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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 스피노자의 철학 : 도덕(Morals)과 윤리(Ethics) · 정념(passion)

by 이우 posted Mar 01, 2018 Views 5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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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너는 저 열매를 막지 말라.> 불안에 사로잡힌 무지한 아담은 이 말을 금지의 표현으로 듣는다. 그러나 정작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무엇인가?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은, 아담이 먹을 경우에 그 아담을 중독시키게 될 과일이다. 그것은 두 신체의 만남, 각각을 특정 짓는 관계들이 서로 결합되지 않는 만남이다. 과일은 독처럼 작용할 것이다. 다시 말해 과일은 아담의 신체의 부분들을(그리고 평행하게 과일의 관념은 아담의 영혼의 부분들을) 그의 고유한 본질에 더 이상 상응하지 않는 새로운 관계로 들어가도록 결정할 것이다. 신은 그에게 단지 과일의 섭취가 낳을 자연적 귀결을 드러냈을 뿐인데, 아담은 원인들을 모르기 때문에 신이 자신에게 어떤 것을 도덕적으로 금지한다고 믿는다. 스피노자는 이것을 집요하게 상기시킨다. 우리가 악, 질병, 죽음의 범주 아래 집어 넣고 있는 모든 현상들은 다음과 같은 형태들이다. 나쁜 만남, 소화 불량, 중독, 관계의 해체.*

  어쨌든 자연 전체의 영원한 법칙들에 따라, 고유한 질서 속에서 서로 결합되는 관계들이 언제나 존재한다. 선과 악은 없으며, 좋음과 나쁨이 있다. <선악을 넘어, 이것은 적어도 '좋음'과 '나쁨을 넘어'를 의미하지 않는다.>** 좋음은, 한 신체가 우리 신체와 직접적으로 관계를 구성할 때, 그리고 그 신체 능력의 전체 혹은 부분을 통해 우리의 신체 능력이 증가할 때를 지시한다. 음식물을 예로 들 수 있을 것이다. 우리에게 나쁨은, 한 신체가, 비록 그것이 우리 신체의 부분들과 여전히 결합하고 있다하더라도, 우리의 본질에 상등하는 것들과는 다른 관계들 아래서 우리 신체의 관계를 해체할 때이다. 혈액을 해체하는 독이 그 예이다.

  따라서 좋음과 나쁨은 또한 첫번째 의미, 즉 객관적이지만 관계적이고 부분적인 의미를 갖는다. 나의 본성에 맞는가 혹은 맞지 않는가에 의존하기 때문이다. 이러한 결과로서 좋음과 나쁨은 또한 두번째 의미, 즉 인간 존재의 두 유형, 두 양태를 특정 짓는 주관적이고 양태적인 의미를 갖는다. 할 수 있는 한에서, 만남들을 조직하고, 자신의 본성과 맞는 것과 통일을 이루며, 결합 가능한 관계들을 자신의 관계와 결합하고, 이를 통해 자신의 능력을 증가시키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훌륭하다고, 혹은 자유롭다고, 혹은 강하다고 일컬어질 것이다. 왜냐하면 훌륭함은 역학, 능력, 그리고 능력들의 결합에 관련된 일이기 때문이다.

  우연한 만남들에 따라 살아가고, 그 결과들을 수동적으로 겪지만, 정작 자신이 겪는 그 결과가 자신에게 불리하게 나타나고 자신의 무능력을 드러낼 때마다 한탄하고 비난하는 사람은 열등하다고, 혹은 예속적이라고, 혹은 약하다고, 혹은 미련하다고 말해질 것이다. 왜냐하면 아무런 관계 아래서 아무 것이나 만나기 때문이다. 일은 언제나 많은 폭력 혹은 약간의 속임수로 끝날 것이라고 믿는다면, 어떻게 좋은 만남보다는 나쁜 만남을 만들지 않을 수 있겠는가? 죄의식으로 인하여 어떻게 자기 자신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겠으며, 원한 때문에 어떻게 타인들을 파괴하지 않을 수 있고, 그리하여 자신의 고유한 무능력, 자신의 고유한 예속성, 자신의 고유한 질병, 자신의 고유한 소화 불량, 독약, 그리고 독극물을 어떻게 도처에 퍼뜨리지 않을 수 있겠는가?

  바로 이렇게 윤리학(l' Ethique), 즉 내재적 존재 양태들의 위상학은 언제나 존재를 초월적 가치들에 관계시키는 도덕을 대체한다. 도덕은 신의 심판이고, 심판의 체계이다. 그러나 윤리학은 심판의 체계를 전도시킨다. 가치들(선-악)에 대립하여 존재 양태들의 질적 차이(좋음-나쁨)가 들어선다. 가치들의 환상은 의식의 환상과 하나를 이룬다. 의식은 본질적으로 무지하기 때문에, 의식은 원인들과 법칙들의 질서, 관계들과 그것들의 결합의 질서를 모르기 때문에, 그리고 의식은 그것들의 결과를 기다리고 받아들이는데 만족하기 때문에, 의식은 자연 전체를 잘못 인식한다.

  그런데 도덕화하는 데에는 잘못 이해한 것만으로는 충분하지 않다. 확실히 법칙은, 우리가 그거을 이해하지 못할 때, 우리에게 <해야만 한다>라는 도덕적 형식으로 나타난다. 삼률법(三率法)을 이해하지 못할 경우, 우리는 그것을 마치 당위처럼 적용하고 이해한다. 과일과 자기 신체와의 관계 규칙을 이해하지 못한다면, 아담은 신의 말을 금지로 들을 것이다. 더욱이 도덕 법칙의 혼란스러운 형식은 자연 법칙을 혼란에 빠뜨려서, 철학자는 자연 법칙이 아니라 단지 영원한 진리들에 대해서만 말해야 할 지경에 이른다. <법칙이라는 말이 자연 사물에 적용되고, 따라서 모두 다같이 법칙이라는 말을 단지 명령만을 지시하는 것으로 이해하는 것은 유비에 의한 것이다.>*** 니체가 화학, 즉 해독제와 독물에 관한 과학에 대해서 말하고 있는 것처럼, 법칙이라는 말을 삼가야 한다. 그것은 도덕적 뒷냄새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만, 단지 그 결과들에 의한 것이기는 하지만, 두 영역, 즉 자연이라는 영원한 진리들의 영역과 제도라는 도덕적 법칙들의 영역을 분리시키는 것은 어렵지 않다. 도덕 법칙은 당위이다라는 말에 대해 의식을 가져보자. 이 의식은 복종 이외의 어떠한 결과나 목적을 갖지 않는다. 이러한 복종은 필수불가결할 것이며, 따라서 명령은 충분한 토대를 갖게 될 것이다. 이것은 문제가 아니다. 도덕적인 것이든 사회적인 것이든 법칙은, 우리에게 어떠한 인식도 가져다주지 않으며, 어떠한 것도 인식하게 하지 못한다. 최악의 경우에, 그것은 인식의 형성을 방해한다(폭군의 법칙). 최선의 경우라고 해도 그것은 인식을 준비하고, 인식을 가능케 할 뿐이다(아브라함과 그리스도의 법칙). 이 두 극단들 사이에는, 존재 양태 때문에 인식을 할 수 없는 사람들에게 인식을 대신해 주는 법칙이 있을 수 있다(모세의 법칙). 그러나 어쨌든 인식과 도덕 사이, 즉 명령-복종과 인식된 것-인식 사이의 본질적인 차이는 끊임없이 드러난다.

  스피노자에 의해서 설명되고 있는 신학의 비극과 그것의 유해성은 단순히 사변적인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신학이 우리에게 불러일으키고 있는, 본질적으로 서로 다른 두 질서들의 실천적인 혼동에서 유래한다. 비록 그 인식이 합리적인 방식으로 전개되어야 하고, 심지어는 이성에 의해 옮겨지고 번역되어야 한다고 해도 말이다. 여기서 도덕적이고 창조적이며 초월적인 신이라는 가정이 나온다. 앞으로 보게 되겠지만, 여기에는 존재론 전체를 혼란에 빠뜨리는 혼동이 숨어 있다. 이해할 것을 명령과 혼동하고 인식을 복종과 혼동하며 존재를 당위와 혼동하는 오랜 역사가 존재한다. 법칙은 언제나 선악이라는 가치의 대립을 결정하는 초월적 심급이지만, 인식은 언제나 좋음-나쁨이라는 존재 양태들의 질적 차이를 결정하는 내재적 능력이다.(...)

  윤리학과 도덕이 동일한 원리를 다르게 해석하는 데서 서로 만족한다면, 둘의 차이는 단지 이론적일 뿐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스피노자는 자신의 모든 저작 속에서 계속해서 3가지 유형의 인물들을 언급한다. 슬픈 정념에 사로잡혀 있는 인간들, 이러한 슬픈 정념들을 이용하고 자신의 권력을 공고하기 위하여 그러한 정념들을 필요로 하는 인간들, 그리고 마지막으로 인간의 조건과 인간의 정념 일반에 대해 슬퍼하는 인간들(이들은 분개하기도 하고 비웃기도 한다. 이 비웃음은 좋지 않은 것이다). 노예, 폭군, 성직자는 도덕주의적 삼위일체를 이룬다. 에피쿠로스와 루크레티우스 이후로 그 누구도 폭군과 노예의 뿌리 깊고 내밀한 관계를 더 잘 보여준 사람은 없었다. <군주제의 커다란 비밀과 그것의 근본적인 관심은 인간들을 속박할 때 이용하는 공포를 종교의 이름으로 가장하면서 인간들을  속이는데 있다. 따라서 인간들은 자신들의 예속이 마치 자신들의 안녕이라도 하듯이 예속을 위해 투쟁한다.>****

  이것은 슬픈 정념이 욕망들의 무한성, 영혼의 동요, 탐욕, 미신 등을 통합시켜 놓은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모든 종류의 미신을 열성적으로 따르는 사람은 가장 무절제하게 재물을 탐내는 사람일 수 밖에 없다.> 슬픈 영혼들이 상납하고 선전하기 위해서 폭군을 필요로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폭군은 성공하기 위해서 영혼들의 슬픔을 필요로 한다. 어쨌든 이들을 통일시키는 것은 삶에 대한 증오이며, 삶에 대한 원한이다. <윤리학>은, 모든 행복을 공격으로 받아들이고, 불행이나 무능력을 자신의 유일한 열정으로 삼는 원한을 가진 인간의 초상을 그리고 있다.

  <영혼을 강하게 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을 파괴하는 데 관심을 쏟는 사람들은 자기 자신과 타인들에게 고통스럽다. 많은 사람들이, 조급한 마음과 종교에 대한 그릇된 열정에 사로잡혀, 인간들 사이에서 살기보다는 동물들 사이에서 살기를 원했던 것은 바로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부모의 질책을 차분한 마음으로 견디지 못하는 어린이들과 청소년들은 군대로 피신하여, 가정의 안락함이나 부모의 훈계보다는 전쟁의 고통이나 폭군의 권위를 선호하고, 보무에게 복수를 할 수 있다면 자신에게 부여되는 어떠한 부담도 감내한다..>

  스피노자에게 삶의 철학이 존재한다. 정확히 말해 그 철학의 요체는 우리를 삶으로부터 분리시키는 모든 것, 우리 의식의 조건들과 환상들에 연결되어 있는 삶을 거역하는 모든 초월적 가치들을 고발하는 것에 놓여 있다. 삶은 선과 악, 오류와 공포, 죄악과 속죄 등의 범주들로 중독되어 있다. 삶을 중독시키는 것은 증오이다. 여기에는 자신에 대한 증오, 즉 죄의식이 포함된다. 스피노자는 슬픈 정념의 그 끔찍한 연쇄를 하나하나 따라간다. 게일 먼저 슬픔 자체, 연민, 분개, 시기, 자기 폄화, 회한, 비굴, 수치, 후회, 분노, 복수, 잔인함 등이 나온다. 그의 분석은 더 멀리 나아가 심지어는 희망이나 안정에서도, 그것들을 얼마든지 노예의 감정으로 만들 수 있는 슬픔의 씨앗을 찾아내기에 이른다. 진정한 정치체는 시민들에게 보상에 대한 희망이나 심지어는 재산의 안정보다는 자유에 대한 사랑을 제안한다. 왜냐하면 <훌륭한 행실로 인하여 보상을 받는 것은 노예들이지 자유인이 아니기 때문이다.> (...)

  ......
  *<신학정치론> 4장 <편지 19, 블레이온베르흐에게>
  ** Nitche, <도덕의 계보>, #17
  ***<신학정치론> 4장
  **** <신학정치론> 서문

- <스피노자의 철학>(질 들뢰즈 · 민음사 · 2001년 · 원제 : Spinoza.: Philosophie pratique) p.38~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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