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랑구립정보도서관 안혜원
아침밥을 안치자마자 다시마를 한 조각 뚝, 분질러 찬물에 담그려다 문득 내가 딱딱하게 말라가는 다시마 같다는 생각이 든다. 한 때는 깊은 물결 속에서 무성하게 휘날렸을. 이십대가 시작되었을 때, 뿌리 없는 해초가 떠밀리듯 서울로 왔다. 길을 가면 누구나 어느 집 몇째 자식인지 훤히 알던 바닷가 작은 도시에서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도시로 와서 마음고생 깨나 했다. 그래도 남처럼 사랑도 하고 결혼도 하고 자식도 낳았다. 남들처럼 산다는 게 참 힘들다는 걸 고비 고비마다 느끼며 고생도 적당히 했다. 다행히 두 아들을 후딱 결혼시키고 이윽고 나를 마주보게 되었다. 20대와 다른 것이 있다면, 내 앞에 올라야 할 아주 큰 산이 떡, 하니 버티고 있지는 않다는 것이다. 험한 바위산을 겨우 올랐다가 이제 내려가는 기분이랄까, 발걸음이 가벼운 건 사실이다. 우연히 두어해 전부터 책 읽는 모임에 참여해왔다. 젊은이들 틈에서 돋보기 쓰고 나름 어지간히 노력해서 다행히 낙오는 하지 않았다. 그래서 외로운 노년은 보내지 않아도 될 것 같은 자신감이 생겼고 눈앞에 새로운 세계가 펼쳐지는 듯한 느낌을 갖는다. 신기루일지 모르지만. 그리고 사랑과 미움, 그리고 외로움 그런 감정들에 자주 휘둘린 지난날들을 후회해 본다. 좀 더 이성적이었더라면 하고. 그래도 아직 내 마음에 감정이 살아있다는 생각이 들 때도 있다. 발처럼 움직여 주는 작은 차를 몰고 쏘다니다 나와 속도를 맞추며 차분히 따라오는, 심플한 디자인의 듬직한 차를 보면 좀 설레기도 하니까. 물에 담그면 금새 싱싱하게 되살아나는 다시마처럼 나도 아주 늙어가도 깊은 맛을 내는 사람이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