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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자연주의 철학자들 · 1 : 탈레스에서 데모크리토스까지

by 이우 posted Sep 18, 2018 Views 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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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메소포타미아의 고대인들이 불멸의 것에 큰 가치를 둔 이유는 현세 이외에 어딘가 내세가 있으리라는 종교적 믿음 때문이다. 같은 시기의 이집트인들이 죽은 사람의 무덤에 내세의 길잡이인 <사자의 서>를 넣은 것과 같은 이유다. 고대인들에게는 그만큼 내세가 중요했다. 물론 현세가 고달프기만 한 세상이기 때문은 아니다. 현세의 삶에도 여러가지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 그러나 적어도 현세가 최고의 완벽한 세상이 아닌 건 분명하다. 만약 현세가 이상적인 세계라면 현세 이외에 다른 세계는 상상할 필요도 없고 상상할 수도 없어야 한다. 그래야만 완벽한 세계라고 말할 수 있다.

  다른 세계를 꿈꾼다는 것은 현세가 불완전하다는 뜻이고 어딘가 완전한 세계가 따로 있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렇다면 그 완전한 세계는 눈에 보이는 현세와는 당연히 다를 것이다. 그러므로 더 완전한 세계, 불멸과 불변의 세계는 눈에 보이지 않는 세계로 규정된다. 그 세계는 세속의 원리가 통하지 않는 종교의 세계다. 역설적인 표현이지만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미학'은 이렇게 종교에 뿌리는 두고 있다. 그렇게 보면 로고스(logos)는 바로 미토스(mythos)에서 나왔다.

  고대의 모든 사회에서 그런 종교적 심성이 보편적으로 존재했던 것은 아니다. 오리엔트 문명이 전성기를 누릴 무렵 그에 못지않게 문명의 빛이 밝았던 지역은 한 군데가 더 있었다. 동아시아의 중심인 중국이었다. 이곳에도 종교가 있었으나 양상은 사뭇 달랐다. 오리엔트와는 반대로 중국에서는 내세가 현세를 위해 존재했다. 이집트인들이 파라오의 무덤을 쌓고 미라를 만든 이유는 죽은 파라오에게 현세보다 더 중요한 내세에서의 새로운 삶을 준비해주려는 것이었으나, 중국인들이 조상의 묘에서 제사를 지낸 이유는 조상의 내세를 위해서가 아니라 조상의 음덕으로 자신들의 현세를 더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였다. 고대 중국에서는 보이지 않는 세계보다 보이는 세계가 더 중요했다. (...) 그리스 철학이 자연철학으로 출발한 것과는 달리 중국 철학이 처음부터 인간과 국가의 경영을 위한 정치 이데올로기로 개발된 이유는 바로 그런 차이에 있다.

  한편 메소포타미아이집트오리엔트 문명을 한창 일구고 있을 즈음 동부 지중해 문명권의 한 귀퉁이에 살고 있던 그리스 사람들은 철학이나 종교는 언감생심이고 당장 먹고 살기에도 급급한 처지였다. 당시 그리스는 문명의 오지에 가까웠다. 그마나 다행인 것은 무역 경쟁력이 있다는 있다는 점이었다. 탁 트인 평야라고는 눈을 씻고 봐도 없는 데다 토질마저 건조하고 척박했다. (...) 그리스의 수출 역군들은 비교우위가 확실한 포도와 올리브를 가지고 동부 지중해를 누렸다. 그 결과 무역 거점으로 세웠던 소아시아 서해안의 작은 식민시들이 점차 그리스 본토보다 더 발달하게 되었다. (...)

  그런 탓에, 비록 후대에는 그리스 철학으로 분류되지만 최초의 철학은 그리스가 아닌 이오니아 식민시에서 탄생했다. 종교와 마법의 굴레에 묶인 오리엔트와, 아직 사회적 하부구조를 구축하기에 여념이 없는 그리스 본토의 사이에 위치한 덕분에 이오니아 최초의, 아니 세계 최초의 철학자들은 두 세계의 정확한 교집합이었다. 그래서 그들은 보이지 않는 세계와 보이는 세계, 미토스와 로고스에 한 발씩 담그고 최초의 철학적 물음을 제기했다. (...) 세계의 공통적인 요소는 무엇인가? 이오니아 철학자들은 모든 것의 근본, 본질, 시원 즉 아르케(arche)를 물었다. 아르케란 원래 시작이나 기원을 뜻하지만 반드시 시간적인 의미만 가지는 게 아니라 모든 것을 있게 한 원인, 원질을 가리킨다. 미토스의 세계에서 굳이 아르케를 물을 이유가 없었다. 모든 것의 근원은 신이니까. (...)

  (...) 이오니아 초기 철학자들은 만물을 구성하는 기본 원소를 공기, 불, 물, 흙의 네가지로 보았다(이른바 '제5원소'는 후대에 아리스토텔레스가 불변의 완전한 원소라는 의미로 제안했다). (...) 자연을 이루는 원소들은 극히 다양한 듯해도 따지고 보면 몇 가지로 환원할 수 있다. 비, 그리고 빗물이 적신 흙, 햇살, 바람, 이 정도가 아니겠는가? 추리고 추리면 결국 네 가지가 남는다. 천변만화하는 사물들의 다양성에 속지 않는다면 그 배후에 감춰진 불변의 실체는 물, 흙, 불, 공기 중 하나다. 아니면 네 가지 모두이거나.

  이 사지선다형 문제를 놓고 최초의 철학자들 중에서도 가장 최초의 철학자로 알려지게 되는 밀레투스의 탈레스(Thales, 기원전 624?~546?)는 물을 정답으로 적었다. 그리고 "모든 사물의 일차적인 원리와 근본적인 본성은 물"이라고 단언했다. 대담한 추론이다. 명백히 물이 아닌 것, 이를테면 식탁, 수레, 신전까지도 물로 이루어져 있다고 말한다면 미쳤거나 시력이 대단히 나쁜 것은 아닐까? 하지만 탈레스의 근거는 나름대로 명쾌했다. 다양한 사물의 근본에 한 가지 공통 요소가 있다면 그 요소는 최대한 다양한 모습을 취해야 할 것이다. 그래야만 온갖 사물을 형성하는 재료가 될 수 있다. 그런데 물이야말로 바로 그렇지 않은가? 물은 생명을 유지하게 해주는 필수품일 뿐만 아니라 모든 생명체의 근본이다. 끓이면 공기와 한 몸이 되고(수증기) 나이 추움면 얼음이 된다. 미토스에서 답을 찾지 않고, 즉 신에게 의지 않고 그 네 가지 중에서 답을 고른다면 당연히 물이다. 물론 우리는 그 답이 틀렸다는 것을 안다. (...) 우리가 탈레스를 기억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만물의 근본 물질이 물이라는 이론을 말했기 때문이 아니라 눈에 보이는 현상의 배후에 뭔가 공통적인 실체가 있으리라는 관점을 가졌기 때문이다. (...)

  다음 타자는 탈레스의 제자로 추정되는 아낙시만드로스(Anaximandros, 기원전 610?~547?)다. 청출어람이랄까? 아낙시만드로스는 최초의 철학자라는 명예를 빼고는 모든 면에서 스승을 능가했다. 사실 어떤 의미에서는 그 명예마저도 스승이 제자에게 양보해야 할 듯 싶다. 탈레스는 흉년에 울리브 압착기를 모조리 임대해 두었다가 이듬해 풍년이 들자 매점매석으로 돈을 버는 세속적인 재주를 과시한 바 있었다. 철학자도 현실적인 사고를 할 수 있다는 증거를 보여주기 위해서라지만, 달리 생각하면 탈레스에게는 철학이 취미나 아르바이트 수준이었다는 이야기도 된다(실제로 탈레스는 법학, 토목학, 천문학, 수학 등 여러 학문에 두루 관심이 컸다). 그에 비해 아낙시만드로스는 스승만큼 오지랖이 넓지는 않았으나 학구적인 자세에서는 스승보다 한층 진지했던 듯하다. (...)

  진지하고 신중했던 아낙시만드로스는 탈레스의 결론이 독창적이기는 해도 지나치고 단순하고 유치하다고 여겼다. 만물의 근원이 물이라면 모든 것은 결국 물의 상태로 돌아가고 말 것이다. 더구나 다른 거라면 몰라도 상극인 불마저도 하나라는 주장은 도저히 인정할 수 없었다. 물이 아니면 뭘까? 공기? 흙? 불? 그러나 아닉시만드로스는 네 가지 원소 중 어느 하나를 다른 세 가지보다 근원적으로 볼 수 있다는 발상 자체를 거부한다. 그 네 원소는 서로 융합될 수 없고 환원될 수 없기에 가장 근본적인 원소라고 규정된 게 아닌가? 그걸 다시 하나로 환원하는 것은 옳지 않다. (...) 따라서 아낙시만드로스는 네 가지 원소의 배후에서 그것들의 조화와 균형을 유지해주는 더 궁극적이고 근원적인 원소를 상정해야 한다고 보았다. 그것을 그는 무한자(無限者), 즉 아페이론(apeiron)이라고 불렀다. 물론 아페이론은 세상 만물처럼 우리 곁에 존재하지 않는다.

  이리하여 탈레스가 눈에 보이는 것으로 규정했던 아르케는 아낙시만드로스에게서 다시 보이지 않는 것으로 돌아갔다. 아페이론에서 모종의 신적인 이미지를 연상하는 것은 무리가 아니다. 그렇다면 오리엔트적 사고 방식으로 퇴보한 걸까? 그러나 중요한 차이가 있다. 여기서 신은 미토스적인 마법사라기보다는 로고스적인 인격신의 이미지다. 세계의 궁극적인 답으로서 존재하는 게 아니라 간섭과 개입으로 세계를 주재하는 역할이기 때문이다(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올림포스이 신들을 생각하면 알기 쉽다). 이렇게 보면 그리스도교의 탄생은 이미 이때부터 예고되고 있었던 셈이다.

  애초에 만물을 쪼개고 쪼개서 근원을 찾으려는 노력 자체에 이미 무한의 개념(신의 전 단계)은 전제되어 있었다. (...) 그래서 아낙시만드롯의 제자 아낙시메네스(Anaximenes, 기원전 585?~528?)는 눈에 보이는 실체(예를 들면 '물')와 보이지 않는 실체(무한자)를 모두 거부하고 더 충상적인 관점에서  아르케를 찾으려고 한다. 일단 아낙시메네스가 제시한 답은 공기 쪽으로 기운다. 그는 공기가 만물의 궁극적인 재료이며, 동시에 세계의 통일성을 유지하는 궁극적인 힘이라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가 말하는 공기는 탈레스의 물이나 아낙시만드로스의 무한자와 같은 위상이 아니다. 아낙시메네스는 공기라는 '실체'보다 공기 특유의 성질에 주목한다. 다른 세 원소들과 달리 공기에는 밀도가 있다. 이 점에 착안하여 그는 공기가 더 근원적이라고 주장한다. 일반적인 공기는 밀도가 희박하지만 이것이 농후해지면 바람과 구름은 물론이고 흙과 바위가 될 수 있으며, 밀도가 더 희박해지면 불이 된다는 것이다. (...) 탈레스의 답이 눈에 보이는 것이고 아닉시만드로스의 답이 모이지 않는 것이라면 아닉시메네스의 답은 보이지는 않지만 분명히 인지되는 것이다. 이렇게 해서 나름의 종합이 이루어졌다. 답은 틀릴지언정 철학은 이제 미토스에서 확실히 해방되었다.

  이 성과를 이룬 세 철학자는 모두 밀레투스에서 활동했기 때문에 밀레투스학파라고 부른다. 하지만 이오니아의 철학가들이 그들뿐이라면 굳이 이오니아라는 지명을 들먹일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밀레투스의 철학적 정신을 이어받아, 거기서 조금 떨어진 또 다른 그리스 식민시인 에페소스의 헤라클레이토스(Herakleitos, 540?~480?)는 한 번 더 변화를 구한다. 헤라클레이토스 역시 만물의 근원, 아르케를 찾으려는 의도는 변함이 없지만 그는 철학적 물음의 초점을 바꾸어 실체보다 관계를 묻는다

  아르케는 물질적 실체(물)→비물질적 실체(무한자)→실체의 속성(공기)로 간주하는 것이 밀레투스의 흐름이라면, 헤라클레이토스는 아르케에서 실체의 이미지를 떼어내고 변화 그 자체에 관심을 가진다. 네 원소 중 물이 변화를 대표한다고 본 탈레스의 생각은 잘못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불이 더 극적인 변화를 일으킨다고 본다. 하짐만 그가 말하는 불은 실체적 성질을 지니지 않는다. "불은 만물을 변화시키고 만물은 불을 변화시킨다." 불은 고정된 외양이라는 게 없다. 다른 물질을 취함으로써만 존재하는 게 불이다. 달리 말하면 불은 다른 물질을 파괴함으로써 자신을 창조한다. 바로 이런 불의 속성에서 헤라클레이토스는 창조와 파괴의 개념을 이끌어내고 변화의 대상보다 과정을 중시한다. 그에게 불은 물질적 실체이기보다 형이상학적 관념에 가깝다. 모든 것은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은 오로지 변한다는 사실뿐이다. 헤라클레이토스는 이런 허무주의적 입장으로 '어둠의 철학자'라는 별명을 얻었으나, 여기사 한 걸음 더 나아가 세상 만물은 대립과 통일의 관계를 가진다는 주장으로 2500년 뒤 헤겔과 마르크스가 발전시키는 변증법적 논리의 선구자가 된다.

  "같은 강물에 발을 두 번 담글 수는 없다." 만물이 변한다고 본 헤라클레이토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말이다. 처음에 발을 담근 강물은 다시 올 수 없는 곳으로 가버렸으니까. 그런데 그리스의 동쪽에서 헤라이클레이토스가 이렇게 외쳤을 때 멀리 그리스 서쪽의 이탈리아에서 파르메니데스(Pamenides, 기원전 515?~445?)는 그 말을 한 번 더 뒤틀었다. "같은 강물에 발을 한 번도 담글 수 없다." 파르메니데스는 더 나아가 "모든 것이 변한다"는 헤라클레이토스의 명제도 가차없이 짓밟았다. "아무 것도 변하지 않는다." (..)

  20세기 독일의 철학자 하이데거sein동사(영어의 be동사, 프랑스의 etre동사)가 없는 언어로는 철학이 불가능하다고 말한 적이 있다. 좋게 봐주면 be동사의 역할을 하는 '술어'가 대신하는 우리말이나 일본어를 몰랐기 때문에 그런 해괴한 주장을 했을텐데, 실제로 be동사가 상당히 재미있는 역할을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예컨대 "There is nothing"이라는 문장은 "아무 것도 없다"는 뜻이지만 말 그대로 옮기면 "없는 것이 있다"는 뜻이 된다. 파리메니데스는 바로 이것이 모순이라고 지적한다. 존재하지 않는 것(nothing)이 존재한다(is)는 말은 어불성설이다. 따라서 모든 것은 존재해야 한다(존재하지 않으면 곧 없는 것이므로). 모든 것이 존재한다면 빈 구멍이나 틈이 있을 여지가 없다. 빈 구멍이 없다면 운동도 있을 수 없다. 운동이란 꽉 찬 곳에서 빈 곳으로의 움직임을 뜻하기 때문이다. 운동이 없으면 당연히 변화도 없다. 결국 존재는 불변이요 불멸이 된다. 생성과 파과 같은 건 없다.

  이런 파르메니데스의 주장은 다소 억지스러운 데가 있다. 좋게 말해 형이상학이지만 나쁘게 말하면 상식과 경험의 부정이며 극한에 이른 관념적 사유다. 하지만 라프메니데스의 고향 후배인 제논(Zenon, 기원전 495?~430?)은 선배 이론을 교활한 방법으로 증명하려 한다. (...) 아킬레우스와 거북의 경주다. (...) 제논의 두 역설목적지까지 갈 수 없는 운동을 뜻한다. 그런 운동이라면 운동이 아니다. 그러므로 운동은 불가능하다. (...)

  제논의 초점은 화살과 과녁이라는 실체가 아니라 화살의 운동에 내재하는 논리에 있다. 철학적 논증으로부터 실체를 완전히 떼어냈다는 점에서 파르메니데스와 제논은 설사 같은 이탈리아 남부의 엘레아학파로 묶일 근거가 충분하다. 두 사람은 운동하는 실체가 아니라 실체들 간의 관계에 주목했다. 앞서 이오니아의 철학자들은 아르케를 처음에 실체로 보았다가(탈레스) 점차 실체적 성격을 죽여가는 양상을 보여주었다. 그런데 엘레야학파에 이르서는 실체 자체가 사라지고 관계만이 남았다. (...) 바야흐로 철학적 사유는 실체에서 관계로, 감각에서 논리로 궤도를 선회하고 있다. 제논의 사유를 단순한 말장난이라거나 지나치게 관념적이라고 몰아붙이고 싶지만, 그러려면 감각에서 벗어난 것은 모조리 무의미하다는 무리수를 두게 된다. 게다가 현대 고등 수학에 나오는 무한의 개념은 바로 제논을 기원으로 한다. 또한 중학 과정의 수학에서 가르치는 점근선의 개념(y=1/x의 그래프에서 x축과 y축의 개념이 점근선이다)도 기본적으로 제논의 역설과 같은 논리다.

  수학이야기가 나왔으니 여기서 다른 철학 학파와 동떨어진 신비의 철학자 피타고라스(Pythagoras, 기원전 580?~500?)를 짚고 넘어가는 게 좋겠다. 그는 에게 해의 사모스 섬에서 태어나 이칼리아 남부로 이주했지만 이오니아는 물론 이탈리아의 철학자들과도 거의 교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뿌리 뽑힌 코스모폴리탄은 고독한 법이고 고독한 철학자는 종교와 친화력을 보이게 마련이다. 피타고라스 역시 철학자보다는 종교의 창시자에 어울리는 인물이었다. 그는 이탈리아에서 학교를 세우고 많은 제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그 학교는 종교단체와 비슷했고 학생들은 신도나 다름없었다. 그가 생활 윤리로 체택한 엄격한 금욕주의와 채식주의는 학교의 교칙이라기보다는 교단의 계율에 가까웠다. 게다가 교칙 또는 계율 중에는 땅에 떨어진 물건을 좁지 말라든가 성적 순결을 지켜야 한다는 평범한 조항이 있는가 하면 채식주의를 체택했음에도 유독 콩만은 먹지 말라는 묘한 조항도 있었다.

  피타고라스가 추구한 아르케는 수(數)였다. 직각삼각형을 이루는 세 변의 관계를 밝힌 유명한 피타고라스의 정리도 있지만, 그는 수를 단순히 수학적인 의미가 아닌 생활의 모든 측면에 두루 적용했다. 이를테면 정의는 4이고, 결혼은 5이며, 인간은 250이라는 식이다. (...) 피타고라스가 아르케로 삼은 수도 물질적 실체와는 무관하다. 수의 배후에는 조화의 개념이 있다. 그가 중시한 것은 바로 수적 조화다. 말하자면 피타고라스의 철학에서 수는 얼굴마담이고 실제 주인은 조화인 셈이다. 피타고라스는 각각의 수가 지닌 의미를 규정하는 데 머물지 않고 수적인 비율과 비례로써 모든 것을 설명하고자 했다. 물론 수적 비율이 맞는 것은 조화요 틀린 것은 부조화다.

  예를 들면 음식은 더운 것과 찬 것, 젖은 것과 마른 것의 조화를 이루어야 한다. 음식들 간의 수적 비율이 맞지 않으면 부조화의 상태, 즉 건강을 잃게 된다. 또한 피타고라스천체의 운동도 수적 비율이 빚어내는 조화의 산물이라고 보았으며, 음악의 화음도 수적 비율로서 결정된다고 생각했다. 태양계를 10개의 천체로 본 것은 우연히 실제와 맞아떨어진 것이겠지만(2006년에 명황성이 소행성으로 분류됨에 따라 고대인들이 생각한 태양계의 천체는 9개로 줄었다), 현악기에서 한 현의 길이를 절반으로 하면 정확히 한 옥타브 위의 음이 나온다는 것은 수와 음악의 관계를 올바르게 고찰한 결과다. 심지어 그는 10개의 천체가 운동하면서 신성한 '우주의 음악'이 나온다고 말했는데, 훗날 인류가 태양계 바깥으로 진출한다면 한 번쯤 귀를 기울여 검증해봐야 할 주장일지도 모른다. (...) 더욱이 그는 명확하지 못한 것, 불확실한 것을 부조화로 간주하고 명확하고 확실한 것을 조화로 간주함으로써 수를 바탕으로 윤리학까지 전개했다.

  이런 윤리학에서 목적론으로 넘어가는 데는 하나의 계단만 필요하다.아니다 다를까 피타고라스세상 만물이 최선의 형태를 지니기 위해서는 적당한 수적 비례를 이루어야 한다고 보았으며, 인간도 예외로 두지 않았다. 수적 비례를 통한 조화가 삶의 목표라고 규정한 것이다. (...) 이처럼 조화를 근본적인 원리로 삼았으니, 나누어지지 않는 무리수라는 걸 발견했을 때 피타고라스가 얼마나 당혹스러워했을지는 보지 않아도 뻔하다. (...)

  (...) 최초의 철학자들이 제기했던 철학의 근본문제세상 만물의 공통적인 요소는 무엇인가?―는 점차 변형되고 복잡해졌다. 초기에는 경험, 감각, 논리, 이성 등 철학 외부에 '비밀 언덕'을 마련해 놓고 철학적 논의가 진행되었으나 점차 '기존의 철학적 토대'가 쌓이면서 철학자들은 현실세계와 어느 정도 거리를 둔 채 철학을 바탕으로한 철학을 전개하기에 이르렀다. 어떤 의미에서는 추측이나 상상에 가까운 논리라고 할 수 있는데, 말하자면 아래로부터의 철학(현실적 철학)에서 위로부터의 철학(추상적 철학)으로 전환하기 시작한 것이다.

  엘레야학파남부 이탈리아에서 활동했고 피타고라스도 그곳으로 이주한 데는 그럴 만한 까닭이 있었다. 일찍이 이오니아에서도 그랬듯이 남부 이탈리아에는 그리스 본토를 능가하는 대형 무역 식민지가 조성되어 있었다. 시칠리아를 포함하여 이 일대에는 기원전 8세기부터 그리스 무역업자들이 진출하기 시작하여 기원전 6세기 무렵에는 이오니아에 버금가는 경제와 문화수준을 자랑하기에 이르렀다. 역사적으로 이 시기의 이 지역을 마느나 그라이키아, 즉 대(大)그리스라고 부른다. 식민지에 '마느나'라는 수식어를 붙일 만큼 정작 그리스 본토에는 아직 문화의 중심이 못 되었다. 물론 문명의 추세는 서서히 한복판의 그리스로 수렴하는 양태를 보였지만.

  이렇게 동부 지중해에는 본격적인 그리스 세계라고 일컫을 만한 방대한 문명권이 형성되었다. 이 문명권은 어느덧 문명의 발상지인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를 넘어서는 수준에 이르렀다. 이런 배경에서, 초창기에 수줍고 소심한 태도로 아르케를 모색하던 철학자들은 자신감을 얻고 어깨에 힘을 주게 된다. 우선 그리스 문명권이 팽창하면서 지식의 양이 비약적으로 팽창하였다. 그에 따라 그리스의 동쪽(이오니아)과 서쪽(남부 이탈리아)에서 간헐적으로 들려오던 철학자의 메아리가 커지면서 그리스 세계 전역으로 확산되었다. 게다가 이 시기에 그리스 세계는 결정적인 문화의 세례를 받았다. 이 변화는 파괴적인 전쟁의 양상을 취했으므로 당대인들에게는 큰 고통이었겠지만 장기적으로는 철학을 포함한 그리스 문화의 수준을 한 단계 업그레이드시켰다. 그 변화는 바로 현실의 역사에 페르시아전쟁이라고 기록된 사건이었다.

  동부 지중해의 무역을 바탕으로 그리스 세계가 팽창하는 것을 시셈과 두려움으로 바라보던 시선이 있었다. 당대 세계 최강국인 동방의 페르시아 제국이다. 일단 힘에서 앞선 페르시아는 이오니아 일대를 무역으로 점령했는데, 그리스 전통적인 식민지였던 땅을 지배하는 게 순조로울 리 없다. 과연 얾마 안 가 이오니아에서 반란이 일어났다. 이를 진압하기 위해 서쪽으로 파견된 막강한 페르시아 제국의 다목적군은 내친 김에 그리스 본토를 정복하려고 했다. 이렇게 해서 기원전 690년에 아시아와 유럽은 최초의 전쟁을 벌였다. 그리스인들은 마라톤 전투에서의 승리로 힘겹게 방어에 성공했고 복수를 다짐한 페르시아는 10년 뒤에 무려 500만이라는 넘는 인력을 동원하여 그리스를 재차 침략했다. 하지만 지는 해가 뜨는 해보다 밝을 수는 없는 법이다. 늙은 제국 페르시아는 결국 도시를 포기하면서까지 살라미스에서 해전으로 맞붙은 아테네의 전략에 휘말려 결정타를 맞았다.

  이 전쟁은 규모도 컸지만 의의는 더욱 컸다. 오리엔트 문명의 계승자인 그리스 세계가 스승격인 동방의 제국을 물리치고 동부 지중해의 경제적 패권과 아울러 문병의 빛마저 가져온 셈이었다. 그뿐 아니라 이 전쟁을 계기로 오리엔트와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진 덕분에 그리스 세계는 아직 아시아에 남아 있는 선진 문물과 지식마저 흡수할 수 있었다. 현실세계의 변화가 지적인 변화로 이어지는 것은 필연이다. 그 덕분에 전후 세대 철학의 선두주자인 엠페도클레스(Empedokles, 기원전 490?~430)는 전보다 훨씬 풍부해진 지식, 훨씬 넓어진 시야, 훨씬 커진 자신감으로 원대한 철학적 논의를 구성할 수 있었다.

  그는 단순한 철학자라기보다 철학과 과학, 종교를 아우르는 당대 최고의 종합지식인이었다. 또한 시칠리아 태생이면서도 그리스 남부의 펠로폰네소스에서 활동한 데서 알 수 있듯이 그는 범그리스적 지식인이기도 했다. 공기가 단지 빈 공간이 아니라 입자로 이루어진 독립적 물질로 이루어졌다는 것을 발견했는가 하면, 식물에 암수가 있다는 사실도 알아냈고, 심지어 19세기에야 과학적 상식으로 편입되는 빛의 속도라는 개념도 일찌감치 제기했다.

  엠페도클레스는 물, 불, 흙, 공기의 네 원소를 뿌리'라고 부르며 만물이 그것들의 조합으로 이루어졌다고 주장했는데, 여기까지는 새로울 게 없다. 그러나 그는 시대의 지적 흐름에 걸맞게 네 원소 자체보다 그것들 사이에 작용하는 힘, 즉 관계에 초점을 맞추었다. 그가 생각한 힘은 두 가지, 사랑과 미움이었다. 물론 인간관계에서 말하는 사랑과 미움의 감정이 아니다. 사랑은 원소들을 모이게 해서 사물을 이루게 하는 힘이고, 미움은 그 반대로 사물을 도로 분해해서 원소가 되는 힘이다. 어찌 보면 헤라클레이토스가 주장한 대립과 통일의 변증법과 비슷한 듯하지만 그보다 훨씬 실체로부터 멀어졌고 관계에 가까워졌다. 헤라클레이토스의 대입물들은 실체적 속성에서 벗어나지 못했으니까.

  사랑과 미움은 항상 고르게 작용하지는 않는다. 사랑이 우세한 시기는 통합이 이루어지고 조화와 평화가 깃드는 황금시대다. 반대로 미움이 지배하는 시기는 모든 것이 분열되고 부질서와 혼돈이 팽만해진다. 이렇게 두 가지 힘은 주기적으로 끊임없이 변화한다. 그런 점에서 엠페도클레스는 만물이 변화한다는 관점을 택하고 있다. 사실 이런 철학적 논의는 그리 대단한 게 아니고 오히려 유치할 만큼 단순해 보인다. 하지만 그의 철학 이론보다 중요한 것은 그가 감각이나 이성에서 나온 정보를 토대로 하지 않고, 순전히 자의적으로 사랑과 미움이라는 규준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이제 철학은 특별한 근거를 내세우지 않고도 철학자가 자신의 뜻대로 (재)구성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최초로 자유롭게 자신의 철학을 구성한 것에 자만한 탓일까? 평소에도 성인으로 추앙받고자 했고 여러 가지 기적과 마술, 예언을 보여주었던 엠페도클레스는 결국 자신이 신이라는 것을 입증하기 위해 시칠리아의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18세기의 독일 시인 휘덜린은 엠페도클레스가 신에게 지은 죄를 보상하기 위해 자살했다면서 그의 죽음을 시대의 운명으로 격상시켰지만 믿거나 말거나다).

  밀레투스의 아낙사고라스(Anaxagoras, 기원전 500?~428?)는 엠페도클레스의 이론에 약간의 변화를 준다(이오니아에서 시칠리아 철학자에게 화답할만큼 그리스 세계는 이미 국제화되었다). 우선 그는 엠페도클레스의 '뿌리'를 '씨앗'으로 바꿔 부르며 네 씨앗에는 모든 사물들의 일부가 들어 있다고 말한다. 또한 엠페도클레스의 사랑과 미움누스(nous, 정신)라는 하나의 힘으로 대체한다. 그의 독창적인 측면은 최초로 살아있는 물질과 죽은 물질을 구분했다는 점이다. 누스는 인간을 포함한 모든 살아 있는 물질들을 움직이는 힘이다.

  실체에서 관계로 논의 초점이 이동하면서 철학에서 전통적인 네 원소의 힘은 점차 약화되었다. 엠페도클레스나 아낙사고라스는 여전히 그것들을 끌어안기는 했으나 그것들 자체보다는 그 배후에서 작용하는 힘에 관심을 가졌다. 급기야 그 다음에 등장하는 데모크리토스(Demokritos, 기원전 460?~370)는 아예 네 원소를 제거해 버린다.

  데모크리토스가 네 원소 대신 아르케로 제시한 것은 원자(atomon)라는 새로운 개념이다. 원자는 그 말뜻 자체가 그렇듯이 더 이상 분할할 수 없는 궁극적인 요소, 물질의 최소 단위를 가리킨다('a'는 무정을 뜻하고 'tom'은 분할이라는 뜻이다). 네 가지를 하나로 통합(혹은 대체한)한 이상 데모크리토스의 입장은 엠페도클레스와 아낙사고라스의 다원론과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그런데 원자라니? 다시금 옛날의 실체론으로 돌아간 것일까? 그렇지 않다. 데모크리토스가 말하는 원자는 분명히 실체적인 속성을 지니지만 탈레스의 물 같은 의미의 실체는 아니다. 탈레스의 물은 눈으로 볼 수 있고 일상적으로 경험할 수 잇는 실체인데 반해 데모크리토스의 원자는 감각이나 경험의 대상이 아니며 물질의 기본 성질을 '원리적인', 어떤 의미에선 가장된 실체다. 그래서 원자는 실체로서의 장점―사물을 구성하기에 용이하다는 점―을 강화하는 동시에 실체로서의 단점―여러 가지 사물을 하나로 환원하기 어렵다는 점―을 극복한다.

  이렇게 원자의 개념을 가정하면 사물의 성질을 결정하는 데 중요한 것은 질보다 양이 된다. 실제로 데모크리토스는 모든 사물이 단지 앙적인 면에서만 서로 다르다고 말했다. 양은 질보다 더 궁극적이며, 질은 양의 작용으로 인해 생겨난다. 양은 질보다 더 궁극적이며, 질은 양의 작용으로 인해 생겨난다. 비록 원자보다 작은 단위에서 적용되기는 하지만, 현대 과학에서 밝혀진 것처럼 양성자나 전자의 '수(양)'가 달라지면 원소의 화학적 '성질(질)'이 달라진다는 사실을 고려하면, 데모크리토스원자론은 시대를 무려 2500년이나 뛰어넘은 선견지명을 보여준다. 또한 철학적으로도 그는 19세기에야 널리 알려지게 되는 유물론의 때 이른 선구자였다.

  데모크리토스를 끝으로 철학은 초창기의 자연철학에서 벗어나기 시작한다. 이제부터는 철학의 근본적인 물음 자체가 달라진다. 그와 더불어 철학의 공간도 이동한다. 이때까지 그리스 세계의 동서 양쪽 변방에서 철학의 메아리가 울려퍼졌다면, 이제부터는 그리스 본토, 그중에서도 페르시아 전쟁을 승리로 이끌며 그리스 세계 전체의 중심지가 된 아테네로 자리를 옮기는 것이다. (...)

- 『사람이 알아야 할 모든 것 : 철학 』(남경태 · 들녘 · 2007년) p.22~p..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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