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자란 규칙적이고 불규칙적인 것을 떠나 반드시 코드화된 형식을 전제하며 이 형식의 측정 단위 또한 결국은 소통되지 않은 환경에 안주하고 마는데 반해, 리듬은 항상 코드 변환 상태에 놓은 <불평등한 것> 혹은 <공동의 척도를 갖지 않은 것>이기 때문이다. 박자는 단정적이지만 리듬은 비판적이며, 결정적 순간들을 잇거나 하나의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 이동해 가면서 스스로 연결하거나 한다. 리듬은 등질적인 시간-공간 속에서 작용하는 것이 아니라 이질적인 블록들과 겹쳐가면서 작용한다. 방향을 바꾸어나가는 것이다. (...) 리듬은 결코 리듬화된 것과 동일한 판에 있을 수 없다. 즉, 행위는 특정한 환경에서 일어나지만 리듬은 두 가지 환경 사이에서 혹은 두 가지 “사이-환경” 사이에서 비롯된다. (...) 이동 중에 있는 환경을 바꾸는 것이 바로 리듬이다. (...)
확실히 환경이 존재하는 것은 주기적 반복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반복은 차이를 생산하는 것 외에는 어떠한 효능도 없으며, 이 차이에 따라서 하나의 환경에서 다른 환경으로의 이동이 일어나는 것이다. 리듬을 갖는 것은 차이다. 또 반복은 분명 차이를 낳지만 리듬을 갖지는 않는다. (...)
한 가지 중요한 코드 변환이 있다. 어느 코드가 다른 식으로 코드화된 성분을 취하거나 받아들이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고 다른 코드의 조각 자체를 취하거나 받아들이는 경우가 그것이다. 전자는 잎과 물의 관계가 연관되며 후자는 거미와 파리의 관계와 연관된다. 거미의 코드는 거미집 속에 파리의 코드 모든 시퀀스를 내포하고 있다. (...) 거미는 마치 파리를 미리 염두해 두고 있는 것 같다.
_ <천 개의 고원>(p.595~5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