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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학] 마광수 시집? 『가자, 장미여관으로』 초판 서문

by 이우 posted Oct 11, 2017 Views 95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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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_가자장미여관으로s.jpg


  (...) '장미여관'은 내 상상 속에 존재하는 가상의 여관이다. 장미여관은 내게 있어 두 가지 상징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하나는 나그네의 여정과 향수를 느끼게 해주는 여관이다. 우리는 잡다한 현실을 떠나 어디론가 홀가분하게 탈출하고 싶은 충동을 느끼며 살아간다. 나의 정체를 숨긴 채 일시적으로나마 모든 체면과 윤리와 의무들로부터 해방되어 안주하고 싶은 곳―그곳이 장미여관이다. 또 다른 하나는 '러브호텔'로서의 장미여관, 붉은 네온 사인으로 우리를 유혹하는 곳, 비밀스런 사랑의 전율이 꿈틀대는 도시인의 휴식공간이다.

  우리는 진정한 안식처를 직장이나 가정에서 구할 수 없다. 직장의 분위기는 위선적 체면치레와 복잡한 인간관계가 얽혀 우리를 숨 막히게 한다. 가정은 겉보기엔 단란하지만 사실상 갖가지 콤플렉스들이 얽혀서 꿈틀대는 고뇌의 장이다. 이럴 때 우리는 잠깐만이라도 모든 세속적 윤리와 도덕을 초월하여 어디론가 도피함으로써 자유를 호흡할 수 있어야 한다. 장미여관―그 달콤한 음탕과 불안한 관능이 숨 쉬는 곳. 거기서 우리는 비로소 자연의 질서와 억압에 저항하는 '관능적 상상력'과 '변태적 욕구'를 감질나게나마 충족시킬 수 있고, 우리의 일탈욕구를 위안 받을 수 있다.

  이 시집의 표제로 쓴 <가자, 장미여관으로!>를 쓴 1985년 여름을 전후하여 내 시 스타일은 많이 바뀌었다. 그 이전까지는 유미적 쾌락에의 욕구와 현실 상황에 대한 고뇌 사이에 '양다리를 걸치는' 식의 내용이 많았다. 여인의 긴 손톱은 섹시하다. 그러나 그런 손톱은 '민중적 손톱'은 아니다, 라는 식으로 말이다. 나는 공연히 '민중적 고뇌'로 괴로워하는 척하면서 지식인의 명예욕을 충족시키고 있었던 것이다. 나의 초기작에서는 치열한 고뇌와 갈등이 엿보이는데 요즘 작품은 너무 퇴폐적으로 흐르고 있다고 지적해주는 분들이 많다. 그러나 오히려 나로서는 그 '치열한 고뇌의 정신'이 부끄럽고 창피하게만 느껴진다. 말하자면 나는 솔직하게 발가벗지 못하고 그저 엉거주춤 발가벗는 척하기만 했기 때문이다.

  그 이후로 나는 그런 지식인의 위선을 떨쳐버리기로 결심하였다. 아무런 단서나 변명 없이도, 여인의 긴 손톱은 아름답고 야한 여자의 고혹적인 관능미는 나의 상상력을 활기차게 한다. 모든 사람들을 다 민중으로 만들 것이 아니라 다 귀족으로 만들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 그래서 귀족들만이 누렸던 사치와 쾌락을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 요즘의 내 생각이다. 사람들은 모두 '진정한 쾌락'을 위해서 산다. 지배계급에 대한 적의는 쾌락에 대한 선망일 뿐, 숭고한 평등의식의 소산은 아니다.

  누구나 잘사는 사회, 누구나 스스로의 야한 아름다움을 나르시스적으로 즐길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야 한다. 일을 안 해 '희고 고운 손'을 질투한 나머지 모든 여성의 손을 '거칠고 못이 박힌 손'으로 만들어 버리자고 신경질적으로 주장해서는 안된다. 모든 여성의 손을 다 '길게 손톱을 기른 화사한 손'으로 만들 수 있는 방법을 강구해야 한다. 노동은 신성한 것이 아니라 괴로운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괴로운 노동'으로부터 해방되어, '즐거운 노동', 이를테면 화장이나 손톱 기르기 등을 통해 자신의 아름다움을 가꾸는 노동에서 진짜 관능적 쾌감을 얻을 수 있도록 구체적인 해결책을 모색해 봐야 할 것이다. 따라서 유미주의에 바탕을 둔 괘락주의, 또는 탐미적 평화주의가 요즘의  내 신조라면 신조라고 할 수 있다.

  즐거운 권태와 감미로운 퇴폐미의 결합을 통한 관능적 상상력의 확장은 우리의 사고를 자유롭고 풍요롭게 만들어 준다. 인류의 역사는 상상을 현실화시키는 작업의 연속이었다. 꿈이 없는 현실은 무의미한 것이고 꿈과 현실은 분리되지 않는다. 꿈은 우리로 하여금 현실적 실천을 가능케 해주는 원동력이 되어주기 때문이다. 시에서의 상상이 설사 '생산적 상상'이 아니라 '변태적 상상'이 된다 한들 무슨 상관이 있겠는가. 시는 꿈이요, 환상이요, 상상의 카타르시스이기 때문이다. 꿈속에서 하는 행위조차 윤리나 도덕의 간섭을 받아야 한다면 우리의 삶은 정말로 초라하고 무기력해지고 말 것이다. 누가 뭐래도 나는 시를 통해서 사랑의 배고픔과 사디스틱한 본능들을 대리배설시키고, 또 그럼으로써 격노하는 본능과 위압적인 양심 사이에 평화로운 타협을 이루고 싶다.

  하지만 솔직히 말해서 현실 속의 나는 여전히 외롭다, 외롭다. 진짜 관능적인 사랑, 진짜 순수하게 육체적인 사랑, 모든 이데올로기적 선입관과 도덕적 위선을 떨쳐버리고 솔직하게 발가벗을 수 있는 사랑이 내 앞에 펼쳐지기를 나는 애타게 기다리고 있다. 하지만 과연 그 누가 나의 이 허기증을 달래줄 수 있을는지? 그 어느 날에나 나는 상상 속의 장미여관이 아니라 진짜 현실 가운데 존재하는 장미여관에 포근하게 정착할 수 있을는지?

  1989년 4월
  마광수

-  『가자, 장미여관으로』(마광수 · 책읽는귀족 · 2013년 · 초판 출간 1989년) p.8~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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