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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향락의 전이』 : 오토 바이닝거,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by 이우 posted Jun 03, 2018 Views 147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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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공중들이 철학자가 성교를 한다고 해서 무가치하고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해보자…”(237)*. 이러한 진술은 바이닝거*의 작업에 일종의 좌우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는 성차와 성관계를 철학의 중심 주제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그가 지불한 대가는 끔찍한 것이었다. 그의 위대한 책, 『성과 성격(Sex and Character)』이 출간된 후 한 달이 지나 그는 24살의 나이에 자살했다. 왜 그랬을까?

  바이닝거와 관련하여 우리에게 충격을 주는 첫 번째 문제는 그의 글쓰기가 지닌 완화되지 않은 확실성이다. 우리는 ‘객관적 이론’을 다루고 있는 것이 아니다. 작가는 철저하고 직설적으로 자신의 중심 문제에 개입되어 있다. 우리 세기의 첫 십 년에 『성과 성격』이 문제 청소년들의 독서 목록에서 수위를 차지하였다는 것은 우연이 아니다. 그 책은 청소년들의 폭풍 같은 내적 삶을 괴롭히는 모든 질문들에 해답을 제공하였다. 천박한 철학적 상투어가 혼합된 현대의 반여성주의 편견과 반유대적 편견의 조합으로 이러한 답변을 모욕하는 것은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러한 기각으로 상실된 것은 바이닝거를 독해함으로써 인정의 효과이다. 그는 ‘공식적 담론이 감히 공적으로 표현하지 않고 암암리에 전제하는 모든 것을 ’지명하여 명명한 것‘처럼 보이데 한다. 간단히 말해 바이닝거는 지배 이데올로기의 ’성차별주적‘ 환상의 지지물을 분명히 드러내었던 것이다.

  ‘여성은 단지 철저하게 성적(性的)…“

  바이닝거에세 성차는 주체와 대상의 대립, 즉 능동적 정신과 수동적 물질의 존재론적 대립에 뿌리박혀 있다. 여성은 수동적이고 감수성이 강한데, 그것은 그녀가 전적으로 성에 의해 지배받는 것을 의미한다.
 
  “여성은 단지 철저하게 성적이다. 왜냐하면 여성의 성은 그녀의 전체 몸에 퍼져 있고, 육체적인 용어로 표현하면 어떤 장소에서도 다른 사람들에게서보다도 항상 그녀의 몸 전체표면에 훨씬 더 농후하게 드러나기 때문이다—여성은 모든 것에 성적으로 영향받고 침투되어 있다. 우리가 보통 성교라고 부르는 것은 단지 고도의 강렬함을 지닌 특수한 사례이다. (...) 그러한 이유로 부성(父性)은 끔찍한 사기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수많은 다른 것들과 다른 사람들과 함께 부성을 공유할 뿐이다. (...) 또한 모든 지점에서 모든 사물들에 침투되어 있는 존재는 모든 곳에서, 모든 것에 의해서 임신할 수 있다. 어머니는 그 자체로 용기(容器)일 뿐이다. 어머니에게 모든 사물들은 살아 있는데, 생리학적으로 모든 것이 그녀에 의존하여 작용하고 그녀의 아이를 형성하기 때문이다.”(258~9)

  여기서 우리는 이미 바이닝거가 처한 모든 곤경의 근원에 직면한다. 즉 그는 여성적 대타자의 향락과 남근적 경향을 혼동하고 있다. 여기서 후자는 남근에 집중되는 것이 아니고, 모든 방향으로부터 질문 공세를 받는다. 바이닝거의 전반적 이론구성 체계는 대타자의 향락을 남근적 향락으로 환원시킬 가능성에 의존하고 있다. 그러한 이유로,

  “짝짓기 관념은 여성에 대해 긍정적 가치를 가지는 유일한 개념이다. (...) 여성에게 짝짓기는 최고의 선이다. 여성은 항상, 그리고 어디에서나 짝짓기에 영향을 주려고 노력한다. 여성의 성은 단지 이러한 보편적이고 일반화된, 비개인적 본능의 특수한 사례일 뿐이다.”(260)
  이러한 일반성은 두 가지 방식으로 개념화될 수 있다. 먼저 성교는 여성의 전반적 활동을 특수한 제조로 채색한다. 여성은 영혼이 담긴 순수한 정신적 태도를 견지할 수 있다. 그리고 여성은 진리 그 자체를 위하여 진리를 지향할 수 없고, 의무 그 자체를 위하여 의무를 완성할 수 없다. 여성은 미에 대해 사심없이 숙고할 수 없다. 여성이 그러한 정신적 태도를 가장하는 듯 할 때, 면밀히 고찰하지 않으면 뒷면에 숨겨진 ‘병리적’이고 성적인 관심을 확인할 수 없다. 여성은 남성에게 인상을 불어넣기 위해 진리를 말하고, 남성에 대한 유혹을 조장한다. 절대적 행위로서 자살조차 자기애적인-병리적인 생각을 동반한다. ‘그러한 자살에 실제로 항상 다른 사람들의 생각이, 즉 그들이 무엇을 생각할 것인가, 그들이 그 자살에 대해 어떻게 애도할 것인가, 그들은 얼마나 슬퍼할 것인가, 또는 분노할 것인가가 뒤따른다.“(286)

  항상 성교를 위한 계기를 숨기는 사랑의 경우조차도 마찬가지라는 것은 말할 필요도 없다. 여성은 인물에 대해 순수하고 사심 없는 감탄을 결코 보낼 수 없다. 더구나 여성에게 성교의 관념은 그녀의 자아중심주의를 극복하는 유일한 방식이고, 그녀에게 유효한 유일한 윤리적 관념이다. 여기서 ‘윤리적’이라는 것은 여성이 특수한 ‘병리적’ 관심과 무관하게 얻으려고 노력하는 이상을 표현한다는 의미이다.

  “성생활의 활동을 위한 여성의 소망은 그녀의 가장 강력한 충동이나 그것은 그녀의 깊고 유일하게 생기는 관심, 즉 성적 결합이 일어날 것이라는 관심의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다. 여성은 가능한 많은 성적 결합이 모든 사례, 장소, 그리고 시간에서 일어날 것이라는 소망을 가진다.”(257~8)

  그러므로 성교는 여성이 보편적인 윤리적 정언명령데 대한 자신의 견해를 공식화할 수 있는 유일한 사례이다. “너의 활동이 제한 없는 일반적 짝짓기의 이상을 실현하는 데 기여할 수 있도록 행동하라.” 성에 의해, 즉 성교의 관념에 의해 철저하게 지배받은 여성과 대조적으로 남성은 여성과의 관계에서 성적 탐닉과 성애적 사랑이라는 상호배제적인 극단으로 분열된다.

  “사랑과 욕망은 두 가지 서로 다른 상호배제적인 대립조건이다. 그리고 남성이 실제로 사랑하는 시간 동안 그의 사랑대상과의 육체적 결합에 대한 생각은 참을 수 없는 것이다. (...) 남성이 성애적이면 성애적일수록 더욱 더 그는 성 때문에 고통받을 것이다. 그리고 역도 마찬가지다. (...) 소위 어떤 다른 사랑이 감각의 왕국에 속하기 때문에 ‘플라톤적 사랑’만이 존재한다.”(239~40)

  그런데 여성의 본질에 의해 그녀의 관심 영역이 성교에 제한된다면 여성의 미(美)는 어디로부터 나오는가! 어떻게 여성은 순수하게 정신적 사랑의 대상으로 기능할 수 있는가? 여기서 바이닝거는 근본적 결론을 이끌어낸다. 여성의 미의 본질은 ‘수행적’이다. 다시 말해 여성의 미를 창조하는 것은 남성의 사랑이다.

  “남성이 부여한 사랑은 여성에게서 아름다운 것과 협오스러운 것의 기준이다. 미학에서의 조건들은 논리학 또는 윤리학에서의 조건들과 꽤 상이하다. 논리학에서는 사고의 기준인 추상적 진리가 있고, 윤리학에서는 무엇이 행해져야 하는가에 대한 기준을 제공하는 이상적 선이 존재한다. (...) 미학에서 니는 사랑에 의해 창조된다. (...) 모든 미는 사랑의 요구를 투사하고 방출하는 것이다. 그리고 여성의 미는 사랑과 분리되지 않으므로 그것은 사랑이 지향하는 목적이 아니라 남성의 사랑이다. 그것들(여성의 미와 남성의 사랑)은 두 개의 사물이 아니라 하나이자 동일한 사물이다.”(242)

  더 나아가 불가피한 결론은 여성에 대한 남성의 사랑—성적 갈망과 대립되는 그의 정신적이고 순수한 사랑—이 철저하게 자기애적 현상이라는 것이다. 여성에 대한 사랑에서 남성은 오직 그 자신만을, 그의 이성적 이미지를 사랑하는 것이다. 남성은 이러한 이상으로부터 그의 끔직한 현실을 영원히 분리하는 틈새를 잘 알고 있으므로 그것을 또 다른 것에, 즉 이상화된 여성에 투사하고 전이한다. 이것이 바로 사랑이 ‘맹목적’인 이유이다. 따라서 사랑은 우리가 투쟁하여 얻고자 하는 이상이 이미 타자 속에서, 그리고 사랑의 대상에서 실현된다는 환영에 의존한다.

  “사랑에서 남성은 오직 그 자신만을 사랑한다. 그는 경험적 자기도, 연약함과 천박성도, 그가 표면상 드러낸 실패와 협소함도 사랑하지 않는다. 그러나 그가 원하는 모든 것, 그가 해야 할 모든 것, 그의 가장 진실하고 심층적이며 지성적인 본질은 필요의 족쇄로부터, 지상의 모든 오염으로부터 해방된다. (...) 그는 절대적으로 가치 있는 존재라고 하는 그의 이상, 그가 자신 안에서 분리할 수 없는 이상을 또 다른 인간존재에 투사하는데, 이러한 행위는 다만 사랑과 사랑의 중요성에 다름아니다.”(243~4)

  따라서 증오 못지않게 사랑은 비겁함의 현상이며 손쉬운 해결책이다. 증오에서 우리는 우리 자시 속에 거주하는 악을 타자에게 왜재화하고 전이함으로써 그 악에 직면하는 것을 회피한다. 반면에 사랑에서는 우리의 정신적 본질을 실현하기 위해 고통을 받으들이는 대신에 우리는 이러한 본질을 이미 실현된 존재의 상태로 타자에게 투사한다. 이 때문에 사랑은 남성 그 자신과의 관계 뿐만 아니라, 무엇보다도 그 대상과의 관게에서도 역시 바보스럽고 기대할 만한 것이 못 된다. 사랑은 철저하게 대상의(여성의) 진정한 속성을 무시하고, 그것을 일종의 텅 빈 투사장막으로 이용하기만 한다.

  “여성의 사랑은 그것이 그녀의 실체적 속성을 고려하고, 실제의 심적 현실을 그것과 다른 상상적 현실에 의해 대체할 수 있을 때만 가능하다. 여성 그녀 자신에 대신하여 여성 속에서 우리의 이상을 실현하려는 시도는 여성이라는 경험적 인성을 불가피하게 파괴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러한 시도는 여성에게 잔인한 것이다. 사랑의 자아중심주의는 여성을 무시하고 그녀의 실재적인 내적 생활을 돌보지 않는다. (...) 사랑은 살인이다.”(249)

  여기서 물론 바이닝거는 고상한 사랑에서 여인이라는 이상화된 인물의 숨겨진 진실을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그러므로 사랑의 핵심적 수수께끼는 왜 남성이 그의 정신적 본질을 오인하는 이상화된 대상으로 여성을 선택하는가이다. 왜 남성은 그의 구원을 그의 몰락에 책임이 있는—우리가 이미 알고 있듯이 남성은 정신적-윤리적 본질과, 여성이 지속적으로 성교로 유인함으로써 남성 속에서 유발된 성적 갈망으로 분열되기 때문에—존재에게 투사하는가? 이러한 수수께끼를 풀 유일한 방법은 성애적 사랑의 대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관계와 성적 탐닉의 대상으로서 여성에 대한 남성의 관계, 둘 모두가 ‘수행적’이라는 사실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엄격히 말해서 여성은 남성 몰락의 원인이 아니라, 그녀에게 실존을 부여하면서 그녀를 창조하는 성 그 자체로 남성이 몰락하는 것을 말한다.

  “남성이 그의 고유한 성을 받아들이고, 그 속의 절대자를 거부하며, 낮은 쪽으로 방향선회할 때만 그는 여성에게 실존을 부여한다. 남성이 성적으로 될 때, 그는 여성을 형성한다. 단지 남성이 그의 성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여성이라는 것이 발생한다. 여성은 단지 이러한 긍정의 결과이다. 여성은 성 그 자체이다.  (...) 따라서 여성의 유일한 목적은 남성을 성적으로 유지하는 것이다. (...) 여성은 단 하나의 목적만을 가지는데, 남성의 죄책감을 지속시키는 것이다. 왜냐하면 여성은 남성이 그의 성을 극복하는 순간 사라질 것이기 때문이다. 여성은 남성의 원죄이다.”(298~9)

  여기서 원인과 결과 사이의 정상적 관계는 전도된다. 여성은 남성 몰락의 원인이 아니라 그 결과이다. 그러한 이유로 우리는 여성과 적극적으로 싸울 필요가 없는데, 왜냐하면 그녀는 어떤 긍정적인 존재론적 일관성을 지니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302). 존재하기를 멈추는 여성을 위하여 남성이 그 자신 속에서 성적 충동을 극복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이제 우리는 왜 남성이 그의 사랑 대상으로서의 여성을 선택했는가를 알 수 있다. 남자의 성을 인정함으로써 여성을 창조한 돌이킬 수 없는 실수는 심각하게 남성을 압박한다. 사랑은 여성에 대한 죄책감을 보상하기 위하여 남성이 꾀한 바보스럽고 위선적인 시도에 불과하다.

  “죄를 지은 남성은 여성을 창조했고, 여전히 그녀의 목적에 동의하면서 성애주의로 그녀에게 변명한다. (...) 여성은 단지 남성의 표현과 성의 투사에 불과하다. 모든 남성은 그의 죄책감을 구현하는 여성을 스스로 창조한다. 그러나 여성 그녀 자신은 죄책감이 아니고, 타자들의 죄책감에 의해 만들어지고, 여성이 책임져야 할 모든 것은 남성의 문 앞에 놓여진다. 사랑은 죄책감을 정복하려는 대신에 그것을 덮으려고 노력하며, 여성을 파기하는 대신에 그녀를 격상시킨다.”(300)

  여성의 실존은 남성이 ‘욕망과 타협한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가 성에 굴복함으로써 자율적이고 윤리적인 주체로서 자신의 진정한 본질에 배반한다는 사실을 보여준다. 결과적으로 여성의 진정한 본질은 성교를 향한 무한한 갈망으로, 남근이 어떻게 “전적으로—비록 종종 무의식이긴 하지만—여성의 생활 전부를 지배하는가”에 대한 표현으로 이루어진다. 남근에 대한 이러한 기질적 종속 때문에 여성은 엄격한 칸트적 의미로 타율적이다. 즉 외부의 운명에 좌우되는 부자유스러운 존재인 셈이다.

  “남성의 기관은 여성에게 이드인데, 그녀는 그 명칭을 알지 못한다. 그녀의 운명은 그녀가 회피할 수밖에 없는 것 속에 있다. 그러한 이유로 그녀는 나체의 남성을 보기 좋아하지 않고, 그를 보고자 하는 욕구를 결코 포현하지 않는다. 그녀는 그 순간에 상실됨을 느낀다. 따라서 남근은 여성에게서 완벽하고 돌이킬 수 없게 자유를 빼앗는다.”(269)

  “여성은 자유롭지 않다. 궁극적으로 남성에 의해 강간당하고 싶은 충동이 한 또는 다른 방식으로 그녀를 지배한다. 여성은 남근에 희해서 통치받는다.”(274)

  결과적으로 여성이 상적 충동에 저항하고 그것에 부끄러워할 때 그녀는 자신의 진정한 본질을 억제하게 된다. 남성의 정신적 가치를 내면화하는 것은 여성의 진정한 본질을 의식하지 못하는 한 지속될 수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본질은 저항에 부딪혀 히스테리적 증상을 가장하여 회귀한다. 따라서 히스테리적 여성이 낯설고 사악하며 비도덕적 충동으로 경험한 것은 단지 그녀의 심층적인 본질이고, 남근에 대한 그녀의 종속이다. 여성의 비도덕적 성격의 궁극적인 증거는 그녀가 절망적으로 남성의 정신적 가치를 가장하려고 하면 할수록 더욱 더 그녀는 히스테리적이 된다는 것이다. 여성이 도덕적 교훈에 입각하여 행위할 때, 그녀는 남성 주인에 대한 두려움에서 벗어나 또는 그를 유혹하려고 노력하면서 타율적 방식으로 행위한다. 여성의 자율성은 가장된 것이고, 외적으로 주입된 자율성의 모방이다.

  여성이 진리를 말할 때, 그녀는 진정한 진실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남성에게 인상을 심어주기 위하여 그를 아주 교묘한 방식으로 유혹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녀가 객관적으로 진리를 말하고 있을지라도 여성은 항상 거짓말을 하고 있다”(287). 여기에 ‘여성의 존재론적 비진실성’이 있다. 즉 이러한 의미에서 여성의 “진리에 대한 사랑은 그녀의 허위를 보여주는 특수한 사례에 불과하다”(291). 여성이 성취할 수 있는 최고의 통찰력은 자기근절을 통해 구원을 추구하도록 유도하는 기질적 노예화의 모호한 징후이다.

  라깡의 여성성 이론에 익숙한 독자들에게 일한 간략한 윤곽 속에서 라깡의 근본적인 전제를 확인하는 것은 어렵지 않다. 우리는 바이닝거의 “그러므로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에서 라깡의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에 대한 예고를 확인할 수 있을 않은가? 여성이 남성의 실수를 구체화한다는 관념—여성의 실존은 정신적-윤리적 자세에 대한 남성의 배신에 의존한다는—은 남성의 증상으로서의 여성이라는 라깡 논에젱 대한 변형이 아닌가?(라깡에 의하면, 비타협성으로서의 증상은 주체가 어떻게 그의 욕망을 ‘포기하는가’를 보여준다.) 바이닝거가 진‧선‧미의 정신세계는 외적으로 여성에게 주입된 타율적인 세계이기 때문에 여성이 결코 이러한 세계에 완벽하게 통합될 수 없다고 주장할 때, 그는 여성이 상징계에 완벽하게 통합될 수 없다고 한 라깡의 주장을 지적하는 것이 아닌가?그리고 궁극적으로 남근에 대한 여성의 전체적 종속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남근의 규칙에 부분적으로 종속된 남성과는 대조적으로) 라깡의 ‘성구분의 공식들’은 여성의 어떤 부분도 남근기능으로부터 면제된 것이 없는 반면에, 남성의 위치는 남근기능에 종속되지 않는 면제, 즉 X(미지수)에 관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지 않은가? (....)

  - 『향락의 전이』(개역판 · 슬라보예 지젝 · 인간사랑 · 2002년  · 원제: The Metastase of Enjoyment : Six Essays on Woman and Causality, 1994년) p.267~277



   ................

  * 오토 바이닝거(Otto Weininger, 1880년~1903년) : 오스트리아의 사상가로 빈에서 태어났다. 1902년 빈 대학을 졸업하고, 다음해에 졸업 논문을 발전시킨 《성과 성격》을 발표한 후 이탈리아를 여행하고 돌아와서 자살하였다. 그 책은 플라톤, 칸트, 기독교를 사상적 배경으로 한 철학적 심리학의 견지에서 주로 여성 문제를 다룬 것으로, 여성부정(女性否定)의 표현이 도처에 보이나 그 자신은, 알 만한 사람은 긍정(肯定)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고 주장하였다. 또한 여성의 본질은 성에 대한 집착이며, 남자 동성애자 또한 심리적으로 여성형이기에 같다라고 주장하고 성으로부터의 자유를 주장, "자신에게 정직한 사람은 그 누구도 인류가 종족 유지를 계속해야 한다 느끼지 않는다"라 주장한다. 그리고 "유대인은 여성성과 완전히 섞여 있다 말하고 가장 남성적인 유대인은 가장 덜 남성적인 아리안인보다 덜 남성적이다"라 주장했다. 아이러니하게도, 그는 동성애자고, 유대인이다. 히틀러는 디트리히 에크하르트가 자기 일생중 딱 한명의 좋은 유대인으로 그를 뽑았다 말했다고 알려진다.

   * 괄호 안의 번호는 『성과 성격(Sex and Character)』(London : William Heineman/New York: G.P Putnam's Sons)의 영역본 쪽수를 지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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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10장 정체의 종류 (...) 정체(政體)에는 세 종류가 있고, 그것들이 왜곡된 또는 타락한 형태도 셋이다. 세 종류의 정체란 왕도정체와 귀족정체(aristokratia, 최선자정체), 그리고 세번째로 재산평가에 근거한 정체이다. 세번째 정체는 금권정체*라고 부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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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4. 03
    May 2018
    08:37

    [철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 분배적 정의(正義, justice)와 조정적 정의, 정치적 정의

    제3장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분배적 정의 (...) 분배에서의 정의는 어떤 가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누구나 같은 종류의 가치를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민주정체 지지자들은 자유민으로 태어난 것이, 과두정체 지지자들은 부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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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5. 02
    May 2018
    20:54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스콜라 철학이 열거하는 초범주개념들 가운데 개별 범주 내에서 사유되지 않지만 다른 모든 범주의 의미를 조건 짓는 단어가 바로 형용사 ‘쿼드리벳(quodlibet)*’이다. 이 단어를 통상 “어떤 것이든 무관하다”는 뜻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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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6. 02
    May 2018
    20:52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모순은 언어에 기원을 둔다

    (...)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모순은 언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실제로 '나무'란 단어가 모든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지칭할 수 잇는 것도 그 단어가 특이한(singular) 불가언적적 나무들 대신에 그들의 보푠적 의미를 가장하기 때문이다. (...) 보편자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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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7. 02
    May 2018
    20:49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파시즘과 나찌즘은 극복된 것이 아니다

    (...) 만일 우리가 인류의 운명을 다시 한 번 계급의 개념으로 사유하고자 한다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사회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모든 사회 계급이 용해되어 있는 단일한 행성적(planertaria) 소시민 계급 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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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8. 02
    May 2018
    20:47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모든 귀속의 조건을 거부하는 임의적 특이성

    (...) 중국의 5월 시위(천안문 광장의 반정부 시위)에서 가장 인산적이었던 점은 그들의 요구 사항에서 확실한 내용이 상대적으로 거의 없다는 점이다. 민주주의 자유는 실제 투쟁 대상이 되기에 너무 일반적이고 광범위한 개념들이었고 유일하게 구체적인 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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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9. 01
    May 2018
    15:02

    [철학] 플라톤의 「향연」 : 사랑은 결핍이다

    (...) "친애하는 아가톤, 자네는 먼저 에로스가 어떤 분인지 밝힌 다음 그분이 하는 일을 논하겠다고 말함으로써 이야기를 훌륭하게 시작한 것으로 생각되네. 자네가 그렇게 이야기를 시작한 것에 나는 감탄을 금할 수 없었네. 자네는 그분이 어떤 분인지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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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 26
    Apr 2018
    03:49

    [철학] 『안티오이디푸스』 : 의미, 그것은 사용이다.

    오이디푸스와 믿음 (...) 중요한 것은, 오이디푸스는 잘못된 믿음이라 말하는 것이 아니라, 믿음이란 것이 필연적으로 잘못된 어떤 것이요, 실효적 생산을 빗나가게 하고 질식시킨다고 말하는 것이다. 바로 이런 까닭에 견자(見者)란 가장 덜 믿는 자이다.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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