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Canon EOS 5D | 남산 공원에서 후암동 방향 풍경→카메라 렌즈→CCD 안의 풍경→웹에 업로딩→웹 안의 충경→눈→머리→'삶'이라는 의미로 추상화 : 풍경의 탈영토화 및 재영토화 과정
탈영토화 제1정리
혼자서는 결코 탈영토화할 수 없다. 적어도 2개의 항, 손-사용대상, 입-가슴, 얼굴-풍경이 있어야 한다. 그리고 두 개의 항들 각각은 다른 항 위에서 재영토화된다. 따라서 재영토화와 초기의 또는 더욱 이전의 영토성으로의 회귀를 혼동해서는 안 된다. 재영토화는 필연적으로 책략들의 집합을 내포하는데, 이 책략들로 인해 그 자체로 탈영토화되어 있는 하나의 요소는 자신의 영토성을 상실하지 않은 다른 요소의 새로운 영토성에 사용된다. 이로부터 손과 도구, 입과 가슴, 얼굴과 풍경 사이의 수평적이고 상보적인 재영토화의 모든 체계가 나온다.
탈영토화 제2정리
탈영토화의 두 요소나 운동에서 가장 빠른 것이 반드시 가장 강렬하거나 가장 탈영토되어 있는 것이 아니다. 탈영토의 강렬함은 운동이나 전개 속도와 혼동되어서는 안 된다. 따라서 가장 빠른 깃은 자신의 강렬함을 가장 느린 것의 강렬함과 연결접속시키고, 강렬함으로서의 가장 느린 것은 가장 빠른 것을 뒤따라 가는 것이 아니라 다른 지층이나 다른 판 위에서 동시에 작동한다. 바로 이런 방식으로 입-가슴의 관계는 이미 얼굴성의 판 위로 인도된다.
탈영토화 제3정리
가장 탈영토화되지 않은 것은 가장 탈영토화된 것 위에서 재영토화된다고 결론을 내릴 수 있다. ... 입 뿐만 아니라 가슴, 손, 온몸, 도구 자체도 '얼굴화'된 것은 이러한 의미에서이다. 일반적으로 상대적인 탈영토화들(탈코드화)는 이런 저런 점에서 절대적인 탈영토화(덧코드화) 위에서 재영토화된다. 그런데 우리는 머리가 하나의 지층에서 다른 지층으로, 유기체의 지층에서 의미생성이나 주체화의 지층으로 이행한다는 점에서, 탈영토화가 부정적인 채로 머문다 하더라도, 머리의 얼굴로의 탈영토화는 절대적이다. 손과 가슴은 얼굴 위에서, 풍경 안에서 재영토화된다. 심지어 집, 물품이나 물건, 의복 등 사용 대상도 얼굴화된다. 우리는 그것들이 나를 바라본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것은 얼굴을 닮았기 때문이 아니라 흰 벽-검은 구멍의 과정 안에 있기 때문이며, 얼굴화의 추상적인 기계와 연결접속되어 있기 때문이다. 영화의 클로즈업은 얼굴이나 얼굴의 한 요소뿐만 아니라 칼, 찻잔, 시계, 주전자도 대상으로 한다. ... 회화, 그 안의 정물은 어떻게 풍경-얼굴이 되는가.
탈영토화 제4정리
추상적인 기계는 그것이 생산하는 얼굴 안뿐만 아니라 몸체의 부분들, 의복들, 그것이 이성의 질서에 따라 얼굴화하는 대상들 안에서 다양하게 실행된다. 결국 다음과 같은 질문이 남는다. 얼굴성이라는 추상적인 기계는 언제 작동하기 시작하는가? 언제 시동이 걸리는가? 간단한 예를 들어보자. 수유를 하는 동안에도 얼굴을 통과하는 모성의 권력, 애무 중에도 연인의 얼굴을 통과하는 열정의 권력, 군중 행동 안에서조차 깃발, 아이콘, 사진 등 우두머리의 얼굴을 통과하는 정치의 권력, 스타의 얼굴과 클로즈업을 통과하는 영화의 권력, 텔레비전의 권력.... 중요한 것은 얼굴의 개별성이 아니라 얼굴이 작동을 허용하는 암호의 유효성이며, 어떤 경우에 그렇냐는 점이다. 이것은 이데올로기가 아닌 경제와 권력 조직의 문제이다. 우리는 확실히 얼굴, 얼굴 역량이 권력을 발생시키고 그것을 설명한다고 말하는 것이 아니다. 권력의 어떤 배치물은 얼굴의 생산을 필요로 하고, 권력의 어떤 배치물은 그렇지 않다.
_ <천 개의 고원> p.334~33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