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토마스 모어(Thomas More, 1478~1535)의 <유토피아(Utopia)>(1516년) 제1부는 1500년 당시 영국 농민들이 겪던 처참한 삶의 현장을 고발한다. 사자가 사람을 잡아먹는 것도 아니고 양이 사람을 먹는다니.... 모어의 독한 풍자는 그의 머리에서 나온 것이 아니라 그가 살고 있던 시대에서 나온 것이다.
"닥치는 대로 절도범들을 교수형에 처하고 있습니다. 나는 한 교수대에서 20명이 처형되는 것을 본 적도 있습니다."
영국 폴랑드르에서 모직 공업이 흥성하여 양모의 값이 폭등하자, 영국의 귀족들은 밀밭을 초지로 바꾸어 양떼를 키우기 시작했다. 이른바 '울타리치기운동(enclosure movement)'은 대대손손 땅에 붙어 생계를 이어오던 농민들을 땅으로부터 폭력적으로 추방해 버린 것이다. 자신의 영지에서 노역을 제공하고 생산물을 바쳐온 농노들에 대해 영주들은 공동체를 유지하는 데 최소한의 의무마저 포기한 것이다. 양을 키워서 떼돈을 만져보겠다는 영주들의 탐욕은 봉건적 관계를 해체했지만, 쫓겨난 농민들을 맞이해 줄 새로운 생산관계는 예비되지 않았다. 오갈 데 없는 농민들은 부랑자로, 거지로 거리를 떠돌았다.
부랑자는 잡히면 태형을 당한다. 달구지 뒤에 묶어놓고 몸에 피가 흐르도록 때렸다. 부랑자로 두 번 잡히면 귀를 자르며, 세 번 잡히면 공동체의 적으로 사형에 처했다. 1572년 엘리자베스 1세의 법령에 따르면 거지는 자신을 고용해 줄 고용주를 만나지 못할 경우 혹독한 매를 맞고 귀에 낙인이 찍힌다. 세 번 잡힐 경우에는 용서 없이 반역자로 사형에 처한다. 부랑자 7만 2000명이 헨리 8세의 통치하에 사형되었고, 엘리자베스 1세 시대에 들어서는 해마다 300명의 절도범이 교수대에 올랐다.
"절도범을 처벌하는 이 방법은 공평하지도 않고, 사회적으로 바람직한 것도 못 됩니다. 처벌로는 너무 가혹하고 억제책으로는 매우 비효과적입니다. (...) 사람들로 하여금 도둑질을 하게 하는 요인이 따로 있습니다. 바로 양입니다. 예전에는 얌전하고 조금씩 먹던 유순한 양들이 이제는 무서운 식욕으로 사람까지 먹어치우고 있습니다. (...) 이 병적 행위를 근절하십시오. 농장을 파괴시킨 자들로 하여금 다시 땅을 복구하도록 하거나 아니면 그 땅을 농민들에게 넘겨주십시오. 한 줌의 부자들이 시장을 독점하지 못하도록 법률을 만들어야 합니다. 그 많은 무위도식자가 게으름뱅이로 살지 않도록 하십시오." (...)
"재산이 사유되는 사회, 모든 것이 돈으로 평가되는 사회에서 정의와 번영은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플라톤은 사람들이 부를 평등하게 소유하는 것을 거부한 아르카디아에 법률을 만들어주지 않았던 것입니다. 모든 지성인은 건전한 사회의 필수 요건이 부의 균등 분배임을 인정했던 것입니다. 사유재산을 폐지하지 않는 한, 부의 평등하고 정당한 분배는 이루어질 수 없습니다."
사유재산을 폐지하고 모든 재산을 공유하는 사회가 되면 사람들이 열심히 일하려 하지 않을 것임을 모어가 몰랐던 것은 아니다. '이익'이라고 하는 인센티브가 없으면 사람이 나태해지며, 타인 노동에 의존하는 속성을 나타내는 것도 알고 있었다. 중요한 문제이고 어려운 문제이다. 하지만 토지에 대한 사적 소유권을 폐지하지 않는 한, 사회 정의는 실현될 수 없다고 본 것이다. 귀족이 없는 사회, 생산자가 토지를 공유하는 사회를 모어는 꿈꾸었던 것이다. <유토피아>의 제2부는 이렇게 시작한다.
"그 섬은 중앙 지대가 가장 넓으며 그 폭은 약 200마일이 됩니다. 섬 전체는 양쪽 끝을 제외하고는 대개 폭이 비슷하며 양쪽 끝으로 갈수록 좁아지고 굴곡이 집니다. 원둘레가 500마일이 되는 원을 그려놓은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이 섬은 초승달 모양을 하고 있으며 그 끝은 약 11마일 넓이의 해협에 의해 갈라져 있습니다. 이 섬에는 같은 언어와 법률제도를 가진 54개의 도시가 있습니다. 그들은 토지를 경작해야 할 땅으로 생각하지 소유하는 재산으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 2년마다 도시 사람들은 시골에 들어와 2년 동안 농사를 지은 후 도시로 돌아갑니다. 추수할 때가 오면 공무원들은 어느 정도의 노동력이 필요한지 시청에 알립니다. 필요한 만큼의 일꾼이 도시에서 와, 날씨가 좋을 때에는 24시간 이내에 일을 마칩니다." (...)
토머스 모어는 영국 절반만 크기의 섬을 유토피아로 건설한다. (...) 유토피아의 인구는 6000세대이다. (...) 주민 30세대당 1명의 주민 대표를 뽑는다. 시포그란투스, 요샛말로 치면 기초의원일 것이다. 200명의 시포그란투스가 선출되면 여기에서 다시 20명의 트라니보루스가 선출된다. 시의원인 셈이다. 그리고 다시 시장이 선출된다. 시장이나 트라니보루스가 중요한 안건을 독단적으로 결정하지 못하도록 모든 안건은 시포그란투스 총회에 회부된다. (...)
"남녀 관계 없이 시민은 모두 농사를 배웁니다. 농사는 어린이 교육의 필수과목입니다. 아이들은 농업의 원리를 학교에서 배우며 정기적으로 들로 나가서 실습을 합니다. 그들은 농사를 짓는 것을 견학할 뿐만 아니라 직접 거들어주기도 합니다. 또 사람들은 농사 이외에 한 가지 특수한 기술을 배웁니다. 양모나 삼으로 옷감을 짜는 일, 혹은 석공술이나 철공술이나 목공술을 익힙니다. (...) 유토피아에선 하루에 6시간 일을 합니다. 오전에 3시간 일하고 점심을 먹고 2시간 휴식을 취한 후, 오후에 3시간 일하고 저녁을 먹습니다. 그들은 8시간 잡니다. 그 나머지 시간은 취미에 따라 자유롭게 보냅니다. 사람들은 교육을 받는 데 여가를 이용합니다. 매일 아침 공개 강좌가 열립니다. 남녀의 구별 없이 강좌를 들으려고 몰려든 사람들은 저마다 자기의 취향에 맞는 강좌를 듣습니다.(...) 유토피아에서는 일상의 노동에서 면제되는 사람이 500명을 넘지 않습니다. 시포그란투스, 외교관, 성직자, 그리고 트라니보루스...." (...)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이끈사회주의자들은 하루 7시간, 주 40시간 노동을 주장했다. 토머스 모어는 500년전에 하루 6시간 노동을 주장하고 있다. 놀라야 할 것은 우리의 무능이다. 500년전과 비교하여 100배의 생산성을 자랑하는 현대적 생산능력을 갖고도 하루 6시간 노동을 실시하지 못하고 있으니 말이다. 미국은 1950년대에 50시간을 투입하여 만든 물건을 지금 12시간의 노동으로 만들고 있다. 생산성이 4배 향상한 것이다. 우리의 경우 1980년대의 생산성이 30이었는데 2000년도의 생산성은 200을 기록했다. 7배의 생산성 증대를 기록한 것이다. 1980년대에 우리가 주당 70시간을 일했다면 지금은 동일한 생산물을 주 10시간에 생산하고 있다는 이야기이다. (...) 임금노동자의 생산 능력이 증대할수록 고용주의 해고 능력이 증대하는 것 만큼 우리가 겪는 고통스러운 역설도 없다. 생산성이 2배로 증대되었는데 노동시간이 절반으로 단축되지 않으면 노동자 2명 중 1명은 일자리를 잃는다. 우리 사회의 존립을 위협하고 있는 비정규직 노동자와 청년 실업 문제는 어떻게 풀 것인가? 모어로부터 배울 일이다.
"당국은 노동시간 단축을 선언합니다. 유포피아에서는 시민에게 불필요한 노동을 강요하지 않습니다. 경제 활동의 주요 목표는 사회적 필요를 충족시키되, 육체노동 시간을 가능한 줄이고 가능한 많은 자유시간을 보장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각자는 자신의 정신세계를 계발하는 활동에 힘쓰는 것입니다. 그들은 이렇게 사는 것이 행복한 생활의 비결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들은 귀금속을 보물로 여기지 않습니다. 돈의 원료가 되는 은이나 금에 대해 귀중한 가치를 부여하는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습니다. 은이나 금의 진가는 철의 진가에 훨씬 미치지 못합니다. 그들은 은이나 금을 경멸합니다. 하늘에 빛나는 별들과 태양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작은 돌조각의 희미한 빛에 매혹되는 사람들을 유토피아인들은 이해하지 못합니다." (...) 그들은 덕과 쾌락에 대해 사유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행복이 어디에 있는지 토론합니다. 이점에서 그들은 쾌락을 옹호하며 인간의 행복이 쾌락에 있다는 견해에 기웁니다. 하지만 모든 쾌락에 행복이 있다고 믿지는 않습니다. 오직 좋고 정직한 쾌락에만 행복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
"유토피아에선 사유재산이 없기 때문에 사람들은 사회에 대해 열심히 일합니다. 유토피아에서는 모든 것이 공동의 소유이므로 결핍의 공포가 없습니다. 유토피아에선 돈이 사라졌고 아울러 돈을 벌려는 욕망이 사라졌기 때문에 돈으로 인한 많은 범죄가 사라졌습니다. 금전 사용의 종말은 사기, 절도, 강도, 말다툼, 분규, 반란, 살인, 배신, 독살 등 많은 범죄의 종말을 의미합니다. 돈이 사라지면 돈으로 인한 불안, 긴장이 사라집니다. 그렇습니다. 가난, 그것이 돈의 결핍을 의미한다면 화폐의 소멸은 가난의 소멸을 의미할 것입니다." (...)
자본이 시초 축적기에 동원한 방법들은 평화적인 것과 정반대였다. 아메리카에서 금은의 발견, 원주민의 섬멸과 노예화, 광산에서 저지른 생매장, 동인도의 정복과 약탈의 개시, 아프리카의 상업적 흑인 수렵장으로의 전환, 이러한 것들이 자본의 탄생을 고하는 새벽의 특징이었다. 모어가 <유토피아>를 쓰고 나서 100년후 화폐는 소멸한 것이 아니라, 타인의 노동을 수탈하는 자본으로 힘차게 성장해나갔다. (...)
- <철학 콘서트>(황광우 · 웅진지식하우스 · 2006년) p.178~19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