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by 이우 posted May 02, 2018 Views 137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책_도래하는 공동체_900.jpg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스콜라 철학이 열거하는 초범주개념들 가운데 개별 범주 내에서 사유되지 않지만 다른 모든 범주의 의미를 조건 짓는 단어가 바로 형용사 ‘쿼드리벳(quodlibet)*’이다. 이 단어를 통상 “어떤 것이든 무관하다”는 뜻으로 옮긴다고 해서 잘못된 것은 아니지만 이 라틴어 단어는 그 형태상 정반대를 말한다. 즉 ‘궈드리벳 엔스(quodlibet ens)’는 “어떤 것이든 무관한, 무차별한 존재”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공히 마음에 드는 존재”, 즉 언제나 이미 어떤 의향(意向, libet)을 함의한다. 임의적 존재는 욕망과 근원적으로 관계하고 있다.

  여기에서 말하는 '임의적인 것(li qualunque)'인 것은 특이성(la singolarita)과 관련되는데 이는 특이성이 어떤 공통 속성(혹은 붉다, 프랑스인다, 이슬람교도이다와 같은 개념)에 대해 갖는 무차별성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가 ‘그것 그대로 존재함’에 근거한다. 이런 점에서 특이성은 지성으로 하여금 개별자의 불가언성과 보편자의 가지성(可知性) 사이에서 선택을 강요하는 그릇된 딜레마에서 벗어나게 한다. 게르소니데스(Gersonides)의 아름다운 표현 가운데 하나를 따르면, 가지성의 대상은 보편자도 아니요, 연쇄 속에 포함된 개별자도 아니라 바로 ‘임의적 특이성으로서의 특이성’이다. 바로 이런 구도에서 ‘어떠한/~대로 존재함(lesser-quale)’은 이런저런 집합이나 집단(Class, 붉은 것, 프랑스인, 이슬람교도)에의 귀속을 식별하는 이런저런 속성을 갖는다는 굴레에서 해방될 수 있다. 

  그렇다고 '어떠함/~대로 존재함'이 다른 집단을 향하거나 단순히 귀속의 부재를 향하는 것은 아니다. 그것은 자신의 '그러함/그렇게 존재함(l'esser-tale), 그 귀속성 자체를 지향한다. 이러한 방식으로 귀속의 조건에서 항시 은폐된 채로 남아 있지만 그것은 y에 속하는 한 x이다. 실제 술어는 아닌 '그렇게 존재함'은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것으로서 노정되는(esposta) 특이성은 임의적이며, 즉 사랑스럽다.

  사랑은 결코 여인의 이런저런 속성(금발이다, 작다, 보드럽다)을 향하지 않으며 그렇다고 무미건조한 보편성(보편적 사랑)이라는 미명 하에 연인들의 속성을 도외시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사랑은 사랑하는 존재를 그것의 모든 술어들과 더불어 원하고, 그 존재가 존재하는 대로 ‘그렇게 존재함’을 원한다. 사랑은 그 존재가 그렇게 존재하는 한에서 ‘~대로’를 욕망한다. 그것이 바로 사랑의 특수한 페티시즘이다. 그렇게 임의적 특이성(사랑스러운 것)은 더 이상 어떤 것의 앎이나 이런저런 특성의 앎, 이런저런 본질의 앎이 아니라 앎의 가능성이 된다. 플라톤이 에로스적 상기로 묘사한 그 운동은 대상을 어떤 다른 사태나 장소가 아니라 그 대상의 고유한 ‘자리 잡음(aver-luogo)’ 안에, 즉 그것의 이데아 안으로 옮긴다. (...)

- 『도래하는 공동체』(조르조 아감벤 · 꾸리에 · 2014년) p.9~11




  ........

 *쿼드리벳(quodlibet) : 여기에서 '임의적'이라 옮긴 이탈리아 원어는 'qual-si-voglia'이다. 이 단어는 원래 'qual-sivoglia'라는 단어로 '어던 무엇이든'이라는 뜻의 형용사인데 앞서 역시 '임의적'이라 번역한 'qualunque'의 유의어이다. 아감벤은 이렇게 한 단어를 세 의미소로 분절함으로써 그 단어에 숨겨진 뜻을 강조하려 했다. 즉 그렇게 되면 'qual-si-voglia'는 "당신이 원하는 어떤 것"으로 읽힐 수 있고, 라틴어 'quodlibet'의 뜻인 '마음대로', '뜻대로'와 비슷한 뜻을 갖게 된다. 







?

  1. 19
    Jul 2018
    14 시간 전
    new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③

    (...) 일어난 모든 것이 자신들 때문에 일어났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납득시킨 다음, 사람들은 모든 사물들 안에서 그들에게 가장 유용했던 것을 특별한 것으로 판단해야 했고, 또한 그들에게 가장 큰 이익을 주었던 것을 가장 탁월한 것으로 평가해야 했...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3 newfile
    Read More
  2. 19
    Jul 2018
    15 시간 전
    new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②

    (...) 이제는 자연이 자신 앞에 설정한 어떠한 목적도 없고 모든 목적인은 인간이 꾸며낸 것에 불과하다는 것을 보여주기 위해 많은 논의가 필요치 않을 것이다. 왜냐하며 정리161)과 정리 32의 따름정리2)들에 의해서 뿐만 아니라 이 편견이 그 기원을 ...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0 newfile
    Read More
  3. 19
    Jul 2018
    16 시간 전
    new

    [철학] 『에티카』 : 신(神)에 대하여①

    (...) 그들은 신이 모든 것을 인간 때문에 만들었으며 또한 신이 자신을 공경하기 위해 인간을 만들었다고 말한다. 따라서 내가 고찰할 첫번째 논점은 우선 왜 대다수의 사람들이 이런 편견에 만족해 하며 또한 모든 이들이 왜 같은 편견을 그렇게 자연...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2 newfile
    Read More
  4. 18
    Jul 2018
    08:32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생명 · 공동체 · 노동력 교환 · 재산의 공유

    (...) "농부, 닭 잡아와." 어린 농부는 지체 없이 달려가서 애를 쓰다가 닭 한 마리를 잡아 왔다. 손쉽게 닭의 양 발을 붙잡은 농부는 곧 점심거리가 될 닭을 엄마에게 넘겨 주었다. 구미는 닭의 다리를 묶고 옆으로 눕혔다. 나는 의아했다. 구미가 닭을...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18 file
    Read More
  5. 18
    Jul 2018
    06:24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세이세이

    (...) 모쒀족의 이야기 중 가장 인상 깊은 것은 이들의 사랑이야기다. 이들은 걷는 결혼, 즉 '주혼'이라는 상상치 못했던 방식으로 사랑을 나눈다. 주혼은 모쒀인들의 삶의 방식 중 가장 자주 오르내리는 주제다. 인류학자와 사회학자들은 이 현상을 집...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23 file
    Read More
  6. 18
    Jul 2018
    04:55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모쒀 남자도 멋지다

    (...) 이 말(편집자 주: 종난취뉘, 重男輕女)을 빌려와 약간만 바꾼다면 모숴 사회 속 여아와 남아의 지위를 가장 잘 드러낸 말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바로 '종뉘부친난(重女不輕男)'이다. 문자 그대로 '여아를 중시하지만 남아를 경시하지 않는다'라는...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22 file
    Read More
  7. 18
    Jul 2018
    03:19

    [사회] 『어머니의 나라-오래된 미래에서 페미니스트의 안식처를 찾다』 : 모쒀 여자는 멋지다

    (...) 모쒀 여성은 팔색조다. (중략) 모쒀 여성들은 외모를 과시하지 않았다. 수수하게 입고, 팔찌나 부적이 들어 있는 소박한 목걸이 정도를 제외하면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다른 여성들과 경쟁적으로 미모를 가꾸는 다른 문화권과는 달리, 모쒀 여성...
    Category기타 By이우 Views20 file
    Read More
  8. 13
    Jul 2018
    03:55

    [문학] 『사포(SAPPHO)』 : 레즈비언 · 멘토 · 멘티 · 동성애 · 페미니즘 · 여성운동 · 종교

    (...) 레스보스 태생의 사포(기원전 615~570/60년경)가 창작한 문학작품은 전문가들과 애호가들 사이에서 이구동성으로 높은 평가를 받고 있다. 비록 그녀가 쓴 방대한 작품들 중에서 우리에게 남겨진 것은 소수에 불과하지만, 그 소수의 작품들과 얼마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35 file
    Read More
  9. 07
    Jun 2018
    05:21

    [문학] 『나의 우파니샤드, 서울』 : '여성'이 누구라고 생각하는가?

    自序 시는 아마 길로 뭉쳐진 내 몸을 찬찬히 풀어, 다시 그대에게 길 내어주는, 그런 언술의 길인가보다. 나는 다시 내 엉킨 몸을 풀어 그대 발 아래 삼겹 사겹의 길을…… 그 누구도 아닌 그대들에게, 이 도시 미궁에 또 길 하나 보태느라 분주한 그대...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77 file
    Read More
  10. 05
    Jun 2018
    05:09

    [문학] 『미덕의 불운』 : '사회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그들 중 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려 왔습니다. “열두 살이나 열세 살이 된 아이의 신경에 고통을 가하는 순간, 즉각 그 아이의 몸을 가르고, 아주 조심스럽게 관찰하지 않으면, 절대 그 부분은 해부학적으로 완벽히 밝혀질 수 없어. 쓸데없는 생각 ...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86 file
    Read More
  11. 05
    Jun 2018
    05:05

    [문학] 『미덕의 불운』 : '종교체'를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모든 종교는 거짓된 원칙에서 출발하고 있어요, 쏘피.’ 그가 말하였습니다. “모든 종교는 창조자에 대한 숭배를 필요 조건으로 하고 있어요. 그런데 만약, 이 우주 공간의 무한한 평원에서 다른 천체들 속에 섞여 둥둥 떠다니는 우리의 영원한 지...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68 file
    Read More
  12. 05
    Jun 2018
    04:55

    [문학] 『미덕의 불운』 : '자연'을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 ‘아가씨의 그 어처구니없는 논리가 얼마 안 가서 아가씨를 병원으로 데려가고 말거예요.’ 뒤부와 부인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하였습니다. “분명히 말하건대, 하늘의 심판이라든지, 천벌, 아가씨가 기다리는 장래의 보상 등, 그 모든 것은 학교의 문...
    Category문학 By이우 Views80 file
    Read More
  13. 03
    Jun 2018
    20:30

    [철학] 『향락의 전이』 : 뭉크와 여성의 비밀

    (…) 1893년 뭉크*는 오슬로(Oslo)의 와인 장사꾼의 아름다운 딸과 사랑에 빠졌다. 그녀는 매달렸으나 그는 결합을 두려워 해 결국 그녀를 떠났다. 폭풍우 치던 어느 날 밤, 범선이 그를 데리러 왔다. 젊은 여성이 죽음에 임박하여 마지막으로 그에게 말...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66 file
    Read More
  14. 03
    Jun 2018
    20:20

    [철학] 『향락의 전이』 : 오토 바이닝거, “여성은 존재하지 않는다”

    “공중들이 철학자가 성교를 한다고 해서 무가치하고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이라고 희망해보자…”(237)*. 이러한 진술은 바이닝거*의 작업에 일종의 좌우명으로 간주될 수 있다. 그는 성차와 성관계를 철학의 중심 주제로 격상시켰다. 그러나 그가...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82 file
    Read More
  15. 28
    May 2018
    09:15

    [철학] 『향락의 전이』 : 상상적 과잉성장, 상징적 허구 혹은 창조적 허구

    (...) 현대적 매체의 문제는 우리가 허구와 현실을 혼동하도록 유혹하는 데 있지 않고 오히려 그 매체의 초현실적 성격에 있으므로 그것들은 상징적 허구를 위한 공간을 개방하는 공동을 채운다. 상징계는 그것이 궁극적으로 허구의 지위를 가지기 때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83 file
    Read More
  16. 03
    May 2018
    09:26

    [철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 왕도정체 · 귀족정체 · 금권정체 · 참주정체 · 혼합정체 · 민주정체

    제10장 정체의 종류 (...) 정체(政體)에는 세 종류가 있고, 그것들이 왜곡된 또는 타락한 형태도 셋이다. 세 종류의 정체란 왕도정체와 귀족정체(aristokratia, 최선자정체), 그리고 세번째로 재산평가에 근거한 정체이다. 세번째 정체는 금권정체*라고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73 file
    Read More
  17. 03
    May 2018
    08:37

    [철학] 『니코마코스 윤리학』 : 분배적 정의(正義, justice)와 조정적 정의, 정치적 정의

    제3장 기하학적 비례에 따른 분배적 정의 (...) 분배에서의 정의는 어떤 가치 기준에 따라야 한다는 데는 누구나 동의한다. 그러나 누구나 같은 종류의 가치를 염두에 두지는 않는다. 민주정체 지지자들은 자유민으로 태어난 것이, 과두정체 지지...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229 file
    Read More
  18. 02
    May 2018
    20:54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 도래하는 존재는 임의적 존재이다. 스콜라 철학이 열거하는 초범주개념들 가운데 개별 범주 내에서 사유되지 않지만 다른 모든 범주의 의미를 조건 짓는 단어가 바로 형용사 ‘쿼드리벳(quodlibet)*’이다. 이 단어를 통상 “어떤 것이든 무관하다”는...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37 file
    Read More
  19. 02
    May 2018
    20:52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모순은 언어에 기원을 둔다

    (...) 개별자와 보편자 사이의 모순은 언어에 그 기원을 두고 있다. 실제로 '나무'란 단어가 모든 나무를 무차별적으로 지칭할 수 잇는 것도 그 단어가 특이한(singular) 불가언적적 나무들 대신에 그들의 보푠적 의미를 가장하기 때문이다. (...) 보편...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2 file
    Read More
  20. 02
    May 2018
    20:49

    [철학] 『도래하는 공동체』 : 파시즘과 나찌즘은 극복된 것이 아니다

    (...) 만일 우리가 인류의 운명을 다시 한 번 계급의 개념으로 사유하고자 한다면 오늘날에는 더 이상 사회 계급이 존재하지 않으며 단지 모든 사회 계급이 용해되어 있는 단일한 행성적(planertaria) 소시민 계급 만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인정해야 할 ...
    Category철학 By이우 Views113 file
    Read More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7 Next ›
/ 17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위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