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울증의 구조로서 젠더 정체성을 이야기할 때, 버틀러는 동일시가 성립되는 방법으로서의 '합체(incorporation)'를 논의한다. 즉 젠더 정체성은 상실한 대상이 있을 때 그 상실을 인정하지 않고 사랑했던 대상을 자신의 내부로 합체하는 것이다. 합체는 몸 위에, 그리고 몸 안에 상실된 대상을 그대로 보유하게 된 '몸의 에고'를 통해, 대상이 주체의 젠더 에고가 되는 방식을 설명해준다.
프로이트의 <애도와 우울증(Mourning and Melancholia)>은 사랑했던 대상이 에고가 되어, 대상을 합체한 에고라는 새로운 분석적 개념을 중심으로 동일시에 대한 논의를 펼친다. 애도는 갑작스러운 애정 대상의 상실과 리비도의 철회에 대한 주체의 반응으로, 사랑했던 대상을 잠시 내투사(inprojection)했다가 일정 기간의 리비도 철회 작업이 끝나면 다른 대상으로 진행하는 정상적인 주체의 반응이다. 반면 우울증은 애도에 실패할 때 발생한다. 우울증 환자는 내투사에 실패하며 그 대상을 오히려 에고 자체에 합체한다.
우울증의 주체에게 상실한 애정의 대상은 무의식적인 것이라서 그 대상을 완전히 극복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리고 극복되지 못한 이 상실의 대상은 주체의 에고에 합체되는 것이다. 애정의 대상이 주체의 에고가 되는 동안, 원래 주체의 에고가 애정의 대상에게 애정을 발산하듯 증오와 박해를 가한다. 사랑이란 애증의 양가감정인데 이 합체에고에 대해 슈퍼에고가 부정적 감정을 같은 크기의 에너지로 투여하기 때문이다. 이제 우울증은 자기 파괴적, 자멸적 병리로, 심지어는 자살 충동으로까지 나타난다.
사랑이라는 리비도 투여과정은 쾌락이지만 애도라는 리비도 철회과정은 고통이다. 그래서 사랑은 풍덩 빠지듯 단번에 이루어지지만 애도 과정은 회수와 투여를 반복하므로 더디게 이루어진다. 우울증은 이 힘든 애도 과정을 마술처럼 해결해준다. 대상이 자신의 일부로 합체되면서 더이상 이 고통스러운 리비도 철회과정을 거치지 않아도 문제가 해소되기 때문이다. 이는 사랑했다는 것도, 그 사랑을 상실했다는 것도 부인한다는 의미에서, 또 상실된 대상의 애도를 거부하는, 즉 거부를 거부하는 '이중부정(double negation)'의 기제로 이루어진다는 점에서 엄마에 대한 동성애적 사랑도, 아빠에 대한 근친상간적 사랑도 거부하는 여성성의 '이중파동(double wave)'과 닮아 있다.
이리가레는 여자아이가 상실로 진입하는 것은 거세의 인식을 통해서라고 주장한다. 여자아이는 자신의 능동성을 수동성으로 전환하고, 성감대를 클리토리스에서 버자이너로 바꾸어야 한다. 무엇보다 어머니에 대한 사랑을 아버지에게로 전환해야 하는데, 이때 대상만 전환되는 것이 아니라 애정의 성격까지 동성애에서 이성애로 변화시켜야 하는 것이다.
이런 우울증적 젠더 구성 논의는 이미 상실한 욕망의 대상을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합체하고 있다는 주장을 가능하게 해준다. 여자아이가 어머니에 대해 최초로 느끼는 사랑은 동성애적 금기 때문에 거부되고, 그 이후 아버지로 전한한 사랑은 근친상간의 금기 때문에 거부되고, 그 이후 아버지로 전환한 사랑은 근친상간의 금기 때문에 거부된다. 그러나 이 거부는 완전한 것이 아니며 여자아이의 에고에 하체되어 젠더 정체성을 구성한다. 그렇다면 여아는 이미 여성 대상과 남성 대상을, 또한 동성애와 이성애를 금기로서 자신의 내부에 선취하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엄격한 이성애자야 말로 진정한 동성애자의 알레고리이며, 드래그야말로 진정한 이성애자의 알레고리라는 역설이 가능해진다.(...)
- <젠더 트러블-페미니즘과 정체성의 전복>(주디스 버틀러 · 문학동네 · 2008년 · 원제 : Gender Trouble, 1990년) p.28~31 <옮긴이 조현준의 해제> 중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