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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 계보학 · 인종주의적 담론의 역사

by 이우 posted Aug 18, 2018 Views 4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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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내 생각에는 중세의 전통적인 세 축 안에서 역사적 담론의 이 두 기능을 발견할 수 있을 것 같다. 계보학적 축은 왕권의 유구함을 말해주고, 위대한 선조들을 일깨워주며, 제국이나 왕국의 개국 영웅들의 위엄을 다시 발견하게 한다. 이런 식의 계보학적인 임무는 지난 시절의 위대한 사람이나 사건들이 현재의 가치를 보장해주고, 일상성의 왜소함을 영웅적이고 정의로운 어떤 것으로 변용시켜 주는 것이다. 이 계보학적 축―고대 왕국이나 위대한 조성에 대한 역사 설화의 형태 속에서 우리가 기본적으로 발견하는―은 권리의 유구성을 말해주고 있음에 틀림없다. (...) 속박하고 현혹시키는 것, 그리고 의무를 강조하면서 또는 힘의 성광을 강화하면서 굴복시키는 것, 이것이야말로 로마 문명이나 중세사회에서 행해졌던 역사의 여러 형태 속에서 우리가 발견할 수 있는 두 가지 기능이다. 그런데 이 기능은 로마, 혹은 더 일반적으로 말해서 인도-유러피언의 종교의식 · 신화 · 전설 등에 나타나는 권력의 두 양상과 아주 정확히 일치한다. (...)

  역사란 권력의 담론이며, 권력이 사람들을 굴복시킬 때 사용하는 도구인 의무의 담론이다. 그것은 또한 권력이 사람들을 매혹시키고, 공포에 질리게 하며, 얼어붙은 듯 꼼짝 못하게 하는 눈부신 섬광의 담론이다. (...) 주권은 하나의 특이한 기능을 갖게 되는데, 그것은 결속이 아니라 예속이다. 위인들의 역사는 소인들의 역사를 포함하고, 강자의 역사는 약자의 역사를 포함한다는 가설 대신 이질성의 원칙이 세워질 것이다. (...) 권력의 반대편에서 보면 권리 · 법 · 의무이던 것이, 반대편의 자리에서 보면 남용 · 폭력 · 수탈이라는 것을 이 새 담론은 보여 줄 것이다. 요컨대 대영주들의 토지 소유와 그들이 요구하던 지대(地代)는 폭력과 몰수 · 약탈, 그리고 피정복 주민들에 대한 전비 징수의 행위로서 나타날 것이며 또 그렇게 고발되어야 한다. 결국 역사가 주권의 영광을 찬양하면서 그 힘을 강화시켰던 일반적 의무의 형식은 해체되고, 그 대신 한쪽의 승리는 다른 한쪽의 예속이라는 양면적 현실법칙이 나타난다. 이런 점에서 이때 나타나는 역사, 즉 인종들의 투쟁의 역사는 반역사로서 나타난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더 중요한 방식이라고 생각한다.

   이 반역사는 위압적인 통치법의 통일체를 해체할 뿐만 아니라 영광의 지속성까지도 단절시킨다. 이것은 빛―앞에서 이야기했던, 우리의 눈을 멀게하는 권력의 그 눈부신 빛―이 사회체 전체를 딱딱하게 굳히고 응고시켜 꼼짝 못하게 하여 결국 일사분란한 질서 속에 그것을 유지시키는 어떤 것이 아니라, 사회체를 분할하여 한쪽은 밝게 비추고 다른 한쪽은 어둠과 응달 속에 집어넣는 빛이라는 것을 보여줄 것이다. (...) 계속성의 역사가 아니라 판독의 역사, 비밀 탐지의 역사, 계략 뒤집기의 역사, 그리고 파혜쳐 뒤집혀진 한 앎의 재점유 역사가 될 것이다. 결국 봉인된 진실의 판독이다. (...)

  권력은 정의롭지 못하다. 그 높은 모범에서 타락했기 때문이 아니라, 그저 단지 우리들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새 역사도 단지 옛날 역사와 마찬가지로 시간의 유위전변을 통해 여전히 권리를 말하고 있다고 할 수도 있겠다. 그러나 여기에서는 항상 자신의 권리를 보존했던 한 권력의 유구한 법해석을 확립하는 문제가 아니고, 권력이 지금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도 항상 그 자리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문제도 아니다. 잘못 알려져 있는 권리를 요구하는 일이 중요하다. 다시 말하면 권리를 선언하면서 전쟁을 선포해야 하는 것이다. 로마적 형식의 역사 담론은 사회를 평정하고, 권력을 정당화하며, 사회체를 구성하는 질서를 기초한다. 그런데 내가 여러분들에게 말하는 담론, 즉 16세기말에 전개되었고 성서적 타입의 역사 담론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 담론은, 사회를 분열시키고 법에 전쟁을 선포하기 위해서만 법을 말할 수 있는 것이다. (...)

   주권은 이 역사를 통해서 나타나고, 이 역사를 통해 눈부시게 지속적이고 유일하게 합법적인 권력으로 구성되었던 것이다. 그런데 이 역사 앞에 전혀 다른 역사가 나오기 시작했다. 일종의 반역사인 이 역사는 어두운 예속과 추락의 역사, 예언과 약속의 역사, 재발견하고 판독해야만 할 비밀스러운 앎의 역사, 그리고 권리와 전쟁을 한데 짝지어 동시에 선언하는 역사이다. (...) "역사 안에 로마 칭송이 아닌 것이 어디 있는가?" 이 한 마디 말로 페트라르카는 로마 사회뿐만 아니라, 자신이 속한 중세사회에서 실제로 여전히 수행되고 있는 한 역사의 성격을 규정지었다고 나는 생각한다. 페트라르카 이후 몇 세기 만에 로마 찬양과는 전혀 다른 한 역사가 서구에서 모습을 드러내었다. 이 역사는 종전의 역사와는 달리 로마 문명의 가면을 벗겨내어 그것이 결국 바빌론 문화의 재판이었다는 것을 폭로하였으며, 로마에 대항하여 과거에 잃어버린 예루살렘의 권리를 새롭게 주장하였다. 전혀 다른 역사의 형태, 전혀 다른 역사적 담론의 기능이 생겨난 것이다.

   이것이야말로 인도-유러피언적 양식, 다시 말해서 역사를 지각하고 말하는 어떤 인도-유러피언적 양식의 종말의 시초였다고 할 수 있다. 극단적으로 말하면 종족투쟁의 역사에 대한 담론이 생겨났을 때 고대는 끝났다고 말할 수 있다. 중세는 물론 자신이 중세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중세는 또한 자신이 더 이상 고대가 아니라는 것도 모르고 있었다. 중세 한 가운데에 로마는 아직도 현존해 있었고, 일종의 영원한 현재의 역사로서 기능하고 있었다. 로마는 유럽을 관통하는 수천 개의 수로로 나뉘어져 있었고, 그 모든 수로들은 전부 로마로 거슬러 올라가고 있었다. 그 당시에 씌어졌던 모든 정치적 · 민족적 역사들이 항상 트로이 신화를 그 출발점으로 삼고 있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유럽의 모든 민족들은 자신들이 트로이의 함락에서부터 생겨났다고 주장했다. 트로이의 함락에서부터 생겨났다는 것은, 결국 유럽의 모든 민족과 모든 국가, 모든 왕국들이 로마의 자매임을 주장하는 것이다. 그래서 프랑스 왕가는 브루투스의 영국 황실인 프랑쿠스에서 유래한 것으로 되어 있다. 모든 주요 욍가들은 프리아모스(트로이의 왕)의 계통 속에서 고매 로마와 가계 연관이 있는 인물들을 조상으로 내세웠다. 15세기에도 콘스탄티노플의 황제가 베네치아의 총독에게 이렇게 말했을 정도이다. "우리가 무엇 때문에 싸울 것인가? 우리 모두 형제들인데. 누구나 알다시피 터키인은 트로이의 불길 속에서 태어났으며, 프리아모스의 후손들이다. 터키인은 아이네아스나 프랑쿠스와 마찬가지로 프리아모스의 아들이다."

   이처럼 로마는 중세의 역사의식 한가운데에 살아 있었다. 5, 6세기부터 나타나기 시작한 수많은 왕국들과 로마 사이에는 아무런 단절도 없었다. 그런데 종족투쟁의 담론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바로 이 단절이다. 이 단절이야말로 그때부터 고대로 간주되던 어떤 것이 실은 다른 세계에 속한 것이라는 사실을 증명해 줄 것이다. 그때까지 전혀 인정받지 못하던 단절의식이 새롭게 출현한 것이다. (...) 유럽의 진짜 기원―프랑크족의 침입이나 노르만족의 침입 같은 유혈적인 기원, 즉 정복으로부터의 기원이 바로 그것이다―을 형성하게 될 사건들이 속속 나타나기 시작했다. 정확히 그 시대를 '중세'(봉건주의라고 불리게 될 이 현상이 역사의식 속에 독립적으로 자리잡기 위해서는 18세기초까지 기다려야 했다)로서 특정지을 어떤 것이 나타난 것이다. 프랑크족이나 골족이니 켈트족이니 하는 새로운 주인공들이 등장했고, 북부인이니 남부인이니 하는 좀더 일반적인 다른 주인공들도 등장했으며, 지배자와 피지배자 · 정복자와 패배한 신민이라는 주인공도 등장했다. 그들은 이제 역사적 담론이라는 무대에 등장했고, 그 이후부터 내내 주요한 참조 대상이 될 것이다. 유럽은 그때까지 한번도 자기 족보에 끼워주지 않았던 조상들의 추억으로 가득 차게 되었다. 특히 그때까지 모르고 있던 이분법적인 분할로 분열되었다. (...) 이런 관점에서 전혀 다른 시대구분과 함께 종족전쟁의 담론이 유럽인의 의식과 실천, 그리고 정치 속에서 나타나는 것을 우리는 확인할 수 있다. 바로 여기에서부터 나는 몇 가지를 주목하고자 한다.

  첫재, 종족투쟁의 담론이 전적으로 피억압자에게만 속해 있으며, 그것이 적어도 그 시초에는 예속된 사람의 담론이었고, 민중에 의해 주장되고 말해지는 민중의 담론이라고 간주하는 것은 잘못된 것이다. 오히려 이 담론은 강력한 확산력과 커다란 변신의 능력, 그리고 일종의 전략적인 다양성을 지니고 있었다. 처음에는 이것이 후반기의 민중운동에 수반했던 신화나 종말론적 주제 안에서 모습을 드러낸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그것은 곧 역사적 학문이나 민중문학, 또는 우주-생물학적 사변의 형식 속에 나타난다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할 것이다. 그것은 오랫동안 상이한 반체제 그룹들의 담론이었다. (...) 17세기의 영국혁명 당시에는 과격파의 사상에 봉사했으나, 그 후 몇 년 후에는 형태가 별로 수정되지 않은 채 루이 14세의 권력에 대항하는 프랑스 귀족들의 반동적인 사상에 불과했다. 마침내 19세기 초에는 역사의 진정한 주체가 민중이라는 역사를 쓰기 위한 후기 혁명적 기획과 연관을 맺었다. 그러나 몇 년후에는 다시 식민화된 저급인종의 자격박탈이론에 기여하게 된다. (...)

  두번째, 종족간의 정쟁을 다루고 있고 '종족'이라는 용어가 충분히 일찍 나타난 이 담론에서, 당연히 '종족'이라는 말은 결코 어떤 안정적인 생물학적 의미에 고착되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이 말은 완전히 유동적인 것도 아니었다. 이 말은 결국 매우 넓은, 그러나 상대적으로 고정되어 있는 역사적 · 정치적 균열을 가리킨다. 이 담론 안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같은 지역적 기원을 가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이 두 그룹은 적어도 처음에는 같은 언어를 갖지 않았고, 가끔은 갖은 종교도 갖지 않았으며 그들이 정치적인 공동체와 통일체를 이룬 것은 전쟁 · 침략 · 전투 · 승리 · 패배에 의해서, 요컨대 폭력에 의해서였을 뿐이다. 다시 말하면 전쟁의 폭력에 의해 수립된 유대관계이다. (...)

  세번째, 그러니까 우리는 역사적 담론의 두 개의 커다란 형태학, 두 개의 커다란 중심, 두 개의 정치적 기능을 거기에서 구별해 낼 수 있다. 한편에는 주권의 로마적 역사가 있고, 또 한편에는 굴종과 유배의 성서적인 역사가 있다. 이 두 역사의 차이가 공식적인 담론과 촌스러운 담론, 다시 말해서 정치적인 지상명령에 너무 조건 지어져 하나의 앎을 생산할 능력이 없는 그런 담론의 차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는다. 사실상 권력의 허위를 벗기고 그 비밀의 베일을 찢어내는 것을 목적으로 삼는 이 역사는, 권력의 중단 없는 법통성을 회복하고자 했던 역사가 이룬 만큼의 앎을 생산해 냈다. (...) 예를 들면 17세기 영국에서 노르만족의 침입과 색슨족에 대한 그들의 부당성을 말하는 담론이, 영국 왕권의 일사분란한 역사를 말하려던 왕당파 법률가들의 역사적인 작업과 서로 충돌했을 때였다. 앎의 장 전체를 폭파시킨 것이 바로 이 두 역사적 실천의 교차였다. 마찬가지로 17세기말에서 18세기초의 프랑스 귀족들은 자신들의 족보를 연속성의 형태가 아니라, 그들이 한때 잃어버렸으나 다시 회복해야만 하는 특권의 형태로 세웠다. 이런 축 위에서 행해진 모든 역사 탐구는, 루이 14세가 했던 것과 같은 왕실 사료편찬과 완전히 충돌되는 것이었다. 역사적 앎의 확장은 이때 이루어졌다. 마찬가지로 19세기초에도 또 다른 풍요기를 맞는다. 민중의 역사, 민중의 굴종과 예속에 대한 역사, 골족과 프랑크족에 대한 역사, 그리고 농민과 제3신분에 대한 역사 등의 담론이 체제의 전통적 역사와 부딪혔다. 그러므로 주권의 역사와 종족투쟁의 역사 사이의 충돌에서부터 앎의 영역와 내용들이 끊임없이 부딪치고 동시에 새롭게 생산되었다.

   마지막으로 이 모든 충돌을 가로질러, 또는 이 모든 충돌에도 불구하고 혁명적이 담론―17세기의 영국, 19세기의 프랑스와 유럽의 담론―이 자리잡은 것은 분명히 성서적인 역사의 편, 즉 요구로서의 역사와 봉기로서의 역사의 편이었다. (...) 비대칭성을 간파해내고 실질적인 전쟁을 환하게 드러내며 그 전쟁을 되살리는 것, 이것은 적어도 18세기말 이래 유럽을 움직여온 혁명적 담론의 전부는 아니라 하더라도 여하튼 그것의 중요한 씨줄이다. 이것은 중세말 이래 종족투쟁을 이야기하는 대대적인 반역사운동 안에서 형성되고 정의되었으며, 정비되고 조직되었다. 말년의 마르크스가 1882년 엥겔스에게 다음과 같이 말했다는 것을 잊어서는 안된다. "우리의 계급투쟁이론, 그것을 우리는 종족투쟁을 말하는 프랑스 역사가들에게서 발견했다는 것을 자네는 잘 알고 있겠지." 거기에서부터 우리는 19세기 중반에 담론이 왜, 그리고 어떻게 새로운 내기가 되었는지를 이해할 수 있게 된다.

   정확히 인종차별주의가 될 어떤 것이 생겨난 것은 바로 이렇게 해서였다. 종족투쟁에 대한 담론의 기능과 목표 · 형태를 재선택했으나 그것을 뒤집어 다른 것으로 전환함으로써 이 인종주의는 역사적 전쟁의 주제가―그 전투 · 침략 · 약탈 · 승리 · 패배와 함께―생존경쟁이라는 후기 진화론적 · 생물학적 주제로 바뀐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더 이상 전쟁 개념의 전투가 아니라 생물학적 개념의 전투인 것이다. 종(種)의 분화와 도태 · 적자생존 등의 개념이 그것이다. 마찬가지로 언어이 서로 상이한 두 그룹, 두 종족이 나란히 공생하는 이원적 사회의 주제가 생물학적으로 단일한 일원론적 사회의 주제로 바뀐 것이다. (...) 이제 국가는 다른 종족에 대한 한 종족의 무기가 아니라, 종족의 순수성과 우월성 그리고 그 통합을 보장하는 도구이며 또 그래야만 했다. 그 일원론적 · 국가적 · 생물학적 함의와 함께 종족의 순수성이라는 이념은 곧 인종간 투쟁이라는 이념으로 대치될 것이다.

  종족의 순수성 주제가 인종투쟁의 주제로 바뀔 때 인종주의는 생겨나고, 이때 반역사는 생물학적 인종주의로 전환된다. 그러니까 인종주의는 우연히 서구의 반혁명정책의 담론과 연결된 것이 아니다. 그것은 단순히 특정한 시기에, 일종의 반혁명기적 기획 안에 나타나게 될 부가적 이념의 구조물이 아니다. 종족 간의 투쟁의 담론이 혁명적 담론으로 변화했을 때, 원래 같은 뿌리에서 나왔으나 전혀 다른 의미로 전화된 인종주의는 혁명적 예언과 기획과 사상이 되었다. 인종주의는 글자 그대로 혁명적 담론이지만, 그러나 정반대의 의미에서이다. 투쟁하는 담론이 로마적 주권의 역사-정치적 담론에 쓰인 무기였다면, 종족(단수로서의 종족)의 담론은 이 무기를 뒤집는 방식, 그 칼날을 국가 속에 보존된 주권을 위해 사용하는 방식이었다고 말할 수도 있겠다.

  이제부터 주권의 생명력과 섬광은 마술-사법적 의식(儀式)에 의해 보장되는 것이 아니라, 의학-규격화의 기술에 의해 확보된다. 법에서 규범으로의 전이, 법률학에서 생물학으로의 전이에 의해, 또는 복수의 종족에서 단수의 종족으로 건너뜀으로써, 그리고 해방의 기획을 순수에 대한 관심으로 바꾸어 놓음으로써 국가 주권은 종족투쟁의 담론을 다시 취하여 그것을 자기 고유의 전략으로 삼았다. 이렇게 해서 국가 주권은 종족 보호의 당위성을 혁명적 호소에 대한 대안과 장벽으로 삼았다. 이 혁명적 호소 역시 투쟁과 판독 · 요구 · 약속의 오랜 담론에서 파생된 것임은 두말할 나위가 없다.

  마지막으로 여기에 나는 한 가지만 덧붙이고 싶다. 종족간의 투쟁이라는 옛 담론이 혁명적 담론에 대한 대안으로 변용된 이 인종주의는 20세기에 또다시 두 번의 변화를 맞게 된다. 19세기말 우선 국가 인종주의라 부를 수 있는 중앙집권적 · 생물학적 인종주의가 생겨났다. 이 인종주의는 20세기에 와서 근본적으로 수정되었다고 할수는 없어도, 최소한 어떤 특정의 전략으로 변형되어 사용되었다. 거기에서 기 본적으로 두 개의 변용을 우리는 찾아볼 수 있다.

  그 첫번째는 나치적 변용이다. 나치국가종족을 생물학적으로 보호할 책임이 있다는, 19세기말에 확립된 국가 인종주의의 명제를 채택하였다. 그러나 이 명제는 약간 후퇴적인 방식으로 체택되고 전환되어, 과거에 종족들의 투쟁의 주제가 나타났던 바로 그 예언적 담론의 한 가운데 이식되어 어떤 기능을 갖게 되었다. 그래서 나치즘이데올로기적 · 신화적 풍경 안에서 국가 인종주의를 작동시키기 위해 거의 중세적인 모든 민중적 신화를 다시 사용했던 것이다. 이 이데올로기적 · 신화적 풍경은 과거 한 특정 시기에 종족들의 투쟁이라는 주제를 야기시켰던 민중투쟁의 풍경과 매우 닮아 있다. 그래서 나치시대의 국가 인종주의는, 독일에게 있어서 잠정적인 승리자였던 유럽 열강과 슬라브족, 베르사유 조약 등에 대한 게르만족의 투쟁을 구성 요소로 혹은 의미로서 함축하고 있었다. 이 인종주의는 또한 한 사람의 영웅, 혹은 영웅들의 회귀(프리드리히와 그외 모든 지도자들, 그리고 민족의 총통의 깨어남)라는 주제, 조상들의 옛날 전쟁을 계승한다는 주제, 그리고 민족의 천년 승리를 확보해 줄 그러나 당연히 묵시록적 최후의 날이기도 한 마지막 제국, 즉 새로운 제국의 도래라는 주제를 담고 있다. 국가 인종주의를 민족의 설화 안에 다시 심고 기입하여 전환시킨 나치의 방식인 것이다.

   이런 나치즘의 변용 앞에 그와 정반대의 소비에트식 변용이 있다. 그것은 떠들썩하게 연극적인 변용이 아니라 전설의 극화가 전혀 없는 은밀한, 그러나 희미하게 과학주의적인 그러한 변용이다. 이것은 사회적 투쟁이라는 혁명적 담론을 다시 취하여 그것을 경찰국가적 관리와 연결시켰다. 이 경찰국가적 관리는 조용하게 사회의 질서를 잡고 그 건강을 지킬 것이다.혁명적 담론이 계급의 적으로 지칭했던 것이 소비에트 국가 인종주의에서는 일종의 생물학적 위험이 될 것이다. 계급의 적, 이제 그것은 무엇인가? 그것은 병자 · 일탈자 · 광인이다. 그 결과 과거에 계급의 적에 대항했던 무기(전쟁이라든가 변증법, 혹은 신념이라는 무기는), 이제 종족의 적으로서의 계급의 적을 말살하는 의학적 경찰이 될 수밖에 없다.

  그러므로 한쪽에는 민족의 낡은 전쟁 설화 안에 국가 인종주의를 접목시킨 나치즘이 있고, 또 한쪽에는 계급 투쟁을 조용히 국가 인종주의와 접목시킨 소비에트적 방식이 있다. 이렇게 해서 법과 왕들의 거짓말 속에서 서로 싸웠던 종족들의 목쉰 노래, 결국 혁명적 담론의 최초의 형태를 가져왔던 그 노래는 사회 유산을 순수하게 지켜야 한다는 명목으로 자신을 보호하려는 한 국가의 행정적 산문이 되었다. 여기에 투쟁하는 종족들의 담론이 가진 영광과 치욕이 있다. 내가 여러분에게 보여주고자 했던 것이 바로 이 담론이다. (...)

  - 『미셸 푸코, 사회를 보호해야 한다. 1976, 콜레쥬 드 프랑스에서의 강의』 (미셸 푸코 (지은이), 박정자 (옮긴이) · 동문선 · 1998년 · 원제 : Il Faut Defendre La Societe, 1997년) p.86~1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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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1. 24
    Jul 2018
    16:57

    [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슬픔과 기쁨, 나쁨과 좋음, 그리고 윤리(Ethics)

    (...) 슬픔에는 부정적이지도 외적이지도 않은 환원불가능한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체험된 실제적인 이행, 지속이다. <나쁨>의 궁극적인 환원불가능성을 보여주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은 행위 능력 혹은 변용 능력의 감소로서의 슬픔이다. 이 슬픔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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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2. 19
    Jul 2018
    09:27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③

    (...) 일어난 모든 것이 자신들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다음, 사람들은 모든 사물들 안에서 그들에게 가장 유용했던 것을 특별한 것으로 판단해야 했고, 또한 그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었던 것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해야 했...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787 fi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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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3. 19
    Jul 2018
    08:31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②

    (...) 이제는 자연이 자신 앞에 설정한 어떠한 목적도 없고 모든 목적인은 인간이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논의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며 정리161)과 정리 32의 따름정리2)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이 편견이 그 기원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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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19
    Jul 2018
    06:56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①

    (...)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인간 때문에 만들었으며 또한 신이 자신을 공경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고찰할 첫번째 논점은 우선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편견에 만족해 하며 또한 모든 이들이 왜 같은 편견을 그렇게 자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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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18
    Jul 2018
    08:32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생명 · 공동체 · 노동력 교환 · 재산의 공유

    (...) "농부, 닭 잡아와." 어린 농부는 지체 없이 달려가서 애를 쓰다가 닭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손쉽게 닭의 양 발을 붙잡은 농부는 곧 점심거리가 될 닭을 엄마에게 넘겨 주었다. 구미는 닭의 다리를 묶고 옆으로 눕혔다. 나는 의아했다. 구미가 닭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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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18
    Jul 2018
    06:24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세이세이

    (...) 모쒀족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들의 사랑이야기다. 이들은 걷는 결혼, 즉 '주혼'이라는 상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눈다. 주혼은 모쒀인들의 삶의 방식 중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다.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 현상을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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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18
    Jul 2018
    04:55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모쒀 남자도 멋지다

    (...) 이 말(편집자 주: 종난취뉘, 重男輕女)을 빌려와 약간만 바꾼다면 모숴 사회 속 여아와 남아의 지위를 가장 잘 드러낸 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종뉘부친난(重女不輕男)'이다. 문자 그대로 '여아를 중시하지만 남아를 경시하지 않는다'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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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18
    Jul 2018
    03:19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모쒀 여자는 멋지다

    (...) 모쒀 여성은 팔색조다. (중략) 모쒀 여성들은 외모를 과시하지 않았다. 수수하게 입고, 팔찌나 부적이 들어 있는 소박한 목걸이 정도를 제외하면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다른 여성들과 경쟁적으로 미모를 가꾸는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모쒀 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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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13
    Jul 2018
    03:55

    [문학] 『사포(SAPPHO)』 : 레즈비언 · 멘토 · 멘티 · 동성애 · 페미니즘 · 여성운동 · 종교

    (...) 레스보스 태생의 사포(기원전 615~570/60년경)가 창작한 문학작품은 전문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구동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그녀가 쓴 방대한 작품들 중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소수의 작품들과 얼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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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07
    Jun 2018
    05:21

    [문학]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 '여성'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自序 시는 아마 길로 뭉쳐진 내 몸을 찬찬히 풀어, 다시 그대에게 길 내어주는, 그런 언술의 길인가보다. 나는 다시 내 엉킨 몸을 풀어 그대 발 아래 삼겹 사겹의 길을…… 그 누구도 아닌 그대들에게, 이 도시 미궁에 또 길 하나 보태느라 분주한 그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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