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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자연주의 철학자들 · 2 : 에피쿠로스, 루크레티우스, 그리고 디오게네스

by 이우 posted Sep 18, 2018 Views 668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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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객관적 진리에 집착하는 한 지식은 모조리 헛소리일 뿐이다. "진리를 묻기 전에 누가 진리를 묻는지를 물어라.' 이런 니체의 반지식적 입장은 이미 2천년 전에 배태된 것이다. 말이 나온 김에 덧붙이자면 "신은 죽었다"는 말도 니체가 원조는 아니다.  회의주의가 지배하는 지적 풍토 속에서는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를 거치며 점점 구체화된 신의 존재마저도 유보될 수밖에 없었다. 카르네아데스(Karmeades, 기원전 214?~129?)는 난세를 맞아 신흥 지적 상품인 신의 품에 안주하려는 사람들에게 신 같은 건 없다고 일침을 날렸다. 그렇다면 그는 아예 신이 없다는 걸 증명해 주겠다며 소매를 걷어 부친다.

  만약 이 있다면 무형의 존재이든가 유형의 존재일 것이며, 전능한 존재이든가 능력에 한계가 있는 존재이든가 둘 중 하나일 것이다. 신이 무형이라면 감각을 통해서 지식을 구할 수밖에 없는 인간은 결코 신의 존재를 결코 알 수 없다. 또 신이 유형이라면 다른 사물들처럼 생성과 소멸이 있을 테고 변화를 겪을 텐데, 그런 성질은 영구불변이라는 신의 속성에 맞지 않는다. 신의 능력도 문제가 된다. 신이 전능하다면 온각 악과 비행이 난무하는 이러한 난세를 볼 때 도덕적인 존재가 아님은 분명하다. 신의 능력에 한계가 있다면 너 높은 힘에 예속되어 있다는 이야기인데, 그것은 세상만물을 관장한다는 신으로서는 자격 미달이다. 아무리 몸부림쳐봐도 신은 꼼짝없이 덪에 걸려버렸다.

  신이 없다니...... 신을 지표로 삼는 사람들에게는 억장이 무너지는 소리다. 그렇다면 뭘 믿고 뭘 위해 살아야 하나? 해결책은 두 가지밖에 없다. 신에 의지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살거나, 아니면 묵묵히 고통을 견디거나 둘 중 하나다. 앞의 방법을 선택한 사람이 에피쿠로스(Epicurus, 기원전 341?~270?)이다. 신을 대신할 만한 기준을 찾아라. 에피쿠로스가 생각한 기준은 쾌락이었다. "괘락은 축복받은 삶의 시작이요 끝이다." 쾌락이 바로 선이다. 맛있는 음식이 주는 쾌락, 즐거운 노래에서 얻는 쾌락, 아름다운 모습에서 느끼는 쾌락이 없다면 행복은 대체 어디에 있으며 선이란 무엇이겠는가? 에피쿠로스는 이렇게 반문하면서 식욕에서 모든 선이 시작된다고 보았다.

  그 때문에 에피쿠로스는 후대에 쾌락주의자라는 별명을 얻었지만 만약 자기 별명을 알았다면 펄쩍 뛰었을 것이다. 그의 학설이 쾌락주의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취하게 된 것은 그를 왜곡한 로마인들의 탓이 크다. 에피쿠로스의 생애를 봐도 사실은 부정적인 쾌락주의와는 거리가 멀다. 그는 내내 절제 속에서 소박하게 살았고 아테네의 유명한 정원에 학교를 세워 산책하면서 고상한 대화를 즐겼다. 비록 만년은 우아하게 보내지 못하고 오랜 투병 생활에 시달렸으나 그때도 고매한 학자로서의 풍모와 위엄을 잃지 않았다.

  그가 강조한 쾌락은 육체적 쾌락이 아니었다. 물론 쾌락을 행복의 나라로 가는 지름길이라고 여긴 것은 사실이지만 그는 쾌락을 추구하는 능동적 쾌락을 주장한 게 아니라 소극적 의미의 쾌락, 즉 고통을 피하는 데서 진정한 쾌락을 찾았다. 그가 "고문대 위에서도 행복할 수 있다"고 주장한 근거는 바로 거기에 있다. 헹복의 수학적 공식이 성취/욕망이라면 에피쿠로스는 분자인 성취를 늘리는 게 아니라 분모인 욕망을 줄임으로써 행복의 양을 늘리는 방안을 체택했다(그래서 그는 육체적 쾌락보다 정신적 쾌락을 더 중시했으며, 가장 지혜롭고 안전한 쾌락은 우정이라고 보았다). 고통을 피하고 쾌락이 충족된 차분한 상태를 그는 아타락시아(ataraxia), 즉 평정한 상태라고 불렀다.(...)

  쾌락을 중시한데서 짐작할 수 있듯이 에피쿠로스는 기본적으로 유물론자였다. 이 점에 착안하여 젊은 시절에 마르크스는 <데모크리토스와 에피쿠로스 자연철학의 차이>라는 제목의 박사학위 논문을 썼다. 일찍이 데모크리토스도 감각적이고 일시적인 쾌락을 넘어서 영원하고 평정한 쾌락을 주장했으며, 지적인 삶을 영위하는 사람들만이 그런 쾌락을 누릴 수 있다고 말한 바 있다. 이런 관점은 에피쿠로스와 정확히 일치한다. 또한 에피쿠로스데모크리토스처럼 세계가 원자로 이루어졌다고 보았으므로 두 사람의 사상은 대체로 동색이다.

  그러나 에피쿠로스는 세계가 원자만이 아니라 빈 공간으로도 이루어졌으며, 원자도 불멸이 아니라 생겨나고 사라지는 물질이라고 보았다. 세계가 원자로만 가득 차 있다면 운동 자체가 불가능하다. 원자는 빈 공간을 따라서 움직이며, 때로는 서로 충돌하기도 하면서 여러 가지 운동을 낳는다. 그런 점에서 유심론적 요소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의 영혼도 원자로 구성되어 있다고 본 것이 유물적 관점이라면, 신체를 둘러싼 엷은 막에 영혼의 원자가 부딪혀 감각이 발생한다고 본 것은 유심론적인 관점이다. 하지만 에피쿠로스가 데모크리토스보다 더 철저한 유물론을 추구했다고 볼 수도 있다. 유물론자에 걸맞게 무신론을 견지했던 것이 그 점을 말해준다.

  쾌락이 인간을 행복의 나라로 안내한다는 주장이 충분한 설득력을 가지려면 한 가지 커다란 공포를 제거해야 한다. 그것은 바로 죽음의 공포다. 죽음이란 게 인간의 앞길에 도사리고 있는 한 근본적인 행복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죽음을 극복하라! 이를 위해서는 일단 종교적인 해법을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에피쿠로스종교란 죽음을 더 두렵게 만들 뿐이라며 코웃음을 쳤다. 신이 없어도 행복에 이를 수 있듯이 종교가 없어도 죽음의 공포에서 벗어날 수 있다. 종교를 배제하고 죽음을 설명하고 그 공포를 떨치는 방법은 바로 유물론의 입장을 강화하는 것이었다.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론을 토대로 에피쿠로스는 죽음을 단지 감각과 의식이 없는 상태일 뿐이라고 말했다. 영혼도 원자라는 물질로 이루어져 있으므로 신체의 죽음과 함게 사라지게 된다. 따라서 내세에까지 살아남아 고통을 겪을 영혼이란 없다. 이를테면 죽음이란 태어나지 않은 상태로 돌아가는 것과 같다. 태어나지 않은 상태를 두려워 하지 않듯이 죽음도 하등 두려워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그 반면에 신을 섬기고 종교를 원하고 영혼의 불멸을 믿으면 결코 죽음의 공포를 떨칠 수 없으며, 따라서 행복을 얻기란 불가능하다. (...)

  에피쿠로스보다 신과 종교를 더 증오한 사람은, 그를 한 번도 만나지 못했으면서도 그의 사상을 열렬히 추종한 루크레티우스(Lucretius, 기원전 96?~54?)였다. 기원전 1세기의 로마인이므로 에피쿠로스를 만나지 못한 것은 당연하지만, 루크레티우스는 그를 스승으로 삼고 존경하면서 그의 철학을 기다란 시로 표현해 후대에 전달했다. 그런 이유로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 학파의 일원으로 분류된다.

  스승인 에피쿠로스도 종교를 폄하한 것 때문에 로망니들의 입방아에 오르내렸고 심지어 천박한 쾌락주의자로 낙인찍혔으니 루크에티우스가 어떤 평판을 받았는지는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그래도 그는 철학자였으되 무늬는 시인이었으므로 직접적인 탄압은 면했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그는 주기적으로 발작을 일으니킄 정신질호나자였고 결국 한창 나이에 자살로 삶을 마감했다.

 루그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에게 병도 주고 약도 준 인물이다. 우선 에피쿠로스가 로마인들에게 매도된 데에는 얼굴도 모르는 제자의 역할이 컸다. "인간의 생명이...... 종교의 잔인한 발부리 아래 짓밟히고 더렵혀졌을 때...... 그리스의 한 사람이 처음으로 종교에 맞섰으니......그는 종교에 반항하고 도전한 첫사람이었다."  여기서 '그'란 말할 것도 없이 에피쿠로스다. 비록 유일사상은 갖지 않았어도 종교적 신심이 돈독했던 로마인들이 '종교의 잔인한 발부리'라는 표현에 얼마나 큰 모욕을 느꼈을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훗날 르네상스 시대에 널리 읽힌 루크레티우스의 유일한 저작인 철학적 장시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가 아니었다면 에피쿠로스의 철학은 널리 전파되지 못했을 것이다. 그렇다면 죽은 스승도 그리 불평할 일은 없지 않았을까?

  종교를 배척하는 태도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스승보다 한 술 더 떴다. 그는 시 첫머리에서부터 자연에는 아무런 목적도 없다고 말한다. 만물이 생겨난 것은 물질 자체의 법칙 또는 예측할 수 없는 맹목적인 우연 때문이다. 존재하는 것은 에피쿠로스가 말한 것처럼 원자와 빈 공간 뿐이다. 여기에 원자도 빈 공간도 아닌 신이 점유할 공간은 전혀 없다. 종교는 인간에게 위로를 주기는커녕 오히려 불안을 조장하고 공포를 심어주는 최대의 원인이므로 인간이 겪는 최악의 불행이다!

  에피쿠로스는 당시 철학에서부터 분화되기 시작한 과학은 물론이고 논리학 같은 철학의 분과조차 필요가 없다고 여기고 논의조차 하지 않았다하기야 논리학에서 쾌락을 얻고자 하는 사람은 드물테니까). 그러나 루크레티우스는 시의 형식을 빌려 사상을 전개하면서도 과학적 자세를 견지했다. 이를테면 그는 인간이 불을 사용하게 된 것은 신화에서 말하듯 프로메테우스가 신의 세계에서 가져다주었기 때문이 아니라 번개가 일으킨 화재나 건조한 들판에 내리쬐는 강렬한 햇볕 덕분이라고 설명했다. 에피쿠로스의 사상에 과학적 요소를 추가한 점에서 루크레티우스는 에피쿠로스보다 한층 더 철저한 유물론자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당시의 지적 경향은 뜨거움이 아니라 차가움이 대세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이후로 혼돈의 시대에 걸맞게 모든 사상가들은 어떤 형식으로든 은둔의 철학을 전개했다. 아타락시아를 삶의 목표로 삼은 에피쿠로스와 마찬가지로 루크레티우스도 마음의 동요 없이, 아무런 결핍도 없이 살아간는 것을 최대의 행복이라 여겼다. "경건한 삶이란...... 제단 앞에 무릎을 꿇는 게 아니라.....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것을 바라볼 수 있게 되는 상태를 말한다."

  에피쿠로스가 신에 의존하지 않고도 행복하게 사는 법을 주장했다면, 같은 시대의 다른 철학자들도 고통을 견디며 사는 법을 가르쳤다. (...) 고통에 의연히 맞서자는 에피쿠로스보다 시대를 좀 더 거슬러 올라간다. 소크라테스의 제자였던 안티스테네스(Antisthenes, 기원전 445?~365?)는 유복한 가문 출신이었으나 시대의 어둠은 빈부를 구별하지 않았다. 이런 시대에 철학이 무슨 의미가 있고 교육이 무슨 소용이랴? 그는 아테네의 무지렁이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리면서 '자연으로 돌아가라"고 외쳤다. 지식은 물론이고 정부도 쓸모가 없다. 심지어 결혼도 하지 말고 재산도 갖지 말라고 가르쳤다. 그렇다고 에피쿠로스처럼 마음의 평정을 얻어 진정한 쾌락을 누리려는 의도 같은 것도 없다. '괘락의 노예가 되는니 차라리 미치광이가 되겠다"는 게 그의 모토였다.

  어찌보면 반지성주의, 무정부주의, 허무주의는 지식인의 전매특허이기도 하다. 혹시 안티스테네스는 지식인의 먹물 근성을 버리지 못한 탓에 좌충우돌했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의 제자 디오게네스(Diogenes, 기원전 412?~325?)에 이르면 사정은 달라진다. 버젓한 가문 출신의 스승과 달리 그는 고대에도 멸시를 받은 환전상의 아들이며, 아버지와 함께 흑해 연안의 고향에서 추방되어 아네테로 온 처지였다. 돈이라면 치가 떨렸던 탓일까? 디오게네스는 화폐를 훼손한 범죄로 처벌을 받은 아버지의 이력 때문인지 아예 세상의 돈을 모두 없애자고 외쳤다. 화폐로 대표되는 온갖 인습, 제도, 미신, 나아가 문명 전반도 타파의 대상이었다.

  문명이 없다면 인간은 짐승과 다를 바 없다. 디오게네스는 내놓고 짐승의 탈을 쓴다. "개처럼 살자!" 개는 위선을 떨지 않고 수치도 모른다. 개의 생활 방식을 찬양한 탓에 디오게네스는 스승 안티스네네스와 함께 개(Canine)라는 말에서 비롯된 키니코스학파, 즉 견유학파(犬儒學派)로 분류되었다. 개와의 관련성은 없지만 세상사를 비웃는 태도를 가리키는 냉소주의(Cynicism)이라는 말도 여기서 나왔다. (...) 물론 생활이 그랬다는 것 뿐이지 디오게네스의 사상이 실제로개 같았던 건 아니다. 집으로 상징되는 문명의 모든 편의를 버림으로써 그는 욕망으로부터 해방된 도덕적 자유를 찾고자 했다. '소유물에 무관심하면 공포를 떨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보면 디오게네스는 에피쿠로스와도 상통한다. (...)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철학 』(남경태 · 들녘 · 2007년) p.87~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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