 내가 감지하고 있듯이 누구에게도 어울리지 않는다. 특히 누구보다도 회의론자에게 어울리지 않는다. (...)

  -  『인간이란 무엇인가-오성·정념·도덕 본성론』(지은이 : 데이비드 흄 · 옮긴이 : 김성숙 · 동서문화동판(동서문화사) · 2009년 · 원제 : Treatise of Human Nature, 1740), <제1편 오성>, <7. 본편의 결론>, p.287~29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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