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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담론의 질서』 : 나눔의 문제, 분절(articulation)

by 이우 posted Aug 05, 2018 Views 174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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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나눔의 문제는 학문의 세계에서나 일상적인 삶의 세계에서나 매우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우리의 철학적 사유가 처음으로 개화할 때 우리는 존재의 문제에 부딪힌다. '왜 존재할까?'라는 물음은 해결할 수 없는 궁극적인 물음으로 다가온다. 우리는 이 물음 앞에서 형이상학적 좌절을 겪는다. 그 뒤 우리는 또 하나의 기본적인 물음에 부딪힌다. 그것은 '무엇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이다.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것을 긍정한 뒤 우리는 그 무엇이 정확히 무엇인지에 대한 물음을 던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가 세계를 편견 없이 바라볼 때, 우리는 이 세계가 하나이면서 동시에 여럿임을 알게 된다. 우리가 '이 세계'라고 부를 때 우리는 이 세계가 하나임을 안다. 그러나 또한 우리는 이 세계가 오직 하나인 어떤 것이 아니라 여럿이 모여서 이루어져 있음을 알게된다. 세계는 나에게 차별성을 통해 드러난다. 하늘을 파랗고 대지는 흙빛으로 빛난다. 물고기는 헤엄치고, 말은 달리며, 원숭이는 나무에 오른다. 세계는 나에게 차이(差異)로서 그리고 다(多)로서 드러나는 것이다. 그리고 우리가 무엇인가에 생각하고 말할 때 우리는 이미 이 다(多)를 어떤 식으로든 규정하고 들어감을 알 수 있다.

  그래서 우리가 사유하고 말하고 행동할 때 우리는 최소한 두 가지의 존재론적 전제 위에 존립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 하나는 무엇인가가 존재한다는 사실에 대한 긍정이고 다른 하나는 뮤엇이 존재하는가라는 물음에 대한 대답, 즉 다(多)를 어떻게 나누고 들어갈 것인가에 대한 입장이다. 붉은 사과 세 개와 참외 네 개가 있을 때 우리는 누구나 일곱 개의 과일이 존재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공간적인 응집성이 아닌 색을 가지고서 사물을 판단하는 어떤 동물이 있다면 여기에 두 개의 과일일 존재한다고 말할 것이다. 이와 같이 어떤 인식 주체가 인식 대상을 파악할 때, 그 대상의 존재함에 대한 긍정과 더불어 그 대상을 일단 무엇무엇으로 나누어 볼 것인가 하는 존재론적 분절(l'articulation ontologique)의 문제는 언제나 전제되는 것이다. (...)

  <말과 사물>은 서구인들이 그들에게 매우 낯선 나눔에 부딪혔을 때 느끼는 당혹감을 서술함으로써 시작하고 있다. 이 책의 발상은 보르헤스의 한 원문으로부터 유래한다. 즉 그의 원문을 읽었을 때 지금까지 간직해온 나의 사고―우리의 시대와 풍토를 각인해주는 우리 자신의 사고―의 전지평을 산산이 부수어버린 웃름으로부터 연유한다. 그 웃음과 더불어, 우리가 현존하는 수많은 생명체를 정돈하는 데 상용해 온 모든 정렬된 표층과 모든 평면이 해제되었은가 하면 오래 전부터 용인되어온 동일자와 타자 사이의 관행적인 구별은 계속 혼란에 빠지고 붕괴의 위협을 받았다. 이 원문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는 '중국의 한 백과사전을 인용하고 있다 : "동물들은 다음과 같이 부류된다. 1)황제에 속하는 동물, 2)향료로 처리되어 방부 보존된 동물들, 3)사육동물들, 4)젖먹이 동물들, 5)인어들, 6)전설상의 동물들, 7)주인 없는 개들, 8)이 분류에 포함되는 동물, 9)광인들처럼 소란피우는 동물, 10)셀 수 없는 동물, 11)낙타털과 같이 미세한 모필로 그려질 수 잇는 동물, 12)기타 등등, 13)물단지를 깨뜨린 동물, 14)멀리서 볼 때 파리처럼 보이는 동물들." 이와 같은 분류법, 우화를 통해 드러나는 것에 대해 경탄하는 가운데, 우리가 단번에 감지할 수 있는 것은 우리의 사고의 극한, 즉 바로 이것에 대한 사고의 불가능성이다.

  한 문화가 그에 익숙해져 있는 존재론적 분절과는 전혀 다른 분절법과의 만남, 사물들이 그 안에서 전혀 다른 방식으로 정렬되고 있는 낯선 공간과의 부딪힘으로부터 야기되는 당혹감이 잘 서술되어 있다. 하나의 존재론적 분절 체계 속에서 다른 체계로 넘어가는 경계선, 하나의 동일자와 그에 대한 타자가 만나는 극한선상에서 푸코 철학의 문제 의식은 생성된다.

  우리가 무의식적으로 전제하고 있는 존재론적 분절에는 매우 많은 종류가 있다. 우리가 일상적인 삶에서 전제하고 살아가는 분절들이 있는가하면 원자, 전자, 소립자와 같은 물리학자의 나눔, 남성과 여성 같은 생물학적인 나눔, 프롤레타리아와 부르조아 같은 19세기 정치경제학의 나눔 등, 우리는 우리의 관점에 따라 무한히 존재하며 또 시간의 흐름에 따라 변화를 겪는 나눔의 복잡한 체계 속에서 살아간다. (...)

 - 『담론의 질서』(미셸 푸코 · 새길 · 1993년, 원제 : L'ordre du discours, Gallimard, 1971년) 역자 이정우가 쓴  <제2부 푸코 사상의 여정> p.61~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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