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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by 이우 posted May 02, 2018 Views 37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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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스콜라 철학이 열거하는 초범주개념들 가운데 개별 범주 내에서 사유되지 않지만 다른 모든 범주의 의미를 조건 짓는 단어가 바로 형용사 ‘쿼드리벳(quodlibet)*’이다. 이 단어를 통상 “어떤 것이든 무관하다”는 뜻으로 옮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라틴어 단어는 그 형태상 정반대를 말한다. 즉 ‘쿼드리벳 엔스(quodlibet ens)’는 “어떤 것이든 무관한, 무차별한 존재”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공히 마음에 드는 존재”, 즉 언제나 이미 어떤 의향(意向, libet)을 함의한다. 임의적 존재는 욕망과 근원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임의적인 것(li qualunque)'인 것은 특이성(la singolarita)과 관련되는데 이는 특이성이 어떤 공통 속성(혹은 붉다, 프랑스인다, 이슬람교도이다와 같은 개념)에 대해 갖는 무차별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그것 그대로 존재함’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특이성은 지성으로 하여금 개별자의 불가언성과 보편자의 가지성(可知性)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그릇된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한다. 게르소니데스(Gersonides)의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하나를 따르면, 가지성의 대상은 보편자도 아니요, 연쇄 속에 포함된 개별자도 아니라 바로 ‘임의적 특이성으로서의 특이성’이다. 바로 이런 구도에서 ‘어떠한/~대로 존재함(lesser-quale)’은 이런저런 집합이나 집단(Class, 붉은 것, 프랑스인, 이슬람교도)에의 귀속을 식별하는 이런저런 속성을 갖는다는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떠함/~대로 존재함'이 다른 집단을 향하거나 단순히 귀속의 부재를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그러함/그렇게 존재함(l'esser-tale), 그 귀속성 자체를 지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귀속의 조건에서 항시 은폐된 채로 남아 있지만 그것은 y에 속하는 한 x이다. 실제 술어는 아닌 '그렇게 존재함'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것으로서 노정되는(esposta) 특이성은 임의적이며, 즉 사랑스럽다.

  사랑은 결코 여인의 이런저런 속성(금발이다, 작다, 보드럽다)을 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보편성(보편적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연인들의 속성을 도외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존재를 그것의 모든 술어들과 더불어 원하고, 그 존재가 존재하는 대로 ‘그렇게 존재함’을 원한다. 사랑은 그 존재가 그렇게 존재하는 한에서 ‘~대로’를 욕망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특수한 페티시즘이다. 그렇게 임의적 특이성(사랑스러운 것)은 더 이상 어떤 것의 앎이나 이런저런 특성의 앎, 이런저런 본질의 앎이 아니라 앎의 가능성이 된다. 플라톤이 에로스적 상기로 묘사한 그 운동은 대상을 어떤 다른 사태나 장소가 아니라 그 대상의 고유한 ‘자리 잡음(aver-luogo)’ 안에, 즉 그것의 이데아 안으로 옮긴다. (...)

- 『도래하는 공동체』(조르조 아감벤 · 꾸리에 · 2014년) p.9~11




  ........

 *쿼드리벳(quodlibet) : 여기에서 '임의적'이라 옮긴 이탈리아 원어는 'qual-si-voglia'이다. 이 단어는 원래 'qual-sivoglia'라는 단어로 '어던 무엇이든'이라는 뜻의 형용사인데 앞서 역시 '임의적'이라 번역한 'qualunque'의 유의어이다. 아감벤은 이렇게 한 단어를 세 의미소로 분절함으로써 그 단어에 숨겨진 뜻을 강조하려 했다. 즉 그렇게 되면 'qual-si-voglia'는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으로 읽힐 수 있고, 라틴어 'quodlibet'의 뜻인 '마음대로', '뜻대로'와 비슷한 뜻을 갖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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