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국민은 법률이 정하는 바 에 의하여 납세의 의무를 진다’(헌법 제38조). 국가 또는 공공단체를 유지하기 위하여 필요한 경비로서의 조세를 납부하는 의무, 즉 ‘납세 위무‘는 헌법에서 규정하고 있다. 헌법상 납세의 의무에는 국세·지방세와 같은 조세만이 아니고 국가가 보상 없이 과징하는 일체의 경제적 부담까지 포함된다.
납세가 의무라고 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조세의 종목과 세율을 법률로 정하며 국민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지 않도록 보장하는 것이다. 만약 과세에 의하여 국민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된다면 납세자는 무엇을 할 수 있는가. 다시 말해 국민이 부당한 과세를 거부하고 저항할 수 있는가의 문제는 늘 뜨거운 감자로 남아 있다. 국가가 국민에게 납세를 ‘권리’가 아니라 ‘의무’로만 규정한다는 것은 사실상 국민의 재산권이 부당하게 침해되어도 마냥 당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
근대국가 성립의 이론적 바탕을 제공했던 존 로크(John Locke, 1632년~1704년)도 헌법적 차원에서 통치자 권력의 한계를 명확히 하고 그 한계를 넘어설 때는 통치자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는 헌법적 장치를 마련했고 그 방법은 ‘조세 저항’이었다. ‘시민의 대표자 동의 없이는 세금도 없다’는 것이 로크의 원칙이었으니 말이다.
↑ 1894년 갑오농민전쟁에서 농민군의 총대장으로 활약한 혁명가 전봉준(1855년~1895년).
1894년 12월 2일 순창군 쌍치면 피노리에서 친구 김경천의 밀고로 관군에게 체포되어 서울로 압송되고 있다.
부르봉 왕조를 무너뜨리고 국민 의회를 열어 공화 제도를 이룩한 시민 혁명인 프랑스혁명(1789년 7월 14일~1794년 7월 27일)을 가장 잘 설명하는 말도 ‘조세 저항’이다. 왕이나 영주가 자기들이 만든 기준에 따라 시민들에게 세금을 납부하라고 했고 그 부담의 정도가 도를 넘자 이에 견디다 못한 시민들이 들고 일어나서 혁명을 일으켰다. 우리나라에서 1894년에 일어난 동학농민운동도 조세 저항이었다. 동학농민운동이 일어난 원인은 1894년 1월에 일어난 ‘고부민란’. 1892년 고부군수로 부임한 조병갑이 만석보의 고율수세를 비롯하여 온갖 부당한 세금을 거두어들이며 농민들을 착취했고 전봉준을 비롯한 농민들이 부당한 조세에 저항했던 것이다.
과연 우리는 혁명이란 극단적인 처방 없이 부당한 과세에 저항할 수 있는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