청소년인문학 중등 2학년 이가은
세상에는 많은 사람이 살고 있다. 키가 큰 사람, 키가 작은 사람, 뚱뚱한 사람, 마른 사람, 눈이 큰 사람과 작은 사람……. 저마다 외모가 다르듯 생각도 저마다 다르며 성격도 모두 다르다. 서로 다른 모양, 서로 다른 색깔을 가진 그림 조각들이 모여 아름다운 모자이크를 만들 듯 저마다 다른 사람이 모여 있기에 우리는 모두 아름답다.
그러나 우리는 아름답다는 기준을 만들고 이 기준을 받아들이면서 아름답다거나 추하다고 말하는 경우가 많다. 지금 우리는 마른 몸과 큰 눈을 가져야 아름답다고 생각하고 자신의 몸을 성형하려는 강박감을 가지게 되었다.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이 고정 관념이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차별을 만들고 있다는 것이다. 정말 예쁘고 날씬한 사람만이 아름다운 것인가? 만약 세상 사람들이 모두 날씬하고 예뻐진다면 누가 아름다운 것일까? 혹은 모두 아름답다고 말할 수 있을까? 만약 그렇다면 공장에서 아름다움의 기준과 규격을 맞춰 생산된 로봇이 인간보다 아름답다고 말해야 할 것이다. 요즘 외모가 중요시되고 있다고 하지만 아름다움이라고 정해진 기준은 없다.
우리는 저마다 다른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고, 저마다 고유한 취향이나 특성인 ‘개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아름답다. 저마다 다른 내면과 외면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고유하게 존재하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아름다운 것이다. 아름답다거나 추하다는 고정된 생각은 차별을 만들어 내지만 이 ‘다양성’을 인정한다면 차별하지 않는 사회가 될 것이다. 그래서 <피부색깔=꿀색>의 저자 전정식은 ‘뒤섞임과 다양성 만세’라는 말로 책을 마무리했다. 우리는 차이로 존재하기 때문에 아름답다.