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춘추전국시대, 전쟁을 피하는 방법 : 양주 Vs 한비자

by 이우 posted Nov 28, 2011 Views 1067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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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non EOS 5D / Canon EF 50mm / Photo by 이우

 

 

 

 

 

 

   ... 슈미트(Carl Schmitt)는 적과 동지라는 범주가 작동하는 순간 이미 ‘정차적인 것’이 작동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특히 중요한 것은 국가라는 기구이다. 국가는 내부적으로도 외부적으로도 적을 규정할 수 있는 탁월한 역능을 가진 존재로 작동하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국가는 기본적으로 전쟁 기구의 성격을 갖게 된다. 국가는 내적으로 ‘적’을 설정하면서 자신의 지배하에 있는 일부 국민들과 전쟁을 벌일 수도 있고, 외적으로는 다른 국가를 ‘적’으로 간주하면서 실질적인 전쟁을 수행할 수도 있다. 대립과 갈등 속에서 이득을 얻는 것은 국가이고 피를 흘리면서 사라져가는 것은 국가의 구성원인 개별적인 인간들이다.

 

  국가 논리를 극복하지 못한다면, 인간들은 끝내 분열과 대립을 피할 수 없다. 국가라는 것 자체가 어떤 조직 혹은 집단의 분열 및 그 분열로 인한 갈등을 먹이 삼아 성장하고 더욱 공고해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국가, 그리고 전쟁을 이 세계로부터 추방할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 슈미트의 논리가 그 해법의 실마리를 제공해준다. ‘적과 동지’라는 범주를 폐기하여 ‘정차적인 것’이 작동하지 않도록 할 수만 있다면, 거듭된 국가의 발호를 원초적으로 방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슈미트가 무의식적으로나마 ‘정치적인 것’의 소멸만이 국가, 전쟁, 그리고 적대관계를 막을 수 있다고 고백했던 것도 바로 그런 이유에서이다.

 

 

  “인류란 보편적인, 즉 지상의 전 인류를 포괄하는 사회적 이상 구조이며, 투쟁의 현실적 가능성이 배제되고, 어떤 적과 동지의 결속도 불가능하게 된 때에 비로소 현실적인 존재가 되는 개개인 상호 관계의 체계이다. 이 보편적인 사회 내부에는 정치적 통일체로서의 어떤 국민도, 나아가서는 투쟁하는 어떤 계급, 적대하는 어떤 집단도 존재하지 않을 것이다.”


(슈미트의 <정치적인 것의 개념(Der Begriff des Politischen)> 중에서 )

 

 

   제자백가들이 활동했던 고대 중국사회에서 가장 영향력이 컸던 철학자는 공자도, 맹자도, 장자도, 노자도 아니라 양주라는 인물이었다. 그는 묵자와 함께 당시 사상계를 양분했던 가장 영향력 있는 철학자였던 것이다. 모든 사상가들이 얼룩진 당시 사회를 통합시키기 위해서 나름대로의 이념을 제안하려고 했을 때, 오직 그만은 사회를 통일하려는 이념 자체가 인간의 삶을 위태롭게 한다는 사실을 통찰하고 있었다. 양주에 따르면 인간의 삶이 위태로울 수밖에 없는 진정한 이유는 인간이 자신의 삶을 숭고한 목적으로 생각하지 않고, 단순한 수단으로만 간주했기 때문이다. 이 점에서 볼 때 당시 새롭게 제안된 다양한 이념들은 그의 눈에는 인간에게 자신의 고유한 삶을 되돌려주기보다 오히려 또 다른 새로운 이념을 위해 인간의 삶을 희생하도록 유혹하는 장치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보였다. 인간의 삶을 수단으로 보기를 포기했을 때,양주는 국가주의로부터 가장 멀리 벗어날 수 있었다. 국가주의를 선택했던 한비자가 양주의 철학을 그렇게 신랄하게 비판했던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하지만 사실 한비자 자신도 맹목적인 국가주의자는 결코 아니었다. 그는 대다수 사람들을 구제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강력한 국가를 선택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한비자는 중요한 수단으로 긍정된 국가란 결국 나중에는 그 누구도 공경할 수 없는 절대적인 목적이 되고 만다는 것을 간과하고 말았다. ....

 


양주 : 자유로운 개인들이 공동체는 가능하다

 

  전쟁으로 얼룩진 전국시대를 종결시키는 방법으로 양주가 제안한 것은 표면적으로 말도 되지 않는 것처럼 보인다. 전체 세계에 진정한 평화가 도래하기를 원한다면, 우리는 천하를 이롭게 한다는 생각 자체를 버려야 한다고 그가 주장하고 있기 때문이다. 대개의 사람들이 전체 사회를 무질서하게 만드는 원인이 국가나 국가가 추구하는 이념이 부재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을 때, 오직 양주만이 무질서의 원인이 ‘바람직한 사회를 위하여 삶을 희생하라’고 선동하는 유가, 혹은 묵가의 국가 지향적 이념에 놓여 있다고 간파했기 때문이다. 양주는 우리에게 묻고 있는 것이다. 국가를 위해서 개체의 삶이 존재하는가, 아니면 개체를 위해서 국가가 존재하는가?

 

  2,000여년 전 양주라는 철학자는 개체의 삶을 위해 바람직한 국가가 있어야 한다는 모든 주장이, 결국은 강력한 공권력을 독점한 국가에 의해 개체의 삶을 일종의 수단으로 전락시키게 될 것이라는 점을 통찰하고 있었다. 국가나 공동체라는 것은 각자의 삶을 위한 하나의 수단일 뿐이지 결코 그 자체로서 목적이 될 수 없다는 것이 양주의 관점이었다.

 


한비자 : 오직 법치국가만이 개체의 삶을 보장해 준다

 

  순자는 공권력과 규범의 외재성을 강조하면서 성악설을 주장했던 철학자이다. 물론, 그가 말한 규범이란 전통적으로 내려오던 군주와 신하, 아버지와 아들, 그리고 남편과 아내 사이의 조화로운 관계를 주장한 유학적 이념을 가리켰다. 하지만 개체의 본성이 악하기 때문에 사회 안정을 위해서 외적인 강제가 불가피하다면, 전통적인 규범보다는 강력한 공권력이 더 효과적일 수밖에 없다. 순자의 수제자 한비자(韓非子, BC 280~BC 233)가 규범을 제거하고 공권력에 종속된 법을 내세우게 된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전국시대의 핏빛 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 유일한 방법으로 강력한 절대군주론을 요청했다.

 

  그에게 있어 법은 기본적으로 상벌의 체계를 의미한다. 강력한 공권력으로 법을 지키면 상을 내리고, 어기면 벌을 내린다. 한비자는 이익을 추구하는 인간이 법을 지켜서 상이라는 이익을 얻는 방향으로 움직일 것이라고 확신했다. 법치를 통하여 국가는 강력해지고 동시에 민중들도 충분한 보호를 얻고, 자신의 이득을 지속적으로 확보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물론 이 경우 민중들의 이득이란 결국 다른 나라와의 전쟁을 통한 약탈로부터 기원하는 것이긴 하지만 말이다. 이처럼 국가 형식 자체를 긍정하고 있었던 한비자에게 있어 양주의 사상은 너무나도 위험한 것으로 보였을 것이다.

 

( 강신주의 <철학 대 철학>에서 정리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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