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기본적인 임무 중의 하나는 지배가 미치고 있는 공간에 홈을 파는 것, 즉 매끈한 공간을 홈이 패인 공간을 위한 교통수단으로 이용하는데 있다. 단순히 유목민을 정복할 뿐만 아니라 이주를 통제하고 좀더 일반적으로는 외부 전체, 세계 공간을 가로지르는 흐름의 총체에 대해 법이 지배하는 지대가 군림하도록 하는 것은 모든 국가의 사활적인 관심사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온갖 종류의 흐름을 즉 인구, 상품 또는 상업, 자금 또는 자본 등의 흐름을 어디서라도 포획하는 과정과 분리될 수 없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아가 그렇게 하려면 방향을 분명하게 규정해 나아갈 길을 고정해서 속도를 제한하고, 유통을 규제하고, 운동을 상대화하고, 여러 주체와 객체의 상대적 운동을 세부적인 부분에 이르기까지 가감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비릴리오의 명제가 중요한 것은 바로 이 때문인데, 그에 따르면 “국가의 정치 권력은 폴리스 즉 도로 관리”이며, “도시의 성문과 세관은 사람이건 가축이건 재화건 집단의 유동성이나 침입해 들어오는 무리들의 힘에 대비한 제방이며 필터다.
중력이나 중후함은 국가의 본질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국가가 속도를 모르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국가는 운동이 매끈한 공간을 차지하는 동체(動體)의 절대적 상태이기를 멈추고, 홈이 패인 공간 속에서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이동하는 “움직여지는 것(被動體)”의 상대적 성격을 요구한다. 이러한 의미에서 국가는 끊임없이 운동을 분해해서 재구성하고 변형시킨다. 즉 끊임없이 속도를 규제한다. 이처럼 국가는 도로관리자, 방향전환기, 또는 인터체인지인 것이다.
_ <천 개의 고원>(p.741~74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